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화. 박제(剝製) (11)
초점이 잘 맞는 사진이었지만, 초점의 중심이 여중생에 가 있다. 그 덕에 남자의 손에 흉터가 있는 것은 확인했지만 그것이 칠구 기억 속에 있는 흉터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피해자의 바로 옆집에 사는 남자의 손에 흉터가 있다는 것만으로 조사해 볼 가치를 느꼈다.
여중생이 핸드폰을 빼앗아 가며 눈을 흘긴다.
“다 지웠으면 줘요. 왜 남의 사진까지 보고 그래요?”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는 질풍노도의 중2병 소녀. 나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윗집 사는 아저씨 말이다.”
“왜, 뭐.”
사진을 지워서 그런지 아이가 꽤 까칠하게 나온다. 그렇다고 잠복을 밥 먹듯이 하는 강력계 형사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할 순 없다. 아이가 SNS에 사진을 올리면 잠재적 범인 중 누군가가 내 얼굴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뒷주머니를 만져 보자 바지 뒤에 넣어둔 수갑이 잡힌다. 슬쩍 아이를 바라보니 다시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저기, 너 이런 거 본 적 있어?”
아이가 곁눈질로 날 바라보는 것이 보인다. 뒤에서 수갑을 꺼내 보여주자 아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와, 그거 진짜 수갑이예요? 장난감 아니고 진짜로?”
“장난감 수갑 든 형사도 있어?”
“우와! 한번 만져봐도 돼요?”
“어.”
수갑 정도야, 뭐. 아이는 수갑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다고 느꼈는지 몇 번 공중으로 던져 보더니 자기 손목 위에 수갑을 올리고 날 본다.
“차 봐도 돼요?”
“그래.”
딱 소리가 나게 잠기는 수갑. 착 손목에 감기는 수갑이 신기했던지 아이는 수갑 찬 팔을 들고 마구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제야 활짝 웃는 아이.
“이거 SNS에 올려도 돼요? 우리 학교 애들이 보면 핵인싸 되는 건 시간 문젠데.”
“그래.”
“히히.”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던 아이는 슬쩍 내 가슴팍을 본다. 앉아 있느라 아우터가 살짝 들려 있어 그 속으로 총이 보인 것이다.
“그거 총이예요?”
이건 안돼, 인마. 난 아우터를 바로 하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안돼.”
“사진 안 찍고, 그냥 구경만.”
음, 그 정도야. 난 총집에 손을 넣고 안전장치가 제대로 잠겨 있는지 확인 후 천천히 총을 꺼냈다. 아이는 눈을 빛내며 당장 만져보고 싶다는 듯 손을 내밀었지만 위험하다. 난 총을 위로 들어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 그냥 눈으로만 봐.”
“우와··· 근데 드라마에서 보는 총이랑 다르게 생겼다. 막 자동으로 위에 철이 뒤로 팡팡 튕기고 그러던데. 아저씨 총은 디자인이 별로다.”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다른 총이 나오는 거다. 멋이 없으니까. 근데 이런 총이라도 맞으면 죽어, 이 자식아.
“다 봤지?”
아직 모자란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아이가 다시 총을 자세히 구경한다. 사진을 찍고 싶었는지 핸드폰을 잡은 손이 움찔거렸지만 아이는 약속을 지켰다. 충분히 구경을 시켜준 나는 총을 다시 집어넣은 후 말했다.
“아저씨가 질문 좀 해도 될까?”
수갑 사진과 총 구경으로 조공을 바쳤기 때문인지 아이는 호의적인 얼굴이 되어 있다.
“무슨 질문이요?”
“아까 아저씨가 봤던 사진 있잖아. 요 앞 계단에서 찍은 사진.”
“네.”
“그 사진 뒤에 보니까 윗집 아저씨가 찍혀 있던데.”
아이는 불만스러운지 볼을 부풀렸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짜증났어요.”
“응? 왜?”
“별스타에 올렸는데 뒤에 음침한 사람 찍혀 있어서 기분 나쁘다고 애들이 좋아요 안 눌러 줬어요.”
그게 도대체 뭐가 문제냐? 별스타에 좋아요 많이 받으면 돈이라도 생기냐? 이해할 수 없는 아이 생각이지만 그저 어른이 된 나와 다를 뿐이다. 내가 어린 시절 날 바라보던 어른들도 이런 생각을 하셨겠지.
“그랬구나. 윗집 아저씨 이름 알아?”
“어.. 그건 엄마가 알죠.”
“엄마가?”
“당연하죠, 울 엄마가 집 주인이고 그 아저씨는 세입자인데. 계약할 때 이름 쓰잖아요.”
젠장, 애도 아는 걸 왜 난 생각 못하는 거냐?
“아, 그래. 그건 엄마한테 물어보고. 혹시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
“아뇨, 몰라요.”
“언제부터 여기 살았어?”
“한 일 년 전에 들어왔어요.”
“이야기 해본 적 있어?”
“네, 몇 번 안 되긴 하지만. 워낙 사람이 음침해서 말을 잘 안 해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거 또 없어?”
“음··· 뭐가 있더라.”
아이는 검지를 머리에 대고 기억을 더듬는다. 진짜 이런 포즈로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구나. 만화에서나 하는 과장된 포즈인 줄 알았는데. 한참 생각하던 아이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
“뭐 생각나는 게 있어?”
아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저 아저씨 이사온지 얼마 안돼서 우편물이 왔어요. 그게 우편물 함 밖으로 떨어져 있길래 주워서 계단에 놨거든요? 아.. 그때 저 아저씨 이름도 써 있었는데 기억은 안 나고.. 이사오기 전 집 주소가 써 있었어요.”
“어디?”
“주소를 어떻게 기억해요? 우리 집 주소도 가끔 까먹는데.”
“대충 기억나는 거 없어?”
“충북 단양. 그건 기억 나요.”
“음.”
그때 물 대신 아이스 커피를 타온 아주머니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그냥 물 대접하기 좀 그래서.”
“아, 고맙습니다. 저기, 아이한테 물어보니 윗집 사는 사람 이름을 알고 계신다고요?”
“윗집 총각이요?”
“혼자 삽니까?”
“네, 이름이··· 장 뭐였는데. 잠깐만요.”
아주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 장롱을 열고 계약서를 찾더니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네, 장진수.”
장진수. 충북 단양에 살던 장진수다.
“그 계약서 좀 볼 수 있습니까?”
계약서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아주머니는 좀 꺼림칙한 얼굴이었지만 내 직업을 떠올렸는지 계약서를 가져오신다. 몇 장 사진을 찍은 후 돌려준 나는 급히 인사를 하고 종로경찰서로 돌아왔다. 엄밀히 말하면 불법으로 취득한 정보지만 법정에서 써먹지 않으면 그만이다.
강력계로 돌아오자, 외근에서 돌아온 최영현과 이정호 반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인다. 최영현이 머리를 마구 긁으며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못 잡습니다. 제가 오늘 교회 다니는 영감들 몇을 만났는 줄 아세요? 질문하는 도중에 전도한답시고 교회 나오라고 붙잡는데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정호 반장이 복도를 걸어오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해, 인마. 아니면 뭐 방법 있어? 다른 거 할 거 있으면 하던가, 새끼야.”
“···············..”
이정호 반장이 내게 고갯짓을 하며 물었다.
“개는 돌려줬냐?”
“예, 반장님.”
이정호 반장은 시키는 일 잘했으면 됐다는 표정으로 다시 최영현을 보며 말했다.
“성경구절은 범인이 남긴 메시지야. 분명 거기 뭔가 있다. 짜증나는 거 아는데 더 파봐.”
“아오!!”
자리에 앉으며 그들의 대화를 듣던 내 눈이 가늘어진다.
‘성경구절. 그래, 그게 있었지.’
장진수가 범인이라면 그는 왜 성경구절을 남겼을까? PC를 켜고 계약서를 찍어온 사진을 보았다. 모든 정보는 아니지만 주민번호 앞자리와 이름만 있으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검색 프로그램을 돌리니 동일한 이름에 동일한 생일자는 모두 21명. 그 중 현 주소 등록지가 충신동인 사람을 찾으니 바로 나온다.
‘이름 장진수, 33세.’
가족관계로 부모님이 계시고 외아들이다. 두분 다 사망처리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일찍 돌아가신 모양이다. 학력을 보니 지방대였지만 4년제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다.
‘단양 제일대학교 해양학과?’
인터넷 모드로 바꾸고 해양학과를 검색해 본다.
‘해양학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질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그리고 이들 각 분야의 학문을 바다와 그 주위에 적용할 공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분야를 포함한다···’
이 학과를 전공하면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되는 걸까? 스크롤을 내려 그의 학력을 확인 중 나는 눈을 빛냈다.
‘단양 가톨릭 고등학교 졸업.’
가톨릭 교육을 받았다. 게다가 해양학을 전공한 자. 강상원의 시신을 골격 염색 표본으로 제작할 수 있는 지식이 있는 자이며, 손등에 흉터까지. 모든 심리적 증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 사람은 반드시 조사해야 된다.
벌떡 일어나 다시 아우터를 입자, 이정호 반장이 날 힐끔 보며 물었다.
“또 어디 가냐?”
“뭐 좀 확인하러 갑니다.”
“지금 이 시국에 개인적인 볼일 보러 가냐? 미친 거지?”
“잠깐이면 됩니다.”
“이 새끼가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인마! 이리 와서 영현이라도 도와. 만나야 될 사람이 한두 명인 줄 알아?”
최영현은 옳다구나 했는지 서류 몇 장을 내게 쓱 내민다.
“거기 빨간색 펜으로 그은 사람까진 만났수.”
아, 씨. 지금 이런 사람 만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그 새끼 조사해야 된다니까? 근데··· 참 많이도 만났네. 빨간색 줄이 그어진 사람이 서른도 넘는 구나. 다 다른 집 사는 사람이었을 텐데 고생 좀 했겠다. 아니, 제기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난 장진수를 조사해야 된다고!
내 속도 모르는 최영현이 능글맞은 얼굴로 말했다.
“가서 문 두드렸는데 안 열어주면 ‘할렐루야, 형제님!’ 하면 열어 줄 거요. 아니면 손바닥 펴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요.”
“··················.”
최영현이 평화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천국 갑시다, 형제님.”
씨바, 지랄한다.
더는 못 참겠다. 솔직히 이 사람들이 나쁜 건 아니다. 경험 많은 강력계 형사가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을 불쑥 끼어든 신참이 망치는 꼴이 날까 두려워 이런 일만 시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차라리 초장부터 뒤집어 엎어 버리는 쪽이 편하겠다. 강혁 아저씨에겐 미안하지만 할 수 없지.
최영현이 내민 서류를 와락 구기며 쓰레기통에 던지려던 나.
“이!!!”
하지만 나는 그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최영현이 그어 놓은 빨간 줄. 그 줄이 끝나는 곳에 쓰여진 하나의 이름 때문이다. 최영현은 내가 서류를 구겨서 던질 줄 알았는지 눈을 크게 떴지만 갑자기 우뚝 멈춰 서류를 뚫어지게 보는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충신 제 3 성당, 교인 장진수.’
장진수의 이름이 있다. 나는 급히 구겼던 종이를 다시 편 후 말했다.
“만나고 오죠. 여기 이 사람부터 만나면 되죠? 장진수.”
최영현은 갑자기 이놈이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 뭐··· 예.”
“다녀오겠습니다.”
급히 강력계를 벗어나자 복도를 퀭한 눈으로 걷고 있는 관우가 보인다.
“관우야.”
관우는 좀비처럼 걷다가 날 보곤 고개를 꾸벅 숙인다.
“형님..”
“괜찮아?”
“아뇨, 안 괜찮습니다. 벌써 며칠이나 밤을 새서.”
“조금만 고생해라, 금방 끝난다.”
관우는 뭔 소리냐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 것도 안 나오는데 무슨···”
걱정 마라, 형이 다 끝내 주마. 나는 관우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장진수에게 가려다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아, 관우야.”
날 바라보고 있던 관우가 답한다.
“예, 형님.”
“너 데이터베이스 검색 잘 하지?”
“전문이죠.”
“하나만 부탁하자.”
CCTV 분석만으로 미칠 지경일 녀석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꼭 해야 하는 부탁이었다. 나는 장진수의 신상명세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인지 좀 알아봐 줘. 원래 충북 단양에 살다가 일년 전에 충신동으로 온 사람이야.”
관우가 서류를 받아 들고 물었다.
“사건과 관계 있는 놈이예요?”
“아직 몰라, 부탁한다!”
“어? 형님! 형님!”
관우를 뒤로 하고 차에 올라탄 나는 충신동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관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와, 이 녀석 데이터베이스 검색 전문이라고 한 말이 뻥이 아니었구나.
“여보세요.”
-예, 형님. 그 장진수라는 사람 검색했는데 별 거 없어요. 전과도 없고.
“서울 올라오기 전에 무슨 일 했는지 확인했어?”
-예, 단양에 있는 민물고기 전문 아쿠아리움에서 일하던 사람이던데요?
운전을 하던 내 눈이 커졌다.
“아쿠아리움?”
-예, 그 왜 있잖아요, 수족관 같은 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