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화. 노인과 바다 (8)
남성이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여성의 어깨를 감싸며 날 바라본다.
“저희 부부는 어제가 결혼 9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같이 영덕으로 기념여행 온 겁니다.”
아, 두 사람이 부부였구나.
“언제 오셨습니까?”
“이틀 전에 왔습니다.”
“원래 어디 사십니까?”
“수원 삽니다.”
“여성 분들에게 전화기를 빌렸다고 써 있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내가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다 더듬더듬 말했다.
“그, 그게.. 아까 선착장 부근에서 남편이 커피 사온다고 갔는데, 잠깐 바다 보며 혼자 걷다가 길이 어긋났어요. 근데 전화기를 차에 놓고 왔다는 게 뒤늦게 생각이 나서 어쩔까 하다가 여자 둘이 여행 온 것 같은 사람이 있길래 잠깐 전화를 빌려서 남편한테 전화를 했거든요.”
음, 두 사람과 평소 아는 사이가 아니다. 단지 전화기를 빌려줬던 사람에게 구조요청을 한다? 일반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나는 남편 쪽을 보며 말했다.
“남편 분은 두 사람을 못 보셨습니까?”
남편이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제가 아내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갔을 때 두 사람은 없었어요.”
“문자는 남편 분께 온 겁니까?”
“예.”
그러니까, 자기 폰에 남은 남편 쪽 전화번호로 문자를 남겼다는 거구나. 나는 다시 아내 쪽을 보며 물었다.
“혹시 전화기를 빌릴 때 다른 대화를 하진 않았습니까?”
“아··· 그게. 음, 그러니까..”
아내는 놀란 마음에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지 잠시 말을 더듬거리다 말했다.
“전화를 빌려준 게 고마워서 남편 오면 커피라도 사주겠다고 잠깐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냥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어요. 좋은 분들 같아서 여행 온 거냐고 물었더니 둘이 친구인데 우정여행 왔다고 했고요.”
“또 있습니까?”
“음, 그 분들도 물었어요. 여행 온 거냐고 하길래 남편이랑 결혼기념일 여행 왔다고 하니까 너무 좋겠다고, 부럽다고 했어요. 언제까지 있냐고 하길래 한 오일쯤 있다 갈 거라고 했고··· 또, 아! 이 동네 숙소 좋은 곳 없는지 물었어요. 자기들이 묵는 숙소에서 곰팡이 냄새가 난다고.”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희가 묵는 숙소가 강구 방파제 바로 앞에 있는 숙소인데 거기 좋다고 알려줬어요.”
강구 방파제 바로 앞 숙소. 그러니까 두 사람은 이 부부가 방파제에서 아주 가까이 숙소를 잡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여행을 내려왔으니 자신의 지인들은 다 멀리 있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신고를 하는 편이 빠르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 외에 다른 대화를 한 건 없습니까?”
“어.. 그냥, 어디가 맛있는지 뭐 그런 거였어요. 특별한 건 없었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어려운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 가셔도 좋습니다.”
내가 일어나자, 두 사람이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아내가 날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
“두 사람.. 괜찮겠죠? 좋은 사람들 같았는데.”
부부는 아직 두 사람이 죽었다는 걸 모른다. 신고를 해서 두 사람이 위험에서 빠져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온 것인데 갑자기 여기에 끌려 들어온 것이다. 뭐라고 해야 될까? 굳이 둘에게 그녀들이 사망했음을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말없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두 분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럼.”
진술실을 나오자, 관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협조요청서 왔어?”
“예, 팩스 온 거 확인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형님.”
“음?”
“119 관제 센터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119?”
“예, 피해자 중 신현숙이란 사람의 핸드폰으로 총 세번의 통화 시도가 있었습니다.”
“녹음 파일은?”
“왔습니다, 여기.”
관우가 핸드폰을 내민다. 음성 메모 파일을 누르자, 관제센터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119 관제센터 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지직, 지지직.
-여보세요? 신고자 분?
-딸깍, 딸깍, 드르륵.
-신고자 분, 지금 말씀을 하시기 어려운 상황인가요? 여보세요?
-·········..아따, 너 여기서 무선 질 하고 있었냐?
-네? 신고자 분? 뭐라고 말씀하셨죠?
-어··· 그, 그게···
뚜뚜···
통화가 끊어졌다. 나는 다시 한번 녹음파일을 확인한 후 관우를 보았다.
“두 명의 목소리다.”
관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 무선 질 하고 있었냐고 물은 건 남성의 목소리고, 뒤에 말을 더듬은 건 여성의 목소리입니다.”
신현숙이 신고를 하려고 전화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숨을 죽였고, 누군가 들어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코를 찡그리며 전화기를 관우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이건 살인사건이다. 바로 강구 방파제 CCTV 확인해.”
“그건 제 전문이죠, 형님!”
여기까지 와서도 CCTV 분석을 맡겨 좀 미안하지만 반드시 해야 된다. 나중에 맛있는 회 사주마.
**
영덕해양경찰서. 이곳에 내려온 지 5일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매일 이곳에 와 협조요청을 하고 강구 방파제 쪽 CCTV를 뒤졌다. 바다 위에 정박되어 흔들리고 있는 수많은 어선들. 언뜻 삼백 척은 넘어 보이는 배들을 뚫어지게 보며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노려보는 관우.
나는 수고하고 있는 관우를 위해 햄버거를 사왔다.
“자, 좀 먹고 하자.”
“오, 햄버거. 제가 햄버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좋기는 자식. 영덕까지 내려와서 고작 햄버거로 밥 때우는 게 좋을 리가. 관우는 언제나 낙천적인 녀석이라 좋다. 나는 햄버거 하나를 꺼내 관우에게 주고 나머지 하나를 꺼내 포장을 깠다. 관우가 그런 날 보더니 물었다.
“형님도 이거 드시게요?”
“어, 왜?”
“형님은 나가서 맛있는 거 드시지.”
“너 골방에 박아 놓고 나만 맛있는 게 넘어 가겠냐?”
관우가 감동받은 표정을 짓는다. 나는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고 말했다.
“일 다 끝내고 회나 배 터지게 먹고 올라가자.”
“예, 형님!”
다시 지루하게 이어지는 CCTV 확인 작업. 화면을 빠르게 돌리는 관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성은 몰라도 20세 남성을 살해할 수 있는 사람··· 아마 20대에서 50대 사이의 남성일 확률이 높을 텐데··· 하, 그런 사람이 한 둘도 아니고.”
CCTV 속에 배 위를 오가는 선주들. 그들 중 대부분이 관우가 생각하는 용의자와 일치한다.
“배가 몇 대나 있어?”
“353척이요.”
헐, 며칠 동안 CCTV만 보더니 그걸 다 세어 봤구나. 나는 관우의 옆에 앉아 CCTV를 함께 보다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근데 웃기다. 지정 주차구역이 있는 건가? 나갔던 배가 다시 원래 자리로 들어오네?”
관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잘 모르지만 원래 그런 모양입니다, 다른 배들도 그래요.”
빠르게 돌려지고 있는 화면. 배들이 나가고 다시 돌아올 때 원래 있던 자리로 정박하는 것이 보인다. 밤이 되면 어제와 마찬가지의 장소에 같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32배 속으로 보느라 눈이 빠질 것 같아 잠시 눈을 깜빡인 나. 눈을 비빈 후 다시 화면을 보았을 때 나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잠깐.”
관우가 얼른 스페이스 바를 눌러 화면을 정지시킨다. 나는 화면의 오른쪽 구석에 빈 곳을 가리켰다.
“여기 잘 봐. 다시 앞으로 돌려봐.”
관우가 마우스를 조작해 다시 화면을 돌리자, 내가 가리키고 있는 곳에 정박해 있던 배가 출항한 뒤 돌아오지 않고 날이 저무는 것이 보인다. 관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라, 저 배 왜 안 돌아와?”
빠른 속도로 지나는 시간. 해가 지고 다시 떴지만 배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 관우가 눈을 번쩍 뜬다.
“형님, 여기!”
내가 가리키고 있는 곳과 반대편에 아까 사라진 배가 들어와 있는 것이 보인다. 관우가 멈춘 화면 속에 정박된 배. 파란색의 작은 고깃배다. 관우가 화면을 확대한다. 갑판 위에 작은 어창이 있는 작은 낚싯배다.
“다른 배들은 다들 정해진 구역에 정박하는데 이 배만 출, 입항 위치가 다릅니다.”
“이상하지?”
“예, 수상하네요.”
“어선 번호판 확인돼?”
“아뇨, 이 위치에선 안 보입니다.”
제길, 이게 확인되어야 조사를 하든 말든 할 텐데.
“확인되는 위치로 이동할 수도 있으니 계속 보자.”
관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건 간단하죠.”
음? 뭐가 간단해? 관우는 마우스를 조작해 CCTV를 84배속으로 바꾸고 화면 속에 기어들어갈 기세로 파란 배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더니 어느 지점에서 스페이스 바를 강타한다.
“여기, 다시 나갔습니다.”
파란배가 있던 자리가 비어 있다. 다시 32배속으로 바꾸고 화면을 뚫어지게 보다가 6시간 뒤에 정지시킨 관우가 빠르게 화면 전체를 훑다가 한 곳을 가리킨다.
“이번엔 여기로 갔습니다.”
화면 중앙을 기점으로 한 시 방향이다. 저 많은 배들 중에 작은 고깃배 하나를 찾아내다니. 괜히 데이터 분석 전문이 아니구나, 이 녀석. 그런데 지금 뭘 하는 거지? 관우가 다시 화면을 84배속으로 돌리며 낚싯배를 뚫어지게 보다 어느 순간 검게 변한 영상을 확인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여깁니다, 바로 가시죠!”
“응?”
“마지막 정박 위치요. 이거 최신 데이터까지 다 긁어 온 거라 오늘 아침 영상까지 받은 겁니다. 저 배가 아침까지 있던 자리로 가자고요, 형님.”
아, 그런 뜻이구나. 관우 녀석 의외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녀석이었네.
늦으면 또 다시 출항할 수 있기에 최대한 빠르게 차를 몰아 도착한 선착장. 단 한 대의 CCTV만 분석한 게 아니라 오일 간 다각도로 화면 분석을 했던 관우는 처음 와 보는 선착장을 제 집 안마당만큼 잘 알고 있었다. 한번도 헤매지 않고 바로 파란색 낚싯배가 있던 자리로 뛴 관우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친다.
“저기! 저기 있습니다, 형님!”
관우가 가리키는 곳. 화면 속에서 봤던 파란색 낚싯배가 옅은 파도에 출렁이며 배 옆 부분에 보충되어 있는 범퍼 타이어로 선착장을 툭툭 때리고 있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이미 출항 나갔던 어부들이 모두 들어와 배 정리까지 마친 시간인지 주변이 조용하다.
아무도 없는 선착장에 배들만 정박하고 있으니 등골이 서늘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먼저 배 위로 건너간 뒤 관우에게 눈짓했다. 몸이 날랜 관우 녀석이 훌쩍 날아 배 위로 뛰어올라온 뒤 조타실 창문 안을 본다.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총을 꺼낸 후 조타실 문을 당겼다. 하지만 문이 잠겨 있다. 앞 쪽에서 관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창과 선실도 다 잠겨 있습니다.”
음, 당연한 건가?
“일단 어선 번호판부터 기록해 놔. 언제 또 사라질지 모르니까.”
“예, 형님.”
관우가 어선 번호판을 남기는 동안 배를 수색해 봤지만 특별한 건 없다. 빨리 번호판을 확인 후 수색을 도와줬으면 했는데 어쩐지 관우 녀석이 오래 걸린다. 사진 하나 찍으면 간단한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나는 배 뒤편을 수색하다 앞쪽을 보며 물었다.
“관우야! 뭐 하는 거야?”
앞쪽에서 관우 목소리가 들린다.
“형님! 이 배, 번호판 이거 가짜인데요?”
관우의 말을 듣는 순간, 시청 여직원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다 뒤져도 안 나왔다는 건 답이 하나라는 뜻이예요. 등록되지 않은 어선이라고요. 무면허 어선.'
관우가 뒤쪽도 확인하려 핸드폰을 들고 오는 것이 보인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배 뒤편 아래쪽을 확인 후 관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도 없다.”
“··················..”
관우와 내 시선이 공중에서 엉킨다. 나는 무거운 얼굴로 녀석에게 말했다.
“바로 서울에 연락하고, 이 배, 압수수색영장 신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