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화. 노인과 바다 (1)
Maestro, or mi concedi
Ch’I sappia quali sono e qual costume
Le fa trapassar parer sipronte
Com’ I’ discerno per lo fioco lume
선생님, 불빛이 약한데도 제 눈에 선명히 보이는
저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저렇게 단호히
강을 건너가려고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Ed elli a me : Le cose ti fier conte
Quando noi fermerem li nostril passi
Su la Trista riviera d’ Acheronte
그가 대답하길, 우리가 아케론의 슬픈 강가에서
발걸음을 멈추면 그때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신곡> 1권 ‘지옥편’ 제3곡 72~78행
고시원이 있는 곳은 봉천동 달동네다.
전셋값을 모으기 전에 고시원에서 살자는 생각으로 싼 곳을 찾다 보니 미아동, 봉천동, 신림동 근처에서 고시원을 찾아야 했다. 언덕 지형이라 오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이젠 괜찮다. 나에겐 차가 있으니까.
고시원 뒤쪽 언덕길 위에 서울시가 한 눈에 보이는 찻길 한 켠에 있는 포장마차. 트럭이 주방이고, 트럭 앞에 몇 개 깔아 놓은 테이블과 의자를 홀로 사용하는 포장마차다. 나는 강혁 아저씨와 오뎅에 소주 한 병을 앞에 놓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강혁 아저씨는 사건에 대해 들으며 연신 킥킥 웃음을 짓는다.
“으하하, 서장이 그런 지시를 내렸다 이 말이지?”
“네, 좀 짜증났어요.”
음, 생각해 보니 나 지금 서장보다 윗사람한테 이르고 있는 건가? 그래도 서장이란 양반이 사건보다 기자회견에 더 신경 쓰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강혁 아저씨가 킬킬대며 다리를 꼰다. 아저씨는 뭐가 재미 있는지 한참을 웃다가 오뎅 그릇을 보며 말했다.
“야, 좋은 거 좀 먹고 다녀라. 안주가 이게 뭐냐?”
“오뎅이 뭐 어때서요? 싸고 맛만 있는데.”
“에라, 아줌마!”
포장마차를 하는 사람은 아줌마가 아니라 아저씨인데. 하지만 평소 아줌마를 찾는 사람이 많은 모양인지 머리가 벗겨진 포장마차 주인장이 우리 쪽을 본다. 강혁 아저씨가 손짓하며 말했다.
“여기 뭐가 제일 맛있어요?”
주인장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트럭에 걸려 있는 메뉴 현수막을 가리킨다.
“고등어 구이가 맛있습니다.”
“오, 어디 고등어?”
“제주요.”
“호! 제주 고등어를 팔아요? 제주 출신인가 보네.”
“··················”
저 아저씨는 말이 없는 편이다. 가끔 답답할 때 찾는 곳이라 몇 번 와봤지만 난 저 아저씨가 세 마디 이상 하는 걸 못 봤다. 시키려면 시키고 말려면 말 시키지 말라는 듯 생선 손질을 하는 주인장을 멀뚱히 바라보다 멋쩍게 입맛을 다신 강혁 아저씨가 말했다.
“고등어 한 마리 구워 줘요.”
주인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수족관에서 살아 있는 고등어를 그물로 퍼 올린다. 강혁 아저씨는 신기한듯 말했다.
“야, 이런 포장마차에서 생물 고등어를 파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서 금방 죽는데 말이야.”
제주 고등어라는 말에 입에 침이 고이는 모양인지 연신 입맛을 다시는 아저씨를 빤히 보던 내가 말했다.
“그거 비싸요.”
“얼만데?”
“2만원인가?”
고등어 한 마리에 2만원이라니. 고시원에 사는 나는 꿈도 못 꾼다.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면 뭘 하는가? 서울 전셋집 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데. 어쩌면 난 이번 생에 전셋집은 꿈도 못 꿀지도 모른다. 그래도 모아는 봐야지. 원룸이라도 전세로 들어가면 되니까. 어차피 혼자인데 뭐 어때?
강혁 아저씨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 월급 얼마 받냐?”
“실수령액이요?”
“어.”
“2,086,700원이요.”
“그거 밖에 안돼?”
“1호봉이잖아요.”
“왜 1호봉이야? 너 순환보직 2년 돌았잖아.”
“몰라요, 아직 안 올랐어요.”
“이 새끼 보소? 정작 중요한 걸 안 챙기네. 좋아, 그건 내가 한번 알아보마.”
3호봉으로 받아 봐야 월급이 한 20만원 오르겠지만 그게 어딘가? 내 고시원 월세가 20만원이다. 의식주 중에 ‘주’를 해결할 수 있는 큰 돈이다. 강혁 아저씨가 다리를 꼬고 말했다.
“월급 이백 받아서 이 만원도 못 쓰면 뭣 하러 일을 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강혁 아저씨가 나무 젓가락으로 플라스틱 테이블을 두들기며 말했다.
“여기 내가 다 사니까,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라.”
“아저씨 월급 얼만데요?”
고위 경찰이라고 해도 결국 경찰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서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 월급에 비할 순 없다. 결국 아저씨도 나이에 비하면 그저 그런 연봉일 거다. 강혁 아저씨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내가 인마. 아무리 그래도 너보다 월급 두 배는 넘지.”
나는 곧바로 손을 번쩍 들었다.
“아저씨! 여기 연탄 불고기도 하나 주세요! 공기밥도 하나 주시고요!”
내가 득달 같이 주문을 추가하자 강혁 아저씨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치사한 새끼.”
“왜요, 시키라고 하셨잖아요.”
“밥을 왜 하나만 시켜, 인마. 아저씨! 공기밥 두 개 줘요!”
킥킥, 아저씨와 함께 있으면 항상 재미있다. 단순히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 그런 건 아니다. 이렇게 꼰대 테가 안 나는 어른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꼭 친한 형과 술 마시는 기분이다. 강혁 아저씨가 빈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수사보고서는 썼냐?”
“내일 검찰 송치하는데 뭘 벌써 써요? 내일 장진수 보내고 써야죠.”
“뭐라고 쓸 거냐?”
“있는 그대로 써야죠.”
강혁 아저씨가 날 빤히 바라본다. 왜 저렇게 보는 거지?
“왜요?”
강혁 아저씨가 몸을 내밀며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꿈에서 장진수가 부르는 노래 듣고 성당을 찾아냈다고 쓰게?”
“························”
“개 따라 다니다가 개 기억을 읽고 장진수가 범인인 걸 알았다고 쓸 거냐?”
“························”
생각해보니 미친놈 취급 받기 딱 좋겠다.
“그럼 뭐라고 써요?”
“동료가 괜히 있냐, 이 놈아?”
동료. 음, 동료가 있긴 한데. 내가 도움 받은 것이 있었나? 중간부터는 날 믿어줬지만 초장에는 오히려 방해만 됐던 이정호 반장. 관우는 CCTV만 파다 결국 아무것도 못했고, 김연주는 제주까지 탐문을 갔지만 결국 허탕을 쳤다. 음, 생각해 보니 김연주는 그나마 내 멘탈 관리라도 도와줬던 것 같네. 최영현 그 새끼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아무 도움도 안됐지, 약이나 올리고.
내 표정이 나빠지자 강혁 아저씨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인마. 진짜 에이스는 말이다. 지 혼자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팀 전체를 날게 하는 거다.”
“누가 절 에이스래요?”
“에이스지, 어? 강력계 발령 받자 마자 이만한 사건을 해결했는데. 너 아니었으면 인마. 앞으로 장진수가 몇 명을 더 죽였을 거 같냐? 이 사건도 봐. 사건 자체의 존재도 몰랐어. 안 그래?”
음, 그건 그렇지. 사건의 존재 자체가 은폐되어 있던 사건이다. 만약 장진수를 검거하지 못했으면 일년에 한 명씩 수많은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앞으로 그 자식이 30년 정도만 더 산다고 해도 최소 30명의 희생자가 더 생겼겠지.
강혁 아저씨가 혀로 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
“맞지? 에이스 맞지?”
“에이.”
괜히 띄워주는 거다. 이럴 때 팔랑 귀가 되어서 얼굴이라도 붉어지면 또 한참을 놀리시겠지. 정신 차리자.
“됐어요, 이번엔 운이 좋았어요.”
강혁 아저씨가 실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근데 보고서 쓸 때 설명하지 못할 부분이 너무 많아.”
“어쩌면 돼요?”
“설명 불가능한 부분을 전부 동료가 한 걸로 넘겨 버려. 그럼 너도 설명하기 편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이해가 되지.”
“동료가 안 한 걸 했다고 써요? 그랬다가 동료들이 반발하면 어째요?”
강혁 아저씨가 한쪽 눈썹을 일그러뜨린다.
“너 같으면 그러겠냐?”
“···············..”
“야, 생각을 해 봐라. 아무 것도 못했는데 큰 사건이 해결돼 버렸다. 자기도 뭔가 역할을 했어야 되는데 못 했다는 거지. 공무원들이 포인트에 얼마나 목숨 거는지 모르냐?”
모른다. 내가 경위로 임관한지 겨우 3년 차인데 벌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리가 없지. 강혁 아저씨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정호 반장이 경위 11호봉이다, 이 놈아. 11년 동안 경위였다고.”
“·····················.”
“최영현 경사는 작년에 경찰간부시험에 통과해서 원래 경위라고.”
응? 최영현이 경위라고?
“근데 왜 지금 경사예요?”
강혁 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원래 종로경찰서가 아니라, 마포경찰서에 있었어. 상급자 명령 불복종 및 폭언으로 일계급 강등됐다.”
헐, 캐릭터 제대로구나, 그 양반.
강혁 아저씨가 손가락 두 개를 폈다.
“그리고 경장 두 명 있지?”
“예, 김연주, 정관우 경장이요.”
“그래, 그 둘.”
“예, 두 사람이 왜요?”
강혁 아저씨가 검지와 엄지를 비비며 뭔가 계산하다 말했다.
“딱 들어오네.”
“뭐가요?”
“두 사람, 이번 사건에서 포인트 벌면 진급이야.”
“··················..”
두 사람이 경사가 되는 거다. 얼마 전에 강등당한 최영현은 진급이 어렵겠지만 그래도 빼앗긴 포인트를 다시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음···”
그래도 좀 걸린다. 하지도 않은 행동을 했다고 쓰라는 게 좀 그렇다. 내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강혁 아저씨가 말했다.
“그리고 인마. 대가리를 좀 써라.”
응? 갑자기 뭔 대가리? 내가 의문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강혁 아저씨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 강력계 발령이 얼마 안됐으니 바로 그렇게 되진 않겠지만 말이다. 원래 내가 올라가려면 윗사람을 올려야 되는 거다. 그래야 그 빈자리가 네 것이 될 확률이 생기는 거야.”
“무슨···”
“하, 인마. 이정호가 진급한다고 생각해 보라고.”
이정호 반장? 지금 나와 같은 경위이니, 진급을 하면 경감이겠지. 그게 왜?
“그게 왜요?”
“하, 이 답답한 놈아. 강력계 일반 팀장 중에 경감 달고 있는 놈 봤냐?”
“아.”
원래 경감을 달고도 팀장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계장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는 건?
“이정호 반장 자리가 빈다고 절 그 자리에 앉히겠어요?”
말도 안 된다. 이제 강력계로 온지 한 달도 안됐는데 무슨 팀장이란 말인가? 강혁 아저씨가 검지를 까딱인다.
“이정호 없으면 거기서 계급 제일 높은 게 너다. 물론 네가 바로 팀장이 되는 일은 없어. 다른 팀에서 데려올 거다. 하지만 말이다, 도경아. 넌 모두를 진급 시킨 영웅이 될 것이고, 팀장을 제외하고 너희 팀에서 가장 높은 계급장을 가진 실세가 되는 거다.”
음,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실세 돼서 뭐해요?”
“미친놈아! 실세가 되야 팀장도 달지!”
“··················..”
“팀장이 인마. 그냥 때 되면 시켜주는 자리인 줄 아냐? 팀원들이 널 믿고 따른다는 걸 상부가 알아야 돼. 이끌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간다. 알았어?”
그때, 주인장이 고등어 구이와 불고기를 테이블 위에 툭 올린다. 나와 아저씨가 주인장을 바라보자, 뭘 보냐는 듯 물끄러미 우릴 바라보던 주인장이 말했다.
“고등어와 불고기는 때 되면 줍니다. 물론 주문을 해야 되지만.”
너무 진지한 어투. 퉁명스러운 얼굴로 하는 던지는 농담에 나와 강혁 아저씨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뭐예요, 아저씨!”
“으하하, 으하하! 이 양반 보게, 완전 웃기는 양반이잖아? 으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