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8화 (28/328)

제 28 화. 박제(剝製) (8)

서울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앞에 둔 강혁이 부하직원의 보고를 받고 있다. 정복을 입은 고위직 간부가 소파에 앉아 허리를 펴고 말했다.

“이상, 현재 수사 중인 강력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음, 수고했어요.”

강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커피잔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브리핑을 마친 간부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종로 쪽 사건 말입니다. 공개수사로 전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강혁은 말없이 커피잔만 바라보고 있다. 공개수사로 전환되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게 된다. 단순히 사회적 파장만을 생각한다면 공개수사전환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없지만 파장은 국민적 정서불안으로 바뀌게 되고, 그것은 경찰을 향한 압력으로 탈바꿈되게 된다. 빨리 잡아라, 월급만 축내는 밥 버러지들. 도대체 너희들이 하는 게 뭐냐? 라는 식의 국민적 압박 속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범인을 빨리 잡아야 한다는 압박이 경찰로 하여금 강압수사를 펼치게 하고, 이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경찰은 가급적 공개수사전환을 피하려 한다. 말없는 강혁을 바라보는 간부가 말했다.

“범인이 사람을 통에 넣고 물고기에나 하는 표본제작을 했습니다. 보통 싸이코가 아닙니다.”

강혁이 손톱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들긴다.

“음···”

“본부장님. 또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미리 공개를 하는 편이 낫습니다.”

강혁이 간부를 바라본다. 물끄러미 그를 보던 강혁이 물었다.

“공개를 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간부가 당연한 물음이라는 듯 즉답한다.

“시민들 스스로 조심하게 해야 됩니다.”

강혁이 실소를 짓는다.

“시민들이 조심할 것 같습니까? 얼마 전 유행병 사태 때도 보지 않았습니까? 하루에 2천 명이 넘는 감염자가 발생해도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은 여전히 안 쓰고, 문 잠그고 새벽까지 영업하는 술집에 들어 앉아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본부장님! 적어도 시민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됩니다. 조심하면 피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면 어쩌시겠습니까?”

강혁의 말도, 간부의 말도 옳다. 국민적 불안감을 키우지 않고 빠르게 범인을 검거하는 것도 답이고, 공개수사로 전환해 시민들 스스로 위기의식을 갖게 하는 것도 답이다. 어느 쪽이 그르다 할 수 없는 토론이다.

강혁이 잠시 고민하며 말했다.

“담당이 강력 3반이라고 했죠?”

“예, 본부장님.”

강혁은 잠시 생각해 본 후 중얼거렸다.

“그 녀석이 있는 곳이군요.”

간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녀석이라면···”

간부의 말에 답을 하지 않은 강혁이 잠시 더 고민한 후 말했다.

“대한민국은 2009년부터 연쇄살인사건이 없었던 나라입니다.”

강혁의 말에 간부가 고개를 끄덕인다. 강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에 연쇄살인마나, 잠재적 연쇄살인범이 없는 나라인가? 그건 아니죠. 한 날에 여러 명을 죽이는 연속살인은 아직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연쇄살인과 연속살인은 차이가 있다. 몇 명의 사람을 범죄적 냉각기를 두고 차례차례 죽이면 연쇄살인. 한 장소, 혹은 한 날에 여러 명을 죽이면 연속살인이다. 강혁이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2009년 이후 연쇄살인이 없었던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빨리 잡았기 때문이죠.”

그렇다. 국민들에게 미친듯이 욕을 얻어먹는 것이 대한민국 경찰이지만 세계적으로도 손 꼽히는 치안 좋은 나라가 대한민국인 것도 사실이다. 장기간 연쇄살인사건이 없었던 이유는 바로 경찰이 범인을 빠르게 검거해 추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혁이 다리를 꼬며 말했다.

“나는 믿습니다. 우리 경찰은 이번에도 그 놈을 잡아낼 겁니다.”

간부가 얼른 말했다.

“하지만 본부장님. 만약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범인은 언젠가 반드시 잡힐 겁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발생할 피해자들이 문제입니다. 만에 하나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면 언론도 청와대도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강혁이 자리에서 일어난 후 구겨진 바지를 바로 편다.

“청장님께는 제가 보고하겠습니다.”

간부가 한숨을 쉬며 함께 일어나자 강혁이 말했다.

“거긴 그 녀석이 있는 곳입니다. 시간을 조금만 더 줘 봅시다.”

“도대체 그 녀석이 누구입니까?”

강혁은 말없이 빙긋 웃는다. 간부는 그 녀석의 정체를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는지 단단히 약속을 받는다.

“시간을 더 준다면 얼마나 더 줘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2주. 그 정도면 괜찮죠?”

“그럼 2주 후엔 공개수사로 전환하는 것으로 약속해 주십시오. 기자들 중 몇이 벌써 냄새를 맡았습니다.”

“약속합니다. 그만 나가 보세요.”

간부는 약속의 진위를 확인하듯 강혁을 빤히 보다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홀로 남은 강혁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를 빤히 본다.

“믿는다, 이 놈아.”

전화를 해볼까 망설였지만 자신의 전화가 압박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도경은 예전의 꼬마가 아니라 어엿한 경찰이다. 자신은 경찰의 최고위직 간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통화도 안부전화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몇 번이나 전화를 잡으려 했던 강혁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노려본다.

“잡아라, 그것도 빨리 잡아야 한다, 도경아.”

**

삼일 후, 종로경찰서 강력 3반.

이정호 반장의 지시에 따라 순경들을 지원받은 관우는 며칠 밤을 새며 CCTV를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여럿이 붙어 있다고 해도 43,920 시간 분량의 CCTV 분석이 빠르게 진행될 리가 없다. 주로 밤에 일어나는 것이 강력범죄이기에 24시간 모두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좀 더 효율을 높이기 위해 빨리 감다가 사람이 나타나는 장면이 나올 때만 느리게 돌리는 반복적인 작업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최영현과 김연주는 자리를 비웠다.

김연주는 강상원의 딸과 그의 가족들을 만나보기 위해 제주도에 내려갔고, 최영현은 교회와 성당에서 확보한 교인명단을 들고 그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다. 하지만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두 만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또 그들에게서 단서를 얻을 확률도 희박하다. 하지만 해야 한다. 그게 형사이니까.

내게 떨어진 일은 KCSI와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행랑으로 도착한 우편물을 받아 열어본 나는 그저 한숨만 쉬었다. 그들의 보고서 내용은 내가 잡아서 맡긴 칠구의 입가에서 채취한 분비물을 분석한 보고서였다.

가장 많이 검출된 것은 soil. 이건 그냥 흙이다. 그 다음은 라드(lard). 이건 돈유(豚油), 돈지(豚脂), 돈지유(豚脂油) 같은 돼지 기름이다. 녀석의 기억을 읽었을 때 할머니가 먹였던 돼지기름인 모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혈액이다. 반응한 혈액은 한 가지. 하지만 인체 혈액이 아니라 닭의 혈액만 검출되었다.

보고서를 책상 위에 툭 떨구며 털썩 앉는 날 보며 모니터를 보던 이정호 반장이 말했다.

“아무 것도 안 나왔냐?”

“예..”

고생해서 잡은 개인데. 결국 아무 것도 안 나왔다. 아니 사실은 별 게 안 나올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한 줄기 희망을 걸어봤을 뿐이다. 이정호 반장도 마찬가지였는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출근길에 기자들 봤지?”

봤다. 경찰서 출입 기자들은 아직 내 얼굴을 익히지 못해 말은 걸지 않았지만 출입허가구역에서 내가 어느 부서로 들어가는지 확인하던 시선들을 느꼈다.

“예.”

“절대 아무 말도 하지마라.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다. 가급적 눈도 마주치지 마. 괜히 친한 척하면서 마실 거 주면 절대 얻어먹지 말고.”

“예, 반장님.”

“지금도 고개 돌리지 마.”

“·····················..”

갑작스러운 말. 하지만 무슨 뜻인지 눈치챘다. 강력계 입구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뭔가 냄새를 맡은 기자가 입구를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정호 반장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거머리 새끼다. 아예 못 본 것처럼 일해.”

“예.”

기자들이 다 거머리란 건 아닐 거다. 아마 지금 기웃거리고 있는 기자의 별명이겠지. 얼마나 끈질기면 별명이 거머리이겠는가? 절대 저 쪽은 안 볼 거다. 이정호 반장이 시간을 확인 후 말했다.

“도경이 너 당장 할 일 없으면 관우 쪽 좀 도와··· 아, 아니다. 너 KCSI에 맡긴 개 있지? 그거 주인한테 돌려주고 와. 검사 끝났다니까.”

“························.”

“대답 안 하냐?”

“후, 알겠습니다.”

또 개야? 하, 난 동물보호협회 직원이 아니라 경찰이라고. 하지만 반장 명령을 어길 순 없다. 게다가 칠구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불쌍한 녀석일 뿐이다. 거기 그냥 두면 밥이야 안 굶겠지만 동네 사람들의 정을 듬뿍 받으며 자유롭게 거닐던 때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잡느라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기억을 읽고 범인의 손등에 흉터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고마운 녀석이다.

‘또 택시 타야 되는 거냐, 제길.’

아직도 문 앞을 서성대는 기자.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안면이 없어 붙잡지는 않는다. 이럴 땐 신참이 편하구나. 터덜터덜 걸어 경찰서 앞으로 나선다. 폼 안 나게 또 서 앞에서 택시를 잡아야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일반 민원인과 참고인들 덕에 서를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아 경찰서 앞의 택시 승강장엔 항상 택시들이 서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역시 빈 택시 네 대가 줄지어 서 있다.

손을 들어 택시를 부르려던 나는 서로 들어 가기 위해 우회전을 하던 차가 내 앞에 급정거를 하는 통에 물러나야 했다. 가뜩이나 기분 안 좋은데 이건 또 뭐지? 뭐 하는 놈인가 싶어 허리를 숙여 창문 안을 바라보자, 조수석 창문이 스르르 열린다.

“어···?”

운전석에 앉은 사람. 며칠 전에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했던 강혁 아저씨다.

“아저씨?”

강혁 아저씨가 씩 웃으며 눈짓한다.

“어디 가?”

“이게 얼마 만이예요? 2년 만이죠?”

반갑다. 내게 수녀님들을 제외하곤 유일한 가족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아저씨가 윙크를 하며 말했다.

“태워줘?”

“안 바쁘세요?”

“바쁘지. 그래도 너 태워줄 시간은 있다, 타.”

잘됐다, 택시 타기 진짜 싫었는데. 옳다구나 하고 조수석에 탄 나는 차가 출발하자 마자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강혁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어디 갈건지부터 알려줘야 방향을 잡지, 인마.”

“아, KCSI요.”

목적지를 말하자 자주 가는 모양인지 네비게이션 입력도 없이 방향을 잡는 아저씨.

“그냥 근처 지나다가 너 있나 해서 와봤다.”

역시, 내가 여기 발령 받은 걸 알고 계셨구나. 지켜봐 주셨구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아저씨와는 어릴 때부터 고마움을 숨기고 농담으로 마음을 표현하던 사이여서 더 그렇다. 아저씨는 운전 중에 곁눈질로 날 보며 물었다.

“꼴이 왜 그래? 피죽도 못 먹고 다니냐?”

“잘 먹진 못해도 못 먹고 다니진 않아요.”

“고시원 산다며?”

“네.”

“거기 살만 하냐? 웬만하면 월세로 나오지 그래. 월급도 받는 놈이.”

“돈 아까워요. 나중에 돈 모아서 전세로 나오려고요.”

“어느 세월에, 인마.”

“하하..”

오랜만에 아저씨를 만나니 마음이 나아진다. 꼭 가족을 재회한 기분이다. 요즘 어찌 지내는지, 강력계 생활은 할 만한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나도 모르게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말없이 내 말을 듣고 있다 물었다.

“개의 기억을 읽었다고? 그런 것도 가능해?”

나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내 능력에 대해 잘 모르니까. 아직 어떻게 발동되는지도 모르는 능력인데 어디까지 읽을 수 있는지를 알 리가 없지.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그 개를 돌려주기 위해서 가는 길이라고?”

“예.”

강혁 아저씨는 뭔가 생각에 빠진 듯 입을 닫고 운전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자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말없이 달리기를 한참. 마침내 KCSI에 도착했다. 차를 멈춘 아저씨가 날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나랑 했던 첫 사건 기억 나냐?”

기억 난다. 부부가 시어머니와 아주버니를 죽이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었다.

“기억나요.”

“어떻게 잡았는지도 기억하지?”

어찌 잊겠는가? 내가 며느리의 기억을 읽어서 잡았는데. 내가 활약한 첫 사건인 만큼 아마 영원히 기억할 사건이 될 것 같다.

“네.”

강혁 아저씨가 몸을 틀어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경아, 예전 여학생이 본 드라마의 기억을 읽은 것도 그렇고. 내 생각에 넌 무언가 강렬하게 남은 기억을 읽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좀 쓸모 없는 것 같다. 아, 아니구나. 칠구가 범인을 보긴 봤지. 그럼 뭐하겠는가? 범인 얼굴을 못 봤는데.

강혁 아저씨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 개 말이다.”

“칠구요?”

“이름이 칠구야? 촌스럽네.”

“진짜 이름인진 몰라요.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서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래, 그 칠구 말이다.”

“예.”

강혁 아저씨가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네가 기억을 읽었다는 건 뭔가 있다는 거다. 개를 더 쫓아 봐. 어쩌면 거기 답이 있을 지도 몰라.”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정호 반장이야 날 신참이라 무시하는 사람이니 그렇다 치고 강혁 아저씨까지 내게 개를 쫓아다니라고 말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아저씨 말을 무시하기도 그렇다. 하, 내 팔자야. 또 개 따라다니게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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