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40화 (40/328)

제 40 화. 박제(剝製) (20)

새벽 다섯 시, 단양경찰서.

강력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문지를 덮고 자던 까까머리 형사가 일어나며 주변 형사들이 자던 의자를 발로 툭 차서 깨운다. 다들 밤을 꼬박 새고 막 잠들었었는지 피곤한 기색으로 일어나는 사람들. 그중 아까 현장에서 안면을 텄던 형사들도 보인다.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머리를 긁으며 한쪽에 쌓아 둔 서류를 눈짓한다.

“토지공사 측에 긴급으로 요청해 팩스로 받은 자료입니다.”

내 지시가 떨어지기 전에 김연주가 먼저 움직인다. 서류가 놓인 테이블에 앉은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이동 중에 관우가 보내준 부동산 목록을 확인하며 지도에 체크한다.

“부모님 명의였다가 사망선고 후 상속받은 건 논과 밭을 합쳐 3천평 정도입니다. 고구마 밭으로 신고된 쪽에 농기구를 두는 간이 건물이 신고되어 있습니다.”

김연주가 표기하는 곳은 장진수 부모님 댁에서 약 1km 떨어진 곳이다. 김연주는 다시 핸드폰을 확인하다 주소를 찾아 다시 표기했다.

“여기 부모님 명의의 산장이 있었습니다만, 상속을 포기한 곳이 있습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

“상속을 포기해요?”

단양경찰서 형사들이 끼어든다.

“원래 시골이 그렇습니다. 상속세로 책정된 금액보다 건물 값이 작은 경우,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산 속에 있는 건물 한 채니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되면 가장 확률 높은 곳이 그곳이 되겠구나. 하지만 단정할 순 없다.

“또 없습니까?”

김연주가 핸드폰을 확인 후 고개를 저었다.

“이모 명의로 된 부동산이 있습니다만, 거긴 수원입니다.”

수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을 리는 없으니 거긴 패스. 나는 지도를 자세히 살피며 의풍리 버스정류장을 찍었다.

“여기를 기점으로 반경 3km 원을 그려봅시다.”

김연주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원을 그려냈다.

“됐습니다, 경위님.”

나는 허리를 펴고 형사들을 보았다.

“다들 여기 토박이십니까?”

형사들 중 두 명이 손을 든다.

“저희가 여기서 나고 자랐습니다.”

나는 지도를 눈짓하며 말했다.

“저 원 속, 혹은 약간 밖이라도 좋으니 동굴이 있으면 체크하세요.”

“동굴이요?”

“자연적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좋습니다.”

형사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논의하다 말했다.

“고수리, 금곡리, 노동리에 있는 동굴은 모두 관광지입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국가가 관리하는 곳을 제외하세요.”

형사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도를 바라보다 한 곳을 찍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약 2.2km 떨어진 곳이다.

“여길 동굴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깊이 10미터 정도 움푹 파인 곳이 있습니다.”

“한 군데뿐입니까?”

“저희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외부에서 안이 보입니까?”

“예, 그냥 길가에 있습니다.”

저긴 아니다. 시신을 숨기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의 옆으로 붙어 지도를 가리켰다.

“여기 갈대밭 있죠?”

지도에 표기될 리 없는 갈대밭 위치를 정확히 아는 날 놀란 눈으로 보는 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가 보셨습니까?”

어, 가봤어. 남의 기억 속이었지만.

“갈대밭 안 쪽에 들어가신 적 있습니까?”

형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저기 들어가면 길 잃어버리기 십상입니다. 사람 키보다 큰 갈대들이 반경 2km 이상 펼쳐진 곳에다 바닥이 뻘처럼 진흙 투성이거든요.”

진흙? 좋은 정보다. 갈대밭 바닥이 진흙이라면 거기에 땅을 파고 구조물을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일 골치 아픈 갈대밭이 해결되었다.

“좋습니다, 일단 조를 좀 나누겠습니다. 거기 두 분은 상속을 포기했다던 산장을 수색합니다. 설계도면 받아 두셨습니까?”

형사 중 한 명이 얼른 구석에서 돌돌 말려진 설계도면을 꺼내 드는 것이 보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지하실 있습니까?”

“예, 도면 상엔 있습니다.”

“지하실 잘 살펴보시고 설계도면과 다른 구조가 있으면 반드시 확인해 주세요. 증거물을 숨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형사 둘이 먼저 움직인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형사는 형사인가 보다. 나는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형사들에게 말했다.

“거기 두 분은 고구마 밭쪽에 있다는 간이 건물을 확인해 주세요. 밭도 확인해야 됩니다.”

지시를 받은 형사 중 한 명이 손을 든다.

“저기, 시신을 밭에 매장했을 수도 있는데. 저희 둘로 될까요? 차라리 날이 밝으면 전경 중대 요청해서 수색하는 쪽이 빠르지 않을까 합니다.”

단양경찰서 형사들은 장진수가 어떤 시그니쳐를 가진 살인범인지 모른다. 그러니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했다.

“잘 들어요. 범인은 사람을 죽인 후, 커다란 원통에 넣고 포르말린 등을 채워 단백질을 투명화 한 뒤, 골격염색을 하는 미친놈입니다.”

형사들이 놀라 서로를 바라본다.

“아까··· 현장에서 본 그 시신처럼 말입니까?”

다행이다. 아까 현장을 봤었지. 설명이 쉽겠다.

“맞습니다. 다른 시신들도 그렇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렇게 큰 원통을 땅에 매장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형사들은 내 말을 바로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건물 내부에 있을 확률이 높겠군요.”

“맞습니다, 밭 쪽을 살펴 볼 때는 지하로 내려가는 공간이 있는지 살피세요. 가까운 곳에 산이나 절벽이 있다면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뚫려 있는지도 확인해야 됩니다. 절벽에 구멍을 뚫었을 수도 있으니까.”

뭔 미국 영화도 아니고. 조직적인 범죄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확인해서 나쁠 건 없겠지. 형사들이 고개를 끄덕인 후 즉시 움직인다. 단양경찰서 형사들이 모두 나가고 김연주와 나만 남자, 그녀가 지도를 보다 물었다.

“저흰 어디로 가나요, 경위님?”

고구마 밭과 산장. 그의 명의이거나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지역 두 곳에 모두 형사들을 파견했다. 김연주는 우리는 뭘 하면 되는지 묻는 것이다.

“우린 아까 말한 동굴로 가는 건가요?”

“아뇨, 버스정류장으로 갑니다.”

김연주가 뭔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물었다.

“갑자기 무슨 버스정류장이요?”

취조실에서 내가 기억을 읽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마이크 스위치를 끄고 말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버스정류장의 존재에 대해 모른다.

“일단 갑시다.”

영문 모를 표정을 짓는 김연주. 하지만 그녀에게 나는 상사다.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기에 필요한 지도나 관련 서류들을 챙겨 차에 올라탄 그녀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도대체 여길 왜 왔냐는 듯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핀다.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그녀의 말처럼 이곳엔 정말 아무것도 없다. 길게 이어진 논두렁을 지나 오른쪽에 펼쳐진 갈대밭. 논두렁을 따라 20미터쯤 더 가면 나오는 이차선 도로에 덩그러니 정류장이 있다. 민가도 없는 이런 곳에 왜 버스정류장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내리려면 한참을 걸어야 할 것 같은데.

김연주도 같은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이런 곳에 버스정류장이 있을까요?”

그녀는 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안내 스티커를 사진으로 남긴다.

“음, 정류장이 총··· 서른 개가 넘네요.”

종점에서 종점까지 사이에 있는 정류장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형사로서 당연한 행동을 하는 것이겠지만 장진수의 기억을 읽은 나는 안다. 버스정류장 자체는 아무런 단서도 되지 않는다.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논두렁으로 내려가는 길로 천천히 걸었다. 오른쪽에 높은 갈대밭이 보인다.

버스에서 내린 여성이 걸었던 길. 그리고 그녀를 스쳐 지나가 먼저 길을 꺾었던 삼거리. 나는 삼거리 가운데에 서서 논두렁 길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방범용 카메라가 보인다. 모든 것이 기억 속에서 읽었던 그대로다.

삼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내가 읽었던 살인의 기억을 복기한다.

장진수는 이곳에서 여성을 기절 시키고 리어카에 실은 뒤 버스정류장에 돌아가 자전거를 가지고 온 뒤 그것으로 리어카를 옮겼다. 어디로 갔을까? 기억 속 장진수는 갈대밭 방향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삼거리에 서서 갈대밭을 노려보는 나. 그때 뒤따라온 김연주가 물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경위님?”

“··················.”

한참 생각 중이니 말 시키지 마. 나는 답없이 갈대밭 방향으로 몸을 틀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버스정류장에 CCTV 있었습니까?”

“아뇨, 정류장엔 없고 진행방향 20미터 앞 전봇대에 하나 있었어요.”

미리 계산한 곳이다. 장진수는 그토록 치밀하게 범행을 꾸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 일 년을 준비했으니 치밀할 수 밖에 없겠지. 나와 갈대밭을 걷던 김연주가 물었다.

“그런데 여긴 왜 오신 거예요?”

“··················.”

바닥을 살폈다. 혹시 리어카나 자전거 자국이 없는지. 하지만 그런 게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동안 수도 없이 비가 왔었을 테니까. 게다가 내가 읽은 기억이 몇 년 전의 사건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실종자 명단 왔습니까?”

김연주는 자기 질문엔 답을 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질문만 던지는 날 보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하는 수 없다는 듯 핸드폰을 확인한다.

“여기요.”

김연주가 핸드폰을 넘겨준다. 관우가 보내준 목록을 본 나는 이맛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35명? 이렇게 많습니까?”

김연주가 다시 핸드폰 화면을 보며 말했다.

“실종자 행정구역이 시가 아니라 단양군으로 잡혀 있어서 그래요. 하지만 이런 사건은 꼭 범위를 크게 잡아야 됩니다.”

옳은 말이다. 꼭 단양시에서만 범행대상을 골랐을 리는 없다. 아니, 기억 속의 장진수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그저 혼자 내리는 사람을 범행대상으로 잡은 것이다. 그날, 하필이면 그곳에서 내린 운 없는 누군가가 목표였다는 뜻이다.

“최근 13년간 실종자 35명이라.”

김연주가 한숨을 쉬었다.

“잘못하면 35명 시신이 한번에 발견될 수도 있겠네요. 하, 이건 진짜.”

그건 아냐, 장진수는 일년에 한번씩 살인을 저질렀어. 13년 모두 저질렀는지 알 수 없지만 강상원과 부모를 빼면 최대 11구의 시신이 나올 거야. 나머진 아냐. 하지만 이건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쪽이 낫다. 이걸 어찌 알았는지 설명하는 건 귀찮으니까.

김연주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날 밝으면 실종자 가족들 만나보겠습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네?”

김연주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실종자 가족들에게서 실종자들의 지인이나 평소 원한관계부터 파는 것이 수사의 정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케이스는 다르다. 장진수는 살해 대상자를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 중 고른 것이 아니기에 그들과 접점이 없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실종자 가족을 만나는 건 시간낭비다.

내가 쥔 카드는 의풍리 버스정류장 밖에 없다. 손에 쥔 카드가 너무 적다. 이곳을 기점으로 전경 부대를 지원 받아 3km 반경을 모두 뒤져야 할까? 그러다 찾지 못하면? 나는 장진수와의 내기에서 이길 수 있을까? 혹시 내기에서 져서 그의 비웃음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 더러운 녀석의 면상에 주먹 한방 먹이지는 못할 망정 비웃음을 사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바람에 몸을 뉘이는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 그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가닥을 잡지 못하는 내 마음 속에 강혁 아저씨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아저씨와 함께 했던 첫 사건에서 들었던 한 마디였다.

‘분명히 네 기억 속에 뭔가 있다. 네가 읽은 기억을 떠올려. 작은 단어 하나라도 좋다.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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