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화. 노인과 바다 (11)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극심한 어지러움이 간신히 끝나는 지점에 오자, 귀를 파고드는 여러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온다.
‘어디서 왔어? 서울? 아이고, 서울 촌놈들이네. 이거 한번 먹어봐. 영덕에 왔으면 대게 한번 먹고 가야 왔다 갔다는 소리 들어.’
‘자, 쌉니다, 싸요! 떨이, 떨이!’
‘거기 처녀, 나 이거만 팔면 집에 갈 수 있는데 떨이로 가져가. 한 바구니에 이천 원. 거저야, 거저.’
이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사건에 관계된 기억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이 어지러움이 끝나면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에서의 기억을 읽게 될 거라 예상했는데. 지금 내 귀에 들리고 보이는 것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들이다. 나는 지금 북적이는 재래 시장에 서 있다.
건물 사이에 아치 형태의 플라스틱 지붕이 둘러쳐진 곳. 해산물을 취급하는 시장 답게 바닥이 젖어 있다. 바닥에 주저앉아 고무 대야에 놓고 파는 해산물들을 팔며 호객을 하는 상인들. 저 멀리 ‘영해 만세시장’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나는 구석의 전봇대 옆에 서서 담배를 물고 있다. 생전 피워보지 않은 담배였지만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연기가 주는 목 넘김이 그리도 좋을 수가 없다.
‘왜 왔어?’
담배를 꼬나 물고 구경하는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의 목소리다. 나는 담뱃재를 검지로 털며 말했다.
‘그냥.’
내 시야가 슬쩍 옆으로 돌아간다. 전봇대 옆에 앉아 있는 여자. 나이는 가늠할 수 없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 나이보다 빨리 늙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머리를 뽀글뽀글 파마한 할머니이며, 꽃무늬 고무장갑에 빨간 옷을 입고 그 위에 노란색 앞치마를 하고 낚시 의자에 앉아 있다.
할머니 앞에 있는 두 개의 고무 대야가 있다. 한 쪽에는 꼬막이 산처럼 쌓여 있고, 다른 한쪽엔 아직 살아 있는 주꾸미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할머니는 날 흘겨보더니 자기 앞에 손님이 오자 마자 얼굴을 바꾸고 활짝 웃으며 주꾸미를 들어 보인다.
‘싱싱합니다, 싱싱해요! 자, 이거 좀 봐요. 아직도 살아 움직이죠? 이거 한번 딱 먹으면 기력 회복에 아주 그만이라고. 고혈압, 고지혈증? 다 오라 그래. 이거 하나 먹으면 암도 안 걸려.’
할머니의 말에 웃음 짓는 여성 손님. 두 명의 여성 손님이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남의 기억 속에서도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말이 웃겼는지 까르르 웃는 두 여성. 그녀들은 3번 피해자 신현숙과 4번 피해자 정유미였다.
신현숙이 대야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었다.
‘이모, 이거 다 직접 잡으셨어요?’
‘그럼, 이거 내가 펄에 가서 다 손으로 잡아오는 건데. 맛있어, 잡숴봐. 소주 한잔 하고 이놈 데쳐서 한 입 먹으면 거기가 천국이라니까?’
‘하하, 이모 진짜 재미 있다. 얼마예요?’
‘킬로에 만원. 싸지?’
‘음, 1킬로는 너무 많은데.’
‘많기는. 젊어서 한참 많이 먹을 나이 같은데.’
‘하하, 우리 젊어 보여요?’
‘응, 이제 막 스무 살 된 거 같은데?’
‘하하, 유미야. 이모가 우리 스무 살 같아 보인데, 히히.’
정유미도 신현숙 옆에 쪼그리고 앉아 주꾸미를 바라보다 옆 대야에 있는 꼬막을 가리킨다.
‘이건 얼마예요?’
‘그건 킬로에 8천원. 근데 껍데기 무게 때문에 킬로 사도 먹을 거 얼마 없어.’
‘음.’
둘은 잠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할머니가 얼른 비닐 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너무 많으면 주꾸미 500 그램에 꼬막 1킬로 사, 내가 만 이천 원에 줄게.’
둘이 양 때문에 고민하는 걸 눈치 챈 할머니는 재래시장 답게 정량이 아닌 주인 마음대로 가격을 책정한다. 두 여인은 고민이 해결되었는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주세요.’
‘응, 잠깐만 기다려, 예쁜 처녀들.’
아주머니가 꽃무늬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주꾸미들을 싸잡아 비닐봉투에 넣는 모습을 바라보는 두 사람. 사력을 다해 봉투 밖으로 나오려는 주꾸미들의 발악을 보며 살짝 징그럽다는 표정을 짓던 정유미가 물었다.
‘어떻게 요리하면 맛있어요?’
‘그냥 물에 딱 10초만 데쳐. 더 데치면 질겨. 초장이나 고추냉이 간장에 딱 찍어서 먹으면 그만이야.’
‘다른 요리는 없어요?’
‘아이고, 산지 와서 먹을 땐 최대한 요리 안 하고 먹는 거야. 고추장 잔뜩 묻혀 볶을 거면 뭣 하러 싱싱한 걸 사?’
‘하하, 그러네요. 근데 이건 어떻게 잡는 거예요?’
‘응? 이거?’
‘네, 낚시로 잡아요?’
‘주꾸미는 낚시로 잡고, 꼬막은 뻘에 들어가서 잡지.’
‘갯벌이요?’
‘응, 빳지 타고 나가서 갈고리로 갯벌 훑으면 한 바구니 나오는데 오래 안 걸려.’
‘빳지가 뭐예요?’
‘있어, 무릎 대고 갯벌 미끄러지는 작은 배.’
‘아~ 그거! TV에서 봤어요. 그럼 주꾸미 낚시도 이모가 직접 해요?’
할머니가 나를 바라본다.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잠시 날 째려본 할머니가 말했다.
‘저 사람이 배 타고 나가서 잡아와.’
두 여자가 날 바라본다. 나는 물고 있던 담배를 끄고 말했다.
‘주꾸미 잡는 거 보고 싶어?’
두 여성이 서로를 바라보다 기대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도 가볼 수 있어요?’
나는 두 사람의 기대에 찬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나가면 한 세 시간 걸리는데. 그래도 갈래?’
‘좋아요!’
‘괜찮아요, 세 시간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죠! 언제 주꾸미 낚싯배 타보겠어요. 꼭 태워주세요!’
깡총깡총 뛰며 신나 하는 두 사람.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강구항 뒤에 보면 선착장 있어. 거기 부둣가에 4번이라고 숫자 써진 곳 있으니까 이따 두 시에 와.’
‘와! 신난다!’
‘진짜 우리 배 타는 거야?’
두 여성은 신이 나서 손을 잡고 방방 뛰다 날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그런데 돈은 얼마나···’
나는 손을 휘휘 저어 가며 말한다.
‘돈은 무슨. 조업은 어차피 나가야 되는 건데. 그냥 방해하지 말고 배에 얌전히 있는다고 약속하면 돼.’
‘와! 감사합니다!’
범인의 기억 속에 들어와 있는 내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단편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을 최대한 기억 속에 밀어 넣으려 최선을 다한다. 지금 보이는 모든 것이 힌트가 될 것이다.
방방 뛰며 좋아하는 신현숙. 긴 머리를 곱창 밴드라고 불리는 천이 씌워진 고무줄로 묶은 차림이다. 정유미는 지갑을 뒤지고 있다. 신용카드를 꺼냈다가 재래시장에선 현금을 써야 하겠지? 라고 중얼거리며 꺼냈던 녹색 신용카드를 다시 밀어 넣고 현금을 꺼내는 모습이 보인다.
두 여성은 할머니가 싸준 주꾸미와 꼬막 비닐봉투를 들고 신이 나 깡총깡총 뛰며 다시 재래시장 구경을 하러 떠난다. 고마운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내게 손을 흔드는 두 사람의 모습이 천천히 회전하며 또 다시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인가?’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벌써 몇 번이나 이 토할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껴 봤기 때문에 내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란 걸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귓속의 세반고리관에 이석이 들어간 듯 빙글빙글 도는 세상. 그나마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배 갑판 옆에 있는 타이어에 털썩 앉아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비틀거리다 바다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몸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고, 나도 모르게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을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님!”
관우의 목소리다. 파란색 배 위에 앉아 삿갓대를 붙잡고 있던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내 꼴을 본 관우가 놀라며 물었다.
“형님! 어디 안 좋으세요?”
“후··· 됐어, 신경 쓰지 마라. 여긴 어쩐 일이야?”
관우는 걱정되는지 배 위로 훌쩍 뛰어올라온 뒤 머리를 긁는다.
“그냥, CCTV 뚫어지게 봐도 나오는 게 없어서 답답해서 나왔다가 형님 여기 계시는 거 보고 왔어요.”
“·····················”
관우가 내 옆 타이어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쉰다.
“와, 진짜 막막하네요. 역시 강력계 일이란 건 녹록치 않아요, 그렇죠?”
나는 입술을 비틀어 미소를 지었다.
“아니, 이제부턴 아닐 거야.”
관우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묻는다.
“예?”
나는 벌떡 일어나며 엉덩이를 털었다.
“가자.”
내가 배 밖으로 뛰어내리자, 관우가 물었다.
“형님? 어디로 가요?”
“영해 만세시장.”
“거긴 왜요?”
“가보면 알아.”
**
잠시 후, 영해 만세시장 입구.
저녁 시간이지만 불이 켜진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해양경찰들이 그토록 걱정하던 대게 축제 기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아 옆 사람과 어깨를 붙이고 걸어야 할 것만 같은 시장 앞에 선 관우가 물었다.
“형님, 여기서 뭐 찾아야 돼요?”
“꽃무늬 고무장갑을 낀 파마머리 할머니.”
“예?”
할머니는 범인과 무슨 관계일까? 둘의 대화가 너무 짧았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단 두 마디가 전부다.
‘여긴 왜 왔어?’
‘그냥.’
엄마와 아들의 대화였을까? 아니, 보통 아들이 엄마 앞에서 담배를 태우나? 내 상식으론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여기 사람들은 어떨지 알 수 없다.
“일단 찾아.”
관우는 영문도 모르고 눈으로 상인들을 훑다가 금방 한쪽을 가리킨다.
“저기.”
관우가 가리키는 곳. 시장 입구에 병어를 손질 중인 아주머니가 보인다. 꽃무늬 고무 장갑에 장미 칼을 들고 생선을 손질 중이다. 저 아줌마는 아니다. 나는 말없이 시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관우는 내 반응을 보고 자신이 잘못 짚었다고 생각했는지 따라붙으며 계속 방향을 가리킨다.
“저기도 꽃무늬 고무장갑이고, 저기도 있네요.”
망할, 꽃무늬 고무장갑 장사한테 공동구매라도 한 건가? 왜 이리 꽃무늬 고무장갑 낀 상인이 많아? 아무래도 관우와 함께 찾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다. 할머니는 특징이 없는 사람이었다. 눈에 띄는 특징은 파마머리라는 것뿐인데 여기 있는 상인 중 절반이 파마머리다.
관우는 계속해서 파마머리에 꽃무늬 고무장갑을 낀 할머니를 발견할 때마다 알려준다. 하지만 전부 헛다리다.
“저기도, 저기 할머니도 꽃무늬. 아오, 근데 형님. 우리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
뭐라고 설명해주면 믿을 거냐? 남의 기억 읽고 수사한다고 말하면 미친놈 취급할 거 면서.
“그냥 느낌 오는 게 있어서.”
“느낌이요? 오! 그 드라마에서 보던 형사의 직감! 뭐 이런 겁니까?”
형사로서 경력이 나보다 훨씬 긴 관우 앞에서 이런 이야기하는 게 좀 낯간지럽긴 하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데 어쩌겠는가? 관우가 얼른 날 따라붙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연주한테 들었습니다.”
응? 김연주 경장··· 아니 이제 경사지. 그 사람이 왜?
“무슨 말?”
관우가 윙크를 하며 말했다.
“형님이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면 무조건 따라가라고 했습니다. 형님께 뭔가 있다고. 그럴 때형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직감 같은 것을 따라 움직인다고 했어요.”
“·····················.”
김연주 경사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건가? 하긴··· 단양에서 내 행동이 이해될 리가 없었겠지. 관우가 엄지를 들며 말했다.
“이번엔 제가 직접 목격하겠군요. 형님이 어떻게 수사하는지 옆에서 잘 보고 배우겠습니다.”
저기, 네가 형사 경력이 더 많다니까?
나는 제멋대로 오해하고, 존경하는 관우의 모습에 할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