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화. 박제(剝製) (14)
상진리 1116-19번지.
사람이 살지 않은 주택 태가 난다. 작은 2층 집은 집 담벼락에서 시작된 담쟁이 넝쿨이 집 안쪽까지 넘어가 있고, 담벼락 사이로 보이는 집 건물도 거미줄과 무성한 잡초가 올라와 있다. 주변을 둘러보자 이웃집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집이 약 50미터가량 떨어져 있다. 저 정도 거리라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들리지 않겠다.
녹이 슨 대문. 우연일까? 녹이 슨 대문 사이로 초록색 페인트가 보인다. 피해자 강상원의 집 대문도 초록 대문이었다. 닫혀 있는 녹슨 문 손잡이를 슬쩍 밀었지만 단단히 잠겨 있다. 대문에서 물러나 집 담벼락을 둘러보니 담쟁이 넝쿨들 때문에 충분히 담을 넘어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다.
만약 여기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징계를 받게 될 거다. 하지만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될 일이다. 생각이 많으면 일을 망치지만 고민이 너무 깊으면 일을 시작할 수 없다. 나는 담쟁이 넝쿨을 밟고 담벼락을 뛰어 넘었다. 대테러 진압훈련 시 지겹게 해본 침투작전이라 전혀 힘들이지 않고 담벼락 안쪽에 도착한 내 눈에 집안 전경이 보인다.
잡초가 무성한 마당의 크기는 약 30평 남짓 되어 보인다. 안주인이 식물을 좋아했는지 말라 죽어 있는 화분들이 담벼락을 빙 둘러져 있다. 품에서 총을 꺼냈다. 빈집이라고 들었지만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허리를 잔뜩 숙이고 현관문 옆에 앉은 후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렸지만 잠겨 있다.
주변을 보자 베란다 창문을 비롯해 작은 창문이 여러 개 있다. 하나씩 열어봤지만 모두 단단히 잠겨 있다. 결국 1층에 난 모든 창문이 잠겨 있음을 확인한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해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젠장.”
영장이 없다. 창문을 부수게 되면 흔적이 남는다. 탐문한다고 성당에 가서 장진수의 옛 주소를 묻고 다녔으니 내 소행이란 건 금방 들통 날 거다. 이대로 돌아가야 될까?
장진수의 부모는 실종되었다. 그리고 5년 후 법적 사망처리 되었다.
장진수는 수족관에서 물고기 표본을 제작하던 자였다.
장진수는 수족관에서 생물 표본을 제작했다는 소문이 나 타의에 의해 그만두게 되었다.
장진수는 표본 제작 후 현장에 남겨진 누가복음을 읊었다.
장진수는 칠구의 기억에서 본 왼손 등에 흉터가 있는 자이다.
모든 심리적 증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물러 나라고? 하지만 방법이 없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집 내부에서 전혀 인기척이 나지 않는 걸 몇 번이나 확인 후 현관문 앞 돌 계단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지? 경찰대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지금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 서로 복귀해 동료들을 설득하고 반장의 허가를 받은 후 수색영장을 발부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장진수를 범인으로 의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칠구의 기억이다. 그가 강력한 용의자임을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 물론 심리적 증거가 있으므로 이정호 반장을 비롯한 동료들은 혹시 믿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수색영장은 반장의 허락으로 나오는 서류가 아니다. 상부를 설득하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멀거니 집 건물을 바라보던 난 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가 멈칫한다.
“하, 하하..”
어디 전화를 걸려고 전화기를 든 거지? 전화할 곳도 없는 놈이. 답답한 마음에 관우한테 전화해 뭐 더 알아낸 것이 없냐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다른 이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아마도 나는 무척 답답한 상황에서 하소연할 사람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보세요?
“··················..”
-도경이냐?
“·····················”
-뭐야,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야지, 이놈아.
“아저씨.”
-무슨 일 있는 거냐?
나도 모르게 강혁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아저씨는 현재 국가수사본부장이다. 어쩌면 내 상부보다 더 깐깐하게 법을 따지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나한테야 그냥 아저씨지만 경찰 조직에선 아니다. 그는 감히 경위 따위가 눈도 마주치지 못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냥··· 그냥 했어요.”
-싱겁긴. 놀랐잖아, 인마. 차는 잘 굴러 가냐?
“예, 기름만 넣고 타면 되더라고요.”
-흐흐, 내가 차는 좀 관리하는 편이지. 그 놈이 20만 킬로나 탔어도 웬만한 새 차보다 잘 나갈 거다. 길을 잘 들여놔서.
“그런 것 같아요.”
전화는 내가 했지만 주로 질문하는 쪽은 강혁 아저씨다. 아저씨는 항상 내 안부를 궁금해 하신다. 여러 질문을 빙빙 돌려 안부를 묻던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사 중인 사건은 어때?
“·····················”
-여전히 진전 없어?
“음, 곧 공개수사로 전환된다고 들었어요.”
-그래, 며칠 안 남았다. 종로 경찰서 보고 들어보니 수사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고 하던데. 바로 공개수사 전환해야 되는 거 아니냐 말들이 많네.
“························.”
-개는 따라가 봤냐?
아, 아저씨가 개를 더 지켜보라고 했었지.
“예···”
-뭐 건진 건 없고?
그래, 아저씨랑 나 사이에 비밀이 뭐 있겠는가? 난 답답한 속내를 그대로 털어놓았다. 칠구의 기억 속에 있던 남자와 옆집 2층에 사는 장진수. 그리고 현재 단양에 내려와 그의 옛집에 있다는 사실까지. 동료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한 날 질책할 만도 하건만 아저씨는 잠자코 내 말을 끝까지 들은 후 말했다.
-지금 집 앞이냐?
“예, 아저씨.”
-빈 집인 거 확실하고?
“예, 확실해요.”
-집 뒤로 돌아가.
응? 집 뒤는 왜? 거긴 그냥 쓰레기 더미만 잔뜩 있었는데.
“왜요?”
-일단 이동해.
아저씨의 말을 듣고 쓰레기 더미가 있는 집 뒤편으로 온 뒤 말했다.
“왔어요.”
-가스 배관 보여?
가스 배관? 왼쪽을 보자 건물을 타고 올라가는 주황색 가스 배관 세 개가 보인다.
“네, 있어요.”
-몇 층 집이야?
“2층 집이요.”
-그럼 배관이 두 개일 거다. 충분히 밟고 올라갈 수 있어. 단독 주택은 보통 2층 창문까지 잠그지 않는다. 그걸 타고 올라가.
순간 아저씨가 경찰 고위 간부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법대로 해야 한다 강요하는 상부인사가 이런 방법을 알려줘도 되는 거야?
“불법침입을 하라는 겁니까?”
마음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었지만 말은 그렇게 나간다. 전화기 너머 아저씨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새끼, 형사가 그 정도 뚝심은 있어야 하는 거다!
“징계 받을 걸요?”
-2층으로 진입 후에 1층 가서 창문 하나 열어. 나중에 보고서 쓸 때 거기만 열려 있다고 쓰면 된다.
참 좋은 거 가르치십니다, 아저씨. 하지만 뭔가 꿀 팁 같은 느낌이다.
“알았어요.”
-절대 조심하고. 최대한 어지르지 말고, 장갑도 꼭 껴라.
“예, 아저씨.”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가스 배관이 두 개라도 약한 부분이 있다. 가급적이면 나사로 벽에 고정된 부분 근처를 밟고 올라가.
눈으로 가스 배관을 살피는 나. 아저씨 말대로 벽에 고정하기 위해 나사를 박아 둔 곳이 몇 군데 보인다. 그런데 잠깐만. 가스 배관이 두 개라고?
“가스 배관이 왜 두 개라고 하시는 거예요?”
-2층이라며. 1층 보일러, 주방에서 사용하는 가스배관이 있고, 2층 보일러를 돌리는 가스 배관이 있을 거다. 인마 이게 다 경험이야.
내 눈이 배관을 따라 간다. 이상하다. 2층 집인데 배관 파이프가 세 개다.
“배관이 세 개인데.”
-세 개? 그럼 지하실이 있는 거다. 보통 지하실엔 보일러를 안 돌려서 세 개까진 안 놓지만 예외가 있을 수 있지. 지하실까지 다 둘러봐.
“알았어요, 아저씨.”
전화를 끊은 나는 가스 배관을 여러 번 밟아 안전을 확인 후 몸을 날렸다. 이런 때는 최대한 빠르게 올라가는 편이 좋다. 빠르게 벗어날수록 파이프가 하중을 버티는 시간이 짧아지니까. 군 시절 이런 훈련도 해봤기에 올라가는 것엔 문제가 없었다. 파이프 끝을 차고 뛰어올라 2층 창문에 달라붙었지만 이곳 역시 잠겨 있다.
창문 턱을 겨우 붙잡고 옆을 보니 또 다른 창문이 있다. 발로 창문을 슬쩍 밀었더니 스르르 열리는 것이 보인다. 역시 아저씨 말처럼 열려 있는 창문이 있었다. 연륜과 경험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조금씩 몸을 이동해 열려 있는 창문 앞의 쇠창살을 잡고 문을 연 뒤 안으로 몸을 날렸다.
“흡!”
코를 찌르는 냄새. 마치 오래된 화장실에서 나는 강한 향이 난다. 소매로 입을 가린 후 방금 들어온 창문을 활짝 열었지만 버티기 힘들 정도의 악취가 난다. 총을 빼 들고 경계를 하며 커튼을 모두 걷어 내자 어두운 2층이 보인다.
잠재적 범죄자의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2층. 나무로 깔린 바닥재와 나무 벽이 무척 고풍스럽다. 하지만 그리 잘 사는 집처럼 보이진 않는다. 가구가 모두 낡아 있기 때문이다. 2층 거실에 있는 3인용 소파. 나는 총으로 사방을 겨누며 조심스럽게 장갑을 끼고 소파 위를 만져본 후 손가락을 보았다.
‘먼지가 없다.’
장진수가 서울로 올라간 건 일 년 전이다. 아무리 창문을 닫아 두었다고 해도 사람 손이 타지 않는 집 소파에 먼지 하나 없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는 거야.’
나는 총을 겨누고 천천히 2층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첫 번째 방은 옷 방으로 사용하던 방인지 열려 있는 오래된 장롱이 보인다. 이사를 갈 때 옷을 다 챙겨 갔는지 속은 텅 비었다. 혹시 몰라 세 개의 장롱 문을 다 열어봤지만 특별한 건 없다.
다시 거실로 나와 화장실을 먼저 살피고 맨 끝 방 앞에 섰다. 문을 활짝 여는 것과 동시에 총구를 겨누었지만 방은 비어 있었다. 침구 없이 매트리스만 있는 침대. 빈 책장과 책상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누가 보아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임이 명확하다.
총구를 내리고 방 밖으로 나온 나는 1층으로 가는 계단을 보았다. 동그란 나무 기둥을 붙잡고 내려가는 보통의 계단. 왠지 지옥으로 내려가는 계단일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의 계단을 밟자 끼익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난다. 오래된 집 특유의 나무 갈라지는 소리다. 잠깐 멈칫했지만 다시 천천히 내려간다.
1층에는 주방과 거실이 있고, 방은 두 개다. 역시 이곳도 비어 있다. 하지만 2층과 다르다. 2층은 가구들만 제 자리에 있고 그 속에 있던 내용물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지만 이곳은 사람이 살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층은 장진수가 사용하던 공간이고, 1층은 부모가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사진이 하나도 없다. 아마 장진수가 치운 모양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화장대 위에 있는 오래된 스킨이나 로션 병까지 모두 그 자리에 있다. 1층 수색을 마쳤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바로 지하실이다. 문득 내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지나친 기억이 있었나 떠올려 본다. 하지만 수색 중에 지하 계단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일단 강혁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1층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 대문 잠금 장치도 풀어 놓았다. 나중에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원래 열려 있는 집이었다고 둘러댈 작정이다. 다시 집 건물을 돌아보며 지하실로 연결된 통로를 찾는다. 하지만 이 집에는 지하실 따위는 없다는 듯 연결 계단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가스 배관이 세 개였다.”
분명히 지하실이 있다. 하지만 어디에? 다시 마당을 찬찬히 살펴본다. 허리까지 자란 무성한 잡초들 덕에 시야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지만 지하실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 천천히 다시 한번 집을 살펴보자.
‘마당 한 켠에 장독대 여섯 개, 녹슨 자전거 한 대. 빈 개 집이 하나, 그리고 쓰레기 더미.’
집 밖에 있는 것은 그게 다였다. 가만히 집 주변을 둘러보던 내 눈에 이채가 떠오른다.
‘장독대?’
부모님이 돌아가신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장독대가 여섯 개나 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장독대 뚜껑을 열었다.
‘비어 있다.’
여섯 개의 장독대 모두 차례대로 뚜껑을 열었다. 모두 비어 있다. 나는 유난히 한 쪽으로 쏠려 모여 있는 장독대 사이의 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기다. 여기가 지하실 입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