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45화 (45/328)

제 45 화. 박제(剝製) (25)

삑삑!!!

“찾았습니다!”

“여기! 여깁니다!”

호루라기 소리와 전경들의 외침소리가 조용하던 새벽의 단양에 메아리 친다. 대한민국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와 그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20여명이 체포된 곳. 그곳은 대강면 신구리의 농촌이었다. 김연주가 빠르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곳은 응달이 지는 지형이라 겨울에 눈이 잘 녹지 않으며 들이 비탈지고 터가 좁아 갈천 7리 가운데 입지가 가장 불리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난리가 났지만 구경꾼의 수가 열명 안팎이다.

시신들이 발견된 곳은 농가에서 백 미터 가량 떨어진 산기슭. 장진수는 등산객이 없는 산길의 입구를 터로 삼았다. 진흙 밭인 바닥에 리어카와 자전거 바퀴자국이 수없이 아로새겨져 있다. 많은 피해자가 놈에게 끌려간 참혹한 흔적이다.

이쪽이라 외치며 다급히 흔드는 단양서 형사들의 손짓. 그들의 외침이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리게 보인다. 나와 함께 차에서 내린 김연주가 뛰어가는 뒷모습도, 무전으로 KCSI를 부르는 전경중대장의 모습도 모두 느리게만 보인다.

나는 드디어 장진수가 낸 수수께끼를 풀었다. 멀리서 손짓하는 형사의 머리가 보인다. 머리 아래로 몸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깊숙한 구덩이를 파 그 안에 시신들을 보관한 모양이다. 김연주가 구덩이로 뛰어내려 입구를 본 뒤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게 손을 든다.

“경위님! 여기 맞습니다!”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들이 제 자리를 찾는 것과 동시에 나는 시신들의 모습을 확인도 하지 않고 물었다.

“열 한구··· 맞습니까?”

김연주를 비롯한 단양서 형사들의 눈이 커진다. 금세 답을 하지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 중 김연주가 더듬거리며 답을 한다.

“마,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됐다, 11구라면 또 다른 시신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이겼다. 그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오금에 힘이 풀린다. 휘청거린 나는 겨우 무릎을 붙잡고 허리를 숙였다.

“하아, 하아..”

잔뜩 긴장되어 있던 온몸에 힘이 풀려나가는 느낌이 든다. 내 말에 놀랐던 김연주가 달려와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아요?”

“··················.”

“경위님?”

“괜찮습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떼어낸 후 허리를 펴고 크게 숨을 들이 마셨다. 밀폐용기에 보관 중인 시신들이라 그런지 가까이 다가와도 포르말린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저 맑은 농촌의 공기가 상쾌하게 폐부를 채워주는 아이러니한 상황.

나는 천천히 걸어 구덩이로 다가갔다.

전경들 중 몇이 구덩이 안에 들어갔다가 밖으로 뛰어나오며 구토를 하는 것이 보인다. 보통사람이 이런 장면을 보는 건 매우 드문 경험일 테니 그럴 수도 있다. 물론 중대장이 째려보는 걸 보아 자대에 돌아가서 얼차려는 좀 받겠지만.

구덩이 앞에 다다르자, 드디어 입구가 보인다. 마치 고대의 무덤처럼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고 네모난 입구.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지옥의 구덩이는 전방에서 보이지 않도록 약 2미터 정도 구덩이를 판 아래에 있었다. 단양서 형사들이 플래시를 켜 안을 비춰준다.

이미 동이 튼 시간이라 사방이 밝지만 동굴은 장진수의 마음 속처럼 시커먼 어둠에 휩싸여 있다. 형사들이 비춰주는 플래시 불빛 속에 열 한 개의 원통들이 보인다. 그 안에 용액이 든 통속에서 투명화 되어 둥둥 떠 있는 시신들이 보인다.

각자 누군가의 부모, 자식, 아내, 남편이었을 사람들. 그들은 아무 죄도 없이 단순히 운이 나빴다는 이유로 죽어서도 이곳에 갇혀 있다. 형사들의 플래시 불빛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어느 순간 눈썹을 꿈틀거렸다. 가까운 형사의 플래시를 빼앗아 시신들을 하나씩 확인한 나는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개새끼.. 전부 여자다.”

자신의 행위가 예수님의 부활과 같다는 믿음을 가진 미친놈. 자신의 행위를 사회적 통념과 법에 맞지 않다 주장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어리석은 제자 취급하던 장진수는 결국 자신이 쉽게 통제할 수 있고, 힘 없는 여성만을 범죄 대상으로 삼은 파렴치한이었다.

나는 플래시를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남의 것을 빼앗아 보고 있는 주제에 그런 짓까지 할 수 없었다. 결국 얌전히 플래시를 돌려준 나는 화를 삭이기 위해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 이제부터는 KCSI가 할 일이다. 김연주가 구석에서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이 소식을 팀에 알리는 중일 것이다.

“반장님! 찾아냈습니다! 총 11구입니다. 네, 네. 현경위님 말씀이 전부 맞았어요!”

내 말이 모두 맞았다. 나는 장진수와의 내기에서 이겼다. 나는 응당 기뻐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은연 중에 내 말이 틀리길 바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지나친 상상 속에서 가상의 피해자를 만들어 낸 것이라 믿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이 모든 것이 내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많은 피해자가 처음부터 없었다고 믿고 싶었나 보다.

**

종로경찰서, 오후 두 시.

경찰서에 도착하자 엄청난 수의 기자들이 몰려 있다. 김연주가 안전벨트를 해제하며 말했다.

“기자들 앞에서 절대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모든 건 공식브리핑에서 서장님이 말씀하실 거예요. 질문을 들어도 그냥 모른 척 서로 들어가세요, 아셨죠?”

“예.”

김연주는 기자들과 멀찍한 곳에 주차를 한 차량에서 내리려고 하다 나를 힐끔 본다.

“근데 경위님.”

“예.”

“기분이 안 좋아 보이세요.”

“··················..”

기분이 나쁘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참혹한 현실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런 악마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싫다. 김연주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우리가 할 일은 범죄자들의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일이예요. 경위님은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잘 해내신 겁니다.”

“···············..”

“세상에는 많은 악이 있어요. 그 자체를 부정해선 안돼요. 우리는 그 악이 실체화되었을 때 그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만 해요. 그들이 존재한다는 걸 슬퍼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니까.”

마치 내 머리를 들여다보고 말하는 듯한 김연주. 그녀는 내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다. 물론 그 말 한마디로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런 원론적 부분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던진다면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험난할 것이란 점은 알겠다.

김연주가 날 바라보다 차에서 내린다. 나는 그런 그녀를 불렀다.

“김연주 경장님.”

차문을 열고 멈춰 돌아선 그녀를 바라본 내가 입을 뗐다.

“고맙습니다.”

“··················.”

김연주는 말없이 시원한 미소를 보여준 후 차에서 내려 뛰어 들어간다. 여기서 근무한 경력이 꽤 되어 그런지 많은 기자들이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고 달라붙었지만 죄송하다는 말만 하며 서로 들어가는 김연주. 그녀는 이미 좋은 경찰이다. 앞으로 더 좋은 경찰이 될 것이다.

김연주가 먼저 들어가고 뒤이어 차에서 내린 나. 하지만 김연주의 당부와 달리 아무도 날 붙잡지 않았다. 서로 들어가는 동안 날 힐끔거리는 기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경찰서 출입기자들에게 아직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 그런지 사건 관계자라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편하게 강력계로 돌아와 사무실로 들어가자, 우리 팀 뿐 아니라 다른 팀원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날 바라보고 있다. 처음 강력계에 와 맨 처음 3반 위치를 물었던 젊은 형사가 맨 앞에 보인다.

짝, 짝, 짝, 짝짝짝짝짝!!!!

누군가 먼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모든 형사들이 박수를 친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형사들의 손뼉이 부딪힐 때마다 사무실이 진동을 한다. 특별히 축하의 말은 없었지만 그들이 보내는 무언의 박수들이 잠시 바닥까지 닿았던 내 어두운 마음을 사르르 녹인다.

계면쩍은 마음에 허리를 굽실거리며 3반으로 돌아가자, 이정호 반장이 활짝 웃으며 내 어깨를 강하게 내리친다.

“새끼! 잘했다! 으하하!”

이정호 반장이 어깨동무를 하며 3반 식구들에게 말했다.

“3반에 아주 복덩이가 들어왔구먼! 다들 인정하지?”

맨 끝자리에 있던 관우가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며 외친다.

“당연합니다! 백 번 인정합니다!”

김연주는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 말없이 엄지를 치켜 든다. 최영현도 이번 만은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날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맞춰온다. 재수 없지만 저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간다.

이정호 반장이 내 등을 툭 때린 후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다섯 시에 서장님 공식 브리핑이 있을 거다. 그 전에 진술 따. 오늘 하루에 전부 마무리할 수 없을 테니까 네 시쯤 그때까지 받아낸 진술서를 메일로 보내. 서장실에서 검토 후에 브리핑 자료로 만들 거다.”

나는 눈을 굴려 시간을 확인했다. 두 시가 살짝 넘은 시간. 앞으로 세 시간 남았구나.

“아뇨, 금방 끝날 겁니다. 그 전에 전체진술 싹 받아오죠.”

이정호 반장의 눈이 동그래진다.

“열 한 건의 살인이야. 순순히 전부 인정하겠어?”

이정호 반장도 모니터실에 있었기에 나와 장진수의 내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하겠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싸이코패스 흉내를 내는 새끼가 아니라 진짜 미친놈입니다. 금방 끝내고 오겠습니다.”

“·····················.”

이정호 반장은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까지 잘 해봐.”

반장이 내 등을 짝 소리 나게 때린다. 다른 때였다면 아파했겠지만 어쩐지 그의 뜨거운 손에서 에너지가 전달되는 기분이 든다.

이십 분 후, 모니터실.

이정호 반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앉아서 진술실을 들여다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곤 기립한다.

“충성!”

이정호 반장이 경례를 하자, 만면에 웃음을 띄고 그의 어깨를 붙잡는 경찰서장.

“수고했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하, 겸손하긴.”

서장은 취조실 안을 들여다본 후 장진수를 눈짓하며 말했다.

“저놈이지?”

이정호 반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맞습니다. 존속살인 2건과 더불어 최근 일으킨 강상원 사건까지 모두 14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입니다.”

“음.. 연쇄살인이라 오랜만이군.”

서장이 팔짱을 끼며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브리핑까지 몇 시간 안 남았어. 알지? 2009년 이후로 처음 발생한 연쇄살인이야. 언론의 주목도가 엄청나. 기자들 앞에서 말할 만한 구체적 진술이 있어야 돼. 아직 조사 중이네 하는 틀에 박힌 말만 하고 내려오게 하진 말아주게.”

이정호 반장은 답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인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취조를 하는 자는 본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정호 반장의 눈길이 취조실 안에 마주 않은 두 사람을 향한다.

‘마지막까지 해내라, 현도경. 브리핑 시간 따위는 잊어버려. 그런 거 신경 쓰는 건 대가리들이나 하는 거다. 넌 거기서 장진수의 범행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만 신경 써.’

서장과 이정호 반장의 눈에 비친 취조실 속 두 사람이 서서히 서로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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