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화. 노인과 바다 (10)_여기까지 무료
일반적으로 노인범죄자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혹은 아주 어린 어린이들을 겨냥한 범죄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왜? 노인은 20대의 건장한 젊은이를 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성은 커녕 여성을 살해하기도 힘이 모자란 것이 노인이다. 요즘이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 해도 피해자 중 한 명이 21세 남성인데 70세도 넘은 노인이 범인이란 건 너무 현실성이 없다. 하, 잘못 짚은 건가?
크게 웃던 선장이 굵은 팔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남의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형사 양반이 하도 헛다리 짚어 대니 할 수 없네. 괜히 생사람 잡을까 걱정도 되고. 자, 물어보쇼. 대답해줄 테니까.”
“··················..”
상대가 70대 노인이란 말을 듣고 나니 확실히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보는 수집해 두어야 한다.
“오.. 종식씨 가족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둘이죠, 형수가 있으니.”
“자식은 없습니까?”
“있죠. 근데 다 서울 가서 형수와 둘만 사는 것 같았소.”
“어디 사십니까?”
선장이 산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기 산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집. 어허, 이 사람. 아재는 아니라니까. 다 늙어 빠진 노인이 뭔. 무슨 사건인데 그래요?”
살인사건이라고 말했다가는 더 큰 비웃음을 사겠지.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다시 질문했다.
“무면허 어선으로 뭘 하시는 겁니까?”
“뭐... 물어보는 건 대답도 안 하고, 참나. 아재는 그냥 조그만 주꾸미 어장 갖고 있는 사람이요.”
“그것도 등록되지 않은 어장입니까?”
“하! 등록이고 뭐고 할 규모가 아니라니까? 진짜 코딱지만한 어장이라고.”
“음.”
“이제 됐지? 그만 가쇼. 나 출항 준비해야 되니까.”
선장이 찬바람이 쌩 하고 불 듯한 얼굴로 식당으로 들어간다. 시골은 이웃 간의 유대가 상당하다. 특히 나처럼 서울말을 쓰는 외지인이 이웃사람을 의심하면 기분 상해 하기 마련이다. 혼자 남아 기록을 남긴 수첩을 물끄러미 보던 나. 그때 다시 식당 문이 드르륵 열리며 선장이 고개를 내민다.
“이쪽에 무면허 어선이 오십 대는 넘을 거요. 괜히 엄한 사람 조지지 말고 다른 배 조사해요. 그거 다 조사하려면 서울 양반 고생 좀 하겠네.”
선장이 다시 문을 쾅 하고 닫는다. 나는 한숨을 쉬며 수첩을 품에 넣었다.
**
잠시 후 해양 경찰서.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팩스를 기다리던 관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형님. 여기 오시면 어째요? 잠복 안 해요? 배 다시 나가면 어쩌시려고.”
“하.”
“왜요?”
나는 빈 의자에 털썩 앉으며 이마를 짚었다.
“선주가 70대 노인이래.”
“·····················”
관우도 황당한 얼굴이 된다. 물끄러미 팩스를 보던 관우는 막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계를 본 뒤 입맛을 다셨다.
“기다릴 때는 더럽게 안 오더니 안 기다려도 될 때가 되어서야 오네, 제길.”
프린트 되고 있는 수색영장을 낚아 챈 관우가 한숨을 쉰다.
“이거 괜히 받았네요.”
그래도 영장인데 버리기 그랬던 관우가 영장을 접어 품에 넣고는 한숨을 쉰다.
“자··· 그럼 다른 배 찾아야 되겠죠? 후, 또 CCTV 지옥이겠군요.”
관우가 혀를 차며 영상 분석실로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겨우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허탕이다. 머리가 아파진 난 바람이나 쐬려는 마음에 다시 부둣가로 향했다. 아는 길이 없으니 발걸음이 닿는 곳을 걷던 나는 나도 모르게 다시 파란색 배가 정박된 곳까지 왔다.
아까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지원이 아빠의 배 갑판에서 야간조업을 준비하는 선원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까 안면을 텄다 생각했는지 날 보곤 눈인사를 해온다. 정중히 허리를 숙여 마주 인사한 나는 한숨을 쉬며 부둣가 아래로 다리를 내리고 바닷가에 걸터앉아 파란색 배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걸까?
이전 사건들처럼 기억을 읽지 못했다. 맨땅에서 시작해야 하는 수사이기에 기억해 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이 시간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10일전, 강구항 바닷가에 두 구의 시체가 떠밀려왔다.
21세 남성 남승현은 해수욕장이 있는 모래사장에서 발견되었고, 20세 한지윤은 50미터가량 떨어진 부둣가에서 발견되었다. 남승현은 관광객이 발견해 신고했고, 한지윤은 출항을 하려 배를 빼던 어부가 배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어 바다를 보았다가 발견 후 신고했다.
두 시신은 해양경찰서로 각기 다른 시간에 이송되었지만 CCTV 분석 결과 함께 여행 온 사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온몸에 미세 상흔들이 있었으나 죽음에 이를 정도의 치명상이 가해진 것이 아니므로 사인은 익사, 자살로 잠정결론 났지만 현재는 살인 의심 사건으로 바뀌어 수사 중이다.
내가 이곳에 내려온 건 6일 전이다. 그리고 어제 또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둘 다 여성이며 시신이 바다에서 밀려온 것은 갯벌. 둘 중 한 시신의 양 발목이 부러져 있었지만 역시 이 시신들도 미세 상흔들만 있고, 치명상이 없다. CCTV 분석 결과 역시 이 둘도 함께 여행을 내려온 친구 사이였다.
두 개의 사건. 네 구의 시신.
범죄가 일어난 지역은 CCTV가 없는 바다 한 가운데.
범죄가 일어난 장소는 배 위다. 119 관제센터의 신고내용을 보면 피해자는 분명 배에 감금되었다가 살해된 것으로 판단된다.
범인은 무면허 어선을 사용하는 선주일 가능성이 높다. 실종전담 팀이 영덕시청에 등록된 모든 어선을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범인이 조사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뜻이다. 아까 선장의 말에 따르면 그런 무면허 어선이 50대도 넘는다고 했다.
두 사건 모두 목격자가 없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사망 전에 그들을 마주친 사람들이 있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지만 바지락 칼국수집 주인이 첫번째 마주친 사람이고 두번째는 펜션에서 체크 아웃을 하기 전에 마주친 지원이다. 그때 한지윤이 지원이에게 배를 타는 방법을 물었다고 했다. 착한 지원이가 자신이 배 타는 법을 알려주었기에 한지윤과 남승현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두 번째로 사망한 두 여성.
그들은 남편과 길이 어긋난 여성에게 전화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배에 감금되었을 때 둘 중 한 명애 119 센터에 세 번 전화를 했고,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관제센터의 상담기록에 범인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지만 배의 소음이 심해 제대로 식별되지 않는 목소리였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범인이 남자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이게 전부인가? 더는 없을까? 너무 막막하다. 또 놓친 게 뭐가 있을까? 다시 한번 사건을 복기하던 나는 문득 네 명의 피해자가 모두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1번 피해자 남승현.
서울의 대학을 다니며 학비를 벌기 위해 매일 두 탕의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생이었다. 남승현은 1학년 후배인 한지윤과 교내에서 보기 좋은 커플로 유명했다고 한다. 서로 열심히 살며 꿈을 이루고자 노력했던 건실한 남학생이었다.
2번 피해자 한지윤.
고등학교 때 꿈에 그리던 대학을 가기 위해 한번도 한눈 팔지 않고 공부에 매진했던 아이. 성인이 되어 하고 싶은 거 다하겠다는 열망을 보였지만 그녀의 인생은 고작 스무 살에 끝이 났다. 목과장님의 동생이자 그녀의 어머니는 이 소식을 듣고 쓰러져 입원까지 하고 있다.
3번 피해자 신현숙.
친구와 함께 우정여행을 내려왔던 그녀는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빌려주고, 여행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볼 만큼 낙천적이고 발랄한 사람이었다. 신상명세를 보니 서울에서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이었고, 함께 온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4번 피해자 정유미.
친구 신현숙과의 마지막 여행은 그녀가 결혼 전 마지막으로 온 여행이었다고 했다. 6개월 뒤 결혼을 앞두고 있던 그녀는 친구와의 마지막 추억 쌓기 여행에서 인생을 끝마쳤다. 유치원 교사인 그녀는 평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척 커서 학부모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고 했다.
모두가 우리 주변에 있던 선한 사람들이었다. 착하고 건실하고, 착실하게 인생을 살아가던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바다를 부유하다 발견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이 개새끼 내가 반드시 잡아서 갈아 마신다.”
사건을 사건 자체로만 바라보다 피해자들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이 미치자,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도대체 누구일까? 어떤 놈이 무고한 사람들을 그렇게 죽였을까?
분노에 찬 눈으로 파란배와 지원이 아빠의 어선을 바라보던 나. 그때 내 눈에 파란색 배 왼쪽에 걸려 있는 은빛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기다란 쇠꼬챙이. 끝이 두 갈래다. 한 쪽은 뾰족하고 한 쪽은 갈고리처럼 휘었다. 다시 지원이 아빠의 배를 보자 저 배에는 비슷한 물건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폭 3CM가량의 쇠막대기.”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흉기의 정보. 나는 안력을 돋우어 쇠막대를 살폈다. 그때 선원 한 명이 내 뒤쪽으로 박스를 들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저기.”
배에 오르려던 선원이 돌아본다. 나는 파란색 배에 묶인 쇠막대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뭡니까?”
“뭐요?”
“저기 쇠막대기요. 그쪽 배에는 없는 거 같은데.”
선원은 발꿈치를 들고 파란색 배를 살핀 후 실소를 지었다.
“아, 삿갓대?”
삿갓대? 저걸 삿갓대라고 부르는 구나. 선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 배는 커서 저런 거 없소. 주로 작은 배에 있는 건데 바다 위에 어장 표기한 부표 있죠? 밧줄에 매달려 있는 거. 그거 끌어올 때 쓰는 거요.”
“다른 배에도 다 있습니까?”
“저 정도 작은 배는 다 있다고 봐야지.”
하, 이것도 단서는 안 되는 건가? 선원에게 고맙다 인사를 하고 다시 파란색 배를 뚫어지게 보았다. 저 배의 선주가 범인이 아니더라도 삿갓대가 흉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세히 봐야할 것 같다. 사진을 찍어 목과장님께 보내 봐도 좋고.
나는 파란색 배로 훌쩍 뛰어올라 삿갓대를 살폈다. 살짝 젖어 있는 삿갓대를 들어 보았다. 가만히 찰랑이는 바다를 바라보던 나는 슬쩍 삿갓대로 바닷물을 때려 보았다. 내 눈에 살려 달라 울부짖는 사람들의 머리를 내리치고 밀어내는 환상이 보인다. 어쩌면 범인은 사람들을 바다에 빠뜨린 후 이것으로 배에 오르지 못하게 하여 익사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이 개 같은 새끼.”
직접 해보니 더욱 이가 갈린다.
여러 번 삿갓대로 바다를 내리치길 반복하던 나. 마음 속에 솟구치는 분노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바로 그때, 밤이 되어 검게 변한 바다도, 내 눈앞에 보이는 파란색 배도 모두 흑백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극심한 어지러움이 찾아왔지만 나는 오히려 웃었다.
“왔다.”
드디어 기다리던 네놈의 기억을 볼 차례다. 반드시 잡는다, 이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