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화. 박제(剝製) (13)
물고기로 표본을 제작하는 일은 혐오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라나는 미래의 생물학자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줄 지식의 공급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중얼거리다니? 나는 방금 한철용에게 들은 말을 다시 중얼거렸다.
“왜 고기들이 안 죽지? 빨리 죽어야 내 일을 하는데.”
그때 생각이 났는지 약간 표정이 안 좋아진 한철용이 말했다.
“직원들 사이에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기분 나쁘다, 변태인 것 같다 라는 악성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죠. 게다가 진수가 표본을 만들 때 뒤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직원의 증언까지 보태어 지자 소문은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증언이었습니까? 살아 있는 물고기로 표본을 만든 걸 봤을 리는 없고.”
한철용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한숨을 쉰다.
“사실이라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직원 진술을 듣고 너무 이상해서 찾아보기까지 했습니다.”
너무 이상해서 찾아봤다? 무슨 뜻일까? 나는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수첩에 단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한철용은 표본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구절 전체를 기억하진 못하지만 무엇인지는 기억합니다. 진수는 표본을 제작 후 성경 구절을 읊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대로 몸을 굳힌 채 한철용을 바라보았다.
“설마.. 누가복음 입니까?”
한철용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누가복음 24장 37절부터 39절 말씀이었습니다.”
“·····················..”
“진수가 죽은 물고기 표본 앞에서 그런 말을 읊는 걸 목격한 직원은 그 후부터 진수 곁엔 얼씬도 안 하게 되었죠.”
“지금 그 직원은 어디 있습니까?’
“관뒀습니다.”
“연락은 됩니까?”
“예, 지금 호주의 수족관에 있습니다.”
그건 다행이다. 혹시나 그가 2차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잠시 걱정했다. 한철용이 짧게 한숨을 쉬며 말을 덧붙인다.
“당시 진수를 불러 진위에 대해 물었습니다. 직원 말이 네가 그런 구절을 읊었다고 하던데 사실이냐고 물었죠.”
“뭐라고 했습니까?”
“쉽게 인정했습니다. 자신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단순히 꺼진 생명 덕에 비어 버린 육신을 표본으로 만들기 보다 그 행위에 종교적 의미를 두고 싶어 읊었다고 하더군요.”
음, 그렇게 말하니 진짜 독실한 신자 같구나.
“여기서 어느 성당에 나갔는지 아십니까?”
한철용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이 동네에 성당은 딱 한 군데 뿐입니다. 주소를 알려드리죠.”
**
단양 상진성당.
주일이 아니라 인적이 없는 고즈넉한 성당 앞에 차를 주차한 나는 닫혀 있는 커다란 나무 문을 열었다. 시골 성당이었지만 천장은 높고 창문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웅장한 곳이다. 저 멀리 십자가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성모 마리아 석상이 서 있다.
길다란 나무 의자 맨 앞줄에 검은 옷을 입은 신부님이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내가 자란 곳은 성당에 딸린 보육원이었다. 나를 돌보아주고 키워준 분들도 모두 수녀님들. 내게 있어 가톨릭 신부님은 아버지와 같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맨 뒷자리에 앉아 신부님의 기도가 끝나길 기다렸다.
보육원에서 나온 후 한번도 성당에 가 기도를 해본 적이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항상 보아온 풍경이라 그런지 십자가를 보자 마음이 차분해진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기도문을 외고 있을 때, 멀리 떨어진 인기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눈을 뜨자, 내 앞까지 와 내려보고 있는 신부님의 온화한 얼굴이 보인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는 얼굴이군요.”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굽힌 후 명함과 신분증을 내밀었다. 경찰 신분증을 본 신부님은 흠칫하는 표정이었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고 말했다.
“뭔가 묻기 위해 오셨겠군요?”
“예, 신부님.”
“이쪽으로.”
신부님은 성당을 나서 옆에 딸린 관저로 날 데려갔다. 무겁고 엄숙하며 무척이나 깨끗한 관저의 낡은 소파에 앉은 나는 신부님이 내어 주시는 차를 마시며 그와 마주 앉았다.
“일년 전까지 이 곳에 나오던 장진수란 사람에 대해 물으러 왔습니다.”
“토마스 말이군요?”
토마스? 세례명 같은 건가 보다.
“토마스가 장진수라면 맞습니다.”
신부님은 가만히 주변을 바라보다 일어나 책장에서 앨범 한 권을 빼 온다. 하드보드 재질의 표지를 넘기고, 연도가 표기된 사진들을 여러 차례 넘기던 그가 2008년이라고 써 있는 사진을 확인하곤 내 쪽으로 돌려준다. 성당 앞에서 여러 명이 찍은 사진. 그 중 한 명을 가리킨 신부님이 말했다.
“진수가 성당에 나온 건 2008년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그 아인 갓 스물이었죠.”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수상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습니까? 남과 다른 면모는 없었습니까? 라는 질문은 넣어둬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고 해도 수사를 위해 하는 탐문 시에 참고인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고정관념을 심어줄 어떤 말도 삼가는 것이 원칙이다. 내가 잠자코 듣고 있자 신부님이 사진을 눈짓하며 말했다.
“처음 진수가 성당에 왔을 때, 참 예쁜 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눈을 가졌고, 얼굴도 하얀 것이 나중에 크면 인기가 많겠구나 했죠.”
내가 아는 그 장진수가 맞나? 후드를 뒤집어쓰고 음험하게 웃던 그 장진수? 아랫집 아이 말로는 너무 음침해서 말도 안 섞어 봤다고 했었다. 그런 장진수가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고? 어릴 때의 그는 다른 사람이었을까?
“친구들과 잘 어울렸나 보군요.”
신부님이 빙긋 웃은 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진수는 항상 혼자였습니다. 누가 다가와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왜 매번 혼자 있냐 물어보니 그저 혼자가 편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성경을 가지고 다녔으며 열심히 기도하는 아이였죠.”
그때 장진수는 무엇을 위한 기도를 올렸던 걸까? 갓 스물이 되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일탈도 해보고 싶은 나이에 성당에 나온 그는 무엇 때문에 종교에 열 올렸던 것일까? 신부님과 꽤 오래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좋은 사람의 눈에는 좋은 것만 보이는 걸까? 신부님이 기억하는 장진수는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외톨이처럼 지냈지만 착한 사람이었다.
수상한 점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없는 신부님께 장진수가 예전에 살던 집에 대해 물었다.
“혹시 교인 기록에 장진수의 주소가 남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좀 볼 수 있을까요?”
“예, 잠시만요.”
신부님은 서랍을 뒤져 검은 서류 철을 꺼내 든다. 요즘에도 아직 서류 철로 교인을 관리하는 성당이 남아 있구나. 대부분 PC로 관리하는 체재로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오래된 서류라 아직 데이터베이스화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한참 교인명단을 넘겨보던 신부님이 돋보기를 낀 뒤 손가락으로 서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네요. 상진리 1116-19번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거기 빈집입니다.”
그럴 수 있다. 시골집은 잘 안 팔리니까. 아직 빈집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겠지.
“예, 괜찮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진수 혼자 살다가 서울로 갔어요. 집을 팔고 가서 서울에서 자리 잡는데 보태는 게 좋지 않냐 물었더니 부모님 흔적이 남아 있어 싫다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착한 아이이지요?”
“··················.”
만약 장진수가 진범이라면, 그리고 그가 살인을 한 것도 모자라 사람 시신으로 표본을 만드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이 신부님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자신이 바라보는 따뜻하고 착한 세상 뒤에 어둡고 축축한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면 신부님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하지만 지금은 어떤 말도 해줄 수 없다. 나는 신부님께 정중히 목례를 드린 후 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 네비게이션에 신부님에게 들은 장진수의 옛집 주소를 입력하고 막 출발하려는 바로 그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기억이 머리를 스쳐간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진수 혼자 살다가 서울로 갔어요. 집을 팔고 가서 서울에서 자리 잡는데 보태는 게 좋지 않냐 물었더니 부모님 흔적이 남아 있어 싫다고 하더군요.’
부모님의 흔적이 남아 팔기 싫다고 했다고? 아냐, 설마 그럴 리가. 장진수의 부모는 사망처리 되어 있었다. 국가가 부모의 사망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장진수는 전과도 없었고. 괜한 생각일까? 하지만 어쩐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나는 결국 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형님.
“어, 관우야 나다.”
-형님 어디세요?
“이정호 반장님 지시로 교인들 만나러 다니고 있어.”
-그래요?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이정호 반장이 또 내가 딴 짓하고 다니는 거 아닌지 확인하라고 시킨 모양이다.
“관우야, 부탁 하나만 하자.”
-오늘 부탁 여러 개 하십니다, 형님? 하하. 말씀해 보세요.
“아까 내가 조사 부탁했던 사람 있지?”
-장진수요?
“어, 그 사람 부모님 사망원인 확인 좀 해줄래?”
-잠시만요, 지금 컴퓨터 앞이니까 바로 해드릴게요.
종일 CCTV만 보고 있는 관우이니 당연히 PC 앞일 거다. 녀석 고생 많구나. 타자를 치는 소리가 잠시 들려오고 다시 관우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거···
“왜?”
-두 분 다 실종인데요?
“·····················”
-실종 후 5년이 지나 사망처리 된 케이스입니다, 형님.
“·····················”
뭐라고? 실종 후 5년이 지나 사망처리가 돼? 설마 아까 그 기분 나쁜 느낌의 정체가 이것이었나?
-형님? 이런 사람 대한민국에 엄청 많아요.
“언제야?”
-뭐가요?
“부모님이 사망처리 된 시점.”
-어.. 그러니까 8년 전에 완전히 처리됐습니다.
8년. 장진수는 서른 셋이다. 8년 전에 처리가 되었다면 그가 스물 다섯 때이다. 만약 부모가 5년 전에 죽었다면 그가 스물이 되었을 무렵, 성당에 나오기 시작할 즈음에 사망했다고 볼 수 있다. 눈을 가늘게 뜬 나는 급히 차를 출발시켰다.
“알았다, 고마워.”
-어, 형님! 형님 잠깐만···
“왜?”
“반장님이 좀 바꿔 달래요.”
“바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퉁명스러운 이정호 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냐?”
“성당입니다.”
“교인 만나라고 했더니 왜 성당이야?”
“신부님부터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신부님은 왜?”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하, 아주 형사 놀이하고 있네. 하라는 일이나 해라. 안 그래도 좀 전에 서장님이 한바탕 뒤집었다. 며칠 안에 범인 검거 못하면 공개수사 전환이야.”
“알겠습니다.”
“하, 내가 뭘 기대하고 있는 건지. 그냥 사람들 돌아보다 수상한 놈 있으면 전화 때려. 넌 그것만 해도 네 역할 다 한 거다.”
“·····················”
“대답 안 하냐?”
하, 두고 봐라. 증거만 잡아 내면 그 입 닥치게 해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알겠습니다, 반장님.”
“세 시간에 한번은 상황보고 전화하고.”
“예, 반장님.”
전화를 끊은 나는 엑셀을 밟았다. 순간적으로 장진수의 집에서 증거가 나와 강력계 사람들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제발 부모를 죽인 아들이 존재하지 않기를 비는 마음이 내면에서 상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