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화. 박제(剝製) (6)
다행히 핸드폰에 관우 전화번호가 있다. 넉살 좋은 녀석이라 제일 먼저 전화번호를 교환해서 다행이다. 물론 사무실에 돌아가면 비상연락망이 있지만 정신이 없어 동료 형사들 중 관우와 이정호 반장의 번호만 저장했다. KCSI 건물을 나서며 전화를 걸자, 곧 관우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도경 형님.
“관우야. 범인 잡았어?”
-아직 모릅니다. CCTV 분석 중에 며칠 전에 골목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확인했을 뿐이라서요.
초록대문집이 있는 골목에는 집이 하나다. 그 골목에 들어갔다는 건 현장에 갔다는 뜻이다.
“지금 어디야?”
-현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신원확인부터 해야 되니까요.
“나도 현장으로 갈게.”
-잠깐만요.
전화기 너머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마 수화기를 막고 대화하는 모양이다. 잠시 후 관우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형님.
“어.”
-반장님이··· 개 잡았냐고 물어 보시는데.
“하, 잡아서 KCSI에 넘겨주고 왔다.”
-아, 그럼 오시랍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괜찮아. 거기서 봐.”
전화를 끊고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든다. 제길, 할부로 차를 사던가 해야지. 택시 타고 다니는 형사라니 어이가 없다.
종로구 충신동.
사건 현장인 초록대문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입구에서 내린 내 눈에 대문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팀원들이 보인다. 관우가 날 보더니 손을 번쩍 든다. 녀석 덕에 내 출현을 알게 된 김연주가 슬쩍 눈 인사를 건네 온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가가니 이정호 반장이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용케 찾았다?”
네가 개 찾아오라며, 이 새끼야! 욕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참자. 그래도 반장인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CCTV에 뭔가 걸렸습니까?”
이정호 반장이 관우에게 눈짓하자 그가 핸드폰을 내민다.
“이 사람입니다.”
영상이 아니라 사진이다. 사진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여자?”
“예, 형님. 탐문을 해 보니 이웃 사람인데 밤 늦게 일이 끝나고 돌아와 새벽녘에 잠에 드는 사람이랍니다. 잠이 올만 할 때 울어 대는 닭 소리 때문에 몇 번이나 피해자 강상원씨와 말다툼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정호 반장을 돌아보며 인상을 썼다.
“범인이 여자라고요?”
“왜, 여자가 범인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
“대한민국 강력범죄의 90%가 남성의 범죄다. 하지만 말 속에 녹아 있듯 나머지 10%는 여성이 저지르는 범죄야.”
그걸 몰라서 물었겠습니까? 내가 본 칠구의 기억과 다르니까 그렇지. 아니, 잠깐만. 여자이지만 목소리가 걸걸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 체형이 무척 왜소했다. 그러니 섣불리 남자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이정호 반장의 말이 맞다.
“이 사람 주소는 파악됐습니까?”
이정호 반장이 골목길 바깥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지금 영현이가 동네 사람들 탐문 중이다.”
그러고 보니 최영현이 안 보이는 구나. 물러나 있던 김연주가 끼어 든다.
“민원센터에 닭과 관련된 민원인을 확인했습니다. 접수 민원은 총 31건. 민원인 수는 여섯입니다. 하지만 시정되지 않아 지속적인 민원이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이정호 반장이 물었다.
“시청 민원과나 경찰서 민원센터 직원 안 왔다 갔대?”
“다녀갔습니다. 여러 차례 시정 권고를 하고, 경고장까지 발부한 기록이 있습니다.”
군인으로 살아온 독불장군 할아버지라고 했다. 시에서 경고를 했음에도 여전히 닭을 키우고 있었구나. 이정호 반장이 다시 물었다.
“민원과 직원이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래?”
“지금으로부터 32일 전입니다.”
“참나, 그래서 CCTV에 없었던 거네.”
“26일 전에 다시 민원이 접수되어 시청 직원이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두어 번 더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답니다.”
“끝이야? 미친 새끼들. 민원이 계속 접수가 되면 찾아와서 들여다볼 것이지. 전화 안 된다고 그냥 뒀어? 월급 루팡이야, 뭐야?”
이정호 반장이 툴툴거렸지만 그도 안다. 민원센터는 하루에도 수백 통의 민원이 접수된다. 소음 관련된 민원에 일일이 대응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교회나 성당을 조사하러 간 최영현 쪽에서도 성과가 없었을까? 자리에 없으니 물을 사람이 없다.
“최영현 경사님 쪽에서는 별 성과 없었습니까?”
다행히 미리 전달 받았는지 관우가 답해준다.
“성당, 교회 교인 명단을 확보하긴 했는데, 숫자가 천을 넘어간답니다. 전부 조사하려면 시간 꽤 걸릴 것 같아요.”
후, 그 많은 사람들과 전화만 나눠도 한 달은 걸리겠다. 천 명도 넘는 다니. 그때 골목길 끝에서 덩치 큰 최영현이 나타나 핸드폰을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얼른 골목길을 빠져 나오자, 우릴 기다리던 최영현이 골목길 바깥쪽 오른쪽 두 번째 집을 핸드폰으로 가리켰다.
“저 집이랍니다. 저기 보이는 이층 창문이 침실 창인데 사건이 난 집 쪽으로 난 창이라 새벽에 닭이 울면 무척 시끄러웠답니다.”
이정호 반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그 집으로 움직이려다 멈칫한다. 잠깐 고민하며 우리를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괜히 우르르 몰려가서 자극할 필요는 없지. 일단 인상 더러운 영현이랑 난 빠진다. 그럼··· 연주랑···”
남은 건 관우와 나. 둘을 번갈아 보는 이정호 반장. 난 최대한 열정적인 표정을 지었다. 남들 수사할 때 난 종일 개만 쫓아 다녔기 때문이다. 내 눈빛이 전해졌을까? 이정호 반장은 날 잠시 바라본 후 혀를 찬다.
“도경이가 간다. 나머진 근처 수색해. 닭을 죽인 흉기를 찾아내야 된다.”
후, 드디어 형사다운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팀원들이 흩어지자 수첩을 든 김연주가 앞장 서서 대문으로 가 벨을 누르며 물었다.
“탐문 경험 있으세요?”
나 우습게 보는 거냐?
“순환보직 근무 때 여러 번 해봤습니다.”
김연주가 날 힐끔 본 후 말했다.
“잘됐네요, 용의자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는 최대한 삼가해 주세요.”
아무리 경험이 없다지만 그래도 내가 당신보다 위인데, 이거 너무한 거 아냐? 후, 참자 참아. 지금 계급으로 찍어 누르면 당장은 편해도 나중에 같이 일하기 힘들어진다.
김연주는 여러 번 벨을 눌렀다. 하지만 집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집에 없는 거 아닙니까?”
내 물음에 김연주가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밤 11시인데.”
“아까 밤 늦게 일이 끝나는 사람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음, 아직도 안 끝났을 까요?”
“일단 좀 기다려 보죠.”
내 말에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는 김연주. 나도 그녀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하, 오늘은 어째 하루 종일 남의 집 대문 앞에 앉아만 있네요.”
김연주가 날 바라본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개요. 개 찾아 다니느라 종일 동네에서 기다렸거든요.”
“아.”
잠깐 침묵이 흐른다. 밤이 늦어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쪼그리고 않아 입을 다물었던 김연주가 잠시 후 입을 뗀다.
“서운하시죠?”
“·····················”
안 서운하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같이 일할 사이인데 이런 대접을 받고 있으니. 내가 답을 하지 않자 김연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제가 여기 처음 온 날 이야기해 드릴까요?”
“경장님은 어느 부서에서 오셨습니까?”
“교통과요.”
“···············.”
교통과 출신이었구나.
“언제 오셨습니까?”
“한 일 년 좀 넘었어요.”
“경장 달고 오셨습니까?”
“네.”
“경장님도 처음에 개 찾아 다니셨어요?”
“하하, 그건 아니고요.”
김연주가 웃는 걸 처음 본다. 웃으니까 꽤 예쁜 것도 같다. 김연주는 잠시 옛 일을 회상하듯 말했다.
“기왕 경찰이 되기로 한 거 강력계 형사가 되어 나쁜 놈들 다 때려 잡자는 심정으로 여기 지원했어요.”
보통 다른 부서에서 강력계로 오는 형사들이 대부분 그렇다. 멋진 형사가 되겠다는 신념이나, 강한 열망이 지원의 동기다. 그녀도 그랬나 보다.
“그랬는데요?”
김연주가 쓴웃음을 짓는다.
“저 여기 와서 한달 동안 사무실에서 복사, 프린트만 했어요.”
“·····················”
“그래도 경위님은 남자잖아요. 경찰 조직 내에서 여 형사가 얼마나 차별 받는지 잘 아시죠?”
“·····················”
그렇구나. 첫 임무부터 개나 잡으러 다녔지만 난 그래도 외근이라도 나갔구나. 무려 한달이나 사무실에 틀어 박혀 복사나 하고 있었던 김연주에 비하면 난 양반이었다. 김연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관우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강력계라는 곳이 참 외부인력은 무시하고 자기들만 잘난 줄 아는 집단이거든요. 유치장에 갇힌 범죄자들이 관우한테 뭐라고 불렀는지 아세요?”
보통 형사들 별명은 미친개나, 불독 같은 사나운 건데. 관우 별명은 뭐였을까?
“뭐라고 했습니까?”
“배기요.”
“배기? 그게 뭡니까?”
“배달의 기수 몰라요?”
“그거.. 음식 배달시키는 앱 말입니까?”
김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유치장에 갇혀 있는 놈들 밥 시켜주는 게 관우 임무였어요. 밥 다 먹으면 그릇 빼서 음식물 분리 수거하고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것까지. 관우는 그 짓을 세 달이나 하고 난 후에 겨우 현장에 나왔어요.”
하.. 꼭 이런 짓을 해야 되는 거냐? 김연주가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무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기가 원래 그래요.”
위로 같지 않은 위로였지만 나보다 더한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 그들이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니 조금 위안이 된다. 김연주는 평소엔 살짝 까칠해 보이지만 사실은 좋은 사람 같다.
“고맙···”
“저기 와요.”
고맙다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골목 바깥 쪽에서 나타난 인영을 본 김연주가 내 말을 끊고 벌떡 일어난다. 움직이는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4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지친 기색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관우가 보여준 CCTV 사진 속 그녀다.
김연주가 얼른 다가가 신분증을 내민다.
“실례합니다, 경찰입니다.”
보통 대뜸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놀라기 마련이다. 잘못한 게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 사람은 달랐다. 인상을 확 구기며 팔짱을 낀 여성이 뾰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원 넣은 지 며칠만에 겨우 얼굴 보네요.”
민원 때문에 찾아온 것으로 알고 있구나. 나는 그녀의 손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팔짱을 끼고 있는 통에 볼 수가 없다. 김연주가 수첩을 열며 말했다.
“민원 때문에 온 건 아니고요, 죄송하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여성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민원 때문이 아니라고요?”
“네, 다른 사건 때문에 여쭤볼 것이 좀 있어서 왔습니다.”
“하! 시민이 불편해서 넣은 민원은 씹고, 자기들 볼일 있으니 찾아온다고요?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죄송합니다, 꼭 필요한 일이라 그렇습니다. 민원에 대해선 이제 괜찮을 겁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 어?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닭 새끼들 소리가 안 들렸는데.”
여성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짓다가 기쁜 얼굴이 된다.
“민원이 제대로 처리됐군요! 어쩐지 며칠 조용하더라.”
닭 울음 소리가 해결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기쁜 걸까? 잔뜩 불만에 차 있던 여성은 금세 호의적으로 변한다.
“이름 물어봤죠? 김현정이에요.”
“네, 김현정씨. 이 집에 사시죠?”
“네.”
“혼자 사십니까?”
“원래 언니랑 사는데 언니가 제주도 한 달 살기 간다고 나갔어요. 다음주에나 돌아올 거예요.”
김연주는 김현정의 말을 받아 적은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현정씨, 4일 전에 강상원씨 댁에 방문하신 적 있으시죠?”
“네?”
약간 당황한 얼굴의 김현정. 나는 내 기억에 있는 목소리와 그녀의 목소리를 대조하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전혀 걸걸한 면이 없는 목소리다. 제대로 판단하려면 꼭 그녀의 손을 봐야 한다. 김연주가 김현정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왜 그리 당황하시죠? 방문한 적 있으시죠? 그것도 밤 늦게.”
팔짱을 낀 손을 보기 위해 그녀의 옆구리만 뚫어지게 보던 내 시선이 김현정의 얼굴로 간다. 수상할 정도로 눈에 띄게 당황스러운 얼굴이 된 김현정의 표정에서 뭔가 있다는 직감이 온다.
정말 김현정 당신이 범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