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46화 (46/328)

제 46 화. 박제(剝製) (26)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무료한 얼굴로 앉아 있던 장진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내민다. 내 표정을 가만히 살피던 그는 갑자기 손바닥을 비비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호?”

호? 이 미친 새끼가 그 따위 짓을 저지르고 한다는 말이 겨우 호? 확 아가리를 찢어버릴까? 장진수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며 계속 손바닥을 비빈다.

“찾았군요?”

“··················..”

나는 말없이 핸드폰의 갤러리를 누른 후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그에게 밀어 보냈다. 구덩이 입구부터 안쪽 상황까지 여과 없이 찍혀 있는 사진을 몇 번이나 눈에 담아두듯 확인한 그가 씁쓸한 얼굴이 된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고 왔어야 했습니다.”

미친 새끼. 넌 진짜 미친놈이구나.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지만 아직 시기상조다. 그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골치 아파진다. 대단한 지능범 답게 현장에 증거의 터럭 하나 남기지 않았다는 KCSI의 귀띔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팔짱을 끼며 일부러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말했지, 찾아낸다고.”

장진수가 날 빤히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못 찾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 꽁꽁 잘 숨겨뒀더라. 내가 네놈 기억 속에서 그 노래를 듣지 않았더라면. 혹은 내가 네가 남긴 성경구절을 그냥 지나쳤다면 어쩌면 지금 너는 날 비웃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결과는 아니다. 내가 이겼다.

“이제 약속을 지킬 순간이다.”

장진수가 입맛을 다신다. 잠시 거울 쪽을 힐끔 본 그가 말했다.

“세상에 알려졌습니까?”

“뭐가?”

“시신이 발견된 거요.”

“당연하지, 그 개 난장을 부렸는데 알려지고 말고.”

장진수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고 웃기 시작한다.

“킥.. 킥킥···”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 대는 장진수. 그는 한참을 웃다가 갑자기 움찔하더니 인상을 쓴다. 잠깐 뭔가 생각하던 그가 고개를 들고 날 빤히 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난 의연한 척하며 물었다.

“뭐?”

“뉴스 보니까 이런 거 나갈 때 얼굴 모자이크 되고, 이름도 장 모씨가 어쩌고 하던데.”

“그게 뭐?”

범죄자도 인권이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펼쳐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얼어 죽을 인권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법이 그러니 할 수 없다. 장진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약속 하나 해주면 십 분 안에 진술 끝내 드리죠.”

내 눈썹이 꿈틀거린다. 약속이라니?

“난 이미 내기에서 이겼다. 왜 내가 또 네 조건을 들어줘야 하지?”

“··················..”

우길만도 한 상황이다. 자백을 하기 전엔 상황적 우위를 가진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장진수였지만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지 않을 수는 없다는 듯 울대를 꿀렁거린다. 그때 이어폰에서 생소한 목소리가 울린다.

-현도경 경위. 일단 조건이란 걸 들어봐.

뭐지? 누구 목소리야, 이건? 이정호 반장님도 아니고 최영현이나 관우 목소리도 아닌데. 하지만 모니터실에 아무나 출입할 수 없으니 관계자일 것이다. 나는 뭔가 아쉬워하는 장진수를 바라보며 눈짓했다.

“듣기라도 해보자. 무슨 조건이지?”

장진수는 무척 고마운 표정이 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친놈이다.

“뉴스에 이름이 나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뭐?”

“뉴스에 이 일이 장진수가 한 일이란 게 나가게 해달라는 말입니다. 유영철이나 정남규 같은 놈들은 이름이 나갔지 않습니까?”

“그건···”

장진수가 설득하듯 말한다.

“제 작품이 그들이 한 짓에 비해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아닙니까?”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진다. 네놈이 한 짓이 그 놈들이 한 악행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표현할 것이지,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이 구역질 나는 새끼. 나는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욕지기를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이어폰이 울린다.

-그렇게 해준다고 하게.

뭐? 범죄자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주라고? 도대체 넌 누구이길래 자꾸 껴드는 거야? 나는 거울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다시 이어폰이 울린다.

-뉴스에서 숨긴다고 해도 어차피 다 알려질 거야. 희대의 살인범이며 스스로 신상정보를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증거가 남겨졌네. 법적으로 문제없어. 바로 진술 따내게.

씨발, 그래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이 새끼 부탁 들어주는 건 배알이 뒤틀린다. 내가 계속 거울 쪽을 노려보자 이번에는 이정호 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경아, 서장님 말씀대로 하자.

아, 계속 끼어든 놈이 서장이었어? 다섯 시에 브리핑 한다더니 기자들 앞에서 할말 없을까 봐 똥줄이 탔구나? 그래, 뭐 그거 들어준다고 상황이 더 나빠질 것도 없다. 나는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장진수를 노려보자, 그가 다시 한번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첫 사건부터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시간 순서로 진술하겠습니다. 그 약속 하나만 해주신다면 말입니다.”

“시간 순서에 플러스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OK?”

“알겠습니다.”

“콜.”

장진수는 활짝 웃음을 짓는다.

“고맙습니다, 형사님.”

고맙긴 뭘. 이제 진술하고 마지막 설렁탕 한 그릇 먹은 후에 평생 어두운 감옥에서 곰팡이 냄새 맡으며 죽어가자, 알았지? 너 같은 놈은 그런 죽음이 어울려.

장진수는 약 10여초 간 생각을 정리한 후 차분한 목소리로 진술을 시작한다.

“아버지란 새끼는 의부였습니다. 진짜 아버지는 얼굴도 본 적 없습니다. 그 새끼는 매일 저를 때렸고, 감금했습니다. 꼭 엄마가 보지 않을 때만 그랬죠. 일을 다녀온 엄마에게 그 새끼가 자꾸 절 때린다고 일렀지만 엄마는 오히려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 싫은 마음에 거짓말을 하면 못 쓴다고 했습니다···”

**

쌍문동 보육원.

아이들의 저녁을 챙기느라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루이사 수녀와 로사 수녀가 주방 구석에 있는 작은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곤 하던 일을 멈춘다. 그들의 눈에 아래 자막으로 종로경찰서장이라 신분을 알린 중년 남성이 기자회견석에 서서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것이 보인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대한민국 경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 비참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2022년 대한민국에 14년만에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음을 알려드립니다.

로사 수녀가 놀란 얼굴로 루이사 수녀를 바라보았다.

“수녀님, 연쇄살인이래요.”

루이사 수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성호를 긋는다.

“주여,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

TV에서 서장의 침중한 얼굴이 나온다.

-범인은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며 무려 13년에 걸쳐 14명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습니다. 유년 시절 의부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했던 범인은 종교를 가진 후, 잘못된 종교관에 사로잡혀 인간을 살해하고 그 시신을 보관하면 깨끗하고 선한 영으로 다시 부활한다는 맹목적 믿음을 가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수녀로 평생을 살아온 두 사람에겐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이다. 아이들 저녁으로 카레를 준비하던 로사 수녀는 당근을 썰던 칼을 멈춰야 했다.

“부, 부활을 한다고?”

자기가 예수님도 아닌데. 아니, 이건 예수님보다 더하다. 스스로 부활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죽인 사람이 부활할 거라 믿었다는 것이니까. 서장이 계속 말을 이어간다.

-우리는 범인에게 범행 일체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으며, 범행에 쓰인 용액과 살인을 행했던 장소를 모두 찾아냈음을 알려드립니다.

기자들이 마구 손을 들며 질문을 요청했지만 서장은 회견석에 서서 진중한 말투로 말했다.

-각 언론사에 사건에 자세한 진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내 드릴 생각입니다. 또한 범인의 신상정보에 대해서도 공개할 예정입니다.

그의 발언이 떨어지자 회견장이 시끄러워진다. 발언권도 없는 기자 한 명이 크게 목소리를 낸다.

-그건 인권침해 아닙니까, 서장님?

서장이 고개를 저었다.

-해당 사건의 범인인 장진수 본인이 신상공개를 요청했습니다.

다시 기자회견이 시끄러워진다. 하지만 방금 전처럼 반발하는 목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진 것이 아니라 기자들이 두들겨 대는 키보드 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장진수는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기자가 다시 손을 들자 이번에는 질문 하라는 듯 손짓하는 서장.

-장진수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저희 종로경찰서에 있습니다. 진술이 끝났으며 증거가 정리되는 대로 검찰에 송치 예정입니다.

로사 수녀님의 눈이 커진다.

“어머!”

처음 자막으로 종로경찰서장이라는 글귀를 보았을 때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서장의 입으로 서의 위치가 나오자 이제야 생각이 난 모양이다.

“종로경찰서면 도경이가 있는 곳이잖아요, 수녀님?”

루이사 수녀는 충격을 받았는지 TV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도, 도경이가. 우리 도경이가 저 악마와 마주한 건 아니겠지?”

로사 수녀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에, 에이··· 도경이는 강력계로 발령된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설마요.”

“그, 그렇겠지?”

두 사람은 이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한 사람이 도경이란 사실은 꿈에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

밤 11시, 고시원 앞.

강혁 아저씨가 준 차를 고시원 주변에 주차한 나는 오랜만에 퇴근을 해 지친 몸을 이끌고 고시원 쪽으로 걸었다. 며칠간 너무 많은 일들과 너무 많은 생각들이 폭풍처럼 몰아쳐서 그런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발을 질질 끌다시피 고시원 입구로 들어가는 길.

갑자기 고시원 문 옆 전신주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휙 하고 튀어나온다. 지쳤었지만 반사적으로 방어태세를 갖추고 뒤로 훌쩍 뛰어오른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뭐야!”

이런 늦은 밤에 뭐 하는 놈이야? 설마 예전에 손 봐줬던 조폭 새끼들 무리는 아니겠지? 자세를 잡고 그림자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림자는 손에 뭔가 큼지막한 비닐봉투를 쥐고 있다. 무기는 아니겠지?

“밝은 곳으로 나와!”

“··················..”

그림자는 아무 말없이 어둠 속에 숨어 있다. 나는 결국 품에서 총을 꺼내 겨누었다.

“나와, 이 새끼야!”

총을 보자 그제야 움찔하는 그림자. 손에 든 비닐봉투에서 바스락 소리가 난다. 천천히 비닐봉투를 든 손을 들고 가로등 빛으로 나오는 그림자.

“이 자식이 이젠 총까지 겨누네.”

내 눈이 커졌다. 언제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가로등 불빛 아래 나의 키다리 아저씨인 강혁 아저씨가 비닐봉투에 소주와 안주거리를 담아들고 씩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얼른 총을 집어넣은 나는 괜히 아저씨에게 핀잔을 준다.

“뭐예요, 놀랐잖아요. 그러다 총 맞기 십상인 거 모르세요?”

“킬킬, 새끼. 소주나 한잔 하자고 왔다가 총 맞을 뻔 했네. 이리와, 인마.”

강혁 아저씨는 내 목을 조르며 씩 웃는다.

“아주 첫 사건부터 세상을 뒤집어 놨어, 이 예쁜 새끼!”

“아, 나 피곤해요. 다음에 마셔요.”

“다음에 언제, 인마. 나 바빠. 지금 마셔.”

“아오! 꼰대 아저씨가 진짜!”

“으하하, 가자, 이놈아.”

아저씨에게 질질 끌려가는 나. 싫은 듯 소리를 질러 대고 있지만 사실 나는 지금 무척 기분이 좋다. 아무도 없는 고시원에서 혼자 베개를 끌어안고 외롭게 잠이 들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도 이 세상에 날 축하해줄 단 한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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