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화. 노인과 바다 (4)
KCSI로 가는 차안.
조수석에 앉은 관우가 실종사건 전담팀에서 받은 자료를 노트북으로 확인 중이다. 데이터 분석이 전문분야인 녀석 답게 한번에 사건을 정리해 보기 쉽도록 정리한 관우가 말했다.
“두 사람 동선을 보면 일단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영덕역으로 왔습니다.”
관우가 역사의 CCTV를 보여준다. 실종사건 전담팀에서 조사했던 기록이 있어 편하게 사건을 볼 수 있겠다. 역사에 내려 걸어가는 두 사람. 등산복 차림에 큰 배낭을 메고 있다. 역사 휴게소에서 샀는지 아이스크림 콘을 들고 깡총깡총 뛰며 웃는 여학생의 모습이 보인다. 저 모습을 보고 누가 자살하기 위해 여행을 왔다 생각하겠는가?
“다음 동선은?”
관우가 노트북을 조작한 뒤 다시 화면을 보여준다.
“새벽 6시 10분 기차를 타고 영덕역에서 하차한 게 오전 11시 30분. 바로 고래불 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내가 눈썹을 찡긋하며 물었다.
“이 날씨에?”
지금은 2월이다. 이 날씨에 해수욕을 했을 리는 없겠지. 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지만 많이 추웠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해수욕장 도착 직후, 백사장 주변에 있는 바지락 칼국수 집에서 CCTV에 찍혔습니다.”
관우가 보여주는 화면.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걷던 두 사람의 발자국이 칼국수집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이후 화면이 바뀌고 식당 내부 CCTV에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는 두 사람이 보인다. 남학생이 바지락을 껍질에서 떼어 숟가락 담아 여학생에게 먹여주는 모습이 보인다.
“다음으로 괴시리 전통마을에 들러 관광을 했습니다.”
관우가 보여주는 다음 화면은 CCTV가 아니라 SNS였다. 여학생이 전통마을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올려 둔 모양이다.
“사진 찍은 건 남학생 맞고?”
“여기.”
둘이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확실히 두 사람은 여기까지 함께 관광을 즐겼다.
“다음은?”
관우가 다시 노트북을 제 쪽으로 돌려 조작한다.
“이후 찍힌 곳은 영해 만세시장, 닭강정 집 앞입니다. 여기서 닭강정과 술, 안주거리를 구입한 뒤 인근 펜션으로 갔습니다.”
“펜션은 어디야?”
“잠시만요.”
관우가 핫 스팟으로 인터넷 연결 후, 펜션 사이트를 보여준다.
“여깁니다, 송화 펜션이랍니다.”
노트북 화면에 떠오르는 곳. 그리 좋은 곳은 아닌 것 같지만 고즈넉하고 사람 없는 해변가에 지어진 작은 펜션이 보인다. 아래 룸 가격을 보니 딱 대학생들이 가기 좋은 가격이다.
“일단 KCSI로 갔다가 펜션부터 털자.”
“예, 형님!”
목과장님의 조카가 자살했다는 점은 마음 아프지만 외근을 나가는 첫 사건이라 그런지 관우 녀석은 무척 흥분해 있다.
잠시 후, KCSI.
목과장을 마주한 우리는 눈이 움푹 파여 마음 고생이 심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과장의 얼굴에 숙연해 졌다. 조카 사랑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목과장은 이제 눈물도 나오지 않는지 메마른 눈으로 멍하게 빈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다.
‘과장님께 여쭤 보는 건 무리다.’
이런 상태라면 사건에 대해 묻기 어렵다고 판단한 나는 관우에게 잠깐 목과장님과 함께 있으라 눈으로 지시를 전한 뒤 다른 검사관을 찾기 위해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때 흐린 눈으로 초점을 잃고 있던 목과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도경아.”
“············.예, 과장님.”
“꼭 잡아라.”
“··················.”
목과장의 눈에 힘이 돌아온다. 천천히 일어나 있는 날 올려 본 그가 말했다.
“실종사건 전담팀에서 강력계로 이관된 이유. 알지?”
당연히 안다. 단순 자살사건이 아닌 거다. 그러니 강력계로 넘어왔겠지. 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목과장의 상태를 살폈다.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지만 어설픈 위로보단 범인을 잡는 쪽이 그에게 도움이 된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내가 물었다.
“뭐 나온 거 있습니까?”
두 사람의 시신에서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입증할 증거가 나왔냐고 물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적나라한 질문을 던지고 싶진 않다. 목과장님에겐 가족의 시신이었을 테니까.
목과장은 말없이 검시보고서를 눈짓한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관우가 얼른 보고서를 넘겨 확인한다.
“머리와 손, 팔에 미세한 상흔이 있다···”
응? 설마 그게 다야? 그게 타살의 증거라고? 아니겠지. 분명 뭔가 다른 게 있을 거다. 관우가 보고서를 보며 눈썹을 꿈틀거린다.
“저기, 과장님 여기 이 사진에 남은 상흔이 타살 증거라고요?”
저 눈치 없는 자식. 과장님 조카 시신 사진을 본인에게 내밀면 어떡해! 목과장은 주먹을 꼭 쥐고 시선을 돌린다. 관우도 뒤늦게 실수를 눈치채고 얼른 보고서를 뒤로 뺀다.
“아, 죄송합니다.”
목과장은 몸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떨군다.
“미안하다.”
갑자기 사과를 하는 목과장님. 관우가 왜 사과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시신 검시의 전문가다. 이 일을 몇 십년이나 했지만 나도 할 수 없이 가족의 시신 앞에선 무너지게 되는 구나.”
“··················..”
당연한 겁니다, 과장님. 당신은 사람이니까요. 나는 말없이 그에게 위로의 눈빛을 보냈다. 목과장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말했다.
“지윤이는 내 동생의 자랑이었다.”
한지윤. 사망한 두 사람 중 여학생의 이름이자, 목과장의 외 조카다.
“지윤이는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했다. 얼굴도 예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아이였지. 대학생이 되면 꼭 남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겠다며, 고등학생 때 한번도 딴 짓을 하지 않고 공부에만 매진해 엄마를 기쁘게 하던 아이였고.”
목과장이 불안한 듯 양손의 손톱을 긁으며 말했다.
“내 동생은 지금 너무 충격을 받아 혼절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 매제도 해외 출장 중에 소식을 듣고 급하게 들어왔고.”
“매제 분도 병원에 함께 있습니까?”
“음, 그나마 매제는 정신력이 강해 혼절까진 하지 않았지만 동생 옆에서 소리 죽여 울고 있겠지.”
“·····················.”
가족이 죽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글로 읽은 적은 있다. 누군가 날카로운 칼로 내가 죽지 않을 정도만 가슴을 후벼 파는 기분이라고 들었다. 갈비뼈가 다 드러나고 내장이 다 튀어 나와도 죽지 않는 기분이라고 들었다. 나는 모르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과 표정에서 깊은 아픔을 느낄 수 있다. 외삼촌도 이런데 부모들은 어떤 마음일까?
나는 잠시 애도하는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나는 형사다. 나는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나는 모진 마음을 먹고 목과장에게 말했다.
“힘드시면 다른 연구원에게 듣겠습니다.”
목과장은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한다. 그게 내가 이 아이를 보내주는 방법이야.”
강인한 사람이다. 현장에서 구르는 우리와 달리 연구실에서 평생을 보내는 사람이지만, 범죄와 가장 밀접한 사선에서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인 KCSI 요원. 목과장님은 그런 요원으로 평생을 산 사람이니 만큼 마음이 강한 사람이었다.
목과장은 내키지 않는지 몇 번이나 손을 꼼지락거리다 결국 관우가 쥐고 있는 보고서를 달라 손짓한다. 관우가 떨떠름한 얼굴로 내 눈치를 보다 결국 서류를 넘겨주자, 목과장은 서류를 넘겨 시신 사진을 편다. 자신이 하겠다 공언했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목이 메이는 것까진 참을 수 없는지 겨우 들릴 만한 목소리로 브리핑 하는 목과장님.
“21세 남승현. 신체내부에서 다량의 프랑크톤 확인, 다량의 액체가 기도로 흡입되어 질식한 익사···. 그리고···..”
한지윤의 시신 사진을 보며 눈가를 잘게 떠는 목과장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이를 악문 그가 말했다.
“20세 한지윤···. 사인은··· 마찬가지다.”
관우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 물을 건 물어야 한다.
“타살 의심 흔적인 상흔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목과장은 잠시 숨을 고르다 먼저 남승현의 시신 사진 중 몇 군데를 확대한 사진들을 보여준다.
“여기, 정수리 쪽과 왼손, 오른손가락 손등의 관절 부분을 봐.”
그가 가리키는 사진을 자세히 보자, 정수리 쪽에 피부가 살짝 벗겨져 혈흔이 있는 것이 보인다. 왼손은 손등 바깥쪽, 오른손가락은 손가락이 구부러지는 관절 중 중지와 약지 쪽에 피부가 벗겨진 상흔이 보인다. 관우가 사진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상처는 보통 폭행사건의 가해자 쪽에서 확인되는 상흔 아닌지···”
맞는 말이다. 폭행치사 상해 사건을 보면 가해자에게 이런 상처가 남는다. 하지만 양 손의 상처는 그렇다 치고 정수리 쪽은 무엇일까? 사람을 정면에 놓고 보았을 때 살짝 뒤통수 쪽에 가까운 곳에 혈흔이 남았다. 나는 그것이 이상했다.
“여학생 쪽도 마찬가지입니까?”
사망자 이름을 부르는 대신 여학생이라고 지칭했다. 그것이 목과장을 향한 나의 배려였다.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움찔했던 목과장은 침을 삼킨 후 답을 한다.
“비슷한 곳에 상처가 남았다. 정수리와 오른쪽 귀 윗부분에 혈흔이 있고, 오른손 중지 손톱이···. 빠져 있었다.”
KCSI는 바보 집단이 아니다. 단순히 이것으로 타살 의심을 할 머리 나쁜 인간은 애초에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둔기입니까?”
“아직 확인 중이야. 일단 망치나 흉기로 분류되는 물건은 아닌 것 같다. 상처의 깊이를 보아 폭 3cm가량의 쇠막대기 같은 게 아닐까 싶다.”
폭 3cm가량의 쇠막대기? 그런 게 뭐가 있더라? 불 쏘시개 같은 건가? 아니면 연탄 집게? 요즘도 연탄 집게를 쓰는 가정이 있던가? 관우가 사진을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만약 그런 걸로 내리친 거라면···”
관우가 시신의 키를 확인 후 말했다.
“남자 쪽은 키가 183cm입니다. 정수리 뒤쪽을 후려치려면 그보다 더 크거나···”
관우가 날 바라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배 위나 방파제 위에서 내리쳤거나.”
“························”
목과장이 말했다.
“시신이 발견된 건 강구항이다. 파도에 떠밀려 뭍으로 올라온 걸 아침에 가게 문을 열던 식당 아주머니가 발견하고 신고했다. 검시 결과 사망 시점은 시신발견 12시간 전이다.”
관우가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말했다.
“항구 주변의 횟집이나 술집은 새벽까지 영업하니 취객들이 주변을 돌아다녔을 텐데 발견을 하지 못했다는 건 시신이 뭍으로 떠밀려 온 것이 동이 튼 후라는 건가요?”
목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시 결과, 사망시간은 전날 저녁 일곱 시 경으로 확인됐다.”
전날 일곱 시에 사망한 시신이 다음날 새벽에 뭍으로 떠밀려 왔다. 그건 시신이 사망한 장소가 방파제 주변이 아닌 망망대해 한 가운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한 마디. 목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본다.
“두 사람은 배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진 후 누군가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 익사하게 된 거다.”
추운 2월의 날씨. 가만히 있어도 살을 파고드는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부는 이 날씨에 바다에 빠진 두 사람은 공포와 추위에 떨며 죽어갔을 것이다. 목과장이 안타까운 얼굴로 조카의 사진을 바라보다 주먹을 꼭 쥔다.
“부탁한다, 꼭 잡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