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화. 박제(剝製) (21)
장진수는 무슨 말을 했었지?
이 사건은 예전에 읽었던 존속살인 사건과는 다르다. 그때는 며느리와 작은 아들이 범행을 모의하는 기억 덕분에 들은 말이 많았지만 장진수의 기억 속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몇 개 없다.
‘킥킥···.’
‘하나.. 둘··· 셋···’
‘열 하나.. 열 둘···’
말소리를 들은 건 그게 끝이다. 젠장 본 건 잔뜩 있는데 말 속에 장소에 대한 힌트가 없다. 그럼 신문 과정에서는? 마찬가지다. 주로 내가 말을 했고, 장진수가 한 말은 몇 개 없다. 쓸데없는 소리는 지워 버리고,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되는 부분만 짚어보자.
'존속살인?'
'아까 말했던 존속살인이 무슨 말입니까?'
'발견하셨나 보군요.'
'질문에 대해 이미 답변하셨습니다.'
'뭡니까?'
'킥킥··· 아직··· 못 찾았구나?'
'존속살인, 살인과 시신유기 및 훼손. 다 합치면 몇 년이나 받을까요?'
'상관없습니다. 30년 후에 나와서 보면 되지.'
'당신은 좀 달라 보입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걸 발견했으니까. 적어도 그들과 같지는 않겠지요.'
'그런 게 과연 있을까요?'
'조건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걸 찾아낸다면.'
'당신 말처럼 모든 걸 말하죠, 대신 당신은 이 모든 일이 나로 인해 일어났다는 증언을 해야 합니다.'
'행운을 빌죠.'
이 안에 힌트가 있을까? 전혀 없어 보이진 않는다. 그가 했던 말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30년형을 받아도 다시 나와 자신이 만든 흉물스러운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고 했다. 그건 3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건물 내에 시신들이 유기되어 있다는 뜻이다.
갈대밭 옆 바윗돌에 주저앉은 나는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장진수가 관리하고 있는 부동산에 시신을 유기했다면.. 그가 징역을 간 동안 30년이나 관리가 되지 않는 건물이 된다. 그 안에 혹시 관리비나 가스, 수도세를 미납해 건물이 압류당할 수도 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장진수가 그걸 모를 리는 없다. 하지만 그는 전혀 동요 없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건···’
남이 관리하는 건물이다? 그럴 수가 있나? 설마 공범이 존재한다고? 아니면 건물주도 모르는 비밀공간이 있는 걸까? 나는 머리를 쥐어뜯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수색범위가 더 넓어진다. 힌트는 커녕 사건이 더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다.
‘강혁 아저씨. 이번엔 제가 틀렸던 모양입니다.’
내가 읽은 기억 속에 사건에 대한 힌트가 있다. 강혁 아저씨가 늘 강조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기억 속에선 그의 범행기억을 읽는 것엔 성공했지만 시신을 숨긴 장소에 대한 힌트가 없다. 몸을 휘감는 좌절감에 한숨이 푹푹 나오고 있는 그때,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린다.
-산장수색조 입니다! 산장 지하실에서 다량의 약품용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눈이 번쩍 뜨인 나는 급히 무전에 답을 한다.
“시신은! 시신 나왔습니까?”
-아직 수색 중입니다만, 아직 안 나왔습니다.
“확실히 찾아보세요, 전경중대 지원받아서 산장 반경 2km 이상은 모두 수색해야 됩니다.”
-예,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약품용기는 얼마나 나왔습니까?”
-어···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엄청 많습니다. 20리터 생수통 기준으로 보면 적어도 삼천 리터 이상인 것 같습니다.
삼천 리터. 엄청난 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열 한 명을 살해하고 표본을 제작할 양으로 볼 수도 없다. 만약 그의 기억이 모두 사실이라면 지금 발견된 건 범행 증거 중 일부가 발견된 것이다.
“용기는 모두 수거해서 KCSI로 넘겨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시신 나오면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무전이 끊어지자 옆에서 듣고 있던 김연주가 물었다.
“삼천 리터면 엄청난 양이네요. 그걸로 몇이나 표본화 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2g 무게를 가진 민물고기 한 마리를 표본화 하는데 1리터의 용액이 든답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고작 세 명쯤 밖에 안 될 겁니다.”
김연주가 눈살을 찌푸린다.
“셋이라···”
부모님 두 분과 강상원. 지금 발견된 증거로는 세 명의 살인만 증명하게 된다. 나머지를 찾아야 된다. 아니, 오랜 세월이 지나 이미 증거물을 폐기했을 수도 있다. 증거 자체가 없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시신을 찾아야 답이 나온다. 장진수는 취조실에서 추가 살인이 있다는 충분한 심증을 일으킬 발언을 했었다.
나는 얼굴을 감싸 쥐고 한숨을 쉬었다.
“어디야, 도대체 어디 있냐고.”
고민에 고민이 더해져 미칠 노릇이 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김연주는 말없이 갈대를 만지작거린다. 잠시 후 내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를 느끼며 눈을 감고 있었다. 이 시국에 소풍 나온 것도 아니고 저게 뭐하는 짓일까?
이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당신도 형사잖아. 범인 잡느라 고민해도 부족할 시간에 그게 뭣 하는 짓이냐고! 확 한 마디 쏘아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같은 팀원들끼리 싸우고 자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 그녀가 뭘 하든 다시 내 고민 속으로 빠져 들기 직전, 손으로 갈대를 스치며 몇 걸음 걷던 김연주가 말했다.
“여기 좋지 않아요?”
당신이 만지고 있는 갈대 바로 뒤에 장진수가 숨어 있었습니다. 먹이를 노리는 야수의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말입니다. 그걸 알고도 이곳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씹어 버렸다. 김연주는 갈대밭을 걷다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부른다.
“경위님! 여기 보세요!”
응? 뭔가 발견한 건가? 나는 얼른 뛰어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갔다. 허둥지둥하는 얼굴로 그녀 옆에 도착한 내가 득달같이 물었다.
“뭡니까? 뭐 발견했어요?”
김연주가 씩 웃으며 앞을 눈짓한다.
“아뇨, 저기.”
그녀가 눈짓하는 곳. 그곳엔 강이 있었다. 강이 뭐?
“뭐 있습니까? 전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김연주가 실소를 흘리며 내 등을 툭 친다.
“정신 차려요, 경위님. 눈 앞에 이렇게 아름다운 강이 있잖아요.”
“···············..”
지금 이 판국에 고작 강 풍경 보라고 부른 거야? 너 정말 제 정신이냐? 황당한 얼굴을 한 날 물끄러미 보던 김연주가 말했다.
“예전에 제가 존경하던 선배님이 말했어요. 한 가지 고민에 집중하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게 된다고. 스스로 너무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오히려 숨을 고르고 주변을 보라고. 그래야 전체가 보인다고 했어요.”
“·····················.”
족족 맞는 말이긴 하지만 지금 이렇게 팔자 좋은 소리 할 때인가? 반감이 생기긴 했지만 그녀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니 반박하기도 뭐 하다.
“하···”
“멋진 강이죠?”
“그러네요.”
“단양강이래요.”
“그렇군요.”
단양강이고 북한강이고 내가 지금 그게 궁금하겠냐? 나는 대충 맞장구 쳐 주며 다시 장진수와 대화를 떠올렸다. 한숨 돌리고 생각하라는 의미로 날 불렀던 김연주는 내가 다시 흐린 초점으로 고민을 시작하자, 조용히 강가로 가 자갈을 만지작거리다, 조그만 돌을 물에 날려 물 수제비를 만든다.
연인과 놀러 왔다면 사랑하는 이가 그려내는 물 수제비를 보며 더없이 행복했겠지만 지금 내 마음은 조급하다. 그녀의 행동에 눈길이 갔지만 머리는 맹렬히 회전하고 있다. 하지만 회전하는 기억들은 결국 아무런 편린도 떨구지 않고 그대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점점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 나. 여기가 한계인 것일까?
바로 그때, 마치 환청 같은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연주가 부르는 노래였다. 꽤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구나. 그런데 이 노래가 왜 이렇게 익숙하지? 어릴 때부터 들었던 것이니 당연하긴 한데 최근에도 들었던 것 같다. 순간 머리를 관통하는 하나의 기억.
‘장진수가 리어카를 자전거에 묶고 떠나면서 불렀던 노래다!’
그냥 노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건의 힌트라고 생각되지 않아 처음부터 배제했던 기억. 나는 나도 모르게 장진수가 남긴 말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회전을 멈췄던 내 머릿속 기억의 홍수들이 다시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엄마야 누나야···’
만약 그것이 피해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면? 그 다음 가사가 아지트의 주변 풍경과 비슷하다면 어떨까? 완벽히 같은 곳이 있을 리는 없지만 비슷한 곳이 있을 수 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갈대로 둘러싸인 지형. 바람이 불 때면 갈대가 옆으로 쓰러지면서 우수수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무전기를 든 손이 버튼을 누른다.
“현도경 경위입니다! 단양강 주변에 자갈밭이 아닌, 모래밭이 있는 강가가 있습니까?”
강 전체는 몇 십 킬로미터나 된다. 타겟을 최소화 하려면 노래에 있는 장소가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된다. 김연주가 가진 무전기에서도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 물 수제비를 만드느라 쪼그리고 있던 그녀가 일어나며 나를 바라본다.
잠시 후, 자신을 단양 토박이라고 소개했던 형사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전해진다.
-있습니다, 경위님.
있다! 그런 곳이 있다! 나는 급히 무전을 쳤다.
“혹시 거기 뒤에 갈대밭이 있습니까?”
무전이 잠시 끊어진다. 아마 기억을 해내려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무전이 울린다.
-그런 곳이 있긴 합니다만 왜 그러시는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내 눈치가 심상치 않자 김연주가 뛰어온다. 뭘 머뭇거리는지 바로 답을 하지 않는 형사. 나는 다시 한번 고함을 질렀다.
“거기가 어디이냐고 물었습니다!”
-저기, 그게···
도대체 왜 머뭇거리는 거야, 이 자식아! 나는 조바심이 났지만 상대는 엄연히 관할이 다른 경찰서의 형사다. 함부로 할 수는 없다. 눈 앞에 있었으면 당장 멱살이라도 잡고 빨리 말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입에서 답이 나왔다.
-이 동네에서 그런 풍경에 지어진 건물은 하나 뿐입니다.
이 답답한 새끼가! 그래서 어디라는 거야? 잠시 뜸을 들이던 형사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상진 성당입니다.
무전을 들은 내 눈이 커진다. 장진수에 대해 묻기 위해 방문했던 그 성당. 세상 착해 보이던 신부님이 계시던 바로 그 성당의 이름이다.
“서, 성당이라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기억 속에 장진수가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던 방향을 보았다. 손목시계의 나침반 기능을 누른 나는 다시 무전기를 들었다.
“의풍리 버스정류장을 기준으로 성당이 어느 방향에 있습니까?”
다시 조용한 무전. 아무리 형사라도 어딘가를 기점으로 방위를 파악하며 살진 않으니 아마 방향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리라. 초조하게 무전을 기다리던 나의 귀로 긴장되어 보이는 형사의 목소리가 파고든다.
-동쪽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손목시계의 방위.
장진수가 사라진 쪽으로 내밀어진 손목시계의 나침반이 동쪽을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