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35화 (35/328)

제 35 화. 박제(剝製) (15)

여섯 개의 장독대.

그 아래 누런 색의 멍석이 깔려 있다. 다른 곳엔 먼지가 쌓여 있지만 멍석과 그 주변은 비교적 먼지가 적다. 누군가 가끔 들락거리는 곳이 분명하다. 멍석을 걷어 내자 철제 문이 보인다. 꼭 캐비닛처럼 생긴 문의 손잡이를 당기자 칠판 긁는 소리처럼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린다.

어두운 실내.

아직 대낮이었지만 내려가는 계단 저 편은 완전한 어둠이다. 이대로 내려가면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다. 플래시를 챙겨올 걸 그랬다. 할 수 없이 핸드폰 플래시를 켠 후 지하실로 내려간다. 가파른 계단은 총 일곱 개. 한 계단의 상하 폭이 매우 커서 성인 남성이 아니면 내려가는 것도 힘들 것 같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어 총을 빼 들었지만 완전한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때 총은 무의미하다. 내가 지금 느끼는 공포는 인간에 대한 공포가 아닌 어둠 속에 숨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였으니까.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끼며 약한 핸드폰 플래시로 여기 저기를 비추며 조금씩 전진했다.

어디서 떨어지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옅은 물소리가 난다. 아마도 천장에서 물이 새는 것 같다. 어둡고 습한 느낌에 지하실 특유의 곰팡이 냄새에 섞여 처음 집에 들어갔을 때 맡았던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 온다. 나는 총을 든 손의 소매로 코를 가리고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 플래시가 닿는 범위는 내 전방 3미터가량. 그 뒤에 뭐가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여기 사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이런 어둠 속에서 움직이기는 쉽지 않았을 거다.’

어딘가 불을 켜는 장치가 있을 것이다.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가장 가까운 벽에 등을 대고 손을 더듬었다. 조금씩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스위치를 찾았지만 아무것도 만져지는 것이 없다. 이동을 하다 보니 내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하실에 진입할 때 문을 열어 두고 온 덕에 저 멀리 계단이 보인다는 것이다. 한줄기 빛이 희망이라도 된 것처럼 가끔 계단 쪽을 바라보던 나는 어느 순간 내 머리를 때렸다.

“이 바보 같은 놈이.”

오늘따라 내가 왜 이리 멍청한 걸까? 이렇게 어두운 지하실이라면 당연히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불을 켜는 장치가 있을 거란 생각을 왜 못한 걸까? 나는 다시 핸드폰으로 사방을 비추며 계단 쪽으로 갔다. 계단에 도착해 주변 벽을 더듬진 않았다. 왜냐하면 이동 중에 머리를 때리는 동그란 무언가를 만져보았기 때문이다. 동그란 스위치. 공중에서 내려온 전깃줄에 매달린 스위치가 바로 그것이다.

불을 켜면 무엇이 있을까? 미지의 무엇인가가 어둠속에 있다가 비명을 지르며 날 덮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총구를 겨눈 후 스위치를 꾹 눌렀다. 아주 옛날에 설치해둔 스위치인지 천장의 백열등은 한번에 켜지지 않고 여러 번 깜빡인다.

“·········.씨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깜빡이며 밝혀지는 불빛들 속.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 않은 지하실. 클럽의 사이키 조명 불 같은 빛들 속에서 강상원의 시신을 발견할 때와 같은 꼴을 한 두 구의 시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불이 켜진다. 윙 하는 전기 통하는 소리와 함께 켜진 백열등 아래. 창문 하나 없는 습한 지하실 한쪽 벽에 세워진 두 개의 원통이 보인다.

단백질이 투명화 되어 있는 두 구의 시신. 나는 콧등을 찌푸리며 지원을 요청했다.

“서울 종로경찰서 강력계 현도경 경위입니다. 상진리 1116-19번지 지하실에서 시신 두 구 발견. 즉시 지원요청 드립니다.”

지원 요청을 한 뒤 나는 도저히 사람의 짓으로 보이지 않는 표본들을 살폈다. 그리고 주변을 보았다. 지하실에는 책상이 하나 있고, 책장이 있다. 책장 안에 성경을 비롯한 종교서적들이 잔뜩 꽂혀 있고, 책상 위에는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다. 총구를 겨눈 채 지하실 내부 중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먼저 살핀 후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책상 쪽으로 다가간다.

이제 경계해야 할 곳은 지하실 입구이다. 조금 전까지 거기서 들어오는 빛에 의지했다면 이제는 거기서 들어올 누군가를 경계해야 할 차례이다. 나는 계단 쪽을 노려보며 천천히 손을 뻗어 노트를 가져온다. 눈 높이까지 들어올려 계단과 시선의 높이를 맞추고 노트에 적힌 글귀를 본 나는 곧 다시 욕을 뱉어야 했다.

“이 미친 새끼가.”

장진수의 필적으로 보이는 자필 메모. 그 메모는 강상원의 집에서 발견된 그것과 같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것은 확증이다.

장진수의 집에서 부모님의 시신이 나왔다. 그것도 강상원의 케이스와 시신유기 방법이 동일하다. 또한 동일한 시그니쳐인 성경구절도 나왔다. 나는 이정호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또 뭐야?

퉁명스러운 반장의 목소리.

“즉시 체포영장 발부 및 용의자 체포 부탁드립니다.”

-음?

“이름 장진수, 33세. 충신동 사건 현장의 옆집 2층에 사는 남자입니다.”

잠시 흐르는 침묵. 이정호 반장은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지만 노련한 형사 답게 질문을 던진다.

-증거는?

“지금 장진수가 살던 단양의 집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강상원과 동일한 모습으로 유기된 시신 두 구를 확인했습니다.”

-뭐야? 그게 누군데?

“장진수의 부모님으로 보입니다. 실종 후 5년이 지나 사망처리 되었습니다.”

-미친, 존속살인에 연쇄살인마라고? 강상원씨 옆집이라고 했지? 정확한 주소 불러.

“관우가 알고 있을 겁니다. 즉시 출동해 주십시오.”

-알았다, 넌 단양 쪽 시신 수습해서 올라와. 단양 경찰서엔 내가 따로 협조공문 보내 놓을 테니까 반드시 시신 가지고 올라와, 알았어?

“예, 반장님.”

그때 밖에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단양 경찰서에서 지원을 나온 모양이다.

“그럼 끊습니다.”

-도경아.

“예, 반장님.”

-수고했다.

비웃어 주고 싶었다. 보란 듯이 내 능력을 증명하고 그들 위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날 그토록 무시하던 반장의 한 마디에 눈이 녹 듯 녹아 버렸다.

“·····················.”

-정리 잘하고.

“예, 반장님.”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알고 거기까지 내려간 거냐?

“·····················..”

-너 영현이한테 교인명단 받은 거 말이야. 반나절 전에 인수인계 받은 거 아냐? 어떻게 그 시간 내에 범인을 특정해 내고 단양까지 내려가서 증거를 잡았냐는 말이다.

뭐라고 해야 될까? 기억을 읽었다고 하면 미친놈 소리나 듣겠지.

“그냥.. 운 좋게 첫번째 만났던 녀석이 범인이었습니다. 최경사님이 계속 맡으셨다면 아마 최경사님 쪽에서 잡으셨을 겁니다.”

-허허.. 영현이 새끼 운 더럽게 없네. 그래, 운도 실력이지. 알았다, 올라와라.

“예, 반장님.”

전화를 끊고 흐뭇한 마음이 든다. 성깔을 보여주고, 다 뒤집어 엎어 따낸 인정은 인정이 아니다. 그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마음일 거다. 하지만 이렇게 실력으로 따낸 인정은 다르다. 이제 팀에서 무시당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전화를 품에 넣자, 단양 경찰들이 지하실로 뛰어내려와 시신의 몰골을 보곤 그대로 굳어 버린다.

“헉!”

“저, 저게 도대체 뭐야?”

뒤늦게 내려온 제복 경찰들은 시신의 충격적인 모습에 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한다. 그나마 형사 같아 보이는 사람들은 볼썽 사나운 꼴을 보이지 않았지만 시골에서 보기 힘든 강력 사건에 다들 놀란 얼굴들이다. 개중에 몇은 내게 총까지 겨누고 있다. 지원 부른 건 나지만 일단 시신과 함께 서 있으니 총구를 겨누고 경계하는 것이 절차상 맞다.

나는 양손을 든 후 천천히 품을 눈짓했다.

“지원 요청한 현도경 경위입니다. 신분증 꺼내겠습니다.”

형사들이 날 주시하고 있다. 나는 천천히 품 안에 손을 넣어 신분증을 꺼냈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때와 달리 밝게 불이 밝혀진 곳이라 금방 내 신분을 확인한 형사들이 총을 넣으며 침을 꿀꺽 삼킨다. 인사를 건넬 만도 하지만 충격적인 시신의 앞이라 그런지 할 말을 잃은 형사들.

나는 계단 쪽을 보며 물었다.

“KCSI가 올 때까지 아무 것도 만지지 마세요.”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형사가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

“겨, 경위님.”

이들은 내가 강력계 신참인지 모른다. 그저 계급만 알고 있을 뿐이다.

“예.”

“이, 이게 도대체···”

“서울에서 벌어진 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입니다.”

형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여, 연쇄살인이라고요?”

연쇄살인이란 표현이 정확할까? 범죄적 냉각기가 무려 13년이다. 아니, 그렇게 단정할 순 없다. 숨겨진 시신이 더 나올 수도 있으니까. 나는 답을 하지 않고 그들을 지나쳐 계단 위로 올라갔다.

**

잠시 후 도착한 KCSI 요원들과 함께 현장의 모든 증거물을 걷어 서울로 올라와 KCSI 본사에 증거품들을 넘기고 종로경찰서에 도착한 건 밤 10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자 로비에서 뛰어나오는 관우의 모습이 보인다.

“형님!!”

녀석. 눈이 퀭하구나. 그래, 나라도 며칠 동안 CCTV만 보고 있었으면 눈 밑이 검게 죽었을 거다.

“잡았어?”

“예, 형님!”

됐다. 검거만 하면 반은 끝난 거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날 졸졸 따라오는 관우가 재잘거린다.

“아니, 그런데 진짜 어떻게 아신 거예요?”

“그냥 운이 좋았어. 김연주 경장님은?”

“아까 연락해서 돌아왔어요.”

제주도에 갔던 김연주도 돌아온 모양이다. 관우가 머리를 긁으며 웃는다.

“최선배님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범인 잡았으면 됐죠.”

최영현의 입장에선 다 잡은 토끼를 놓친 기분일 거다. 그는 내가 운이 좋아 성도 명단을 건네 받고 처음 만난 용의자가 범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슬쩍 웃어준 내가 계단을 올라가자 관우가 다시 묻는다.

“진짜, 어떻게 아신 거예요?”

“운이 좋았다니까.”

“운은 무슨! 처음부터 장진수 의심하셨잖아요.”

아, 이 녀석한테 장진수에 대해 알아보라고 부탁 했었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계단만 올라가고 있는데 관우 녀석이 알아서 착각하고 나불거린다.

“이야, 역시 경대 수석 명함이 딱지 쳐서 딴 건 아닌가 봅니다. 범인 얼굴 딱 보면 압니다, 뭐 이런 겁니까? 형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뭐라는 거냐, 내가 이 자식 잡으려고 잠시지만 개가 됐었다니까, 이 놈아. 네가 개가 되는 기분을 알아?

“장진수 어디 있어?’

“취조실이요.”

“누가 취조해?”

“이정호 반장님이 형님 오실 때까지 아무도 못 들어가게 했어요.”

“음? 왜?”

관우가 씩 웃으며 내 등을 툭 친다.

“우리 전통입니다. 잡은 사람이 취조한다.”

허허, 그 놈의 망할 전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무시하는 전통 뿐 아니라 공은 확실히 돌려주는 좋은 전통도 있는 모양이다.

“좋아, 내가 한다.”

“돕겠습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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