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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27화 (27/328)

제 27 화. 박제(剝製) (7)

김현정은 뭔가 잘못한 일이 있는지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한다.

“그게.. 혹시, 그 사람이 고소했나요?”

고소? 죽은 사람이 고소를?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김연주는 강상원이 사망했다는 말을 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고소당할 일을 하셨습니까?”

김현정은 눈치가 빠른 타입인지 김연주의 말을 듣고 상대가 자신을 고소한 건 아님을 직감한 모양이다. 약간 안심된 얼굴의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그래도 이웃인데 제가 좀 심하긴 했어요. 하도 짜증이 나서 그만.”

뭘 심하게 했다는 걸까? 김연주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김현정이 팔짱을 푼다. 필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보려 애썼지만 내 쪽에서 보이는 손에는 흉터가 없다. 다른 한 손도 확인해 봐야 한다. 나는 슬쩍 그녀의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반대편으로 오는 날 물끄러미 보던 김현정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때 제가 술이 좀 많이 취했던 것 같아요. 회사 회식이었는데 부장님이 술을 너무 많이 주셔서요.”

김연주가 얼른 수첩을 열며 말했다.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십니까?”

“보험이요.”

“어떤 보험이죠?”

“주로 생명보험이랑 암 보험 전문이긴 한데, 이쪽 일이 전부 링크되어 있어서 자동차 보험이나 실손, 펀드까지 전부 가능해요.”

그 순간 김현정이 다른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나는 그녀의 손을 보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흉터가 없다.’

칠구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적어도 닭을 죽인 범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지금 당황하고 있다. 술에 취해 어떤 실수를 한 모양이다. 끝까지 의심해야 한다. 왜? 닭을 죽인 이와 강상원을 죽인 이가 다를 수 있으니까. 아직까지는 김현정도 용의자다.

김현정은 경찰이 찾아와 그날 일을 물어서 그런지 심박수가 빨라진 모양이다. 잠시 호흡을 한 그녀가 말을 이었다.

“새벽 한 시가 좀 넘었을 거예요. 전 저 택시를 타고 저 앞 골목길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김연주가 메모를 하며 묻는다.

“정확히 언제 였는지 기억하세요?”

“어··· 그게.”

김연주는 가물가물한지 잠깐 머뭇거리다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내 뭔가 검색을 한다. 문자를 확인하는 듯 핸드폰을 계속 아래로 내리던 김현정이 문자 하나를 보여준다.

“지금부터 4일 전이네요. 그날 택시비 결제한 내역이예요.”

김현정이 보여주는 문자. 출발지는 종로 광장시장 인근이고, 도착지는 이곳이 맞다. 앱으로 콜 택시를 불러 승, 하차 시간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아있다. 김연주와 내게 문자를 보여준 김현정이 한숨을 쉰 뒤 골목길 안쪽 초록 대문집을 슬쩍 본다.

“저기 사는 군바리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이 다 싫어했어요.”

내가 슬쩍 끼어들었다.

“왜 싫어했습니까?”

김현정이 다시 팔짱을 낀다.

“일단 군바리 아저씨가 키우는 닭이 제일 큰 문제였죠. 주변에 피해를 주니까요. 아니, 난 닭이라는 애들이 그렇게 시끄러운지 몰랐어요. 시골 같은데 놀러가도 새벽에나 잠깐 울지 평소에는 조용하던데. 이상하게 저 집 닭들은 저녁에도 울고, 새벽에도 울고, 대낮에도 울었거든요. 하도 시끄러워서 주변 사람들 불만이 많았죠.”

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김연주의 말에 따르면 민원센터에 이로 인해 접수된 민원이 무려 31건이나 된다고 했다. 이웃들과 이로 인한 마찰이 있었을 것이다.

“직접 찾아가서 따지신 적도 있습니까?”

“네.”

“그때 집주인이 뭐라고 했습니까?”

보통 미안하다, 시정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강상원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독불장군 같은 성격에 매우 과묵했으니 이웃들이 어떤 말을 하든 자기 하고싶은 대로 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현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귓등으로도 안 듣죠, 뭐. 문도 안 열어줘요.”

“문을 안 열어줘요?”

김현정이 하소연하듯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 대는 닭들 때문에 화가 나서 달려가 집 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어요. 한참 소리치며 문을 두드렸더니 안에서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도 들렸어요. 문 뒤에 그 아저씨가 서 있는 인기척도 느꼈죠. 그런데 말을 안 해요, 말을.”

내가 몸을 약간 내밀며 말했다.

“말을 안 했다?”

김현정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 따졌죠. 주택 밀집지역에 살면서 이래도 되는 거냐고. 민원 넣기 전에 당장 닭들 처리하라고 한참을 말했는데 문 뒤에 우두커니 서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요. 대문을 차기도 하고 소리도 빽 질렀지만 아무 답도 안 해요. 너무너무 화가 나서 요 앞에 바깥에 평상 있는 편의점 아시죠? 거기 가서 맥주라도 한 캔 하면서 마음 좀 진정시키려고 갔어요. 하도 답답해서 점장님한테 하소연을 했죠. 근데 편의점 점장님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도 그 아저씨 말하는 거 한번도 못 봤다고. 원래 말이 없는 양반이래요.”

음, 어지간히 무뚝뚝한 양반이었구나. 다시 김연주가 나선다.

“처음 항의하셨던 게 언제 였습니까?”

“음, 한··· 3개월 전이요.”

“술에 취하셨던 4일 전에도 따지셨습니까?”

김현정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택시에서 내려서 집에 가는데 수탉이 오밤중에 또 울기 시작했어요. 한번은 참겠는데 골목길을 지나는 내내 울어 대는 거예요. 피곤해 죽겠는데 집에 가서 침대에 눕고 나서도 저 소리가 또 들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화가 났어요.”

“그래서요?”

“골목길로 달려가서 문을 막 발로 차고 소리를 질렀죠.”

“새벽 한 시에요?”

김현정이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는다.

“네.. 저도 술김에 한 짓이라.”

김연주가 메모를 하며 말했다.

“그땐 어떤 반응이 있었죠?”

“똑같았어요. 한참을 아무 반응 없다가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뚜벅뚜벅 걷는 소리가 들렸죠. 문 뒤로 인기척이 느껴져서 제가 주먹으로 대문을 후려쳤어요. 그리고 좀··· 듣기 민망한 욕설도 했고요.”

“그때도 말없이 가만 있었나요?”

“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냥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너무 화가 나서 문을 발로 차고, 돌멩이를 주워서 담 너머로 던지고 핸드백으로 우체통을 두들기고 그랬죠.”

“그래서요?”

“그냥··· 혼자 화 내다가 아무 반응이 없어서 지쳤어요. 한 10분쯤 그러다가 집으로 갔어요.”

김연주가 볼펜으로 딸깍 소리를 내며 물었다.

“오밤중에 10분가량 고함을 치셨다면 이웃사람 중 누군가 나와 보지 않았나요?”

김현정이 생각 났다는 듯 말했다.

“아, 골목길을 나서고 나서 생각났는데 저희 옆집 2층에 불이 켜져 있었어요. 골목길 들어가기 전엔 불이 꺼져 있었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 때문에 그 사람이 깼을 것 같아서 미안했죠.”

그녀의 진술은 여기까지. 나는 김연주와 눈을 맞췄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4일전. 인체를 골격염색하기 위해서는 최소 30일이 걸린다. 그럼 그날 김현정이 문을 두드리며 고성방가를 저질렀을 때 강상원의 집에서 나와 문 뒤에 서 있던 사람은 누구일까?

‘그 놈이 범인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관우가 골목길 입구에 있는 CCTV를 분석하고 있다. 이 골목은 끝에 이 집 하나뿐이다. 현장에 출입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 골목을 지나야 한다. 관우가 김현정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날 범인이 집에 있었다면 왜 범인의 모습은 찍히지 않은 걸까?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자.

범인은 그날 집에 있었다. 어쩌면 목과장님의 가정대로 이 미친놈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시신을 예술작품처럼 생각해 감상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닭 울음 소리 때문에 이웃이 찾아왔다. 그는 일종의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건 이웃에게 들킬까 겁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더는 감상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 싶어 겁이 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이놈은 방해물인 닭을 죽였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내가 사건에 대한 생각에 빠진 동안 김연주는 김현정에게 명함을 주고, 혹시 더 물어볼 것이 있을 때 연락하겠다며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고 보내준다. 김현정의 집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생각에 빠진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연주가 물었다.

“경위님.”

“············.”

“경위님!”

“아, 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가만히 김연주를 바라보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강상원은 혼자 살았고, 딸은 제주도에 있어요. 새벽 한 시에 집에 있을 다른 사람은 없다는 뜻이죠. 아마 김현정이 고함을 칠 때 집에 있던 사람이 범인일 확률이 높아요.”

김연주가 내 말에 동의하며 수첩을 덮는다.

“아무래도 관우 쪽에서 뭔가 더 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요.”

**

늦은 시간이라 퇴근을 하고, 택시에 올랐다. 택시비를 이렇게 쓸 바엔 할부로 차를 사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집에 돌아온 나는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발소리를 죽여 복도를 걸은 후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방문을 연 나는 날 반기는 고시원 침대에 가방을 던졌다.

보육원에서 나온 후 국가에서 받은 지원비는 500만원. 뭔가를 시작할 돈은 아니다. 그저 원룸 보증금을 내면 끝나는 돈. 그나마 다행인 건 경찰대학시절에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았고, 그로 인해 기숙사 비용도 면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 후 고시원으로 들어왔다.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긴 했지만 지금 이사를 하면 월세로 가야 한다. 차라리 고시원에서 좀더 버티다 최대한 적은 대출을 받아 원룸이라도 전세로 가는 편이 낫다.

침대에 드러누운 난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차는 얼어 죽을 차냐, 고시원 사는 놈이.”

눈을 감자 사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범인은 시신을 훼손하고, 그것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미친놈이다.

범인은 이웃이 또 찾아올까 봐 강상원이 키우던 닭을 잔인하게 죽였다.

범인은 시신 뒤의 벽에 성경 중 누가복음의 구절을 남겼다.

범인은 최소 30일 전에 강상원을 죽였다.

답답한 마음에 침대에서 돌아 누운 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득 강혁 아저씨 생각이 난다.

“아저씨는 평생 이런 놈들을 쫓아 다니셨던 거구나.”

영혼이 썩어 들어갈 것 같은 사건의 소용돌이 속. 그 중심에서 살아온 강혁 아저씨.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 같은 고아를 서포트해 경찰대학을 졸업할 수 있게 도와줬다. 자신이 모르게 뒤에서 여러모로 도와준 것을 안다. 금전적인 면도, 심적인 면에서도 그는 자신을 많이 챙겨주었다.

이제야 이런 답답한 상황 속에 살던 강혁 아저씨가 어린 고아였던 자신을 신경 써 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지금 자신은 하루 종일 수사를 하다 지쳐 밥을 먹을 힘도 남아 있지 않은데. 아저씨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보육원을 찾아왔었다. 경찰대 시절에는 주1회씩 면회도 왔었다. 같은 학생들이 아저씨를 내 아버지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후.. 잘 계실까?”

경찰대학교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나는 강혁 아저씨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고위 관리이니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시겠지. 보지 못해도 마음이 느껴진다. 문득 전화를 한번 해볼까 생각했지만 집에 돌아온 시간이 너무 늦었다. 나중에 또 기회가 있을 거다.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수사를 시작해야 된다. 지금은 잡생각보단 한숨이라도 더 자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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