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화. 노인과 바다 (12)
재래시장은 생각 외로 꽤 컸다. 시골에 있는 작은 시장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전국에서 사람이 모이는 축제를 진행하는 시장 답게 육거리로 나뉘어져 수많은 가게가 즐비한 시장이다. 하지만 나는 타겟을 축소할 수 있다. 가게를 운영하는 집은 제외다. 바닥에 고무 대야를 놓고 파는 할머니만 살피면 된다. 문제는 그런 할머니가 백 명도 넘는다는 것이지만.
나는 빠르게 눈을 놀려 할머니들을 훑었다. 바로 그때 내 눈에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가 들어왔다. 꽃무늬 장갑을 끼고 행인들에게 살아 있는 주꾸미를 들어 보이고 있는 할머니. 기억 속에서 봤던 바로 그 할머니다.
나는 천천히 걸어 그녀 앞에 섰다. 그러자 할머니가 반색하며 말했다.
“주꾸미 사시게? 아니면 꼬막도 있고.”
나는 천천히 주저앉으며 대야 속을 바라보았다.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주꾸미와 산처럼 쌓인 꼬막들. 나는 가만히 두 대야를 바라보다 말했다.
“주꾸미는 킬로에 만원이고, 꼬막은 8천원. 맞습니까?”
할머니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활짝 웃는다.
“하하, 총각이 여기 저기 가격 많이 알아봤네.”
할머니는 주변을 쓱 둘러본 후 허리를 숙이고 속삭인다.
“내 총각은 특별히 깎아 줄게. 주꾸미는 9천원, 꼬막은 7천원. 어때? 어디 가서 말하지는 말고. 나 욕 먹어.”
“주세요.”
시원하게 허락하는 날 보며 빙그레 미소 짓는 할머니.
“총각이 성격이 아주 시원하네! 내가 킬로보다 더 줄게. 조금만 기다려.”
비닐봉투를 열고 주꾸미를 담고 있는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그녀의 뒤쪽에 난 골목길 초입에 있는 전봇대를 바라보았다. 바로 저곳에서 범인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바닥을 보니 상인들이 담배를 태우러 저 골목에 많이 가는지 꽁초 양이 꽤 많다.
나는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포장 중인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저기, 할머니.”
“응?”
“혹시 아들 있으세요?”
“있지.”
“몇이나 있으세요?”
“아들이 둘이고, 딸이 다섯이지.”
헐, 많이도 나았다. 일단 딸은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고 아들 둘만 확인해 보자.
“다 여기 살아요?”
“에이, 요즘 젊은 애들이 어디 지방에서 살려고 하나? 다 서울에서 직장 다녀.”
“언제 마지막으로 보셨어요?”
“음··· 추석 때 봤지. 이제 곧 설이니 내려올 거야.”
“추석 때 이후로 한번도 안 내려왔어요?”
“응, 다들 먹고 사느라 바쁘니까.”
할머니의 두 아들은 용의자가 아닌 걸까? 할머니가 포장을 마치고 비닐봉투를 내민다. 나는 지갑에서 이만원을 꺼내 내밀며 말했다.
“잔돈은 됐습니다.”
“응?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때가. 고마워, 총각! 하하.”
4천원 거스름돈을 드렸을 뿐인데 무척이나 고마워하는 할머니. 이제 뭘 물어야 되는 거지? 분명 범인은 이 할머니와 아는 사이다. 가족이 아니라면 친한 상인일까?
“할머니.”
“응?”
“혹시 주변에 주꾸미 어선 하는 분 모르세요?”
할머니는 멈칫하더니 날 바라본다.
“왜?”
“아, 뭐 부탁 좀 드리려고요.”
“무슨 부탁?”
“그냥, 뭐 배도 좀 얻어 타고 주꾸미 낚시해서 선상에서 소주도 한잔 하면 좋을 것 같아서.”
할머니는 잠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내 뒤에 멀뚱히 서 있는 관우를 바라본다.
“남자 둘이야?”
“네.”
할머니가 고개를 젓는다.
“그 인간은 남자만 있는 일행은 안 태워, 변태 같은 놈.”
나는 눈을 빛냈다. 그 인간이라고 지칭한 사람. 남자만 있는 일행은 태우지 않는다고 했다. 1차 사건의 피해자는 남녀. 2차 사건은 여성만 둘이다. 나는 얼른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사례는 충분히 할 테니 소개 좀 해주세요.”
“안 태울 거라니까? 그리고 그 인간은 배 태워주고 돈 안 받아.”
이놈이다! 내가 찾던 그 놈이 맞다. 나는 천천히 지갑을 내리며 할머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할머니는 내 표정이 바뀌자 흠칫 놀란다.
“왜···?”
범인은 할머니와 연관이 된 사람이다.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쉽게 경찰임을 밝힐 순 없다. 범인이 도주할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씩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나 싶어서 그렇죠. 소개만 해주시면 두둑하게 사례 할게요.”
“그 인간은 돈 안 받는다니까?”
“그럼 할머니한테 하면 되죠.”
“·····················..”
“소개비로 오 만원. 어때요?”
“························”
할머니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시선은 내가 꺼내든 지폐에 꽂혀 있다. 할머니는 물욕이 일어난 듯했지만 연륜은 무시하지 못하는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런 걸로 돈 못 받지. 정 그러면 소개는 해줄 테니까 가서 말해 봐. 그런데 아마 안 태워 줄 거야. 기대는 하지 말고.”
나는 빙긋 웃으며 돈을 할머니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몸을 뺐지만 억지로 지폐를 넣어 드린 내가 물었다.
“할머니 잘 아는 사람인가요?”
할머니는 돈을 받기 부담스러운지 자꾸 자기 주머니를 보다 한숨을 쉰다.
“잘 알지, 내 남편인데.”
내 얼굴이 일그러진다. 적어도 6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인데. 그녀의 남편이라니.
“그 분 말고 또 없어요?”
“음, 그럼 나 말고 저기 저쪽에 상가 보이지? 2층에 미용실 있어. 거기 원장한테 말해 봐. 거기 아들도 주꾸미 어선 타거든. 차라리 거기 가서 물어보는 게 나을 거야. 이 돈은 다시 가져가고.”
할머니가 주머니를 뒤적여 다시 지폐를 꺼내 내민다. 나는 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저, 할머니. 실례지만 할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돼요?”
“그건 왜?”
“아, 혹시 아는 분인가 싶어서. 저희 아버지도 옛날에 이 근처에서 어업 하셨는데 연세가 비슷해 보여서.”
할머니가 돈을 내밀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내 남편 놈 이름이야 뭐 대단하다고. 오종식이야.”
내 눈이 커졌다. 오종식? 파란색 배 선주 오종식? 나는 급히 관우를 돌아보았다.
“관우야.”
“예?”
“수색영장 아직 갖고 있지?”
“아, 뭐.”
관우가 상의 앞주머니의 단추를 열고 영장을 꺼내 편다.
“여기··· 어? 이 사람도 오종식이네?”
젠장! 노인이라고 용의선상에서 제외해선 안 됐다. 나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빨리 지원 요청하고 바로 오종식의 배를 압수수색한다.”
관우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아직도 지폐를 내밀고 있는 할머니를 본다. 먼저 뛰어가는 날 멀뚱히 바라보던 관우 녀석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할머니를 바라보다 뒷걸음질 쳐 따라 뛰는 모습이 보인다.
오종식. 할머니의 남편이자 70대의 노인. 두 여성을 배에 태운 이 사람이 범인이다.
**
강구항 뒤편 선착장 부둣가.
지원 나온 경찰들과 KCSI 요원들이 파란 배를 수색하는 모습을 본 선주들이 기웃거리며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눈다.
“무슨 일이래?”
“저거 종식 아재 배 아닌교?”
“그러게, 아재 배네. 뭔 일 있나?”
“몰라예,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 닥쳐서 자물쇠도 다 부수고 싹 뒤지고 있길래 구경 왔지요. 종식 아재는 어디 갔습니꺼?”
“이 시간이면 집에서 드라마 보면서 막거리 빨 시간이지, 그 아재가 저녁에 돌아다니는 거 봤어?”
나는 선주들의 말을 들으며 파란색 배의 선미 부분에 기대 수색 중인 KCSI 요원들을 노려보고 있다. 그때 선실 안을 조사 중이던 요원이 소리쳤다.
“여기 뭔가 있습니다!”
선실에 가까이 있던 관우가 제일 먼저 안으로 튀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팔짱을 끼고 있던 내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KCSI 요원이 미리 비닐 봉투에 밀봉해 둔 증거품을 들고 있는 관우가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는 것이 보인다.
관우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증거품을 내밀며 말했다.
“형님··· 이거.”
관우가 내미는 증거품. 그 속에 녹색 신용카드가 있다. 영어로 써 있는 신용카드 주인 이름을 보는 순간 나는 기억 속에 있던 힌트를 곧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할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내밀던 여성. 정유미의 이름이 녹색 신용카드에 새겨져 있다.
“··················”
나는 말없이 증거품을 다시 요원에게 넘겨주었다. 잠시 바닥을 바라보고 있던 내 눈에 관우 녀석 발 밑에 있는 무엇인가가 보였다.
“움직이지 마.”
관우가 얼음처럼 굳는다. 이곳은 살해 현장일 확률이 높다. 형사의 잘못으로 증거가 훼손될 경우 심각한 징계를 받게 될 수 있음을 알기에 하는 행동이다. 나는 카메라를 든 KCSI 요원에게 말했다.
“저기 발 밑에 있는 거 증거품입니다.”
요원이 관우 발 밑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머리 끈이요?”
관우가 끄트머리를 살짝 밟고 있는 머리 끈. 선실 임시 침상 밑에 있던 고무 줄이라 미처 보지 못하고 끄트머리를 밟은 것이다. 관우가 슬쩍 발을 들자 장갑 낀 손으로 검은색 곱창 밴드를 집어 든 요원이 비닐봉투 안에 그것을 넣는 것이 보인다.
관우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물었다.
“형님? 저게 증거품인지 어떻게 아세요?”
“························..”
뭐라고 해야 되는 거냐? 나 저거 봤다. 범인 놈 기억 속에서. 저건 신현숙의 머리 끈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순 없잖아. 그때 KCSI 요원이 과연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날 바라본다.
“경험 많은 형사님은 역시 다르네요.”
관우가 무슨 소리인지 궁금한 얼굴로 요원을 본다.
“예?”
요원이 선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일을 하면 현장만 딱 봐도 여길 누가 사용하는지 알 수 있죠. 칫솔도, 수건도, 전부 하나예요. 이 배는 한 사람이 타는 배입니다. 혼자 조업하는 배라는 뜻이죠. 선실 앞에 있는 장화나 저기 걸린 옷들을 보면 남자 옷이예요. 그런데 이런 선실에 여자들이 쓰는 물건이 있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죠.”
요원은 날 바라보며 대단하다는 듯 엄지를 든다. 관우는 그제야 손바닥을 탁 치며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역시, 형님!”
무슨 오해를 하는 거냐, 너희들. 난 그냥 본 걸 말했을 뿐이라고. 나 그렇게 능력 있는 형사는 아니야. 나는 헛기침을 하며 요원에게 물었다.
“다른 증거는 아직 없습니까?”
“네, 아직 안 나왔어요. 근데 이 정도만 해도 구속할 수 있지 않아요?”
나는 두 개의 증거품을 바라보았다. 헤어 밴드에서 신현숙의 DNA가 나올 것이다. 신용카드에는 정유미의 이름이 써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증거품 모두 두 사건 중 한 사건의 증거품이다. 사건은 두 개. 목과장님의 조카 사건에 대한 증거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수색해 주세요. 분명 증거가 더 나올 겁니다.”
“네, 형사님.”
관우가 팔을 걷어붙이며 콧김을 뿜는다.
“자, 그럼 우린 오종식 이 양반 검거하러 가야죠, 형님?”
두 사건 모두를 밝혀내는 건 증거 수집이라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정도 증거가 나온 이상 한 가지 사건의 범인으로 구속이 가능하다. 일단 잡아 두어야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 최대한 빨리 구속하는 편이 모두를 위한 일이다. 나는 몸을 돌려 선실 밖으로 뛰어나가며 말했다.
“뭐해,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