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화. 노인과 바다 (7)
여직원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덧붙인다.
“강구항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관리하는 국가 어항이예요. 거긴 무면허 어선이 들어오지 못해요.”
음, 뭔가 혼자 형사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영 헛다리 짚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나는 여직원이 있는 창구로 허리를 숙여 그녀에게 가까이 갔다.
“무면허 어선이 있을 만한 곳이 있습니까?”
“강구 방파제 근처요. 저희 쪽에서 단속을 하긴 하는데 할 때마다 한두 척 나와요.”
“음, 고맙습니다.”
내가 여직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허리를 폈을 때 갑자기 민원실 밖이 시끄러워진다.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고함을 치는 소리도 들린다.
“빨리, 빨리!”
“아씨, 또 이 지랄이네.”
도와준 여직원에게 얼른 눈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와 보니 사람들 몇이 시청 앞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가 신분증을 보이며 말했다.
“실례합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시청직원으로 보이는 인물이 내 신분증을 보고 움찔하더니 말했다.
“그게··· 또 시체가 나왔답니다. 축제 때 문제가 생길까 봐 일단 시 차원에서 확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어요.”
나와 관우의 눈이 커졌다.
“시체가?”
직원이 혀를 차며 말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동네에서 자꾸 왜 이러는지. 이러면 외지 사람들이 관광을 안 오는데 큰일입니다. 아직 대게 철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휴.”
관우가 얼른 물었다.
“관할서가 어디입니까?”
직원이 뭘 묻냐는 듯 즉답한다.
“해양경찰서요.”
관우와 나는 동시에 주차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우리는 즉시 해양경찰서로 차를 몰았다. 이미 소문이 났는지 기자들이 모여 있는 경찰서 정문 앞. 영덕시장이 기자들과 인터뷰 중인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기자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히 해양경찰서 안으로 들어간 뒤 안내직원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서울 종로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오늘 시신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부서 관할입니까?”
직원이 신분증을 받아 검색해 본 후 다시 내밀며 말했다.
“수사과 형사계입니다. 4층 3호로 가시면 됩니다, 형사님들.”
“고맙습니다.”
관우와 함께 4층으로 뛰어올라가자, 3호실에서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따, 자살이라니까 그러네? 발목 부러져 있다며?”
“발목 부러졌다고 다 자살이야?”
“자살사체 한두 번 봐? 딱 봐도 절벽에서 뛰어내렸네.”
문이 닫혀 있는 3호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던 우리는 조용히 노크를 했다. 하지만 안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는 해양경찰들은 노크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몸 곳곳에 상처들 많았던 거 봤지? 자살 사체 아니라고!”
“어허! 이 사람이! 바닷물에 휩쓸려 여기 저기 부딪힌 사체는 원래 몸에 상처투성이라고. 바닷물 속에 암초가 한 두갠 줄 알아?”
“그렇다고 자살로 결론 내자는 게 말이 돼?”
“누가 그렇게 하자는 말이야? 정확한 부검 결과 나오기 전까진 자살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발표하자는 거지! 지금 대게 축제 중이라고! 여기 내려온 사람들 다 떠나가면 상인들 생계는? 어? 네가 책임질 거야?”
“지금 생계가 문제야?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어이구, 생계가 문제가 아니면 뭐가 문제야? 생계 유지가 안 되면 사람 죽어 나가는 건 매 한가지야!”
몇 번 더 노크를 했지만 안에서는 싸움 소리만 나고 있다. 결국 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문을 열어도 지들끼리 싸우느라 사람이 온 줄 몰랐던 해양경찰들은 내가 말을 하고 나서야 이쪽을 바라보았다. 네 명의 제복경찰들이 책상 가운데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일제히 나와 관우를 바라본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와 관우가 동시에 신분증을 내밀자, 서울에서 내려온 경찰이란 것을 안 해양경찰들이 놀란 눈이 된다.
“서울에서 왜···”
나는 신분증을 돌려받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여기서 대학생 커플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왔습니다.”
형사 중 한 명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거 자살로 종결된다고 들었는데.”
자살이 아니다. 하지만 형사는 쉽게 그런 말을 내뱉으면 안 된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청에서 수사지시가 떨어졌습니다.”
형사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더듬거리며 묻는다.
“호, 혹시··· 오늘 발견된 시신들도 그 사건과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시신들? 한 구가 아니구나.
“아직 모릅니다, 지금부터 알아볼 생각입니다. 시신 어디 있습니까?”
형사들이 서로를 바라보다 한 명이 말했다.
“부검해야 될 것 같아서 일단 부검의뢰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지하에 보관 중입니다.”
“좀 볼 수 있습니까?”
“아, 뭐···”
본래는 영장이 필요하지만 연관 사건일 경우 문제가 커진다는 것을 직감한 해양경찰들 중 까까머리 경찰이 눈치 빠르게 얼른 일어난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까 자살로 발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던 그 사람인 모양이다. 나와 관우는 남은 경찰들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까까머리 경찰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까까머리 경찰의 뒷모습을 보다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실례지만 의도치 않게 밖에서 대화를 들었습니다.”
“···············..”
까까머리 경찰이 말없이 걷다가 멈칫하는 모습이 보인다. 덩달아 계단 중간에 선 내가 물었다.
“혹시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근거가 무엇인지 여쭤도 됩니까?”
까까머리 경찰이 잠시 고민한 후 한숨을 쉰다.
“부검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일단 시신 발견장소가 문젭니다.”
“어디서 발견됐습니까?”
“갯벌이요.”
“여기도 갯벌이 있습니까?”
“예, 체험 마을도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꽤 찾아오죠.”
시신이 갯벌에서 발견되었다. 그게 왜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될까? 해양수사 쪽에 경험이 부족한 나는 결국 경험 많은 까까머리 경찰에게 물었다.
“갯벌인 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까까머리 경찰이 팔짱을 끼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바다라는 게 웃깁니다. 바닷가에 쓰레기를 던지면 말입니다. 바다 저 편으로 밀려 나갔다가 결국은 던진 그 장소로 돌아온다 이 말입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던지면 또 몰라, 뭍에서 던지면 꼭 돌아옵니다.”
“··················”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왜 이것이 자살이 아니라는 가능성이 되는지 알아챘다.
“그러니까, 자살이라 생각했을 때 시신이 갯벌에서 발견되었다는 건 그곳이 자살을 한 장소라고 봐야 한다는 겁니까?”
“그렇죠, 근데 생각해 보세요. 거기 제일 높은 절벽.. 아니 절벽이라고 하기도 뭐 합니다. 밑에 물이 있는 장소 중에 제일 높은 바위가 수면에서 약 5미터 정도 위에 있어요. 바닥이 콘크리트도 아니고 갯벌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뛰어내렸다고 양 발목이 다 부러져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건.”
음, 이 사람 말이 맞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그는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관우가 그를 따라 내려가며 물었다.
“혹시 시신이 남녀 한 쌍입니까?”
까까머리 경찰이 고개를 저었다.
“여성 시신 둘입니다.”
1차 사건 때는 남녀 커플, 2차는 여성만 둘. 과연 두 사건은 연관성이 있을까?
**
시신보관실.
익사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극심한 혐오감을 들게 할 만큼 퉁퉁 부어 있다. 해양경찰은 이런 시신을 종종 보곤 하지만 나와 관우는 자주 보지 못하는 시신이라 이불이 걷혀지는 동시에 순간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코를 막아 버렸다.
까까머리 경찰이 시신을 보며 말했다.
“아직 부검 전이라 확실하지 않지만 육안으로 보기에 눈에 띄는 상처는 양 발목이 부러진 상처입니다.”
까까머리 경찰이 장갑 낀 손으로 발목을 슬쩍 비틀자, 사망해 경직되어 있어야 할 시신의 발목이 돌아가는 것이 보이고, 피멍 자국이 보인다.
“그리고 몸 여기 저기 상흔이 많아요. 물론 바다에서 발견된 시신은 원래 몸에 상처가 많긴 합니다. 바다 안에서 해초나 암초에 쓸리기도 하고, 물고기들이 상처를 내기도 하거든요.”
그의 말처럼 시신의 얼굴을 비롯한 여기 저기 생채기들이 있다. 하지만 그 중 무엇도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만한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다. 나는 시신의 머리 쪽으로 가 관우에게 말했다.
“관우야, 상체 좀 일으켜 봐.”
“예, 형님.”
관우가 시신의 상체를 일으키자, 나는 여성 시신의 뒷머리를 살폈다. 까까머리 경찰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뭘 보시는 겁니까?”
“··················”
나는 말없이 아직도 젖어 있는 시신의 머리카락 사이를 뒤지다 순간적으로 눈을 빛냈다.
‘상흔이 있다.’
나는 관우에게도 상흔을 보여주자, 녀석은 눈치 빠르게 다음 시신의 상체도 들어준다. 둘 모두의 뒤통수에 작은 상흔이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장갑을 벗은 후 말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신은 서울로 이송하겠습니다.”
까까머리 경찰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서울로 이송이요? 울진경찰 쪽 KCSI에 의뢰했는데.”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연관 사건인 겁니까?”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까까머리 경찰이 놀라며 되묻는다.
“연쇄살인이라고요?’
아직 그렇게 단정해선 안 된다. 네 사람을 죽인 것이 사람인지 바다인지는 아직 모르는 것이니까.
“조사해 보면 알겠죠.”
바로 그때, 시신 보관실 문이 열리며 아까 사무실에서 본 경찰 중 한 명이 고개를 불쑥 내민다.
“신고자가 왔습니다.”
응? 신고자라고? 관우가 얼른 물었다.
“무슨 신고자요? 이번 사건이요?”
새로 등장한 경찰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문자를 받았답니다.”
문자? 갑자기 무슨 문자를 받았다는 걸까?
“어디 있습니까?”
새로 온 경찰이 까까머리 경찰의 눈치를 본다. 아마 후배인가 보다. 그는 옆에 서 있다가 고갯짓하며 말했다.
“원래 수사하시던 사건과 연관 사건이라고 한다. 협조해 드려.”
“예, 선배님. 이쪽입니다.”
다시 해양경찰을 따라 4층으로 가자, 진술실로 보이는 곳에 40대로 보이는 남녀가 불안한 얼굴로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모니터실에 있던 해양경찰들이 날 바라보는 것이 보인다.
“제가 질문 좀 해도 되겠습니까?”
남의 관할이니 당연히 허락을 구해야 한다. 해양경찰들이 어찌해야 할지 자신들끼리 눈짓하는 모습이 보인다. 관우가 나서며 말했다.
“바로 수사협조 요청서 보내 달라고 하겠습니다.”
해양경찰들이 그제야 물러난다.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보인 후 관우에게 말했다.
“나가서 계장님께 바로 전화 드려. 목격자 진술은 내가 한다.”
“예, 형님.”
관우가 전화를 들고 나가는 것이 보인다. 나는 두 목격자를 거울 너머로 지켜보다 취조실로 들어갔다. 약간 어두운 취조실로 들어온 날 불안한 눈빛으로 보던 두 남녀 중 남자 쪽이 먼저 입을 연다.
“저, 저희는 진짜 문자 받은 것 밖에 없어요.”
아, 어쩐지 불안해 보인다 했더니 여기 앉아 있으니 범인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든 모양이다. 나는 양 손바닥을 보이며 말했다.
“안심하세요, 두 분을 추궁하려고 모신 것이 아니라 듣는 귀가 많아 좋을 것이 없어 여기로 모신 겁니다.”
되도 않는 해양경찰의 변명을 내가 대신한다. 왜 목격자를 여기다 뒀는지는 뻔하다. 기자들이 귀동냥으로 들은 내용으로 살인사건이 났다는 기사를 내보내면 대게 축제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내가 두 사람을 안심시키자, 여성 쪽이 얼른 핸드폰을 내민다.
“여기요.”
그녀가 내미는 핸드폰 속. 요즘 사람들이 자주 하는 톡도 아닌, 일반 문자가 와 있는 것이 보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인지 이름 대신 번호가 써 있고 그 아래 문자 내용이 보인다.
[저희 아까 전화기 빌린 사람인데요, 아무래도 배에 갇힌 것 같아요. 빨리 경찰보트 좀 불러주세요]
배에 갇혀?
전화기를 빌려줘?
이게 다 무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