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51화 (51/328)

제 51 화. 노인과 바다 (5)

관우를 데리고 영덕에 내려왔을 땐 이미 밤이 깊어진 시간이었다. 두 사람이 묵은 송화 펜션 앞에 주차를 하고, 1층의 안내실로 가자, 간이 침대에 앉아 수건을 개고 있던 남자 주인이 반긴다.

“어서 오세요, 좀 늦게 오셨군요. 예약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관우가 신분증을 보여주자, 주인의 껄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또 경찰입니까? 휴.”

아무래도 실종사건 전담팀이 여러 번 방문했던 모양이다. 이제 지겹다는 얼굴이 된 주인이 한쪽에 걸려 있는 열쇠들 중 하나를 빼 내민다.

“오렌지 객실이요.”

두 사람이 묵은 객실이겠지? 사건에 관계된 객실이라 아마 비워 두라는 지시를 받았을 공산이 크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귀찮아 한다. 또한 그들에겐 멀쩡한 방을 비워 둬야 하기에 손해가 나기도 한다. 나는 주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방 청소하셨습니까?”

주인장이 날 꼬나보며 한숨을 쉰다.

“여봐요, 같은 질문을 사람 바꿔 가며 하면 나는 앵무새처럼 매번 같은 대답을 해야 됩니까?”

“···············.”

어지간히 짜증이 난 얼굴이다. 손님인 줄 알고 맞이할 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주인을 물끄러미 바라본 내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번 사건이 서울 쪽으로 이관되었습니다. 귀찮으시겠지만 협조 부탁드립니다.”

주인장은 날 삐딱한 눈으로 째려본다. 그때, 우리 뒤쪽 입구에서 어린 남녀가 쓱 들어오며 말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주인장은 손님이 나타나자 금방 얼굴을 바꾸며 마구 손바닥을 비빈다.

“어, 라벤더 객실 손님이죠?”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술이 떨어져서 왔는데. 여기서 팔죠?”

“아이고, 당연히 팔지요. 저쪽 냉장고에서 골라 오세요.”

남녀 손님이 손을 잡고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이 펜션의 사무실은 편의점을 겸하는 모양이다. 진짜 편의점처럼 여러 물건을 팔진 않지만 펜션에 놀러 와 찾을 만한 물건들은 다 있어 보인다. 남녀가 냉장고 방향으로 갔지만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일반인들이 들어서 좋을 것이 없기에 잠시 물러난 우리. 주인장은 우릴 째려보며 말했다.

“영업 방해 그만 하시고, 조사할 거만 하시고 가요. 객실 키 줬으면 됐지.”

아무래도 많이 시달린 모양이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우린 주인의 진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잠시 딴청을 부리며 손님들이 가길 기다리는 나와 관우. 그때 우리를 힐끔 본 손님들이 맥주 한 병과 소주 두 병을 가지고 와 계산대에 놓는다. 주인이 봉투에 술을 넣어주며 말했다.

“자, 맥주 한 병, 소주 두 병에 만원입니다.”

“여기요.”

남자 손님이 현금을 꺼내 내밀자, 주인이 친절한 미소로 말했다.

“잘 즐기다 가세요.”

“예.”

후드를 뒤집어 쓴 커플이 날 스쳐 지나간다. 순간적으로 여자 쪽 얼굴을 본 내 눈이 가늘어졌다.

“잠깐.”

커플이 내 앞을 지나 가려다 멈칫한다. 나는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실례지만 두분 다 신분증 좀 봅시다.”

“·····················.”

남자는 내 신분증을 뚫어지게 보고 있고, 여자는 무척 당황한 얼굴이다. 남자가 잠시 후 더듬거리며 말했다.

“지금 없는데.”

나는 방금 현금을 꺼낸 지갑을 눈짓하며 말했다.

“지갑 거기 있잖아요.”

“신분증을 안 가져왔습니다.”

지켜보던 주인이 인상을 구기며 삿대질을 한다.

“아니, 여봐요! 경찰이면 다야? 왜 남의 가게에 와서 영업 방해를 해? 당장 신고해줘? 경찰이 영업 방해한다고, 어?”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주인을 노려보았다.

“하세요.”

“뭐요?”

“신고하시라고.”

“아니, 뭐 이런 사람이! 좋아, 내가 당장 신고해 줄게. 딱 기다려.”

화가 난 주인이 핸드폰을 찾는다. 나는 다시 커플 손님 쪽을 보며 말했다.

“주민등록번호 불러 주세요. 관우야, 무전 좀 해라.”

“예, 형님.”

관우가 뒷주머니에서 무전기를 빼 들자, 여자 손님이 더욱 당황하는 것이 보인다. 남자 손님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여자친구의 손을 꽉 붙잡는 게 보인다. 관우가 무전기를 준비한 뒤 말했다.

“불러 주세요.”

“·····················.”

“저기, 선생님? 주민등록번호요.”

남자는 답을 하지 못한다. 나는 가만히 남녀를 바라보다 말했다.

“너희 미성년자 맞지?”

“··················.”

내 말에 침대 한 켠에서 핸드폰을 찾아낸 주인이 돌처럼 굳는다. 나는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다 팔짱을 꼈다.

“미성년자가 숙박업소 예약을 하고, 술까지 샀구나.”

주인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젠장 똥 밟았구나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주인은 핸드폰을 던져 버린 후 달려와 내 팔을 붙잡고 전과 완전히 달라진 얼굴로 사정한다.

“아이고, 형사님. 이거 왜 이러십니까? 이 사람들 미성년자 아닙니다.”

주인이 자꾸 커플 손님을 가리며 얼른 가라고 손짓하는 것이 보였지만 눈치 빠른 관우가 사무실 문을 막고 있다. 어차피 우린 이런 단속을 하러 내려온 것이 아니다. 미성년자 계도는 중요한 일이지만 지금은 내 직무가 더 중요하니까. 단지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 생겼을 뿐이다.

나는 주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협조하시겠습니까?”

주인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답한다.

“물론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건 좀···”

이 정도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적당히 협박했으면 살 길을 터 줘야 맞다. 나는 한 발 물러난 뒤 문을 막은 관우에게 말했다.

“술은 다시 갖다 놓고, 보내줘.”

관우가 남학생의 손에 들린 봉투를 가져온 뒤 냉장고로 가며 주인에게 말했다.

“애들 돈 돌려줘요.”

주인이 얼른 카운터에서 만원을 꺼내 남학생에게 주자, 두 사람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다. 아마 이 길로 곧장 펜션을 벗어날 생각일 거다. 아무리 십대 애들이 무서운 게 없다지만 지척에 경찰이 있고, 이미 자신들이 미성년자인 것을 알고 있는데 계속 펜션에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사라지자, 주인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의자를 끌고 와 자리를 내어준다.

“뭐 마실 거 좀 드릴까요?”

좀 전과는 180도 달라진 주인의 태도. 뭐 이해는 한다. 내가 장사하는 사람이라도 이랬을 것이다. 나는 의자에 앉은 후 팔짱을 끼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사건 당일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주인이 맞은 편에 앉은 후 한숨을 쉰다.

“뭐 말씀드리고 싶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저도 경찰이 온 뒤에 다시 확인해서 정확히 기억합니다. 예약자는 남승현이고 원래 오후 3시에 체크 인인데 오후 5시 넘어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11시 10분 전에 나갔고요.”

11시 10분 전? 시간에 뭔가 의미가 있는 건가? 나는 잠시 시간에 대해 고민했지만 관우는 아무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메모에 집중한다. 주인이 말을 이었다.

“다들 펜션에 와 보셨겠지만 11시 무렵부터 바쁩니다. 세시가 되면 다음 손님을 받아야 되니까 아침부터 일찍 나간 손님들 방부터 청소를 하죠. 대부분 술을 마시고 자기 때문에 좀 늦게 일어나는 손님이 많아요. 체크 아웃 시간이 11시다 보니 대부분 그 근처에 나갑니다. 그 학생들도 그랬어요.”

아, 11시가 체크 아웃 시간이구나. 뭐, 펜션에 와 봤어야 알지. 어쩐지 관우 녀석이 아무 말도 없이 받아 적기만 하더라.

“예약 데이터 보관되어 있습니까?”

주인이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간다.

“펜션 예약 사이트에서 했으니 남아 있을 겁니다. 아, 여기 있네요.”

주인이 보여주는 예약자 명단. 남승현이라는 이름이 있고, 그의 전화번호가 기재되어 있다. 주인에게 남기는 메모로 18시에 바비큐를 준비해 달라는 말이 써 있다. 그리고 다음날은 다른 예약자의 이름이 써 있다. 주인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동네에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이 무렵에는 설연휴가 끼어서 사람이 좀 있었죠. 요 다음날 말고, 다음 다음날에 온 손님은 정말 난리였습니다.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놀고 있는 손님들 다 나가라고 하고 방을 뒤졌죠. 덕분에 전 손님들에게 전액 환불을 해줘야 했고요.”

아, 그래서 아까 짜증난 얼굴이었구나. 주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손님들이 나가고 바로 청소를 했습니다. 특별한 건 안 나왔고요. 이틀이나 지나 손님을 두 팀이나 더 받은 방에 뭐가 남아 있다고 그렇게 뒤지는지, 나 참.”

관우가 물었다.

“청소는 누가 합니까?”

“청소 아줌마요.”

“몇 분이죠?”

“두 명입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아줌마들 방에 계실 겁니다.”

“잠깐 만나도 괜찮을까요?”

주인은 우리가 편의점을 함께 하는 사무실에 있는 것보다 그쪽으로 꺼져 주는 것이 훨씬 좋은 모양인지 얼른 전화를 들고 말했다.

“예, 제가 미리 전화해 두겠습니다. 문으로 나간 뒤에 오른쪽으로 쭉 가세요. 건물 끼고 돌면 옆에 간이 건물이 하나 보일 겁니다. 거기 1층이 아줌마들 숙소고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특별한 이야기 나누신 건 없습니까?”

“뭐.. 기억 나는 게 이게 다···.”

나는 관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 그 학생들 어느 객실이라고?”

관우가 얼른 답한다.

“라벤더 객실입니다.”

주인이 놀란 얼굴로 내 팔을 붙잡는다.

“아이고, 형사님! 잠깐만, 잠깐만요. 기억을 해보겠습니다.”

나는 잠시 눈알을 굴리며 애써 기억을 짜내는 주인을 바라보았다. 주인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기억을 더듬다 말했다.

“그러니까.. 좀 늦게 도착했길래 제가 ‘늦으셨네요?’ 했더니 남학생이 ‘예, 관광 좀 하느라 늦었습니다.’ 라고 했고··· 아, ‘바비큐 준비되는 거죠?’ 라고 물어서 된다고 했습니다.”

관우가 물었다.

“바비큐는 객실 안에서 합니까?”

“네, 객실 안에 있는 테라스에 개인 바비큐장이 있어요.”

“불 붙이러 들어가셨겠네요?”

“그럼요.”

음, 펜션이란 곳이 생각보다 좋겠구나. 객실 내에서 바비큐도 구워 먹을 수 있고. 난 이런 일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와서 잘 모르니 관우에게 맡겨 두자. 관우가 주인을 보며 물었다.

“불 붙이고 계실 때 두 사람은 뭐 했습니까?”

주인이 곰곰이 생각해 본 뒤 말했다.

“어.. 둘 다 테라스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학생은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있었고 남학생은 일회용기들을 세팅하느라 왔다 갔다 하고 있었어요.”

“두 사람, 어때 보였습니까?”

“어때 보이냐는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사이 좋아 보였습니까?”

주인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라고 했더라.. 아! 여학생이 다음주에 시험 끝나면 이번엔 서해 쪽으로 놀러가자고 했습니다. 남학생이 서해 쪽엔 당진이 사람도 별로 없고 좋은 곳이 많다고 했었고.”

나와 관우의 눈빛이 공중에 부딪힌다. 자살을 할 학생들이 펜션에 와 고기와 술을 마시며 다음주 시험이 끝나면 갈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목과장님과 이정호 계장님의 말이 맞았다. 두 사람은 자살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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