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화. 박제(剝製) (5)
안경집에 가 새 안경을 쓰면 우리는 잠시 새 안경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 원근감이 낯설어 질 때도 있고, 내 시야가 원래보다 약간 높거나 낮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지금이 딱 그런 느낌이다. 점점 낮아지는 시야. 군 시절에 낮은 포복으로 기어갈 때 봤던 풍경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시야다. 하지만 내가 기어가는 속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감이 느껴진다. 볼을 스치고 가는 바람, 가끔 뺨을 때리는 잡초의 느낌들이 너무나 생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경한 한 가지. 그건 바로 소리다.
‘헥, 헥, 헥, 헥, 헥, 헥, 헥···’
심장이 평소보다 몇 배는 빨리 뛰는 것 같다. 마치 누군가 가슴 속에서 망치로 갈비뼈를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게 도대체 어떤 기억이지?
공사장인가? 아닌데, 바닥에 각목이나 시멘트 같은 산업 폐기물이 널려 있는 건물. 파란색 비닐로 덮여 있는 쓰레기 더미 안으로 머리를 쑥 집어 넣으니 안쪽으로 작은 길이 나 있다. 엉금엉금 기어 길 끝에 난 풀숲으로 몸을 던지자, 코를 찡긋거릴 수 밖에 없는 강한 악취가 난다.
저게 뭐야? 설마 저거 다 똥인가?
눈 앞에 보이는 풀숲 가운데 움푹 패인 모래밭. 그 안에 적어도 백 개는 되어 보이는 개똥이 널려 있다. 그리고 그 똥 가운데 하나가 내 눈 앞으로 온다. 으, 토 나와.
‘킁, 킁킁.’
젠장, 냄새는 왜 맡는 거냐!
이런 냄새가 좋아서 맡는 거야? 그때 알았다. 이건 사람의 기억이 아니라 칠구 녀석의 기억이었다. 개의 기억도 읽어낼 수 있는 거였어?
한참 냄새를 맡던 나는 엉덩이를 내리고 배에 힘을 잔뜩 준다. 몸을 앞으로 몇 발자국 가며 변을 본다. 도대체 왜 똥을 싸면서 사방을 기어 다니는지 모를 나는 한바탕 똥을 싸지르곤 모래를 뒷발로 찬다. 변을 덮으려고 하는 행동도 아니다. 방금 싸지른 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모래가 튀고 있다. 난 지금 발을 닦고 있는 건가?
다시 몸이 총알처럼 튀어 나가며 또 다시 헥헥 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오기 직전까지 뛴다. 도대체 개들은 왜 이렇게 뛰는 걸까? 좁은 골목길.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한 분이 꽃무늬가 들어간 조끼를 입고 집 앞에 나왔다가 내게 손을 내민다.
‘쭈쭈, 칠구 왔어? 잠깐만 기다려라. 할미가 뭐 좀 줄게.’
익숙한 일인가? 나는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집으로 들어간 할머니를 주시한다. 대문이 닫혔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저 문은 곧 다시 열릴 것이고 할머니 손엔 맛있는 무엇인가가 들려 있을 걸 아니까.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주방에서 쓰는 그릇을 가지고 오시더니 내 앞에 있는 계단에 털썩 앉는다.
‘자, 할미가 너 주려고 모아 놓은 거야.’
입가에 침이 줄줄 흐른다.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안 봐도 안다. 이건 고기 냄새다. 목부터 시작된 흔들거림이 척추를 타고 내려가 맹렬한 꼬리 흔들기로 이어지고 있다. 개는 이렇게 온 몸의 뼈를 이용해 꼬리를 흔드는 구나.
그릇에서 뭔가를 한 주먹 들고 내미는 할머니. 나는 일단 냄새를 맡는다. 음, 향긋하다. 당장 먹어 치우고 싶다. 할머니 손이 다치지 않게 살금살금 물어보자, 고기 내음이 입안으로 확 번진다. 그런데.. 이거 식감이 왜 이래? 할머니 손을 보자, 살코기는 떼고 기름만 남아 있는 고기가 보인다. 웩, 지금 나한테 저걸 준 거야?
‘제기랄! 근데 왜 맛있는 거냐고!’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너무 맛있다. 머리는 저런 거 먹으면 성인병 걸린다고 말리는 중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벌써 네 주먹이나 먹었지만 더 먹고 싶다. 할머니는 빈 그릇을 보여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녀석, 배가 많이 고팠구나. 빨리도 먹는다. 좀 씹어 먹지, 그냥 꼴깍꼴깍 삼켜 버리네.’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 안으로 들어가시며 날 힐끔 본다.
‘다 먹었어, 녀석아. 이제 그만 가.’
아쉬운 마음이 굴뚝 같다. 한 주먹만 더 먹었으면 딱 좋겠는데. 꼬리를 흔들며 좀 더 달라 졸랐지만 할머니는 이미 들어가셨다. 아주 잠깐 할머니를 더 기다렸지만 이 정도면 꽤 많이 얻어 먹었다. 더 욕심 부리면 혼이 날 지도 모른다.
얼마나 돌아 다녔을까? 이 동네 사람들 인심은 참 좋다. 날 마주칠 때마다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가방을 뒤져 소시지 따위를 주는 사람도 여럿 있다. 여기 저기에 애교를 부리고 다니며 얻어 먹기를 한참. 어느새 날이 저물고 사위가 어두워진다.
마지막으로 시장을 한번 더 들러 상인들이 주는 음식까지 해치우고 천천히 걸어 주택가를 배회하는 나. 어디로 가는 걸까? 문득 호박죽을 팔던 할머니 말이 생각났다.
‘칠구 놈은 밥은 여러 군데서 얻어 먹고 다녀도 잠은 꼭 지 주인이랑 살던 집에서 자. 지 주인 죽고 나선 항상 그랬어. 그러니 집에서 기다려. 그럼 올 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거기서 잠을 청하려고? 근데 도대체 왜 이런 쓸모 없는 기억이 보이는 거냐! 개의 기억이라니. 말 그대로 진짜 개꿈을 꾸고 있는 걸까? 신기한 경험이긴 한데 난 지금 이런 곳에 에너지를 쓸 여유가 없다고.
나는 골목길을 돌기도 하고, 사람은 다니지 못하는 개구멍을 통해 집주인도 알지 못하게 남의 집 마당에 들어가서 냄새를 맡고 다닌다. 가끔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마주치기도 했지만 굳이 그걸 뜯어 먹진 않는다. 동네 사람들에게 충분히 얻어 먹었기 때문이다.
마당이 있는 1층 주택의 철제 현관문 아래 틈을 기어서 빠져 나온 난 주변을 둘러보다 한 집을 발견했다. 초록색 대문이 열려 있는 골목길 끝 집이다. 원래 저 집 문은 항상 닫혀 있었다. 바깥에서 짐승 냄새가 나 몇 번이나 기웃거려 본 기억이 있다. 또 새벽마다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하는 집이라 항상 궁금했던 집이었는데 오늘 따라 문이 열려 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난 천천히 걸어가 문 앞에 섰다. 혹시 무서운 사람이 나오면 바로 도망가야 되니 엉덩이를 뒤로 잔뜩 빼고 한껏 긴장한 채 문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꾸에에에에엑!!! 꼬꼬!!’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움찔한 내 눈에 검은 후드를 푹 눌러 쓰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의 손에 잡힌 닭이 보인다. 거꾸로 매달려 목이 떨어졌지만 아직도 꿈틀거리는 처참한 닭의 모습. 잘린 모가지에서 피가 뚝뚝 흘러 나온다.
‘킥! 킥킥···’
소름 끼치는 웃음 소리다. 목소리로 보아 분명히 남자다. 그는 닭을 담벼락 쪽으로 털어낸다. 그러자 남은 피가 담에 확 뿌려진다. 칼로 죽은 닭의 몸을 여기 저기 쑤셔 보는 남자.
‘에이, 더 안 나오네.’
칼로 닭을 찌를 때 이상한 것을 보았다. 남자의 왼손 손등에 이상한 흉터가 있다. 언뜻 화상 자국 같기도 하고, 문신을 지운 자국 같아 보이기도 한다. 남자가 손에 쥔 닭을 바닥에 툭 떨구더니 닭장을 돌아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다른 닭들이 불안한 몸짓으로 닭장 내를 날아 다니고 있다. 문을 반쯤 열고 손을 쑥 집어 넣은 남자가 또 한 마리의 닭 목을 붙잡고 꺼내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목을 그어 버린다.
내 눈에 바닥에 툭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는 닭 목이 보인다. 확 풍겨 오는 피비린내. 나를 미치게 하는 건 닭을 죽이는 현장보다도, 그 피를 사방에 뿌리고 있는 저 미친놈보다도. 피 냄새를 맡고 입 안에 고이는 침.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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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빙글빙글 도는 극심한 어지러움. 나는 비틀거리며 돌 난간을 붙잡았다.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지러움을 느낀 나는 방향감각을 되찾기 위해 잠시 한쪽 눈을 손으로 눌렀다.
“하, 이게 무슨.”
앞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뭐 하는 중이었더라?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눈을 떠 보니 막다른 길에 몰린 칠구가 불쌍한 눈빛으로 날 올려 보고 있다. 마치 나 잘못한 거 없어요 라는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 녀석이 범인을 봤다.’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순 없다. 내가 본 것이라도 잊기 전에 기억해야 한다.
‘키는 170센티미터 가량, 몸무게 약 60kg의 왜소한 체격. 왼 손등에 흉터.’
그리고 그의 웃음소리. 보통 사람은 킥킥대며 웃지 않는다. 그건 만화에나 나오는 악당들의 웃음소리지 현실에서 그렇게 웃는 사람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그 특이한 웃음소리를 실제로 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범인은 남자이며 닭을 죽여 사방에 피를 뿌리는 미친놈이다.
“끼잉, 끼잉···”
날 보며 눈치를 보는 칠구. 범인에 대해 생각하는 와중 자신을 노려보는 내가 무서운 모양이다. 이러다 또 도망이라도 가면 큰일이다. 나는 얼른 바닥에 주저앉아 양팔을 벌렸다.
“아냐, 아냐. 너 잘못한 거 없어. 이리 올래?”
그래, 네 덕에 똥 냄새를 좀 맡고 기름 뿐인 고기 맛을 본 건 사실이지만 그건 네 삶이니까 인정해 줄게. 넌 잘못한 거 없어. 칠구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마 내가 할머니였거나 혹은 여자였다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왔을 거다. 하지만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는 취객, 특히 남자들에게 걷어 차인 기억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쉽게 경계를 풀지 않는다.
10분이 넘는 실랑이. 나는 갖은 감언이설로 녀석을 꼬셨다.
“우리 칠구, 나 몰라? 어릴 때 봤잖아. 너 새끼 때 우리 봤는데. 나 너네 할머니도 알아. 2년 전에 돌아가셨잖아, 안 그래?”
“이리 좀 와라, 응? 그냥 형이랑 가서 간단히 몇 개만 검사 받으면 돼. 어때, 쉽지?”
“그래! 내가 인심 쓴다! 협조해 주면 내가 이따 감자탕 한 그릇 포장해서 준다, 어때? 너 인마 기름만 있는 고기랑 살코기랑 지방이 적절히 섞인 고기는 차원이 다르다고. 너도 먹어보면 그렇게 생각할 거다.”
개가 감자탕을 먹어도 되나? 음, 간이 되어 있어서 안 좋을 것 같은데. 그냥 집에 가서 끓여 먹을 테니 재료만 싸 달라고 한 뒤에 간이 되지 않은 고기만 주면 되겠지, 뭐.
칠구는 30분이나 내 눈치를 보다가 결국 빠져 나갈 구석이 없는 것을 눈치챘는지 애교나 부리자는 심정으로 내 손 냄새를 맡는다. 녀석이 놀라지 않게 천천히 안아 옆구리에 끼고 일어났다.
“새끼, 더럽게 무겁네. 너 인마. 들개는 원래 바싹 마르고 그래야 불쌍해서 더 얻어 먹는 건데. 엄청 잘 먹고 다니나 보구나. 네가 나보다 낫다 인마.”
하, 드디어 첫 임무를 완수했구나. 무사 임무완수에 대한 기쁨이 잠시 느껴졌지만 곧 현타가 온다. 첫 임무가 개를 잡는 거라니.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KCSI 건물까지 온 나.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개는 택시에 태워줄 수 없다는 기사에게 공무수행 중이라며 신분증을 보여준 후에 겨우 차를 탈 수 있었다.
게다가 자꾸만 놔 달라며 버둥거리는 녀석을 꽉 붙잡고 있는 일도 쉽지 않았다. 방금도 택시에서 내리며 녀석을 놓칠 뻔 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녀석은 택시비를 내는 순간 열린 문 밖으로 뛰어 나가다 공중에서 내게 덜미를 붙잡혔다. 잠깐이라도 눈을 뗄 수 없는 녀석이다.
옆구리에 녀석을 꼭 끼고 건물로 들어가자, 커피를 들고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목과장님이 날 보며 반색한다.
“여.”
갖은 고생으로 초췌해진 얼굴로 다가간 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개··· 잡아 왔습니다.”
“아, 이 개구나.”
목과장이 연구원들에게 눈짓하자, 그들 중 한 명이 칠구를 데려간다. 구해달라는 듯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칠구. 괜찮아, 녀석아. 검사 몇 개 돌리고 돌려 보내 줄게.
“저, 과장님.”
“음.”
“저 녀석 말입니다. 조사 끝나면 돌려 보내주시는 거죠?”
“주인 있는 개지?”
“·····················..”
여기서 없다고 하면 법대로 처리해야 된다고 하겠지.
“네, 있어요.”
“그래, 조직검사, 성분검사 하려면 한 이틀 걸리니까. 그 후에 찾아와. 네가 직접 돌려주는 편이 좋겠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 여기 있어도 돼?”
“예?”
목과장이 모르냐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까 정호가 그러던데. 닭 죽인 놈 그거. 누구인지 확인했다고.”
뭐야? 범인을 잡았다고? 이렇게 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