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36화 (36/328)

제 36 화. 박제(剝製) (16)

“하하! 자네가 현도경 경위인가? 경대 박철우 교수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네.”

머리가 벗겨진 대머리 서장. 이곳에 발령 받을 때 딱 한번 신고를 위해 만난 것이 다인 서장이 만면에 웃음을 띄고 날 맞아준다. 내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서장이 넉살 좋게 말한다.

“역시 경대 수석이야. 발령 나고 바로 이렇게 큰 사건을 해결해낼 줄은 몰랐네. 앞으로 기대가 커!”

하, 도대체 당신은 왜 온 거야? 그리고 박철우 교수님? 그 분은 우리 과 교수님도 아니라고. 내 이름도 모르는 교수가 왜 내 이야기를 해?

“감사합니다.”

“허허! 자, 그럼 어서 취조하고 마무리 짓자고.”

서장은 열중쉬어 자세를 취한 이정호 반장에게도 다가가 어깨를 쳐 주며 웃는다.

“수고했어, 이 반장. 송치 끝나면 내 방으로 와. 금일봉 줄 테니 애들 회식도 좀 시켜주고.”

“예, 서장님. 감사합니다.”

왜 서장이란 사람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 걸까? 그를 따라 강력 3반에 온 수많은 제복 경찰들. 하나 같이 어깨에 단 계급장이 무겁다. 칭찬을 하러 와준 것이지만 별로 반갑지 않다. 못 잡았다면 지랄을 하러 내려왔을 놈들이니까. 서장이 한참 치하를 하고 사라지자 다른 이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부동자세로 있던 최영현이 제일 먼저 배에 힘을 풀자 뚱뚱한 그의 배가 불룩 튀어나온다. 그것을 본 김연주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인상을 쓰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저런 살들을 배에 달고도 잘 싸우는 최영현이 신기하다. 난 이제야 부산한 분위기가 진정되자 취조 준비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챙기기 시작했다.

“도경.”

이정호 반장의 목소리다.

“예, 반장님.”

“··················.”

노트북을 가방에 넣느라 반장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답을 했음에도 말이 없다. 고개를 돌려보자 이정호 반장을 중심으로 팀원들이 쭉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관우 녀석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얼굴이고, 김연주는 여전히 무표정하며, 최영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이정호 반장은 가만히 날 바라보다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짝··· 짝··· 짝짝···

이정호 반장이 박수를 치자 다른 이들도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할 수 없다는 듯 박수를 치는 최영현까지 합류하고 나자 이정호 반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새끼, 잘했다. 역시 707 출신이야.”

낯 간지러운 칭찬들이 이어진다. 관우가 들러붙어 내 팔을 붙잡고 외친다.

“형님! 최고예요!”

김연주가 엄지를 치켜들며 시크하게 말했다.

“좋은 활약.”

최영현은 말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하지만 날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뒤치다꺼리 해야 할 신참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경쟁자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이정호 반장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마무리 취조도 자신 있지? 없으면 지금 말해.”

최영현이 날 힐끔 보는 것이 보인다. 순환보직만 돌았으니 살인범 취조를 해봤을 리 없지 하는 표정이다. 물론 취조해 본 적 없다. 하지만 넌 안 준다 이 새끼야.

“해보겠습니다.”

“최선 말고, 최대의 결과를 내라.”

“예, 반장님.”

“좋아, 들어가. 나머진 전부 모니터실로.”

팀원들이 모니터실로 가자 이정호 반장이 내게 작은 이어잭을 건네 주며 말했다.

“귀에 꽂아. 지시사항이 들릴 거다.”

“예, 반장님.”

“정신 똑바로 차려. 상대는 연쇄살인범이다. 범죄 냉각기가 13년이야. 너도 알겠지? 연쇄살인범의 프로파일과 맞지 않는 놈이다.”

연쇄살인범의 프로파일. 연쇄살인을 하는 자는 범죄의 냉각기를 가진다. 길게는 몇 년, 짧게는 며칠. 그리고 살인을 하면 할수록 냉각기는 짧아진다. 이정호 반장이 말했다.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은 결국 그대로 뒀다면 대가리에서 속삭이는 악마 새끼가 또다른 살인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넌 또다른 피해자를 막아낸 거나 마찬가지다. 자부심 가지고 들어가.”

이정호 반장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반장님.”

잠시 후 취조실 문 앞.

호흡을 여러 번 가다듬은 나는 문고리를 붙잡았지만 쉽게 문을 열지 못했다. 이 문 뒤에 연쇄살인범이 있다. 관우에게 듣기로 상대는 이번에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최영현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검거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막상 진입하자 의외로 반항은 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되었다고 한다. 검거작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장진수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나다. 내 손으로 잡은 범인이라고 해도 과장됨이 없지만 어쩐지 그를 마주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된다.

여러 번 마음을 다잡은 뒤 문을 열자,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장진수가 수갑 찬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

내가 들어왔지만 내 쪽을 보지도 않는 장진수. 나는 의연한 태도로 그의 맞은편에 앉은 후 노트북을 세팅했다. 한 마디도 오가지 않는 조용한 취조실. 나는 노트북을 여는 척하며 그를 살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보지 않고 있다. 그저 테이블 위를 조용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기본 취조 시작한다, 이름.”

“··················.”

“이름.”

“··················.”

“이봐, 이름 말하라고.”

그를 노려본다. 상대가 뭐든 기 싸움에서 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장진수의 텅 빈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심장이 오그라들 것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군 시절, 참호격투에서 날 이기겠다고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타 중대 인간들을 볼 때도 이런 긴장감은 없었다. 적어도 그들의 눈빛 속에는 타오르는 경쟁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진수의 눈빛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무엇도 읽어낼 수 없는 눈빛이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순 없다. 두려워도 이겨내야 한다. 나는 강력계 형사다. 앞으로 이런 녀석들을 수도 없이 만날 것이다. 나는 차분하지만 으르렁대는 어조로 말했다.

“이름.”

“아시지 않습니까?”

“··················”

그래, 알긴 알지. 그래도 네 입으로 들어야겠다.

“이름.”

“······..장진수입니다.”

“나이.”

“33세입니다.”

“주소.”

“서울 종로구 충신동 충신동 1341-11 2층입니다.”

묻는 말에 순순히 답하는 장진수. 나는 보고서와 진술서를 동시에 띄운 후 말했다.

“일주일 전 발견된 강상원씨의 시체. 당신이 한 거 맞나?”

“·····················.”

“당신은 연쇄살인, 존속살인, 시신훼손과 유기에 의거한 법령을 위반해 체포되었다.”

장진수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존속살인?”

모르고 있구나. 이 놈은 아직 제 부모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걸 모른다. 아무도 이야기 해주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그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말했다.

“담을 넘어 옆집을 오갔나?”

그래서 CCTV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장진수는 답을 하지 않고 날 텅 빈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시신 유기에 필요했던 포르말린과 알코올은 어떻게 수급했지? 다 쓴 용기는 어디에 버렸나?”

포르말린은 의외로 구하기 쉽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용액이기 때문이다. 사실 중요한 건 어떻게 수급했냐가 아니라 증거물을 어디에 버렸는지가 더 중요하다. 장진수는 여전히 답을 하지 않고 날 바라만 보고 있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말했다.

“대답을 안 하면 시간만 길어져. 당신은 참고인이 아니야. 영원히 여기 있게 될 수도 있어.”

장진수가 취조실을 둘러본다. 잠시 눈알을 굴리던 그가 다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말했던 존속살인이 무슨 말입니까?”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형법 제250조, 자기 또는 법률상의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하는 일이다.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그는 내 말을 듣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발견하셨나 보군요.”

“왜, 영원히 비밀로 남을 줄 알았나?”

“·····················..”

순간 마음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영원히 가지지 못할 가족이라는 이름. 친구들이 부모님과 외식을 다녀왔다는 일상을 이야기할 때마다 들었던 열등감. 가진 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일상의 소중함. 그리고 가지지 못한 나의 부러움과 실체를 알 수 없는 분노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네놈이 짓이겨 놓은 가족이란 이름은 내가 평생 갈구하던 그것이었다. 너는 그것을 가지고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짓밟고 부수어 다시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도록 망가뜨렸구나. 문득 눈 앞의 녀석을 죽도로 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정신을 차릴 놈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마음 속에서 장진수에 대한 악의가 솟구치는 바로 그때.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눈 앞의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차오르는 흑백의 물결 속에 우두커니 앉은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악의! 악의다. 내 능력의 발동조건은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악의에 찼을 때야.’

드디어 알아냈다.

순간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알아낸 건 알아낸 것이고, 지금은 눈 앞에 보이는 기억에 집중할 때이다. 극심한 어지러움이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질끈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 내 눈 앞에 달력이 있다. 붉은색 펜으로 엑스 표기를 해 둔 달력. 하지만 무언가를 표기하기 위해 엑스를 그린 것이 아닌 것 같다. 달력에 있는 날짜들의 대부분에 엑스 표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달력을 붙잡고 앞으로 차르르 넘긴다.

그러자 수 없이 많은 엑스 표기들이 그려진 전달 달력들이 눈 앞을 지나간다.

‘하나··· 둘··· 셋···’

무슨 숫자를 세는 걸까? 나는 곧 그 숫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1개월 단위의 숫자를 세고 있는 것이다.

‘열··· 열  하나···’

마음 속에서 희열감이 들끓는다. 단지 열 둘이란 숫자를 읊었을 뿐인데. 마치 소풍날을 기대하는 소싯적 기억이 떠오르는 듯 하다. 나는 오늘 날짜에 엑스 표기를 한 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열 둘.’

나는 열 둘이란 말을 중얼거린다. 나는 왜 날짜를 세고 있는 걸까? 나는 오래된 장롱에서 검은 후드를 꺼내 머리 위에 덮어쓴 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밖으로 나갔다. 여긴··· 익숙한 곳이다. 조금 전에 조사하고 왔던 장진수의 단양 집.

대문을 열고 나오자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이웃집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 보인다. 집 앞에 세워진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달리기 시작한 나는 다시 도로가 나오는 곳까지 달린 후 멈춰 선다. 눈 앞에 표지판이 보인다.

‘의풍리 버스정류장’

눈 앞에 보이는 버스정류장 푯말. 나는 자전거를 세워 두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나는 조바심보단 미지의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 시간쯤 기다리자 버스 한 대가 다가온다. 내 앞에 선 버스의 앞문이 열렸지만 나는 정류장에 그대로 앉아 있다. 버스기사가 물었다.

‘안 탑니까?’

‘··················;

‘안 타시면 출발합니다.’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버스에선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기다린다. 또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새로운 버스가 온다. 멀리서 보니 누군가 내리기 위해 뒷문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정류장 뒤로 돌아 논두렁으로 내려갔다.

몸을 숙이고 귀를 기울이니 버스가 서는 소리, 누군가 내려서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곧 통화를 하는 듯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나 집에 거의 다 왔어. 금방 갈게, 아빠.’

논두렁 앞 지푸라기를 붙잡은 내 손이 기뻐하고 있다. 희열에 찬 손가락이 지푸라기들을 짓이기고 있다. 나는 지금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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