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화. 박제(剝製) (19)
잠시 표정변화가 있었지만 그는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게 과연 있을까요?”
나는 씩 웃으며 답했다.
“있어, 난 알아.”
확신에 찬 답. 장진수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진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입니까?”
나는 녀석의 이마를 검지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방금 말했잖아, 나랑 내기하자고.”
장진수는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무슨 내기이냐고 물었습니다만.”
나는 씩 웃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내가 아지트를 찾으면 너는 범행 일체에 대해 자백하기로 하는 거 어때?”
“·····················”
나는 장진수를 관찰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라는 태도로 딴청을 피웠다.
“뭐 싫으면 말고. 어차피 아지트 찾으면 끝나.”
장진수는 말없이 계산을 하는 표정이다. 자신이 함정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계산 중일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포인트가 더 필요하다. 나는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뭐, 그걸 발견했다고 네 죄라는 게 밝혀지는 건 아니지. 하지만 그 작품들은 다 사라지고, 그건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남긴 시신으로 발표되겠지.”
그 순간 장진수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다. 물었다, 이 새끼.
싸이코패스들은 자신이 남긴 범죄현장을 예술작품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밝혀졌을 때 자신의 이름표가 붙어 있는 현장으로 남겨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못 견디게 힘든 건 자신이 한 짓이 다른 이가 한 짓이 되었을 때이다.
마치 화가가 자신이 남긴 그림이 다른 이가 그린 그림으로 남겨지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과 같다. 장진수는 눈에 띄게 굳은 표정으로 날 노려본다.
자, 거의 다 왔다. 물어 이 새끼야. 내 날카로운 바늘로 네놈 주둥이를 걸레로 만들어주마. 장진수는 한참이나 날 노려보았다. 이 내기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눈치가 아니다. 그의 눈빛 속에서 강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는 지금 자신이 남긴 작품에 대한 모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내민다.
“어때? 할 건가?”
“···············..”
“싫으면 말아. 나야 뭐, 살인범 한 명 잡는 거보다 두 명이 되는 쪽이 진급에도 좋으니.”
없는 살인범이 새로 나올 리는 없지만 지금은 낚시질 중이니 넘어가자. 장진수는 가만히 나를 노려보다 말했다.
“조건이 있습니다.”
“뭐?”
“당신이 그걸 찾아낸다면.”
물었다. 이 진술은 녹화되고 있다. 이놈이 방금 스스로 아지트의 존재를 자백한 거다. 만약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영상은 법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낸다면?”
장진수는 끝까지 날 노려보다 몸을 뒤로 눕힌다. 손을 목 뒤로 돌려 깍지를 낀 그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말처럼 모든 걸 말하죠, 대신 당신은 이 모든 일이 나로 인해 일어났다는 증언을 해야 합니다.”
그건 당연하지, 이 새끼야. 네놈 범행기록 하나라도 더 얹어야 영원히 못 나올 형량이 구형될 텐데. 나는 장진수를 가만히 바라보다 주먹을 내밀었다.
“딜.”
장진수는 내 주먹을 노려보다 천천히 주먹을 부딪힌다.
“행운을 빌죠.”
그의 마지막 말에 나는 구역질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응당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사력을 다해 숨겨야 할 범죄자가 오히려 자신을 쫓는 형사의 행운을 빈다. 그것은 현재 그의 내면이 자신이 한 예술행위가 세상에 오롯이 자신이 한 것으로 알려지길 바라는 방향으로 우회했다는 뜻이다. 사람을 죽이고, 그 시신으로 그런 짓을 해놓고도 그는 지금 올바른 저작권료를 받아 챙기고 싶은 창작가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고맙군, 며칠 뒤에 보자.”
취조실 문을 열고 나오자, 잔뜩 인상을 쓴 팀원들이 밖에 대기하고 있다. 최영현이 큰 덩치로 팀원들을 밀어내고 나와 내 앞에 섰다.
“진짜 아지트가 있긴 있는 거요?”
몰라서 묻냐, 이 새끼야. 없으면 저 안에 놈이 왜 그런 내기를 했겠어? 믿기 싫으면 빠져, 돼지 새끼야. 김연주가 손톱을 물어 뜯으며 끼어든다.
“확실히 뭔가 있긴 있어요, 안 그러면 저놈이 저 따위 소리를 주절거릴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 당신은 좀 똑똑하군. 이정호 반장이 관우의 오금을 툭 차며 말했다.
“뭐해, 인마?”
관우가 앞으로 쏠리는 체중을 버티며 이정호 반장을 돌아본다.
“예?”
이정호 반장이 나와 관우를 번갈아 보다 그의 뒤통수를 슬쩍 친다.
“장진수를 비롯해 부모와 일가 친척이 가진 부동산 목록 싹 다 가져와. 뭘 멀거니 보고 서 있어? 당장 움직여!”
“아, 예!”
관우가 사무실로 뛰어간다. 최영현은 여전히 못 미더운 듯한 눈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만만치 않다. 아무리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아도 현재 상황은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굽어 지기는 하는 건지 의심이 들 만큼 굵은 팔로 팔짱을 낀 그가 혀로 앞니를 핥으며 말했다.
“일단 저는 장진수의 집으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옆집에서 담을 넘어 들어갔다면 집 내부에 증거물이 보관된 밀실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정호 반장은 일리가 있다는 듯 눈짓한다.
“의경 일개 소대 지원해 줄 테니까 같이 가서 수색해. 2층만 보지 말고, 집 주인한테 요청해서 설계도면 펴 놓고 싹 뒤져.”
“예, 반장님.”
최영현이 자리를 뜨자, 이정호 반장이 김연주를 본다.
“그리고 연주.”
이정호 반장의 부름에 김연주가 나선다.
“네, 반장님.”
“넌 도경이 지시 따라.”
“··················”
김연주가 놀란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계급 차가 있으니 그녀가 내 지시를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사건 이전까지 아직 신참 신고식이 끝나지 않아 철저히 무시당하던 나에 대한 대접이 갑자기 바뀌니 적응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정호 반장이 완전히 날 인정했다. 김연주가 말을 하지 못하자, 그는 김연주의 정강이를 발로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대답 안 해?”
아프진 않았는지 김연주가 정신을 차리며 외친다.
“알겠습니다, 반장님!”
이정호 반장이 날 바라본다. 새삼스럽다는 눈빛으로 날 위아래로 보던 그가 까칠한 수염이 자란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대기하다 관우 쪽에서 부동산 목록 뽑으면 움직일 거냐?”
아무리 작다지만 고작 네 명의 형사가 뒤지기에 이 대한민국은 너무나 넓다. 당연히 타겟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이정호 반장. 하지만 그는 모른다. 내가 장진수의 기억을 읽었다는 것을.
장진수는 의풍리 버스정류장에서 리어카에 연결한 자전거로 여성을 옮겼다.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곳에 한계는 없지만 여성의 몸무게와 리어카의 무게까지 80kg은 되는 짐을 끌고 자전거를 탔다.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아마 의풍리 버스정류장에서 반경 3km 안에 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바로 단양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이정호 반장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에 올라온 게 일년 전이라니 나머지 범행은 단양에서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 단양경찰서에 연락해 둘 테니 가는 길에 지난 13년 간 실종자 명단 받아가.”
역시 머리 회전이 빠른 반장님이다.
“반드시 찾아와.”
이정호 반장이 내 어깨를 탁 치며 사무실로 돌아간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연주가 다시 날 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사건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인정 받으셨네요?”
예전에 김연주와 관우의 신고식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떠오른다. 유치장에 갇힌 용의자들 밥을 챙겨주고, 쓰레기나 치우던 관우. 팩스와 프린터 뽑는 잡일만 몇 개월이나 했던 김연주. 그에 비해 나는 첫 사건부터 반장의 인정을 받아냈다. 그녀는 부러움과 시샘이 섞인 표정을 지었지만 곧 살짝 머리를 털며 정신을 차린다.
“가시죠, 경위님.”
**
김연주와 함께 차에 올라 단양으로 내려가는 길. 차 내부에 있는 시계가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다. 꽤 피곤할 만도 한데 김연주는 사건수첩을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고 있다. 뭔가를 중얼거리기도 하고, 수첩에 줄을 긋기도 하는 그녀. 잘하려고 하는 열정이 전해지는 사람이다.
나는 운전을 하며 생각에 잠겼다.
‘장진수의 기억과 그의 말 속에 힌트가 있을 거다.’
맨 처음 수사선상에 놓아야 하는 건 기억 속 의풍리 버스정류장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된다. 아지트는 꼭 건물이라 단정해선 안 된다. 그가 사라지던 길은 갈대숲이다. 갈대 사이에 어떤 공간이 있을 수도 있고, 자연적인, 혹은 인위적인 지하공간으로 가는 출입구가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몇 가지 추리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첫째, 갈대밭 너머 산에 있는 산장.
둘째, 갈대밭 어디인가에 있을 수 있는 지하공간.
셋째, 주변의 동굴.
첫째와 셋째라면 오히려 쉬울 수 있다. 단양에 도착해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단양토지공사에 가면 산장이나 동굴의 위치를 모두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둘째라면? 지하공간이 허가 받지 않고 개인이 지은 공간이라면 골치 아프게 된다. 운전을 하는 내내 머리 속을 회오리치는 고민들. 생각에 빠진 나는 고속도로에서 IC를 빠져나와 단양시내로 접어들어 처음 만난 신호등에서 멈춤 신호를 보고 나서야 주변을 보았다.
아름다운 단양시내. 이곳에서 그토록 추악한 일이 일어났다. 악마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그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온다. 괜히 자신을 보호해줄 어른들이 부족한 보육원에 있을 동생들이 걱정된다. 답답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다 우연히 조수석에 앉은 김연주를 보자, 그녀가 날 빤히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왜요?”
“뭐가요?”
“왜 그렇게 보시냐고요.”
“그냥 신기해서요.”
음? 뭐가 신기하다는 걸까?
나는 신호등을 지켜보며 물었다.
“뭐가 신기합니까?”
김연주가 신호등을 눈짓하며 말했다.
“지금 새벽 네 시 반인데. 전 차 한 대 없는 이 시간에 운전하면서 신호 끝까지 지키는 형사 처음 봤거든요.”
아, 그거. 그게 뭐 이상해? 경찰인데 당연히 법을 잘 지켜야지.
“저 원래 도로교통법 잘 지킵니다. 그게 뭐 신기합니까?”
김연주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제만 해도 없던 차도 생기시고.”
“그냥 하나 장만했습니다.”
김연주가 운전석 앞 속도계 주변을 슬쩍 본 후 웃는다.
“20만 킬로 탄 차를 새로 장만하신 건가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그냥 아는 사람이 줬습니다.”
“와, 차를 주는 사람도 있고. 부럽네요.”
당신이 뭔 상관이야! 그래도 강혁 아저씨가 내 생각해서 주신 차인데. 내 표정이 안 좋아지자 김연주가 손바닥을 들어 보인다.
“비꼬려고 한 말 아닙니다. 그냥 저 제주도 다녀온 사이에 경위님이 너무 바뀐 것 같아서요.”
나는 김연주를 힐끔 보았다. 표정을 보니 정말 비꼬려고 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제가요?”
김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라고 할까.. 갑자기 진짜 형사 냄새가 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까요? 처음엔 좀 멍청해 보였는데.”
젠장, 내가 멍청해 보였구나. 근데 누구나 처음 오는 직장에선 그렇지 않을까? 나만 이상한 거야? 또 얼굴이 붉어지자 김연주가 씩 웃는다.
“아무튼. 지금이 훨씬 낫네요, 경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