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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48화 (48/328)

제 48 화. 노인과 바다 (2)

며칠 후, 종로경찰서 강력 3반.

김연주와 정관우가 꼬리에 불이 붙은 망아지 마냥 달려와 PC에 앉은 내 앞으로 다가온다. 관우가 감동한 얼굴로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형님!”

음, 아까 계장님이 면담하자고 하더니 다녀 왔나 보다. 나는 씩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됐다, 신경 쓰지 마.”

“형님!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관우는 어찌나 감동을 했는지 내 손등에 자기 볼을 마구 비빈다.

“징그러, 저리가.”

“에헤헤, 형님. 사랑합니다.”

그렇게 좋을까? 옆에 서 있던 김연주가 보고서를 내밀며 말했다.

“관우가 데이터 분석 중에 CCTV에 찍힌 장진수를 보고 수상한 사람으로 지목, 조사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기술하셨네요.”

음, 나중에 알게 됐지만 관우가 보던 CCTV에 장진수가 여러 번 찍혀 있긴 했지. 뭐, 거기 사는 사람인데 당연히 찍혔을 거다. 김연주가 다음 장을 넘기며 말했다.

“이웃집을 탐문 중 이층에 세 들어 사는 장진수에게 뭔가 있음을 감지한 김연주 경장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장진수가 단양에서 일년 전에 이사 온 것을 확인하고 조사시작. 이거 다 날조 아닌가요?”

음, 뭐 당신이 탐문한 건 거짓말 아니잖아? 난 아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김연주는 날 한참 바라보다 다음장을 넘겼다.

“최영현 경사가 성당, 교회를 탐문 중, 강상원의 옆집에 사는 장진수가 가톨릭 신자인 것을 알아냈고, 단양 수색 시 성당을 우선 수색하도록 지시.”

물론 지시한 건 거짓말이지만 최영현이 성당 탐문한 건 거짓말이 아니다. 김연주가 다음 장을 넘겼다.

“사건의 정황상 장진수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단양서 강력계와 전경 2개 중대에 지원을 요청, 수색을 지시한 건 이정호 반장님이고요?”

그건 진짜인데. 이정호 반장님이 단양서 강력계에 지원요청한 건 사실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좀 살을 보태긴 했지만 영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

관우가 다시 내 손을 붙잡는다. 이번엔 눈물까지 글썽인다.

“형님! 저랑 연주가 다음 달부터 경사 진급하게 됐습니다! 모두 형님 덕분입니다!”

오, 정말 강혁 아저씨 말이 맞았구나. 관우가 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 뿐입니까? 최선배님은 경위 복귀 이야기까지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정호 반장님은 경감 진급이 확정적이고요.”

음, 사건이 크긴 컸구나. 전부 진급하게 생겼네. 최영현은 경위 진급이 어려울 거라고 했는데. 그래도 논의가 되고 있다니 언젠가는 하겠지 뭐.

“잘됐네.”

“형님! 제가 오늘 술 한잔 사겠습니다!”

“싫어, 어제 많이 마셨어.”

“누구와 드셨어요?”

“그···”

서울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랑 마셨다고 하면 뒤로 자빠지겠지?

“그냥 아는 아저씨.”

여전히 감동한 얼굴이 되어 있는 관우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난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반장님이랑 최경사님은 어디 가셨어?”

“서장님과 면담 중입니다. 뻔하죠! 당연히 진급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래. 다들 좋다니 나도 기분 좋네. 솔직히 공을 나누는 부분에 대해 약간 망설여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더라면 고민 없이 바로 쏴 줄 걸 그랬다.

“장진수는?”

“아까 송치했습니다.”

“별 말 없었고?”

“뉴스를 보여 달라고 하길래 핸드폰으로 보여줬더니 실실 처 웃더라고요, 미친 새끼.”

미친놈. 뉴스에 자기 이름이 도배된 게 그렇게 좋을까? 그래, 기분 좋게 감옥 가서 살아 봐라. 거기가 어떤 곳인지 알고 나서도 웃을 수 있나 보자. 신이 나 자기 자리로 가는 관우와 달리 김연주는 계속 내 앞에 서서 날 빤히 보고 있다.

그녀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던 난 괜히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후, 일 하나 해결해서 그런지 피곤하네. 오전부터 이러면 곤란한데.”

괜히 기지개도 펴고, 체조도 해본다. 김연주는 한참 날 빤히 보다가 천천히 사라진다. 그녀가 사라지자 이제야 부담스러운 눈빛에서 해방된 난 씩 웃으며 내 일을 시작했다.

잠시 후, 내 앞에 종이 컵 하나가 놓여진다. 눈을 들어보니 김연주다.

“커피요.”

“아.. 제가 타서 마시면 되는데.”

“제 커피 타면서 같이 탔어요.”

자기 몫의 커피를 들어 보인 김연주가 왠지 빨개진 것 같은 얼굴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관우가 킥킥대며 김연주에게 익살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그녀가 소리를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죽어’라고 말하는 것이 보인다. 이게 감사의 표현인가 보다. 꽤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그때, 이정호 반장과 최영현이 사무실 끝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인다. 최영현은 눈시울이 붉어져 있고 이정호 반장은 만면에 웃음꽃이 피어 있다. 이정호 반장은 내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마자 달려와 내 어깨를 짝 소리 나게 때린다.

“어이, 강력 3반 에이스!”

“··················..”

씨발, 아프다고 이 양반아. 근데 진짜 날 에이스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네? 이정호 반장이 내 어깨를 쥐고 흔들며 말했다.

“으하하! 진급이다, 진급이야! 11년 만에 드디어!”

오, 진짜 진급했구나. 근데 이거 좀 놔주시면 안 될까요? 어지러운데. 내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어 대던 이정호 반장이 옆으로 다가와 어색한 얼굴로 서 있는 최영현의 엉덩이를 발로 툭 찬다.

“뭐해, 인마?”

내 눈길이 최영현에게 가자 잠시 눈을 마주치곤 어색하게 눈을 돌리는 최영현. 뭐냐? 최영현은 잠시 머뭇거리다 주먹을 꽉 쥐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재··· 재··· 재수없게 굴어서 미안했습니다.”

음, 재수 없게 군 건 알고 있구나? 최영현이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이번에 신세를 졌습니다.”

솔직히 이 인간은 좀 재수 없었다. 그래도 사과까지 해오는데 무시할 필요는 없다. 다 잘 지내보자고 보고서도 그렇게 쓴 거니까. 나는 씩 웃으며 마주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최영현은 내 웃음에 얼굴이 붉어지더니 멋쩍게 손을 내민다.

“저도 잘 부탁합니다.”

나는 흔쾌히 최영현의 손을 붙잡았다. 좀 더 친해지려면 형님 아우까지 가면 좋겠지만 이 사람은 엄연히 나보다 아래 계급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형님 소리 했다가 나중에 곤란해지는 수가 있다. 딱 이 정도만 하자.

이정호 반장이 손을 맞잡은 우리 둘을 보며 웃는다. 박수를 한번 크게 친 그가 말했다.

“자, 오늘 부로 지겨운 네놈들과 안녕이다.”

관우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반장님?”

이정호 반장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계장 달았다, 이 놈들아.”

“오오!! 축하 드립니다, 반장님! 한턱 쏘셔야죠!”

“암! 쏜다, 소고기로 쏜다! 마누라한테 카드 받아왔지! 으하하!”

“우와! 진짜 소고기 쏜다고요? 형수님이 허락하셨어요?”

“인마, 내가 계장이야! 으하하!”

김연주가 빙긋 웃다가 문득 묻는다.

“그럼 3반 팀장은 누가 봐요?”

다른 팀에서 새로 오겠지, 뭘 물어? 이정호 반장은 팀원들을 쭉 둘러보다 말했다.

“당분간 공석.”

“네에? 왜요? 팀장 없이 무슨 일을 해요?”

“상부 지시야. 당분간만 공석으로 둔다. 계장이라도 팀장 자리 비어 있을 땐 내가 팀장 역할 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음, 왜 비워 두는 건지 모르지만 뭔가 생각이 있겠지 뭐. 솔직히 여기 온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팀장이 꼭 필요한 존재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정호 반장이 시간을 확인한 후 말했다.

“자, 퇴근하고 모이자. 그 전까진 장진수 건 완벽히 마무리하는 거다. 오늘 내로 못 끝내면 회식 취소야!”

“우우우!!”

관우가 야유를 퍼부었지만 그의 표정도 밝다. 당연하지, 팀원들이 다 진급하게 생겼는데 기분 좋겠지. 아, 나는 빼고. 다들 기분 좋게 자리로 돌아가자 이정호 반장이 날 부른다.

“잠깐 보자.”

이정호 반장은 날 끌고 강력계를 벗어나 옥상으로 향했다. 담배 한 개피를 꺼낸 그가 내게 내민다.

“태울래?”

“담배 안 태웁니다.”

이정호 반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담배를 다시 집어넣는다. 호, 비흡연자 앞에서 흡연을 삼가해 주는 매너가 있는 사람이었구나.

“도경아.”

“예.”

“보고서 봤다.”

“··················”

음, 김연주와 관우에 이어 이정호 반장의 인사도 받아야 하는 시간인가? 빨리 이 낯 간지러운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 이정호 반장이 내 옆모습을 빤히 보며 물었다.

“보고서를 보니 더 의문스럽 더구나. 도대체 장진수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추적한 이유가 뭐였냐?”

“························.”

“연주한테 물어보니 옆집 사람을 탐문하긴 했지만 이층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집에 없어 탐문을 못했다고 했다. 관우는 CCTV에 몇 번이나 스쳐간 장진수가 용의자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고, 최영현은 성당과 교회 사람을 탐문했지만 장진수는 자신이 탐문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

“결국 이거 전부 너 혼자 했다는 건데.”

하, 그냥 고맙다는 인사나 들어주려고 따라왔는데 추궁을 할 줄이야. 뭐라고 해야 되는 거지?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했다. 이정호 반장은 그런 날 빤히 바라보다 내 어깨를 툭 친다.

“장진수를 보자 마자 뭔가 필이 딱 온 거냐?”

응? 필이 오긴 뭘 와, 강아지 기억을 읽어서 그런 거지.

“아, 뭐.. 그런 것 같습니다.”

“호, 이 새끼 천생 형사 놈으로 살 팔자네. 그러니까 탐문하러 돌아다니다가 장진수를 보는 순간 뭔가 있다는 걸 느끼고 바로 행동에 옮겼다 이거지?”

“뭐··· 네.”

“성당은? 왜 성당을 수색한 거야?”

“··················..”

오, 주여. 도대체 뭐라고 답을 해야 되는 겁니까? 말을 아끼는 날 가만히 바라보던 이정호 반장이 히죽 웃는다.

“현장에 남겨진 성경구절이 마음에 걸렸던 거구나?”

헐, 뭐야. 이럴 거면 왜 물어? 지가 질문하고 지가 답할 거면 그냥 혼자 생각하라고.

“네, 맞습니다.”

“토마스 순교자가 체포된 곳에 시신이 숨겨져 있다는 건 신부님과 대화로 힌트를 얻은 거고.”

그건 김연주가 말해줬을 것이다.

“네, 맞습니다.”

“하, 이 자식 완전 요물이네.”

후, 뭔가 대충 잘 넘어간 기분인데? 이정호 반장이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좋아, 아주 잘했어.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는 거다. 알았지?”

“예, 반··· 아니, 계장님.”

“킬킬, 계장 소리 듣기 좋네.”

킬킬거리지 마요, 장진수 생각나니까. 이정호 반장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3반 팀장 자리 말이다.”

“예.”

“네가 먹어라.”

“예?”

갑자기 이게 뭔 소리냐? 이정호 반장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보는 날 힐끔 보며 히죽 웃는다.

“공석으로 비워 둔 이유가 그것이다. 사건 몇 개 더 해결하기만 해. 지금처럼 팀원들 이끌어주면서 말이다. 그럼 그 자린 네 거다. 그래서 비워 둔 거야.”

헐, 강혁 아저씨 뭐야? 그 아저씨 무당인가? 진짜 그 아저씨 말 그대로 흘러가고 있잖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어깨를 두드린 이정호 반장이 말했다.

“미안하다, 계급으로 보나 공로로 보나 네가 팀장이 되야 맞는데. 네 짬이 너무 없다. 어쩌겠냐, 실력과 짬을 겸비해야 다는 게 팀장인데. 좀만 참고 있어라.”

팀장은 생각도 안 했는데요?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데 왜 못 시켜서 안달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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