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화. 박제(剝製) (10)
강혁 아저씨 덕분에 이 무거운 녀석을 들고 개 때문에 잘 잡히지 않는 택시를 잡으려는 생고생을 면했다. 칠구를 뒷좌석에 태우고 편안히 충신동으로 온 나는 시장 근처에 차를 대고 칠구를 내려주었다. 녀석은 조금 전까지 날 보며 꼬리를 흔들다가 자신의 터전에 도착하니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내린다.
쏜살같이 달려가 시장을 뛰며 그동안 잘 있었냐는 듯 컹컹 짖기도 하고, 자신의 소리에 고개를 내민 시장 상인들에게 꼬리를 흔들기도 한다. 상인들은 며칠간 보이지 않았던 칠구가 돌아오자, 다들 한번씩 나와 머리를 만져 주거나, 먹을 걸 준다.
나는 천천히 녀석을 따라 걸었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먹을 것을 잔뜩 얻어 먹은 녀석이 골목길을 달려간다. 속도를 맞춰 뛰기도 걷기도 하는 나. 골목을 돌고 돌아 어느 집 공사장에 도착한 녀석이 시멘트와 벽돌이 잔뜩 쌓여 있는 공사현장으로 들어간다.
익숙한 모습이다. 녀석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파란색 비닐 천막이 있고,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가면 개구멍이 있지.’
녀석을 따라 공사장 내부로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바닥에 푸른 천막이 덮여 있다. 안에 잡동사니가 많이 있는지 불룩하다. 칠구는 이미 그 사이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천막을 걷자, 뒤에 있던 벽에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자 아직 창을 달지 않은 창문이 보인다.
몸을 날려 창을 뛰어 넘자, 길게 자란 풀들이 잔뜩 있는 곳이 보인다.
‘수풀 사이에 모래밭이 있고, 거기가 녀석의 화장실이었지?’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자 모래밭이 나온다. 칠구 녀석의 것으로 보이는 변들이 널려 있는 곳. 이미 볼일을 봤는지 사라지고 없는 칠구를 찾던 나는 곧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알게 되었다. 수풀 주변에 다른 주택가의 담벼락이 있다. 그리고 그중 한 곳에 또 개구멍이 있다.
“하, 뭔 개구멍이 저렇게 많···.”
잠깐, 개구멍? 이마를 짚었던 나는 순간적으로 굳었다. 개구멍. 왜 그걸 생각 못했지? 여기로 오가면 CCTV에안 걸릴 수 있잖아! 나는 그 길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폴리스 라인을 치고 현장을 지키고 있던 순경이 경례를 해왔지만 받아줄 정신이 없다. 마구 뛰어가 현장의 담벼락을 일일이 확인했다.
하지만 잠시 머리를 스친 생각은 그저 상상으로 그쳐야 하는 생각이었는지 개구멍 같은 건 없었다. 실망감에 어깨를 늘어뜨린 나는 현장의 삼면에 있는 담벼락을 보며 한숨을 쉰다.
집의 왼쪽 면 담벼락 뒤쪽, 두번째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 저 집이 지난 번에 탐문했던 김현정의 집이다. 2층에 산다고 했고, 창문이 이집 쪽으로 나 있다고 했으니 지금 보고 있는 저 창문이 그녀의 침실일 것이다. 이 집 마당이 정면으로 보이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문을 열어 두었다면 소리 정도는 충분히 전달될 것이다.
“후, 헛걸음인가?”
그럼 그렇지. 이번엔 강혁 아저씨가 틀린 모양이다. 벌써 두 시간이나 개를 쫓았는데 건진 건 아무것도 없다. 한숨을 쉰 나는 담벼락 뒤쪽 집을 물끄러미 보았다. 담벼락에서 두 번째 집 2층에 사는 김현정도 닭 울음소리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만큼 힘들었다는데 그녀의 앞집, 그러니까 현장이 되는 주택의 바로 옆집 사는 사람은 더 힘들었겠다. 저기 사는 사람도 민원을 넣었겠지.
허탕을 쳤다 생각하며 실망감에 몸을 돌리는 바로 그때. 뇌리를 스치는 김현정의 진술.
‘골목길을 나서고 나서 생각났는데 저희 옆집 2층에 불이 켜져 있었어요. 골목길 들어가기 전엔 불이 꺼져 있었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 때문에 그 사람이 깼을 것 같아서 미안했죠.’
나는 다시 옆집 건물로 시선을 돌렸다. 2층 창문. 바로 현장이 된 주택 쪽으로 나 있는 창문이다. 그것도 김현정의 침실 창문과는 달리 현장 쪽으로 나 있는 창문이다. 만약 저 곳이 침실이었다면 저 사람은 꽤나 괴로웠을 것이다.
“2층에 불이 켜져 있었다. 처음에는 꺼져 있었지만 고성방가를 저지른 후엔 불이 켜졌다.”
처음엔 단순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웬 여자가 새벽 한 시에 술에 취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니 자다 깬 사람이 불을 켰다고 생각했다. 무척 당연한 의식 흐름이니 실수는 아니다.
“그래도 한번 확인을 하는 편이 좋겠지.”
나는 현장에서 나와 골목길을 돌아 옆집으로 향했다. 문패가 없는 집. 벨을 누르자, 잠시 후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경찰입니다.”
-경찰이요?
“예, 몇 가지 좀 여쭈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네, 잠깐만요.
잠시 기다리자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나온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준다. 아주머니는 나 혼자인지 확인하듯 고개를 내밀어 골목길을 살피며 말했다.
“저 아무것도 몰라요. 요 옆집 일 때문에 그러죠? 지난 번에 찾아온 여형사님한테 다 말했는데.”
김연주가 다녀갔구나. 하긴 바로 옆집인데 그냥 지나쳤을 리가 없지.
“예, 맞습니다. 한번 더 확인할 것이 있어서요.”
“저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민원 안 넣으셨습니까?”
“························”
“넣으셨죠?”
당연하다. 한 집 건너에 사는 김현정도 넣는 민원인데 바로 옆집이 가만 있었을 리가 없지. 아주머니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내 눈치를 본다. 어차피 민원센터에 가서 확인하면 바로 들통날 거짓말은 생산성이 없다 생각했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이는 아주머니.
“그래요, 근데 진짜 저희 집은 상관 없어요. 군바리 아저씨한테 항의한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인 다니요, 전 절대 그런 짓 못해요.”
강상원이 죽었다는 걸 알고 있다. 아, 모를 리가 없나? 하긴 폴리스 라인을 쳐 놓고 경찰이 지키고 선 집이니 모를 리가 없다. 밤 늦게 일이 끝나는 김현정과 달리 이 아주머니는 시신이 실려 나가는 것도 목격했을 수 있으니까.
대문 안쪽을 두리번거린 내가 말했다.
“가족들과 함께 사십니까?”
“네, 맞아요.”
“여기 사는 분들 다 집에 계십니까?”
“아뇨, 바깥 양반은 회사 갔고, 아들은 학교 갔어요.”
“식구가 몇 입니까?”
“넷이요. 딸은 집에 있어요. 오늘 개교기념일이라서.”
“이 집에 넷만 사시는 겁니까?”
“네, 아! 2층은 세 줬어요.”
순간적으로 다시 김현정의 말이 스쳐간다.
‘골목길을 나서고 나서 생각났는데 저희 옆집 2층에 불이 켜져 있었어요.’
그날 밤에 잠에서 깬 건 아주머니 가족이 아니라 2층에 세를 들어 사는 사람이다.
“그 사람 지금 집에 있습니까?”
“어··· 글쎄요, 워낙 두문불출 하는 사람이라.”
“혹시 잠깐 가볼 수 있습니까?”
“어··· 뭐, 외부 계단으로 갈 수 있으니까 가 보세요.”
아주머니가 대문에서 물러나며 들어오라 한다. 나는 작은 마당으로 들어온 후 집 구조를 살폈다. 마당에는 1층 집으로 가는 현관문이 있고, 그 옆으로 돌 계단이 있다. 원래 없던 계단을 세를 주며 만든 듯 돌계단은 노후 되어 있는 집에 비해 깨끗한 편이다.
대문 앞에 선 아주머니가 지켜보는 중에 돌계단을 오른 나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2층 집 문 앞에 섰다. 작고 동그란 하얀 벨을 누르자 삐 하는 소리가 난다.
“계십니까?”
안에서 인기척이 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벨을 누르자 그제야 부스럭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문 앞으로 인기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안에 있는 사람은 말이 없다.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느낌을 받은 내가 다시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잠깐 몇 가지 질문 좀 드리려고요.”
문 앞을 서성거리는 인기척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거기서 질문해요.”
응? 여기서? 내가 1층 대문 위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아주머니를 내려 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원래 낯을 좀 많이 가리는 사람이예요. 우리도 얼굴 보기 어려워요.”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문을 보며 말했다.
“며칠 전 새벽 한시 무렵에 옆집에서 고성방가를 하는 여성의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
“못 들으셨어요?”
그때 아래에 있던 아주머니가 끼어든다.
“들었어요, 엄청 시끄러웠는데.”
아씨, 당신 말고! 이 사람한테 물었는데 왜 당신이 대답을 해? 나는 문만 노려보며 답을 기다렸다.
“예.”
“그때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예.”
“소리를 듣고 불을 켜셨고요?”
“·········.예.”
이 사람 뭔가 이상하다. 모든 질문에 단답형 답을 한다. 꺼림칙한 기분이 든 나는 어떻게 하든 상대로 하여금 문을 열게 하려 수를 썼다.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낸 내가 말했다.
“저기, 명함 하나 드리고 싶은데. 뭔가 이상한 점이 생각나시면 여기로 연락 주시겠습니까?”
“···············..”
“명함만 드리면 됩니다.”
“밑에 둬요.”
“··················.”
제길, 뭐 히키코모리 그런 거냐? 하는 수 없이 현관문 아래쪽으로 명함을 밀어 넣은 내가 말했다.
“혹시 뭐 생각나는 것이 있으시면 바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예.”
강압적으로 얼굴을 보이라 할 수 없다. 영장을 발부 받아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문 앞에서 서성댔지만 문 뒤의 인기척은 움직임이 없다. 짧은 한숨을 쉰 내가 계단을 내려와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기왕 오셨는데 음료수라도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에이, 그래도 우리 집에 온 손님인데 그냥 보낼 수 있나. 잠깐만 들어오세요. 괜찮아요, 나랏일 하시는 분인데.”
설마 집에 아주머니 혼자 있고, 날 집으로 끌어 들여서 이런 저런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내게 엄마가 있다면 우리 엄마 나이는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인데. 설마 저렇게 호의 섞인 얼굴인데 이상한 짓은 안 하겠지. 게다가 여긴 현장의 옆집이다. 한번 들어가 보는 건 집 구조 파악을 위해 해볼 만한 일이다.
“그럼 물만 한잔 얻어 먹겠습니다.”
“호호, 그래요.”
아주머니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자 천만 다행스럽게도 거실 소파에 여중생이 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자 힐끔 보는 여중생. 나와 아주머니를 번갈아 보던 아이가 물었다.
“누구?”
아주머니가 얼른 주방으로 가며 말했다.
“경찰 아저씨야. 옆집 사건 때문에 뭐 좀 물어보러 오셔서 물이라도 한잔 드리려고. 저기, 형사님? 소파에 잠깐 앉아 계세요.”
“감사합니다.”
여중생이 누워 있느라 뻗고 있던 다리를 내려준다. 나는 아이 옆에 앉아 멀뚱하게 물을 기다리며 집 구조를 바라보았다. 이 집 창문 중 옆집 쪽으로 난 창문은 화장실 창이다. 눈으로 힐끔거리며 집 구조를 파악하는 도중 날 빤히 바라보던 여중생이 말을 건다.
“아저씨.”
겨우 스물 아홉인데 벌써 아저씨 소리를 듣는구나.
“응?”
“진짜 형사예요?”
“음.”
“계급은?”
네가 내 계급 알아서 뭐할래? 라는 말이 나올 뻔 했다.
“경위.”
“경위면 높아요?”
“아니 별로.”
“에이.”
여중생은 나와 대화를 하면서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핸드폰을 눌러 대고 있다. 아마 친구들과 단체 문자 중인 모양이다.
“우리 집에 형사 왔다고 자랑하는 중이었는데. 별로 안 높은 사람이면 패스.”
그게 자랑할 일이냐? 보통 집에 형사가 오면 흉사가 있는 거다, 이 녀석아. 철없는 여중생은 문자를 하다 말고 갑자기 핸드폰을 들이민다.
“사진 하나 찍어도 돼요?”
“뭐?”
“그냥 같이 셀카 한 장 찍고 싶어서.”
뭐냐 이 질풍노도의 중2병 여중생은.
“안돼.”
“체, 비싸게 굴긴.”
거절하자, 여중생이 자기 혼자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각도를 이리 저리 바꾸며 브이를 하기도 하고 볼에 바람을 넣기도 하는 아이. 저 각도로 찍으면 나도 사진에 걸린다. 나는 한숨을 쉬며 손을 내밀었다.
“방금 나 찍은 거 다 안다. 내놔.”
“에이씨.”
“가져와.”
여중생이 입을 삐죽 내밀며 핸드폰을 소파에 툭 던진다. 아이의 핸드폰을 들어 갤러리에서 내가 걸린 사진을 삭제했다. 아이는 자기애가 강한 모양인지 갤러리에 온통 자신의 사진만 가득하다.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 집 앞의 계단에 앉아 있는 사진도 있다.
눈으로 슬쩍 갤러리를 보며 내 얼굴이 담긴 다른 사진이 없는지 확인하던 나. 더는 없어 핸드폰을 돌려주려던 바로 그때 내 눈에 걸린 사진이 있다. 바로 여중생이 집 앞 계단에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 내가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자 여중생이 엉덩이를 움직여 내 옆으로 왔다.
“사진 죽이죠? 이렇게 찍어야 다리가 길게 나와요.”
아래에서 위로 찍힌 사진. 여중생의 말처럼 정말 다리가 길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다. 여중생의 핸드폰 각도 때문에 잡힌 2층의 문.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가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다 사진에 찍혀 있는 것이 보인다.
후드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문을 열고 있는 그 자의 손이 보였기 때문이다.
‘손등에··· 흉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