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화. 박제(剝製) (17)
만약 내가 온 정신이었다면 나는 그의 의식흐름으로 인해 구역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읽고 느끼는 것은 장진수의 기억. 나는 솟구치는 기쁨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 있다. 논두렁 길을 따라 걷는 여자의 뒷모습. 나는 약 30여 미터를 떨어진 채 그녀를 따라가고 있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요즘은 시골에도 차츰 설치되고 있는 방범용 카메라가 저 앞에 보인다.
‘CCTV 사거리는 20미터.’
나는 미리 이곳에 와 카메라 각도를 계산해 두었던 모양이다. 카메라 각도에 따라 보이는 면적이 다르다는 것까지 꿰뚫고 있는 나는 앞서 가는 여인이 카메라 사거리로 들어가기 전에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뒤에서 빠른 발소리가 나자 흠칫 놀라며 돌아보는 여인.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앞만 보고 걸었다. 여자는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길 옆으로 비켜서 날 주시하고 있다. 내가 앞서 가자 그제야 안심한 듯 다시 걷는 소리가 들린다.
카메라에 걸리기 전에 논두렁 오른쪽 길로 꺾었다. 그곳에는 논두렁이 끝나고 긴 갈대밭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나는 나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갈대밭 초입에 몸을 숨기고 그녀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내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일까? 오직 청각에만 의존해 상대의 행동을 감지하는 내 감각에 여자가 머뭇거리며 걷는 것이 느껴진다. 갈대밭과 만나는 삼거리 앞에서 잠시 주저하던 그녀. 나는 갈대 사이로 눈을 드러내고 그녀의 움직임을 살폈다.
여자는 내가 오른쪽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뒤에서 보고 있었는지 갈대밭 쪽으로 얼굴을 내밀고 나를 찾는다. 내가 보이지 않자 한걸음 더 나와 고개를 쭉 빼고 갈대숲을 바라본다. 나는 갈대밭에 숨어 온 정신을 청각에 집중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든 바로 그 순간, 나는 갈대밭에서 튀어 나갔다.
‘꺄아아아악!!’
갑자기 옆에서 나타난 날 보며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는 여자. 하지만 나는 안다. 이 길에서 가장 가까운 민가는 약 7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정도 비명으로는 그 집까지 소리가 닿지 않는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나는 미리 약품을 묻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 뒤에서 목을 결박한다.
사력을 다해 발버둥치는 여성의 몸짓이 마치 죽기 직전, 삶의 미련이 남은 물고기의 그것과 같다. 꼬리를 버둥거리며 어떡하든 더 살아보려는 물고기. 하지만 나는 안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면 삶의 발버둥은 쓸모 없음을. 차라리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쪽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쉽다. 나 역시 그러한 순간이 오면 태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여자는 아닌가 보다.
‘읍! 읍!’
여자는 손수건 위에 있는 내 왼손을 붙잡았다. 힘으로 안되니 손톱으로 내 손등을 긁었다. 피가 튀었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여기서 손수건을 놓았다가 여자가 도망이라도 치면 그토록 기다렸던 내 기쁨의 순간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여자는 양손을 이용해 내 손등을 마구 할퀴기 시작했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 들고, 피가 나는 느낌이 든다. 손등이 얼얼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괜찮다. 나는 이 고통이 금방 끝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여자의 몸에서 힘이 점점 빠진다. 손수건에 묻힌 약물이 이제야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여자는 끝까지 주먹을 쥐고 내 손을 내리쳤지만 남자 힘을 이겨낼 수 없는지 곧 축 늘어져 버렸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처음이었나, 두 번째였나? 완전히 기절한 줄 알고 놓아 주었더니 바닥에 쓰러져 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도망을 간 여자가 있었다.
나는 쫓아가 바위로 그녀의 머리를 때리고 나서야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내 표본 중 하나는 머리에 상처가 나 있다. 단백질이 투명화 되고 나니 흠이 더 잘 보였다.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로 그녀의 입을 막은 손수건을 떼지 않고 그대로 십분 정도 누워 있었다.
완전히 힘이 빠진 여자. 가슴이 들썩이는 것으로 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했다. 아직 죽으면 안 되니까. 나는 그녀가 기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조용한 시골의 논두렁길. 한바탕 난리를 쳐서 인지 풀벌레들도 숨을 죽인 조용한 벌판에 서 있는 나는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는다.
‘킥··· 킥킥···’
나는 갈대숲에서 미리 준비한 리어카를 꺼냈다. 위에 천막 지붕을 덮고, 리어카 끝에 농기구들 끝을 빼 놓았다. 누군가 날 보았다고 해도 삽이나 낫 따위를 싣고 지나는 사람으로 볼 것이다. 리어카에 여자를 싣고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가 내 자전거를 찾아 리어카 앞에 묶었다.
리어카를 천막으로 덮고 자전거에 올라탄 나는 끓어오르는 희열에 절로 엉덩이를 들고 페달을 밟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메아리를 울리며 작게 노래를 부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도경아, 뭐 하는 거냐?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나는 장진수의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순간 머리를 울리는 어지러움에 앉아 있음에도 비틀거린 나. 관자놀이를 꽉 누르고 주변을 본다. 나는 여전히 취조실에 있고 내 앞에는 장진수가 앉아 있다. 그는 나를 살피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아무 감정도 없다,
-왜 갑자기 아무 말도 안 하고 한참 멍 때리고 있는 거야? 작전치곤 너무 오래 끌었다고.
이정호 반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지, 지금 난 취조 중이었지. 갑자기 기억을 읽게 되어 멍하게 있었구나. 나는 어지러움을 참으며 장진수를 노려보았다.
‘피해자가 부모와 강상원씨만이 아니다.’
범죄 냉각기가 13년이란 부분에서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범죄자 중에 꽤 많은 이가 종교, 연인이나 아내와의 행복한 한 때를 보내며 꽤 긴 냉각기를 거치기도 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달력···’
장진수는 달력에 엑스 표기를 하며 열 두 달을 기다렸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1년에 한번 자신만의 파티를 한 거다.’
무섭도록 치밀한 악마다. 이 자식은 처절하게 솟구쳤을 살인 욕구를 일년이나 참아가며 철저히 증거를 남기지 않는 살인을 한 것이다.
‘13년··· 부모와 강상원을 제외해도 최소 열 한 명의 희생자가 더 있을 수 있다.’
그렇게 확신해도 될까? 아니다. 강혁 아저씨가 늘 말했다. 인간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고. 언제든 왜곡되고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의 기억이라고. 물론 그건 탐문 수사 때 참고인을 백 퍼센트 믿지 말라는 의미로 가르쳐준 것이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확실해질 때까지 상대를 엮어야 한다. 나는 장진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미안하다, 요즘 내가 피곤해서. 마지막 질문이 뭐였지?”
“···············..”
장진수는 갑자기 사과를 해오는 날 멀뚱히 바라보다 말했다.
“질문에 대해 이미 답변하셨습니다.”
아, 젠장. 그래 존속살인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은연 중에 부모의 시신을 발견했음을 알려줬었지. 다른 이들의 입장에선 잠시간의 시간이었겠지만 나는 장진수가 살인하던 현장을 읽느라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져 잊고 있었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내가 읽은 기억이 정말이라는 확신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그래, 달력이 있었지! 나는 순간적으로 거울을 보았다. 안쪽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저 거울 뒤에 모니터실이 있다. 이정호 반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취조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지러움 때문에 잠시 비틀거린 나는 장진수를 힐끔 보며 말했다.
“좀 쉬다 하지.”
“·····················.”
장진수는 별 상관없는지 여전히 텅 빈 눈으로 내가 일어나 비어 있는 의자만 물끄러미 보고 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똑바로 걸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등 뒤로 문이 닫히자 마자 양 무릎을 잡고 허리를 숙였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다. 꼭 멀미를 하는 기분이다.
“헉, 헉··· 끄윽.”
그때 취조실 옆방 문이 열리며 이정호 반장과 관우가 뛰어나온다. 관우가 제일 먼저 달려와 내 등을 만지며 물었다.
“형님! 어디 안 좋아요? 갑자기 왜 그래요?”
“아아, 괜찮다.”
나는 손을 들어 보이며 괜찮다 말했지만 여전히 속이 울렁거린다. 이정호 반장이 내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안 좋으면 말해, 바꿔 줄 테니까.”
“괜찮습니다, 끝까지 제가 합니다.”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이정호 반장은 오히려 웃는다.
“새끼, 강단 있네. 여러모로 강력계에 어울려.”
이 사람, 변태인가? 이상한 곳에서 원치 않는 인정을 받아 버렸다. 나는 겨우 허리를 곧추 세운 뒤 물었다.
“반장님.”
“왜?”
“장진수 검거 후에 집 수색했습니까?”
“별 거 안 나왔어. 증거물은 다른 곳에 있는 모양이다.”
“예를 들면 아지트 같은 겁니까?”
“그런 것일 확률이 높지.”
장진수에게 아지트가 따로 있다. 처음 시도한 부모살인사건 때는 경험이 없어 옮기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이미 표본 제작 후에는 무거운 용액이 들어 있는 원통에 담겨 있으니 혼자 옮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살인부터 기억 속에 있던 리어카를 가지고 아지트로 사람을 옮긴 후 거기서 살해했다면? 충분히 아지트가 따로 있다는 가설에 신빙성이 있다.
그럼 강상원은 왜 집에 뒀을까?
순간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을 때 김연주가 수집해온 강상원의 프로파일이 떠오른다.
'슬하에 딸이 있고, 아내와는 몇 년 전에 사별했습니다. 딸은 결혼을 해 현재 제주도에 거주 중이며 아들 둘이 있습니다.'
'평소 무뚝뚝한 성격이라 자주 연락하는 걸 싫어했다고 합니다. 볼일이 있을 때만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하는데 한달에 한번도 할까 말까 였다고 합니다.'
'독불장군 같은 성격이라 이웃과도 별로 교류가 없었고, 군 출신 전역자들과 일년에 한번쯤 만나서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입술이 뒤틀리고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게 된다. 장진수는 강상원이 주변과 교류가 없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범행 대상으로 지목했으며, 아지트로 옮길 필요가 없는 인간임을 알고 그의 집에 시신을 둔 것이다.
“집 수색할 때 혹시 달력 나왔습니까?”
이정호 반장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관우가 끼어 들며 말했다.
“증거물 보관실 다녀올 시간 없으셨잖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형님?”
“나왔어?”
“예, 있었습니다.”
“빨간색 굵은 펜으로 엑스 표기된 거 맞아?”
“··················..”
관우는 정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까지 더듬는다.
“예··· 꿀꺽, 마, 맞는데.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됐다, 달력이 실존한다면 내가 읽은 기억이 참일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나는 호흡을 몇 번 한 다음 이정호 반장을 바라보았다.
“반장님.”
이정호 반장은 내가 달력에 대해 어찌 알고 있는지 무척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저 새끼. 세명만 살해한 게 아닙니다.”
“·····················..”
이정호 반장은 바보가 아니다. 여죄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이미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
이정호 반장은 취조를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적어도 그가 보고 있던 나와 장진수의 대화 속에서는 여죄에 대한 힌트가 전혀 없었기에 묻는 것이다. 뭐라고 해야 될까?
이정호 반장이 날 똑바로 보며 다시 물었다.
“뭔가 느낌이 오는 거냐?”
느낌. 형사가 설명할 수 없는 뭔가를 느낄 때가 있다는 이야긴 많이 들었다. 실제로 그런 경험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다.
“예, 느낌이 옵니다.”
이정호 반장이 실소를 지으며 취조실을 고갯짓한다.
“보여준 게 있으니 한번 더 믿어보마. 물 한잔 마시고 다시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