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49화 (49/328)

제 49 화. 노인과 바다 (3)

나를 제외한 모두가 진급을 했다. 애초에 최영현까지 진급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상부는 무슨 생각인지 최영현도 진급명단에 포함시켰다. 아마 이정호 반장.. 아니, 이제 계장님이지. 하여간 그가 힘을 좀 썼을 것이다. 최영현과 이정호 사이에는 꽤 끈끈한 연결점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거의 매일 붙어 다니는 사이였으니 친하기도 했겠지.

팀내 인사이동 덕분에 어수선했지만 그렇다고 범죄자들이 내부 정리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건 아니다. 강력 3반은 4개월 간, 착실히 실적을 쌓아갔다. 매사에 짜증스러웠던 최영현은 진급 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날아 다녔다. 작은 사건부터 중간 이상의 사건까지 그는 마치 범죄자를 잡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활약하기 시작했다.

여느 날과 같은 오후.

나는 조직폭력배 사이에 있었던 상해 사건의 취조를 마치고 강력반으로 복귀했다. PC 앞에 앉아 있던 관우가 기지개를 펴다 나와 눈을 맞추고는 눈짓으로 인사를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형님.”

“수고는 뭘. 맨날 하는 일인데. 다들 어디 갔어?”

김연주도, 최영현도 자리에 없다. 관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최선배님은 좀 전에 청운동 연쇄 퍽치기 용의자 잡아서 취조 중이시고, 연주는 가회동 방화사건 현장 조사하러 갔습니다.”

음, 다들 바쁘구나. 나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최경사님 쪽 용의자는 어때? 범인 맞는 거 같아?”

관우가 목 뒤로 깍지를 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CCTV 분석해 보니 용의자가 사건 당일, 근처를 배회하는 영상을 확인했습니다.”

청운동에서 일어난 퍽치기 사건. 그것은 행인의 뒤를 공격 후 금품을 빼앗아 달아나는 범죄 수법이다. 청운동 일대에서 지난 2개월 간 10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중태에 빠진 피해자가 있는 만큼 빨리 검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사건 현장에서 확인된 거야?”

“아뇨, 여덟 군데요.”

10건 중 8곳의 현장에서 찍힌 사람. 충분히 용의자라 부를 만 하다. 최영현이 이번에도 한 건 해냈구나. 나는 휘파람을 불며 방금 받은 진술지를 책상 위로 던졌다.

“최경사님, 이번 달에 몇 명 잡았지?”

관우가 손가락을 꼽아 가며 말했다.

“사직동 룸살롱 미성년자 성매매 건이 컸죠. 거기서 조폭과 포주를 합쳐 열 셋, 종로 5가 잔바리 마약 사범 잡아서 마수대에 넘겼고, 창신동 노인 살인사건 범인도 잡으셨고요.”

“대단하네. 예전에 왜 안 그랬지?”

관우가 실소를 지었다.

“강등 당하고 나서 한동안 좀 힘이 없으셨죠. 원래는 이런 분이셨어요. 후배들의 존경을 받으셨죠.”

“왜 강등 당한 건데?”

관우는 답을 해주려 입을 달싹이다 멈칫하더니 멋쩍게 웃는다.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긴 좀. 나중에 직접 여쭤 보심이.”

후후, 관우 녀석은 이래서 괜찮은 녀석이다. 이런 녀석은 내 이야기도 어디 가서 함부로 하고 다니지 않지. 나는 진술서를 정리하며 물었다.

“내근만 하는 거 지겹지 않아?”

“후, 어쩌겠습니까? 강력계 지원할 때 데이터 분석 업무가 제일 자신 있다고 쓴 제 잘못이죠.”

녀석, 강력계 지원해 범죄자 잡으러 다니는 꿈을 꿨을 텐데. 매일 앉아서 CCTV나 분석하고 있으니 좀이 쑤시겠지. 이따 저녁은 밖에 데리고 나가서 먹으며 바람이라도 쐬게 해주는 게 좋겠다. 두어 시간 가량 조직폭력배 상해사건의 진술서를 정리하고 팩스로 검찰에 송치 요청을 넘긴 나는 기지개를 편 뒤 아직도 CCTV를 뒤지고 있는 관우에게 말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안 시키고요?”

“바람이나 쐬자고.”

“오, 좋죠. 잠깐만요, 이것만 편집해 두고요.”

관우는 미리 찾아 둔 영상 중 필요한 부분만 편집해 붙여 놓는 작업을 십여 분 더 한 뒤에 일어났다. 점심도 저녁도 사무실에 앉아서 시켜 먹는 녀석이라 언제 밖에서 밥 한번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잘됐다. 둘만 있는 오늘이 기회다.

관우가 아우터를 입으며 희희낙락한다.

“사 주시는 겁니까?’

나 월급 208만원 받는다. 아, 강혁 아저씨가 확인해 준 뒤로 230만원으로 올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정말 내부적으로 오류가 있었단다. 강혁아저씨가 노발대발해서 받지 못한 월급 차액분은 다음달에 한꺼번에 받기로 했다. 어쨌든 이 녀석 보다는 내가 더 벌겠지.

“그래, 뭐 먹을래?”

관우가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맨날 순두부 찌개나 백반만 먹었더니 양식이 당깁니다. 파스타 어때요?”

짧은 머리에 관우는 식판에 밥을 퍼 먹는 군인을 연상 시켰지만 의외로 입맛은 양식 쪽인가 보다. 파스타라. 내가 마지막에 그런 음식 먹어본 게 언제였지? 잠시 기억을 더듬었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수녀님이 해 주셨던 게 마지막이였지.’

잘들 계실까? 시간 있을 때 한번 찾아 봬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나 같은 놈에게 파스타 씩이나 해준 사람은 수녀님들 밖에 없구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관우와 경찰서 정문을 걸어 나왔다. 그때 멀리 이정호 계장과 이번에 차장으로 진급한 정지훈이 보인다. 저 사람의 첫 인상은 좋았다. 내가 처음 종로경찰서에 왔을 때 흡연실로 데려가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줬던 사람이니까.

나와 관우가 얼른 고개를 꾸벅 숙이자, 정지훈은 눈짓으로만 인사를 받았고 이정호 계장은 웃음을 짓는다.

“밥은 먹고 다니냐?”

“지금 먹으러 갑니다.”

“밖에서?”

“예, 오랜만에 밖에서 저녁 먹게요.”

이정호 계장이 정지훈 차장을 힐끔 본다. 정지훈 차장은 실소를 지은 뒤 지갑을 꺼내 오만 원을 내민다.

“자.”

“괜찮습니다, 계장님.”

“그냥 받아, 인마. 선배가 주는 건데. 맛있는 거 사 먹고.”

선배. 차장님이 스스로를 선배라고 지칭한다. 아마 나 때문에 이정호가 진급하고 그 덕에 자신까지 진급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감사합니다, 차장님.”

허리를 꾸벅 숙이고 돈을 받은 뒤 관우를 이끌고 가려는 도중, 이정호와 몇 마디 논의한 정지훈이 나를 불러 세운다.

“현도경.”

이제 그만 보내줘. 배 고프다고.

“예?”

“밥 먹고 잠깐 이계장 방으로 와.”

응? 갑자기 왜?

“아, 예.”

이정호 계장이 내 뒤에 서 있는 관우를 힐끔 본다.

“관우.”

“예?”

“너 내근 얼마나 했지?”

“어.. 한 팔 개월쯤 했습니다.”

“음, 너도 같이 와.”

“예?”

“귀 먹었냐? 도경이랑 같이 오라고.”

“아.. 예!”

이정호와 정지훈이 혀를 차며 서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왜 오라는 거지? 멀뚱히 두 사람을 바라보다 관우를 향해 이제 그만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하려 돌아보니 잔뜩 상기되어 있는 녀석의 얼굴이 보인다.

“너 왜 그래?”

관우는 몸까지 부르르 떨며 주먹을 꽉 쥔다.

“예스! 예스! 됐어!”

뭐냐, 갑자기 왜 미친놈처럼 춤을 춰? 관우가 추는 내적 댄스. 출까 말까 댄스의 정석을 보여주는 녀석의 춤사위를 감상하던 난 갑자기 이 녀석이 왜 이러는지 궁금해졌다.

“뭐야, 갑자기? 차장님이 부르는 게 그렇게 좋아?”

관우가 주먹을 꽉 쥐고 하늘로 뻗었다 아래로 내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말했다.

“예스! 형님!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뭔 기회?”

“외근 나가는 기회요! 드디어 저도 강력계 형사로 대접받을 기회가 온 겁니다!”

응? 그게 그런 의미였어? 운이 좋아 처음부터 외근을 나갔던 나와 다른 모양이다. 아, 그건 계급 차이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처음으로 관우와 오붓이 둘이 식사를 했다. 녀석은 신이 났는지 파스타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흡입을 하곤 나도 빨리 먹고 차장님에게 가자는 듯 조바심을 낸다.

대충 파스타를 욱여 넣고 배를 채운 우리가 이정호 계장 방 앞에 도착해 노크를 했다. 그러자 안에서 이정호 계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와.”

계급 차를 고려해 내가 앞서 들어가 경례를 했다.

“충성.”

“어, 앉아라.”

방에는 이정호 계장 혼자 있었다. 정지훈 차장은 어디 갔을까? 이정호 계장이 소파를 눈짓하며 말했다.

“차장님은 다른 일 보러 가셨다. 내게 다 지시하고 가셨으니 걱정 말고. 앉아, 인마. 목 아파. 키도 큰 놈이.”

나와 관우가 자리에 앉자 이정호 계장이 서류 몇 장을 내민다.

“자, 이거.”

사건인가? 나는 서류 맨 위에 써 있는 사건보고서 제목을 보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대학생 커플 자살사건?”

자살사건이 왜 강력계로 오지? 게다가 사건이 발생한 현장이 서울이 아니라, 경상북도 영덕의 강구항(江口港)이다. 관할 사건도 아닌데 왜 이걸 주는 거지? 바로 이게 도대체 뭐냐 묻고 싶었지만 아마 내 질문의 답은 이 서류 안에 있을 것이다.

눈으로 서류를 읽는 동안 이정호 계장의 설명이 들려온다.

“사망자는 21세, 남승현과 20세, 한지윤 두 사람이다. 둘은 서울의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 커플이었고,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말에 경북 여행을 떠난 후로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고 한다.”

열정에 넘치는 관우가 물었다.

“지인들의 탐문 조사가 이미 끝난 겁니까?”

이정호 계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처음엔 실종사건으로 확인, 실종사건 전담팀이 사건을 맡았다. 시신이 발견된 후 지인 및 가족 탐문 결과, 자살을 선택할 만한 어떤 이유도 발견되지 않았다. 둘 다 학점도 좋은 편이고 가정환경도 나쁘지 않은 보통의 연인 관계였다.”

나는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

“남자 쪽 여자 관계는 어땠습니까?”

혹시 바람을 피웠고, 그것을 여성이 알았을 경우, 남자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선택한 선례가 있다. 이정호 반장이 고개를 저었다.

“깨끗해, 여자 쪽도 그렇고. 교제를 시작한 건 2년쯤 됐고, 서로 매일 붙어 다니는 사이라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못 피웠을 거라는 주변인의 진술이 있었다.”

음, 그럼 둘은 왜 자살했을까?

“시신이 발견된 후, 저희 쪽으로 넘어온 겁니까?”

“음, 사건 발생은 영덕이지만, 신고 접수지는 서울이다. 실종사건 전담팀이 서울에서 영덕까지 전부 훑었지만 영덕 삼사 해상공원에서 마지막으로 CCTV에 찍힌 후 행적을 알 수 없었다.”

서류를 보다 힐끔 관우를 보니 이 녀석은 당장 영덕으로 달려가고 싶은 눈치다. 하지만 물을 건 물어야 된다.

“신고지가 서울이더라도 사건 발생지가 영덕이면 그쪽 관할로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맡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

이정호 계장은 말하기 좀 그렇다는 듯 머뭇거린다. 설마 자살자가 국회의원 자식이거나 하는 말도 안돼는 이유는 아니겠지? 확 강혁 아저씨한테 다 이른다?

관우 녀석은 혹시나 내가 사건을 반려할까 노심초사 내 눈치를 보고 있다.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관할을 무시하는 국회의원의 행사에 장단을 맞춰 주고 싶진 않다. 이정호 계장은 얼굴을 구기며 한참 말을 못하고 있다가 내 눈을 바라본다.

“실종사건 전담팀에 들러 사건 인수인계 받고, KCSI로 가서 검시 보고서 받아.”

내 질문에 먼저 답을 하라고 이 양반아. 어디서 어물쩍 넘어가려고.

“일단 질문에 답을 해 주시죠, 계장님.”

“·····················.”

이정호 계장이 날 노려본다. 지지 않겠다는 듯 마주 노려보자 한참 눈싸움을 벌이던 그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쉰다.

“새끼, 성격 하고는.”

이정호 계장이 소파에서 일어나 한숨을 쉬며 창가에 서서 팔짱을 낀다.

“KCSI 목진원 과장 알지?”

목과장님? 당연히 알지. 그 양반이 요 전의 사건에서 많은 도움이 됐었는데. 개인적으로 말도 트는 사이니 꽤 친하다고 볼 수 있다.

“예, 압니다.”

이정호 계장이 날 돌아보며 서류를 눈짓한다.

“거기 사건의 시신 중 여학생이 목진원 과장의 외조카다.”

나와 관우의 눈이 커졌다. 현직 KCSI 과장님의 조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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