제 24 화. 박제(剝製) (4)
종로구 충신동.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홀로 다시 찾은 나는 폴리스 라인을 지키고 서 있다 내 신분증을 보고 경례를 하는 순경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준 후 한숨을 쉬었다.
“제기랄, 개나 찾으라니.”
도대체 개는 왜 찾으라는 거냐? 개 입에 묻은 건 닭의 피다. 혹시 피해자 피일 수도 있다고? 개소리. 피해자는 온몸에 피가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온몸의 단백질이 모두 투명화 되어 포르말린 액체 속에서 발견된 시신의 피가 왜 개 입에 묻어 있겠는가?
짜증이 솟구친다. 그래도 조직 폭력배 사건에서 힘도 좀 쓰고, 같은 707 출신이라는 것도 알게 됐으니 자연스레 인정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나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하긴 지금껏 자기들끼리 해오던 일이었으니 내 쓰임새를 알기 전까진 잡일이나 시키자는 생각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해가 간다고 짜증이 나지 않는 건 아니다.
“하, 개를 어디서 찾냐.”
짜증내서 남는 건 없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빨리 개를 찾아 돌아가는 편이 더 건설적이다. 철저하게 통제해둔 현장을 잠시 바라보다 집 안으로 들어간 후 시신이 발견된 자리를 찾았다. 원통 속에 담긴 시신은 이미 KCSI로 옮겼기에 바닥에 원형의 자국만 보이는 방. 통이 꽤나 무거웠는지 바닥의 장판이 움푹 눌려 있다.
통이 없으니 벽에 써진 글이 더 자세히 보인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진짜 성경구절 일까? 핸드폰을 꺼내 대충 첫 구절을 입력해 보니 검색결과가 있다.
“누가복음 24장 37절부터 39절.”
광신도일까? 아니면 요즘 흔한 기독교를 혐오하는 사람 중 하나일까? 그는 왜 이런 글귀를 남겼을까? 구절이 주는 느낌을 보면 상대의 시신을 보존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만한 동기가 없다. 조사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그의 시신을 보존하려는 시도를 할 사람은 그의 딸 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는 제주도에 있다고 했다. 만약 서울에 올라왔다면 비행기나 배편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연주가 바로 알아내겠지.
집 주변을 잠시 돌아보았지만 별다른 특이점이 없다. KCSI의 보고서 상으론 이곳은 살인현장이 아니라고 했다. 단순히 시신이 전시된 장소일 뿐이란 뜻이다. 73세나 드신 할아버지는 어디서 살해되어 이 꼴로 집에 돌아오게 된 걸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풀어 주길 여러 번. 결국 지금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한숨을 쉰 난 현장에서 나와 정처 없이 걸어 다니기만 했다. 중간에 개를 산책 시키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움찔했지만 보통 집에서 많이 키우는 말티즈나 치와와, 푸들 같은 견종이다.
고등학생쯤 된 여학생이 후드를 푹 눌러쓰고 푸들을 산책 시키는 것이 보인다. 개를 산책 시키는 사람은 보통 비슷한 시간에 같은 코스를 돈다. 혹시 아는 게 있을까?
“실례합니다, 경찰입니다.”
움찔 놀라는 여학생. 무슨 일이냐는 듯 후드를 벗는 여학생은 긴 생머리에 안경을 쓴 평범한 학생이다.
“아, 겁먹지 마시고. 뭐 좀 여쭤보려고요.”
“네.. 뭐요?”
“혹시 주변에서 하얀 백구 키우는 집 못 보셨습니까?”
“백구면··· 하얀 진돗개처럼 생긴 애요?”
“네.”
“어.. 그 개는 이 동네 막 돌아다니는 애인데.”
응? 사람이 키우는 개가 아니었어? 하지만 애교가 넘쳤었는데. 보통 거리를 배회하는 개는 사람에게 가까이 오는 일이 없다. 취객에게 호된 일 몇 번은 당해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보셨습니까?”
여학생이 손목시계를 확인 후 말했다.
“이 시간이면 보통 시장 쪽에 있어요.”
“어느 시장이요?”
“충신시장 아시죠?”
“압니다.”
“거기서 가게 돌면서 뭐 얻어 먹고 그래요. 이 시간엔 항상 거기 돌아다녀요.”
호, 물어보길 백 번 잘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경찰이라는 이름이 주는 꺼림칙함 때문인지 여학생은 서둘러 길을 떠난다. 잠시 그녀를 바라본 난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전 시간이라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늘이 주말이란 걸 깜빡 했다. 꽤 많은 손님들이 붐비는 전통 시장.
“뭔가 얻어 먹기 위해 온다고 했었지?”
얻어 먹는다. 그럼 식당이 제일 만만하겠지. 식당 골목에 접어들자, 팥죽, 만두, 비빔 당면 등을 파는 가게들이 양쪽에 쭉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백구는 보이지 않는다. 호박죽을 그릇에 담고 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가자 할머니가 쪼글쪼글한 얼굴로 웃는다.
“호박죽 드시게?”
“아··· 뭐, 한 그릇 주세요.”
“응, 내가 맛있게 해줄게.”
다 된 호박죽을 퍼 담아 내미는 건데 뭘 맛있게 해준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먹으면서 천천히 백구에 대해 물어보자. 예의상 한 술이라도 뜨기 위해 입에 넣은 뜨거운 호박죽. 바로 백구에 대해 물어보려 했던 난 입 안을 채운 고소하고 달달한 호박죽 맛에 눈이 동그래졌다.
“어.”
호박죽 냄비를 큰 주걱으로 젓고 있는 할머니가 웃는다.
“맛있지?”
“어··· 네, 진짜 맛있네요.”
“하하, 우리 어머니 비법으로 만든 거지. 우리집 호박죽 맛은 어디서도 못 본다고.”
와, 이거 진짜 맛있네. 게눈 감추듯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서야 내 본분이 떠올랐다.
“저기 할머니.”
“응?”
“혹시 주변에서 백구 못 보셨어요?”
“백구?”
“네, 몸이 하얗고 진돗개처럼 생긴 개요. 코는 검어요.”
말하고 보니 황당하다. 백구는 원래 코가 검다. 내가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얼굴이 잠깐 빨개졌지만 다행히 할머니가 반색하며 말했다.
“칠구?”
응? 칠구가 뭐야?”
“칠구요? 그 개 이름이 칠구예요?”
“응, 칠구라고 불러.”
주인이 있는 걸까? 이름이 붙어 있다.
“주인 있는 개였어요?”
할머니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있었지. 그런데 2년 전에 먼저 갔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원래 사람이 키우던 개였던 거다.
“노인이 키우던 개였나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인 후 국자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원래 저기 전당포 뒤에 살던 할멈이 키웠지. 2년 전에 주인이 죽고 나선 그냥 이 동네를 배회하며 여기 저기서 음식 얻어먹고 살아.”
“시청이나 동물보호협회에서 안 데려갔어요?”
자연사라고 해도 독거노인이 사망한 현장에서 개가 발견되면 보통 동물보호협회나 시에서 데려간다. 입양절차를 대기하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보통인데. 칠구는 왜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할머니가 안됐다는 얼굴로 말했다.
“원래 칠구는 풀어놓고 키우는 아이였는데 한번 나가면 이 삼일 안 들어오고 그랬어. 나가서 실컷 놀다가 배 고프면 집에 오는 녀석이었지. 할멈이 죽고 월셋집 주인이 신고해서 시신을 싣고 갔을 때도 칠구 녀석은 나가서 노느라 집에 없었어.”
음, 그래서 시청 직원이나 경찰의 손을 피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말도 못하는 녀석이 어찌나 불쌍했던지. 지 주인 없다고 빈집에서 낑낑대며 문 열어 달라 긁어 대는 녀석이 하도 안쓰러워서 시장상인들이 볼 때마다 먹을 걸 챙겨주곤 해.”
음,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어요? 자주 가는 곳 없습니까?”
“언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몰라. 그냥 자기 배 고프면 와.”
하, 언제까지 시장에서 죽치고 있을 수도 없고. 미치겠네. 내가 이마를 어루만지자 할머니가 날 지그시 보며 말했다.
“그런데 칠구는 왜? 혹시 시청에서 나왔어?”
할머니 얼굴에 경계가 서린다. 칠구를 보호시설로 데려갈 속셈이라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얼른 신분증을 내보인 후 말했다.
“저 경찰이예요.”
할머니의 눈이 동그래진다.
“혹시 어제 동네 시끄러웠다더니. 그거 때문에 그래?”
“네.”
“아니, 사건 해결하러 다녀야 할 형사가 왜 개를 쫓아 다녀?”
그러게 말입니다, 할머니. 나도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숨을 쉬며 속으로 신세한탄 중인 그때 할머니가 말했다.
“칠구 꼭 찾아야 되면 그 할멈 집으로 가.”
“예?”
눈이 번쩍 뜨였다. 할머니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칠구 놈은 밥은 여러 군데서 얻어 먹고 다녀도 잠은 꼭 지 주인이랑 살던 집에서 자. 지 주인 죽고 나선 항상 그랬어. 그러니 집에서 기다려. 그럼 올 거야.”
됐다, 찾을 수 있겠다.
“그 집이 어디예요, 할머니?”
“이 길로 쭉 가서 저쪽 전당포 끼고 우회전 해. 한 이십 미터 가면 파란 지붕 집 있어. 거기 반지하에 세 들어 살았어.”
“감사합니다, 할머니!”
바람처럼 뛰었다. 빨리 개를 찾아서 KCSI에 갖다 주고 진짜 수사를 하고 싶다. 할머니 말을 따라 온 파란 지붕 집. 3층짜리 주택 건물이다. 현관문이 열려 있어 머리를 들이밀었다.
“실례합니다.”
조용하다.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왼쪽을 보니 반지하로 가는 계단 세 칸이 있고 복도를 따라 세 집이 연달아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칠구는 안 보인다. 아직 집에 올 시간이 아닌 모양이다. 남의 집에 들어가 기다리긴 뭐 해서 집 주변 화단 바위 위에 걸터앉아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칠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바위에 걸터앉아 장시간 있었던 탓인지 허리와 엉덩이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빨리 녀석을 찾아 당장 현장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꾸만 조바심이 난다. 게다가 세 시간이나 남의 집을 노려보며 바윗돌에 앉아 있는 날 본 동네사람들이 수상한 사람 보듯 하는 것도 싫다.
어디를 저렇게 다니는지 벌써 세 번이나 마주친 동네 아주머니가 날 벌레 보듯 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아마 변태나 스토커 같은 인간으로 보는 것 같다. 확 그냥 쫓아가서 신분증을 까? 휴, 그냥 기다리기나 하자.
두 시간쯤 더 기다리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다. 젠장, 오전에 나왔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일까? 그렇다고 핸드폰이나 보고 있다가 개를 놓치는 수가 있으니 눈도 뗄 수 없다.
무료함에 지쳐가는 시간. 해가 완전히 저물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욕이 솟구친다.
“젠장, 잡히기만 해봐라, 삶아서 된장을 발···”
바로 그때. 골목길에서 백구 한 마리가 돌아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어··· 어어!”
날 보더니 귀를 쫑긋하는 녀석. 하루 종일 기다렸던 녀석을 만나서 였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칠구!!!!!”
백구는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자 몸을 움찔하더니 마구 뒷걸음질을 치다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칠구우우우우우야아아아아아아!!!”
아냐! 너 잡아 먹는다는 건 그냥 해본 생각이야! 도망가지 마, 나 개 안 먹어! 칠구는 내 마음도 모르고 쏜살같이 달아나고 있다. 전력질주로 따라 붙고 있지만 애초에 사람이 달리기로 개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제기라아아아알!!!”
솟구치는 짜증. 달리고 있지만 찾기는 이미 글렀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다. 하루 종일 개만 쫓아 다녔는데 그것도 못 찾았고 돌아가면 모두가 날 비웃을 테니까. 스피드가 점점 느릿해 진다. 종일 앉아만 있다가 갑자기 뛰었더니 다리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다.
결국 뛰다 지쳐 터벅터벅 걷던 나는 어느 집 현관문 기둥에 기대 숨을 골랐다.
“하아, 하아. 이 새끼 진짜.”
개가 무슨 죄가 있겠냐 만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때려주고 싶을 만큼 밉다. 그냥 순순히 잡혀주면 얼마나 좋아? 그때 내 귀로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끄으응···”
놀란 내가 뒤를 돌아보자 열려 있는 현관문 안쪽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겁먹은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는 칠구 녀석이 보였다. 이 집에 숨어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사악한 얼굴이 되어 현관문을 몸으로 막아 섰다.
“더는 도망 못 간다, 이 놈아.”
주인 없이 혼자 살아가는 백구가 불쌍하다는 생각과, 하루 종일 이 녀석 쫓느라 고생한 걸 떠올리면 확 그냥 진짜 된장을 바르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솟구치던 그때.
내 눈 앞에서 몸을 떨고 있는 백구와 주변이 모두 흑백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모든 시간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