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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38화 (38/328)

제 38 화. 박제(剝製) (18)

관우가 떠다 준 물을 한잔 마시고 여러 번 호흡을 한 뒤 다시 취조실 문을 열었다. 처음과 같은 자세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장진수가 보인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힐끔 마이크 스위치를 보았다. 테이블 아래에 있는 스위치. 저걸 끄면 모니터실에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상이 꺼지진 않는다.

나는 장진수를 바라보며 스위치에 손을 올렸다.

“장진수.”

장진수가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나는 빠르게 스위치를 내린 후 말했다.

“의풍리 버스정류장.”

나는 빠르게 스위치를 다시 켰다. 끄고 켤 때 따로 소음이 없기 때문에 짧게 끊어서 끄면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모니터실의 상황과 달리 눈 앞의 장진수의 눈은 커져 있다. 걸렸다, 이 새끼야. 그 버스정류장 이야기를 듣고 동요하는 순간 네 여죄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확신을 준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는 처음으로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담은 눈빛을 한 장진수를 노려보았다.

“일 년이나 준비한 것을 마침내 실행에 옮길 때 소풍을 가는 기분이었겠지? 얼마 후면 내가 그토록 참아왔던 욕구를 풀 기회가 생기니 하루하루 달력을 지우며 그 날만 손꼽아 기다렸을 거야, 그렇지?”

커져 있는 장진수의 눈동자가 굴러간다. 눈 앞의 이 새끼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지? 하는 의문이 전달된다. 하지만 알려줄 이유는 없다. 나는 그저 상황을 지배하고 네 머리 위에 서 있으면 되는 거다, 이 새끼야.

장진수는 신중한 성격이다. 그는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짐짓 태연한 척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물고기 표본 만들던 놈이니 용액 수급은 쉬웠겠지. 사기 어려운 약물들도 아니니까. 사람 기절 시키는 것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하지만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자신이 사람을 기절 시킨 후 장소를 옮겨 살해한 것까지 알고 있다는 걸 깨달은 장진수의 표정이 더욱 굳어진다. 나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어본다.

“대답해 줄래?”

“························..”

“싫어?”

“뭡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왜 죽여서 표본을 만들지 않고 살려서 데려갔지? 어차피 실어 나를 거면 죽인 후에 가는 쪽이 낫지 않아? 혹시 모를 상황 발생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말이야.”

“··················.”

장진수는 가만히 나를 바라만 보고 있다. 물어라, 물어라 이 새끼야. 이걸 실토하면 넌 또 다른 살인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거야. 밖에서 상황을 보고 있는 팀원들도 곧 눈치챌 거다. 그러니 빨리 말해, 이 새끼야.

장진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처음에는 놀란 눈빛으로, 하지만 점점 심연처럼 가라앉은 눈빛으로 변하다 어느 순간 눈빛에 비웃음이 떠오른다. 그의 눈빛을 지켜보며 감정변화를 관찰하던 나는 의문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비웃고 있다?’

내가 읽은 기억에 오류가 있는 것일까? 그는 분명히 놀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왜 비웃음을 걸고 있는 걸까? 한치 앞을 모를 때는 가만 있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고 입을 꾹 닫아 걸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장진수는 왼쪽 입술을 비틀며 웃는다.

“킥··· 킥킥···”

저 웃음 소리. 칠구의 기억과 장진수의 기억에서 들었던 그 웃음소리다.

“킥킥··· 아직··· 못 찾았구나?”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젠장, 이 새끼가 아지트 위치를 못 찾았다는 걸 눈치챘다. 그때 이어폰에서 이정호 반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게 무슨 소리야, 도경아? 아직 못 찾다니. 아지트 말하는 거냐?

나는 거울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은 취조에 집중할 때다.

-아지트에 또 다른 시신이 있다는 거냐? 맞으면 왼손으로 귀 만져.

나는 이정호 반장의 지시대로 왼쪽 귀를 만졌다. 그러자 이어폰은 조용해졌다. 아마 밖은 꽤나 시끄러워졌을 것이다. 나는 장진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찾는 건 시간 문제다.”

장진수는 비틀린 웃음을 걸고 말했다.

“킥킥.. 과연?”

뼛속부터 싸이코패스구나. 이 미친놈을 설득하는 건 포기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떡하든 아지트 위치를 알아내야 한다. 억울하게 죽은 최소 열 한 명의 시신이라도 찾아내 이 자식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 세상에 알리고 죗값을 받게 해야 한다.

장진수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존속살인, 살인과 시신유기 및 훼손. 다 합치면 몇 년이나 받을까요?”

모르지, 새끼야. 내가 판사냐? 사람 한 명 죽이면 최대 15년이다. 둘 이상을 죽였다고 15년씩 더해지는 건 아니다. 이렇게 악독한 범죄의 경우 무기징역을 받게 될 확률도 높다. 장진수가 팔을 돌리며 말했다.

“내가 어릴 때 말입니다. 아버지한테 꽤 많이 맞고 자랐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알죠. 아버지한테 맞아 팔이 부러진 적도 있었거든요. 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엄마한테 발로 차여 갈비뼈가 부러진 적이 있었죠.”

이 새끼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나는 장진수가 하는 말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굴리다 어느 순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존속살인 혐의를 아동학대로 인한 살인으로 감형 받을 생각인가?”

“킥··· 킥킥..”

대한민국 법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도 같다. 존속살인은 무거운 형을 선고받지만 지속적인 아동학대에 노출되었다는 점이 밝혀지면 어느정도 감형해 준다. 나는 도저히 사람의 의식흐름으로 보이지 않는 장진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감형 당해서 뭐? 무기 살 거 30년 사는 거다. 너 지금 들어가면 환갑 넘어서 나오는 거라고, 이 새끼야.”

장진수가 킥킥거리기 시작한다.

“상관없습니다. 30년 후에 나와서 보면 되지.”

30년 후에 나와서 본다? 순간 머리 속으로 감옥 안에서 또 달력에 엑스 표기를 하고 있을 장진수의 모습이 떠오르자 토악질이 나올 것 같다. 이자식은 지금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선고받아 감옥에서 죽는 것만 아니라면 또 사회에 나왔을 때 자신이 만들어 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생각을 읽고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사회가 만든 미친 악마. 그들의 의식흐름은 정상인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나는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공포를 느꼈다. 내 눈 앞에 악마가 앉아 있기 때문이다.

-정신차려, 현도경.

이어폰에서 이정호 반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쯤 했으면 모니터실에서도 확실히 뭔가 더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란 걸 직감하고 주의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장진수와 마주하고 있는 나는 할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필사적으로 공포를 밀어내며 머리를 굴렸다. 장진수는 확실한 싸이코패스다. 그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감정이 없고,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며 죄책감이 없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총동원해 그들의 특징 중 내가 써먹을 만한 것을 찾아냈다. 회오리처럼 머리 안을 돌던 지식 중 단 하나의 단어. 그것이 날 살렸다.

100% 싸이코패스가 확실한 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범죄심리학 시간에 배운 것이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에둘러 표현해 헷갈리게 할 수는 있어도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한 행동에 당당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은 면피를 하기 위해 거짓을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한점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이 없다. 그러므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배웠다.

머리를 굴려 순식간에 계산을 해본다.

장진수는 어쩌면 열 한 명 이상을 죽이고 시신을 훼손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 치밀한 범인이다. 아지트를 발견했다고 해도 그의 범행임을 밝혀 내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장진수의 자백에 달렸다.

나는 정리된 상황과 그의 특징이라는 두 가지를 떠올리며 작전을 짰다. 뭐가 웃기는 것인지 아직도 킥킥거리는 장진수를 노려보던 나는 눈에 힘을 풀고 양손을 들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아직 못 찾았다.”

“킥킥···”

“알잖아? 시골 경찰들이 어떤지. 너희 부모님 시신을 발견하고 지원 불렀더니 지하실 계단에서 내려오다 시신을 보고 놀라 미끄러져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진 경찰들도 있었다니까?”

“흐흐, 흐흐흐흐.”

경찰이 바보라고 생각하는 장진수. 그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 여러 범죄를 저질렀지만 한번도 꼬리를 잡히지 않았으니까. 아니지, 아예 범죄 사실 자체가 은닉되었다는 쪽이 옳다. 나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보기에 말이다.”

장진수가 날 바라본다.

“난 어때?”

“·····················.”

“난 어때 보이냐고. 네가 봤던 무능한 경찰들이랑 같아 보여?”

장진수는 웃음을 멈추고 날 빤히 바라본다. 무슨 뜻이 내포된 질문인지 파악하는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괜찮아, 편하게 말해. 가끔은 남이 보는 내가 진짜 나일 수도 있으니까 묻는 거야.”

“··················.”

“나 폭력 경찰 아니다. 같아 보인다고 해도 널 때리거나 하진 않아. 카메라 보이지? 다 녹화되고 있어. 나 은퇴하고 연금 받아야 된다. 고아라서 날 돌봐 줄 부모가 없거든.”

“··················..”

“나 보육원에서 컸다. 그래서 열등감도 좀 있지. 난 못 가진 걸 가진 녀석들 보면 부럽고 화도 나. 좀 삐뚤어진 구석도 있다. 그래서 더 궁금해. 난 좋은 경찰이 되고 싶은데 내가 지금 바른 길로 가고 있나 해서 말이야.”

장진수는 날 빤히 바라본다.

“괜찮아, 편하게 말해 봐.”

장진수는 한동안 날 살피다 수갑 찬 손으로 깍지를 낀다. 그리고 한참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좀 달라 보입니다.”

“호? 어째서?”

장진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걸 발견했으니까. 적어도 그들과 같지는 않겠지요.”

그들과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네놈보단 아래라는 거냐, 이 새끼야? 욕이 나올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나는 괜히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보이는 구나. 기분은 좋네.”

장진수가 이제 됐냐는 듯 손 깍지를 풀 때 내가 한 마디를 던진다.

“그럼 네가 인정하는 나와 내기 하나 할래?”

장진수는 멈칫하다 다시 손 깍지를 낀다. 꽤 흥미롭다는 표정이 된다.

“내기?”

“그래, 내기 좋아하냐?”

“별로 안 해봤는데. 도박은 별로 안 좋아해서.”

“후후, 도박까진 아니고. 돈 거는 것도 아닌데 뭘.”

장진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결국 입을 연다.

“들어나 봅시다.”

다 왔다, 이 새끼야. 이제 바늘을 네 아가리에 꿰뚫기만 하면 되는 거다, 입 벌려. 나는 거울을 힐끔 본 뒤 자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방금 네가 네 입으로 말했듯이 나는 네가 보아 왔던 경찰들과 다르다.”

“그래서요?”

나는 천천히 일어나 허리를 숙이고 장진수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이 부담스럽게 다가오면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반응이지만 장진수는 그저 빤히 다가오는 내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다.

“내가 네 아지트를 찾아낼 거야.”

장진수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반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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