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52화 (52/328)

제 52 화. 노인과 바다 (6)

청소부 아주머니들을 만나고 나온 나와 관우가 차에 올랐다. 관우는 혀를 차며 펜으로 수첩을 툭툭 친다.

“청소 아주머니들에겐 별로 건진 게 없네요.”

아주머니들은 복도에서 수많은 손님들을 마주친다. 그래서인지 얼굴까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들이 기억하는 건 그날따라 오렌지 객실을 쓴 손님이 무척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나갔다는 것. 이 일을 하다 보면 분리수거도 해 놓지 않고 설거지도 쌓아 놓고 가는 몰상식한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인데 두 학생은 어찌나 착한 사람들인지, 설거지 후 그릇도 제 자리에 가져다 놓고, 분리수거와 일반쓰레기까지 깨끗하게 치우고 나갔다고 한다.

그래도 이부자리는 세탁해야 되어 침대를 치우며 둘이 한참 칭찬을 했다고 한다. 참 가정교육을 잘 받은 학생들 같다고. 둘이 참 잘 어울린다고 말이다. 관우가 혀를 차며 수첩을 뚫어지게 보다 다시 차문을 연다.

“형님 죄송한데 저 담배 한 대만 피우고 가면 안 됩니까?”

“어, 그래.”

“죄송합니다.”

관우가 차에서 내려 담뱃불을 붙이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난 바닷가에 왔으니 바다 공기라도 마시자는 생각으로 차 밖으로 나왔다. 펜션 입구 어귀에서 코 앞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던 난 펜션 안 쪽에서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2층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짐을 가지고 내려오다 날 마주치곤 굳어 있는 남녀 커플이 보인다. 아까 편의점에서 마주친 미성년자들이다. 둘은 겁먹은 얼굴로 주춤거리고 있다. 나는 실소를 지으며 눈짓했다.

“괜찮아, 이리와.”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하지만 발랑 까진 애들은 아닌지 도망갈 생각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주춤대며 내 앞에 선 두 사람. 나는 둘을 보며 물었다.

“여자친구야?”

남학생이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어른들 하는 여행도 하고 싶고 그런 거 다 이해한다. 그래도 아직 이런 곳 오면 안돼. 알았지?”

“저 미성년자 아닌데요.”

“아까 보니 예약도 다른 사람명의로 했던데.”

요즘 애들은 알 거 다 안다. 이것도 죄가 된다는 걸 눈치챈 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다.

“엄마 성함으로 예약한 거야?”

남자가 여학생을 본다. 아마 여학생 부모님 성함인가 보다.

“·········..예.”

“쯧.”

엄마 있어서 좋겠다. 난 이런 생각은 꿈에도 못 꿔봤는데. 엄마가 있으면 어떤 기분이야? 나는 그저 내 신세를 한탄한 것뿐인데 두 학생은 내 혀 차는 소리를 듣고 겁을 먹은 모양이다. 여학생이 간절한 얼굴로 빈다.

“아저씨, 집에 연락만 하지 말아주세요. 아빠가 알면 저 죽어요.”

응? 설마 아빠가 막 때리고 그런 거냐? 가정폭력은 아니겠지?

“아빠 무서워?”

“네, 진짜 무서워요.”

“아빠가 때려?”

“그건 아니지만.”

“그럼?”

“용돈 끊기고 외출금지 당해요.”

하, 그것 참 엄청난 벌이구나. 너희들 인마 이거 학교에 알려지면 정학으로 안 끝나. 고작 용돈 끊기고 며칠 외출 금지 당할 게 걱정 되냐, 철 없기는. 나는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느 학교 다녀?”

“··················..”

“말 안 해도 어차피 조사하면 나와. 조사하려면 아저씨랑 경찰서 가야 돼.”

여학생이 얼른 답한다.

“영선여고 3학년이고요. 오빠는 작년에 졸업했어요.”

아, 남자는 성인이고 여자 애만 미성년자구나.

“이 동네야?”

“네.”

뭐냐, 펜션이란 게 원래 멀리서 여행 온 사람들이 풍경 즐기러 오는 곳 아니었어? 이 동네 사는 애들이 왜 비싼 펜션에 와? 여학생이 우물쭈물하는 걸 보니 대충 상황을 알겠다. 모텔 같은 곳에 비해 펜션은 한 명만 미성년자 확인을 하는 곳이 많으니 여길 선택한 모양이다.

“여기 자주 와?”

여학생이 남자친구 눈치를 본다. 남자친구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헐, 돈도 많다 이 놈들아. 아무리 그래도 막 고등학생 졸업한 녀석이 오긴 비싼 가격인데.

“두 번이나?”

“세 번 올 때도 있고···”

“전에는 언제 왔는데?”

“진짜.. 학교나 집에 안 알리실 거예요?”

“빨리 대답하면.”

남자친구가 머뭇거리다가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한 뒤에 말했다.

“우리 200일 때 왔으니까 2월 4일요.”

아이의 입에서 날짜가 나오는 것과 동시에 내 눈이 번쩍 떠졌다.

“2월 4일? 어느 객실인데?”

“라임이었던 거 같은데.”

라임. 오렌지 객실 바로 맞은편 객실이다. 이 학생들은 남승현, 한지윤 학생과 같은 날 이 펜션에 머물렀던 것이다. 나는 얼른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두 학생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혹시 그날 이 사람들 본 적 없어?”

남자가 사진을 뚫어지게 보다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핸드폰을 여학생 쪽으로 들었다. 그러자 여학생의 눈이 커지는 게 보인다.

“아, 이 언니.”

“봤어?”

“네, 알아요.”

“어떻게 알아?”

“편의점 어디가면 있냐고 물어봐서 사무실 가면 있다고 알려줬어요.”

“그게 다야?”

“아.. 그리고 다음날에도 만났어요.”

“어디서?”

“지금 여기요.”

여기. 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바로 이곳에 한지윤, 남승현 학생이 있었다. 여학생이 기억을 더듬다가 말했다.

“얘는 짐 옮기고 있었고 제가 계단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언니가 내려왔어요. 짐 들고 내려오길래 그냥 고개만 꾸벅 했는데 언니가 웃으면서 물었어요.”

물어? 뭘?

“뭘 물어봤는데?”

“이 동네 가볼 곳 좀 아느냐고 물었어요. 저 이 동네 산다니까 이것 저것 많이 물었어요.”

뭔가 건질 것이 있을까? 나는 자세를 고쳐 여학생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세히 이야기 해줘.”

“·····················.”

여학생은 경찰이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묻는 것이 이상한지 날 두려운 눈빛으로 보며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어요?”

“··················..”

그녀가 죽었다고 말할 순 없다.

“어, 아냐. 그냥 사건이 하나 있는데 두 사람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서.”

여학생이 눈살을 찌푸린다.

“되게 착한 언니 같았는데.”

어, 착한 사람 맞아. 사건에 연관된 사람이 꼭 범인만 있는 건 아니란다.

“이야기 해줄래?”

여학생은 잠시 머뭇대다 말했다.

“대게 잡이 어선에 탈 수 있는 방법을 물었어요.”

갑자기 대게 잡이 어선은 왜?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 같이 타서 구경하고 싶다고 했어요. 돈 주면 가능하냐고.”

“그래서?”

여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대게 잡이는 새벽 3시에 떠나요. 그때 언니를 만난 건 오전이라 이미 나갔던 배가 다시 들어올 시간이라 안된다고 했어요. 게다가 시속 13노트로 거친 바다를 나가는 거라 뱃멀미 심하면 못 간다고 했고요.”

뭐냐, 이 아이는 왜 대게 잡이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아는 거야?

“넌 그걸 어떻게 알아?”

“아빠가 선장일 하세요.”

“아.”

그렇구나. 그럼 결국 대게 잡이는 못 갔다는 건데.

“대게는 보통 배 타고 얼마나 가야 어장이 나와?”

“한 50분쯤 가요.”

음, 시간은 딱 맞는데.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기자 여학생이 말을 잇는다.

“그래서 딴 거 알아보라고 했어요.”

“딴 거?”

“네, 주꾸미 어선 같은 거.”

“그건 뭐야?”

“항구에 가면 쪼끄만 배 타고 나가는 사람들 있다고. 주꾸미 잡으러 가는 건데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작업하고 돈 내면 배 태워준다고 말해줬어요.”

내 눈이 빛났다.

“그러니까 뭐라고 말해?”

“어.. 그게 어디 가면 그럼 사람들 있냐고, 몇 시에 가면 되냐고.”

갈 생각이었던 거다!

“그래서? 그래서 뭐라고 했어?”

여학생은 약간 흥분한 날 보며 주춤대더니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녁 시간에 강구항 근처가면 준비하는 아저씨들 있으니까 말해 보라고··· 운 좋으면 낚시도 시켜 준다고 말했는데요···”

여학생의 말을 듣자 마자 관우가 담배를 태우고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담배는 아까 껐는지 멀리 떨어져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관우와 내 시선이 뒤엉킨다. 녀석도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 모양이다.

“고맙다, 들어가. 다신 이런데 오지 말고. 남자친구는 성인이라도 넌 아직 미성년자야. 알았지?”

“네···”

나는 운전석 쪽으로 가며 관우에게 말했다.

“강구항으로 간다.”

관우가 조수석에 타며 말했다.

“형님, 거기 가면 맨땅에 헤딩입니다. 차라리 시청 쪽으로 가죠.”

“거긴 왜?”

“어선 띄우려면 어선등록을 해야 됩니다. 시청 가서 어선부터 확인하죠.”

오, 관우 녀석.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만 두들기는 것 같아도 데이터 분석가 답게 이론적인 부분은 나보다 낫구나. 관우는 시간을 확인 후 어깨를 으쓱한다.

“근데 지금은 시청 문 닫았겠네요.”

음, 너무 늦었구나. 내일 아침에 가야 하겠다. 나는 관우를 보며 씩 웃었다.

“어차피 오늘은 글렀네. 바닷가 온 김에 회에 소주 한잔 할까?”

“오오! 좋죠, 형님!”

어차피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늘은 허리끈 풀고 술이나 마시자.

**

다음날 영덕시청 민원과.

그래도 업무 중이라고 둘이서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일찍 자서 그런지 상쾌하게 바닷바람을 들이키며 일어나 시청이 문을 열자 마자 민원과로 들어온 나와 관우는 아직 한산한 사무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여직원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실례합니다, 경찰입니다. 어선원부 열람 좀 할 수 있을까요?”

여직원은 신분증을 꼼꼼하게 확인 후 말했다.

“몇 톤 어선인가요?”

“몇 톤인지는 모르겠고 사람 서너 명 타는 작은 배 정도요.”

“취급 해산물은요?”

모른다. 그렇다고 여학생이 알려준 주꾸미 어선만 보면 놓칠 수도 있다.

“그건 잘 모르고, 어업권 원부 상에서 대개 잡이 어선을 제외하고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여직원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범위가 너무 넓은데 괜찮겠어요?”

“대략 몇 척이나 나올까요?”

“천 척은 넘을 거예요.”

후, 천 척이라니. 그걸 언제 일일이 선장 찾아서 만나고 다니냐? 해양 경찰도 아니니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우리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키보드를 요란하게 두들긴 여직원이 의견을 낸다.

“아까 작은 배라고 하셨죠?”

“예, 맞습니다.”

“원양어업 하는 배는 아니겠네요. 그럼 취급 해산물을 줄여 볼게요. 전갱이, 주꾸미, 전복, 문어 정도로 좁히면···”

여직원 앞에 있는 프린터가 소리를 내며 떤다. 서너 장이 출력된 서류를 빼 내미는 여직원이 말했다.

“일단 여기요. 거기 살펴보시고 더 필요하시면 다시 오세요.”

“아, 고맙습니다.”

시청 직원이 똘똘해서 다행이다. 나는 서류를 넘겨본 뒤 관우에게 넘겼다.

“백 명쯤 되네.”

“휘유, 백 명이나 돼요?”

“어, 며칠 걸리겠다.”

도와준 여직원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직원이 다시 말을 건다.

“저기 잠깐만요.”

“예?”

내가 돌아보자 안경 쓴 여직원이 날 한참 보다 물었다.

“경찰들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 건 저도 아는데. 방금 이야기가 들려서요. 선주들 만나러 다니실 거예요?”

“아, 뭐 맞습니다.”

“사건 때문에 참고인으로 만나시는 건 가요?’

“네.”

여직원은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 납작 엎드려 속삭인다.

“얼마 전에 죽은 두 사람. 그거 맞죠?”

“···············..”

“이 동네 생각보다 작아요. 알 사람은 다 알아요.”

“음, 뭐 맞습니다만.”

여직원이 다시 주변을 둘러본 후 말했다.

“그럼 그거 가지고 가서 선주들 만나지 마시고 바로 인근 선착장으로 가세요.”

응? 왜 그래야 하지? 나는 은밀히 말을 전하는 여직원 덕에 덩달아 허리를 숙이고 속삭였다.

“왜요?”

여직원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며칠 전에 실종 전담 팀인가 하는 곳에서 다 뒤집어 엎고 갔어요. 그래도 못 찾았거든요. 두 사람 자살한 거 아니죠?”

“·····················”

호기심이 지나친 직원이군. 일은 잘 하는 거 같은데.

“수사기밀이라 죄송합니다.”

여직원은 흡사 자신이 비밀수사 중인 경찰이라도 되는 듯 속삭인다.

“여기 등록된 어선은 다 뒤지고 갔어요. 그래도 못 찾았죠. 그럼 답이 뭐겠어요?”

응? 답이 있어? 당신은 안다는 말이야? 여직원은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내게 답답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다 뒤져도 안 나왔다는 건 답이 하나라는 뜻이예요.”

“뭐죠?”

여직원이 다시 한번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말했다.

“등록되지 않은 어선이라고요. 무면허 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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