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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32화 (32/328)

제 32 화. 박제(剝製) (12)

나는 급히 핸들을 틀어 갓길에 차를 세우곤 핸드폰으로 단양 소재 수족관을 검색했다. 꽤 큰 규모의 수족관인지 북한 어류를 비롯해 전세계의 민물고기들과 파충류, 수달까지 전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골격염색 표본을 전시한다는 이야기는 없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당장 장진수를 만나러 간다고 해도 나는 영장이 없다. 증거를 수집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상대의 조심성만 키워 놓으면 좋을 게 없어.’

나는 사이드 미러를 본 후 차를 돌렸다. 차라리 단양으로 내려가 그를 아는 사람을 만나는 쪽이 빠를 것이다. 두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단양. 산과 물이 있는 좋은 풍경을 가진 단양은 관광객이 몰리는 장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찾지 않는 곳도 아닌지 간간히 관광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이는 곳이었다.

수족관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로비로 올라오자 깨끗하고 규모가 큰 수족관 안내소가 보인다. 40대쯤으로 보이는 여직원이 친절한 미소로 말했다.

“몇 분이십니까?”

“아, 한 명입니다.”

“할인 가능한 카드 있으실 까요?”

“없습니다.”

“네, 고객님. 만원입니다. 관람 시간은 7시까지입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여섯 시. 시간이 없다. 나는 표를 끊은 후 즉시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경찰 신분증을 보고 흠칫 놀란 여직원이 몸을 굳히는 것이 보인다.

“장진수라는 사람 아십니까?”

“모, 모릅니다.”

“작년까지 여기서 일했다고 합니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알려주시면···”

“잘 모릅니다, 단지 해양학을 전공했다는 것만 압니다.”

“해양학이면.. 잠시만요, 관리팀장님께 여쭤 보고 말씀드릴게요.”

“안을 좀 보고 있어도 될까요? 매표도 했는데.”

“아, 네. 물론입니다. 아는 직원이 있으면 찾아가라고 할게요.”

“고맙습니다.”

나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수족관 내부로 들어갔다. 홈페이지를 통해 대대적인 광고를 할 가치가 있는 수족관이었다. 생전 처음보는 물고기들도 많고, 광고처럼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어류도 전시되어 있다. 게다가 아마존에서 볼 수 있는 사나운 물고기들도 꽤 많다. 하지만 내게는 느긋하게 그것들을 구경할 시간이 없다. 빠른 걸음으로 여러 개의 수족관을 거치고, 엄청나게 규모가 큰 메인 수족관을 지난 나는 파충류가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으로 가던 도중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색소가 결핍되어 하얀색을 띄고 있는 메기가 전시된 수조 맞은편. 커다랗고 검은 기둥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개의 원통들에 내 시선이 고정된다.

“골격염색 표본.”

새끼 손가락만 한 물고기들이 원통에 갇혀 있다. 모두 생이 다한 후 표본으로 제작되어 붉고, 푸른 색으로 골격이 염색되고 단백질이 투명화 되어 있다. 표본을 제작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된 표지판 앞에서 눈살을 찌푸린 나. 정말로 여기 표본이 있었다.

그때 뒤에서 구둣발 소리가 나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기 안 좋죠?”

뒤를 돌아보자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내 옆에 서서 표본을 본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교육자료로는 아주 좋은 표본이지요. 이렇게 작은 물고기를 해부하는 건 쉽지 않거든요. 이 방법이 나중에 생물학자가 될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줄 겁니다.”

남자는 날 보며 악수를 청한다.

“경찰에서 오셨다고요?”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고 악수를 한 내가 물었다.

“서울 종로 경찰서 강력계 현도경 경위입니다.”

“한철용입니다.”

한철용은 단양경찰이 아닌 서울 경찰이란 말을 듣고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아까 프론트에서 연락 받기로는 진수를 찾았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한철용의 표정을 살핀다. 하지만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다.

“장진수라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장진수나 진수씨가 아니라 진수라는 이름을 불렀다. 그건 꽤 친분이 있는 사이란 뜻일 거다. 한철용은 잠시 표본을 바라보며 생각해 보다 말했다.

“글쎄요, 내가 그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답하긴 어렵군요. 음··· 일단 진수가 여기서 일한 건 3년쯤 됐습니다.”

“어느 부서에서 일했습니까?”

“순치수조 관리 부서였습니다.”

순치수조? 그게 뭘까?

“그게 뭡니까?”

한철용이 친절한 얼굴로 말했다.

“수족관 수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시수조, 하나는 순치수조. 전시수조는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대형 수조입니다. 순치수조는 순환여과방식과 단계적 해수 순치를 통한 강하성 어류를 이동할 때 사용하는 수조입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전시수조가 아닌 이동을 위한 수조를 관리하는 부서란 뜻입니까?”

“하하, 맞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쉽네요. 앞으론 그렇게 설명해야겠습니다.”

수조관리를 하는 자. 그게 해양학이랑 관계가 있나?

“장진수는 해양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그 부서에서 일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한철용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쪽 공부가 일반인에게 생소하죠. 해양학은 물고기가 사는 환경, 즉 지질학을 포함하는 학문입니다. 해양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학문을 공부한 사람이니 당연히 수조관리가 가능하죠.”

아, 그런 거였구나.

“장진수가 언제 그만 뒀습니까?”

“음.. 한 일년 됐습니다.”

일년, 여기서 일을 그만두고 바로 서울로 올라갔구나.

“그 후론 연락 안 하십니까?”

“네, 못했습니다. 사실 저희가 아직 자리를 못 잡아서 여러모로 바빴거든요. 하지만 이쪽 업계에 있는 이상 언젠가 한번 다시 보겠다 싶었습니다. 국내에 이 정도 규모의 대형 수족관은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일을 계속하는 이상 어디선가 마주치기 마련이거든요.”

“실례지만 한철용씨는 무슨 부서에 계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한철용의 명함을 보자 수족관 총괄관리팀장이라는 직함이 보인다. 장진수의 상사였던 모양이다. 명함을 확인하는 날 바라보던 한철용이 짧은 한숨을 쉬었다.

“하긴 진수는 아마 국내 수족관에 채용되긴 힘들겠네요.”

명함을 품에 넣은 나는 한철용을 바라보았다. 뭔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한철용.

“왜죠?”

한철용이 날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고 오셨습니까?”

“뭘 말씀이신지.”

한철용은 오히려 날 이상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그때 그 사건 때문에 찾아오신 게 아닙니까?”

그때 그 사건? 분명 장진수는 전과 기록이 없었다. 경찰이 찾아올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걸까?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한철용은 날 잠시 관찰하다 다시 표본으로 눈길을 돌린다.

“진수에 대해 내부적으로 말이 많았습니다.”

내부적인 뒷이야기가 있었던 걸까? 직장 내 따돌림 뭐 이런 건가?

“어떤 말이었습니까?”

한철용이 한숨을 쉬며 팔짱을 낀 후 다른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기 저 수조 보이시죠?”

그가 눈짓하는 수조를 보니 북한 고유 어종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예, 보입니다.”

“중국에 있는 북한 대사관 측에서 기증한 물고기들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서식하지 않는 고기들이라 저희도 무척 신경을 쓰고 있죠. 그런데 번식이 쉽지 않아 언제까지 전시가 가능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건 관심 없어, 이 아저씨야.

“장진수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한철용은 다시 표본들을 보며 말했다.

“이거 다 진수 작품입니다.”

“··················”

“물론 저희도 할 수 있습니다만, 굳이 하려고 하진 않죠. 죽은 물고기를 만지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거든요.”

이 표본들을 다 장진수가 만들었다고? 언뜻 서른 마리도 넘어 보이는데. 작은 물고기 뿐 아니라 양서류도 몇 마리 있다.

“진수는 이상하게 표본 만드는 걸 즐거워했어요. 처음엔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도맡아 해줘서 고마워했죠. 그런데 그걸 즐기는 걸 보고 사람들이 그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어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취미를 가진 이는 따돌림을 받기도 한다. 생물을 표본화 하는 작업을 하면서 즐긴다면 남들 시선에서는 변태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거다. 한철용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생겼죠.”

무슨 사건일까? 한철용이 표본이 전시되어 있는 유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리 수족관은 표본 제작을 할 때 반드시 상부 허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물고기가 사망했다는 걸 확인 후 표본을 제작하거든요. 그런데 진수가 어느 날 갑자기 물고기 한 마리가 죽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잠깐 다른 일 때문에 반나절 정도 자리를 비웠었는데 수족관으로 돌아와 보니 이미 물고기로 표본제작을 시작하고 있더군요.”

시체는 썩는다. 표본제작을 하기 위해서는 아직 선도가 유지되어 있을 때 제작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절차를 무시하긴 했지만 좋은 표본을 제작하기 위한 노력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 아니었을까?

“그래서 징계를 받았습니까?”

한철용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화를 냈습니다. 절차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닌데 왜 무시하느냐고. 그런데 진수가 그러더군요. 더 뒀으면 썩기 시작했을 거라고. 죽은 지 10시간은 지난 후에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더 늦으면 표본제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미리 확인을 한 것으로 보고하려고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습니까?”

한철용이 다시 북한어류 수조를 본다.

“그때 그 고기는 북한 압록강 상류에 서식하는 대구의 일종인 ‘모오케’라는 물고기였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번식이 쉽지 않아 단 한 마리의 죽음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아이들이었죠.”

“하지만 어차피 죽었다면 빠르게 표본을 제작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하···”

한철용이 한숨을 쉰다.

“보고서를 올리고 다음날. 직원 휴게실에서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였을까? 한철용이 표본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진수가 표본을 제작하러 가는 길에 그를 목격한 직원의 말이었죠.”

“어떤 말이었습니까?”

“진수가 검은 천을 씌운 원통형 수조를 리어카에 실어 표본제작실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응? 그게 뭐?

“그게 뭐가 이상한 가요?”

한철용이 날 힐끔 보며 말했다.

“죽은 물고기는 수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잠시 멈칫했던 나는 곧 눈을 크게 떴다.

“살아 있는 물고기로 표본을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

한철용이 말없이 표본들을 바라본다. 잠시 뭔가 회상하던 그가 말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우리 직원들의 노력으로 4개월 간 죽은 물고기가 없었습니다. 모든 물고기들이 잘 살아가고, 잘 번식하며 수족관의 규모를 늘려주고 있었죠.”

한철용이 날 바라보며 무겁게 말했다.

“제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직원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진수가 무섭다고 말입니다.”

“왜 무서웠다고 한 겁니까?”

한철용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한참만에 입을 연다.

“왜 고기들이 안 죽지? 빨리 죽어야 내 일을 하는데.”

한철용의 말을 들은 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 장진수가 한 말입니까?”

한철용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혼잣말이었지만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고 다녔답니다. 직원들은 물고기들이 죽지 않자 금단현상을 느낀 장진수가 살아 있는 물고기로 표본을 제작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의 물고기도 아니고 북한 대사관에서 기증한 물고기에 대한 이상한 소문은 결국 센터장님을 움직였고, 청문회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표본제작실에 들어간 건 진수 혼자였고, 검은 천 때문에 목격자의 진술도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한철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쉰다.

“결국 경찰까지 동원되어 조사했지만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진수는 며칠 뒤 일을 그만뒀죠.”

장진수가 표본제작에 대한 금단현상을 느껴 생물을 죽였다고? 정말 그런 혐오스러운 생각을 하는 인간이 존재한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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