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화. 박제(剝製) (9)
개를 더 쫓아 보라.
강혁 아저씨의 말을 들은 나는 팔짱을 꼈다. 한시가 급한 시간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시간 낭비는 아닌지, 내 에너지를 쓸 만한 일인지 판단하기 위함이다. 강혁 아저씨가 비상등을 켠 후 말했다.
“아직 네 능력이 발동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이지?”
“예.”
“음, 빨리 알아내야 일이 좀 편할 텐데.”
저도 알고 싶어요. 아마 세상에서 제가 제일 알고 싶을 걸요? 강혁 아저씨가 운전대에 팔을 걸치고 날 바라본다.
“나와 했던 첫 사건 때 말이다. 넌 내게 말해줬던 며느리의 기억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결국 하나의 단어를 찾아냈었다. 바로 ‘범람’이란 단어였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도경아.”
이미 읽어냈었던 기억이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한 가지 단어가 시신 유기 장소에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했었다. 자신도 안다. 하지만 그건 사람의 기억이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 속에 답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지 않은가? 개의 기억이다. 들었던 소리는 고작 헥헥 거리는 소리와, 범인의 웃음 소리, 동네 사람들의 모습과 칠구가 자주 가던 장소들에 대한 기억이다. 그 안에 뭐가 있겠는가? 개가 형사나 범인도 아니고.
강혁 아저씨는 고민하는 날 보며 씩 웃었다.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한번 걸어봐. 네가 뭔가 봤다면 이유가 있을 거다.”
“하..”
그래, 딱 하루만 쓰자. 아니 반나절 정도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아저씨.”
빙긋 웃은 아저씨가 갑자기 차를 다시 출발시킨다. 뭐지? KCSI 건물에 다 왔는데. 내리기만 하면 되는데 왜 다시 차를 출발시키는 걸까? 아저씨는 건물 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킨 후 스마트 키를 던졌다. 공중으로 날아오는 키를 얼떨결에 받아 든 내가 물끄러미 아저씨를 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형사가 말이야, 폼 안 나게 택시나 타고 다니고.”
응? 설마 이 차를 준다는 거야? 내 눈이 커지자, 아저씨가 내 뒤통수를 툭 친다.
“20만 킬로 탄 차다. 킬킬, 고물이지만 그래도 잘 나간다. 나 새 차 계약했거든. 어차피 중고시장 내놔도 얼마 못 받는 거니 타다가 폐차를 시키든 해라. 그 비용은 네가 내고.”
20만 킬로를 탄 차든, 100만 킬로를 탄 차든 상관없다. 택시만 안 탈 수 있다면. 강혁 아저씨가 운전석에서 내리려 하다 말했다.
“면허는 있지?”
당연하지, 순환보직 때 순찰차를 얼마나 몰았는데. 운전 실력에 자신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운행에 문제는 없다.
“예, 아저씨. 감사합니다.”
“감사는. 쓰레기 준 거 같아서 미안하다. 나 갈 테니까 볼일 보고 가라.”
“아저씨는 어떻게 가시게요?”
“택시.”
퉁명스럽게 말을 뱉은 후 정문 쪽으로 걸어가는 아저씨의 뒷모습. 아저씨는 왜 내게 이렇게 잘 해주시는 걸까? 꼭 아저씨에게 첫 핸드폰을 선물 받았을 때 같다. 그때도 집에 와서 한참 핸드폰을 갖고 놀며 기뻐 했었다. 나는 얼른 운전석으로 가 내 몸에 맞게 시트와 핸들, 거울을 조정해 두고 괜히 시동도 한번 걸어보며 히죽거린다. 20만 킬로를 탄 녀석이었지만 상태가 아주 좋다. 아마 아저씨가 잘 관리해 두신 모양이다.
차에서 내려 차체를 감상하며 한 바퀴를 돌았다. 형사가 타던 차임에도 흠집 하나 없는 매끈한 바디. 처음부터 주려고 작정하고 가져오셨는지 세차도 깨끗하게 되어 있다. 팔짱을 끼고 차를 한참이나 감상하다 정신이 든 건 무려 30분이나 지난 후였다.
“내 정신 좀 봐.”
하긴, 첫 차가 생겼는데 안 기쁜 쪽이 이상한 거지. 건물로 들어가면서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내 차. 신이나 미칠 지경이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건물로 들어가 목과장님의 방을 찾았다. 목과장님은 집무실에서 컴퓨터를 보다 찾아온 날 보고 손을 든다.
“여, 개 데리러 왔구나?”
“예, 과장님.”
“얼굴 좋아 보이네?”
흐흐, 가만 있어도 웃음이 나긴 합니다. 범인도 못 잡은 형사 놈이 얼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듣는 다는 게 별로 좋은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거든요. 나는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헛기침을 했다.
“흠, 칠구 어디 있습니까?”
“어, 나랑 가자.”
목과장과 함께 건물을 나와 주차장을 빙 둘러 가자, 건물 외부에 있는 철창에 앉아 있는 녀석이 보인다. 꽤 큰 철창이라 크게 답답해 보이진 않았지만 워낙 자유롭게 살던 녀석이라 그런지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날 보더니 꼬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자기 잡아 가둔 사람인데 그래도 안면 있다고 꼬리를 흔드는 걸 보니 마음이 짠해 진다.
철창 앞에 쪼그리고 앉자 칠구가 철창 사이로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킁킁 맡기도 하고 내민 손을 핥기도 한다. 목과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개를 안 키워봐서 모르는 건지. 원래 개가 사료를 한 끼에 1Kg씩 먹냐?”
“··················.”
“저 녀석 하루 두 끼 꼬박 1Kg씩 먹던데. 원래 주인이 엄청 잘 먹여서 키웠나 봐?”
음, 이 자식이 여기서 아주 호의호식 하며 배 두들겼구나. 뭐.. 그래도 상인들이 주던 고기에 비해서 사료는 별로 맛 없었겠지.
“글쎄요, 저도 개는 안 키워봐서. 그만 데려가겠습니다.”
철창의 빗장을 열자, 칠구가 맹렬히 꼬리를 흔든다. 30Kg는 가뿐히 넘어 보이는 칠구 녀석을 안아 들자, 목과장이 물었다.
“CCTV 분석에서 아무 것도 안 나왔어?”
“아직이요.”
“이상하네.”
들기 편한 위치로 칠구 녀석의 엉덩이를 옮기는 동안 고심에 빠진 목과장이 말했다.
“아주 이상해.”
“뭐가 이상합니까?”
목과장이 서서히 무거워지는 녀석의 무게를 이겨내고 있는 날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말이야.”
“예.”
빨리 좀 말해요, 이 녀석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십니까? 목과장은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내 팔을 잡는다.
“아니다, 그 녀석 다시 넣어두고 나 따라와 봐.”
하, 겨우 꺼냈는데. 이 녀석 다시 넣으면 얼마나 실망할지 모르시는 겁니까? 인상이 구겨졌지만 그래도 상대는 KCSI의 과장이다. 허투루 대할 수 없는 사람이니 할 수 없다. 칠구야, 조금만 더 참아라.
개를 다시 넣고 그를 따라 연구실로 오자, 지난번에 보여줬던 죽은 물고기가 담긴 비커를 가져오는 목과장. 지난 번에는 표본제작을 하다 말았지만 나중에 끝까지 완성해 두었는지 단백질이 투명화 되고 뼈는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여 훤히 보이는 물고기가 비커 속에 떠 있다.
“자, 이거 기억하지?”
“예.”
“표본 제작을 하려면 먼저 고정을 해야 된다. 생물 크기에 따라 고정시간에 차이가 있지. 그런데 고정을 뭘로 할까?”
음, 보통 생물 표본을 만들려면 핀셋 같은 걸로··· 으, 사람한테 그런 걸 꽂았다고? 생각도 하기 싫다.
“매달았거나, 인체에 뭘 꽂아서 고정시키지 않았겠습니까?”
목과장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 골격염색 표본제작 시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고정액을 사용하지. 원통에 고정액을 가득 붓고 시신을 넣은 다음 고정하는 거야. 그 전에 수세, 표피제거, 탈수 작업을 거쳐야 되고.”
으.. 이게 사람 시신 이야기라니. 나도 모르게 속이 안 좋다는 표정을 짓게 된다. 목과장이 물고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후에 연골염색, 탈수, 다시 수세를 거치면 투명화가 진행된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경골염색을 진행하고, 다시 투명화를 기다리지. 완전히 투명화 되면 보존을 위해 글리세린을 가득 채운 후 봉입을 한다.”
그 시간이 30일 이상 걸린다고 했다. 한 이야기를 왜 또 하시는 걸까? 목과장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목과장이 턱을 쓸며 말했다.
“시신을 고정할 때 사용하는 고정액과 포르말린, 알시안 블루, 알리자린 레드, 수산화 칼륨, 글리세린까지.”
그래, 많은 약품이 들어가는 건 나도 안다고요. 목과장이 빨리 말하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날 힐끔 본 후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목과장이 물고기 표본이 든 비커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겨우 요만큼 밖에 안 되는 물고기 표본을 만들 때도 내가 방금 말한 용액이 총 1리터는 든다. 그런데 인체를 표본으로 만들었다? 과연 몇 리터의 용액이 필요할까?”
그걸 내가 알아서 뭐합니까? 라고 반문하려던 내가 멈칫한다. 기껏해야 2g 가량 되는 민물고기를 표본화 하는데 1리터의 약품이 들었다. 노인임을 감안했을 때 강상원의 몸무게를 60kg이라고 가정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약품이 들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난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엄청난 용액이 들어왔을 것인데 CCTV에 걸리는 것이 없다?”
목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CCTV 저장기간 전에 모조리 들고 들어갔다고 가정해도 목격자가 있어야 돼. 절대 사람이 들 수 없는 양이었을 거야. 골목길 앞에 트럭을 대고 실어다 옮겼던지 했을 거다.”
목과장의 말이 옳다. 머리 속으로 계산을 해본 난 질문을 던졌다.
“60Kg의 인체로 표본을 제작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몇 리터의 용액이 필요할까요?”
“음, 염색 약품은 소량으로도 괜찮지만 포르말린과 글리세린은 대량으로 썼겠지. 적어도 각각 100리터 이상일 거다.”
단순 계산을 해봐도 200리터 이상, 거기에 염색 약품들이 더해지면 220~ 230 리터 가량 될 것이다. 20리터 정수기 생수통도 무거운데 그 열 배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30일 이전에 이루어졌다면 CCTV에 안 걸릴 수 있다.
“하, 그럼 트럭에서 약품을 옮기는 걸 본 목격자가 있는지 한번 체크해 보겠습니다.”
목과장은 여전히 이상하다는 얼굴이다. 뭐가 더 있는 걸까?
“왜 그러십니까?”
“음.. 그게 말이야. 30일이라는 건 처음 고정을 했을 때부터 완성까지의 걸리는 시간이다. 경골과 연골이 완전히 염색된 후, 글리세린을 퍼붓고 봉입을 하는 거란 말이지.”
“예, 그런데요?”
목과장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마지막에 글리세린이 들어갔을 거 아냐? 적어도 100리터가. 근데 왜 CCTV에 없냐 이 말이지.”
나는 목과장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이상하다. 김연주의 말에 따르면 민원센터 직원이 닭 울음 소리가 접수된 후 경고 차 강상원의 집을 방문한 것은 사건 발생 32일 전. 민원센터 직원의 기록 상으로 강상원을 직접 만났다고 확인했다. 그렇다는 건 강상원이 민원센터 직원 방문 후에 살해되었다는 뜻이 된다. 살해된 시점이 30일 전이라는 것이다.
물론 30일 전에 필요한 용액들을 모조리 집 안으로 가져갔을 수도 있다. 중간에 보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말이 안 된다. 그 정도 양의 액체를 퍼부었다면 현장에서 액체를 담았던 용기들이 발견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증거품 중 약품의 병은 없었다.
즉, 용액을 때려 넣은 후 용기들을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CCTV에 걸렸는데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관우가 바보는 아닐 테니 말이다.
“음, 확실히 이상하네요.”
“그렇지? 이해가 안 가네.”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되는 구석이 없는 사건이다. 한숨을 쉰 나는 뻐근해 지는 목을 풀며 말했다.
“그 쪽을 더 파봐야 될 것 같습니다, 과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