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화. 노인과 바다 (13)
관우가 빠르게 영덕경찰에 지원을 요청해 그런지 오종식의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순찰차 다섯 대가 집을 가운데 두고 포위망을 구축 중이다. 나는 경례를 해오는 순경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총을 꺼내 들었다.
“상대는 사람을 넷이나 죽인 살인범이다.”
관우가 혀로 이를 핥으며 웃는다.
“더한 놈도 잡아 보신 분이 무슨.”
음, 단양에서 잡은 장진수는 예외. 듣자 하니 수많은 범죄 심리학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감옥을 찾아 그를 인터뷰 중이라고 들었다. 간만에 나온 희대의 연쇄살인범 장진수. 어쩌면 곧 그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올 지도 모른다. 경찰이 꿈인 친구들에겐 좋은 참고자료가 되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영혼이 썩어가는 기분이 들 그의 인생이 세상에 어떤 식으로 공개될까? 나중에 책이 나온다면 한번 볼 생각이다. 아, 물론 절대 돈 주곤 안 살 거다.
나는 권총의 안전장치에 검지를 올리고 오종식의 집을 노려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단독주택. 바닷가에 옹기종기 지어진 여러 단독주택들 사이에 아무 특징 없이 우두커니 지어진 보통의 단층 주택이다. 지원 나온 순경들은 범인 검거 작전이라는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지만,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이 문제다. 그들은 순찰차 불빛을 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 나와 봤다가 열 명도 넘는 경찰들이 오종식의 집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곤 놀라 집 안에 있던 다른 식구들까지 불러 구경 중이다.
“이봐요, 경찰 아저씨! 무슨 일 있어요?”
주변 순경들이 조용히 하라는 듯 쉬쉬거렸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욱 크게 웅성거린다.
“저기 종식 아재 집 아니야?”
“맞네, 맞아. 아재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나?”
“경찰이면 다야? 불빛 때문에 TV가 안 보여! 사이렌 좀 끄던가!”
제길, 커튼을 좀 치고 보면 잘 보일 거 아닙니까, 그 양반 참. 동네 사람들과 안면이 있는 순경들이 떠들어 대는 사람들을 구석으로 몰고 가 상황을 알려준다. 저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나는 순경들을 모아 지시를 내렸다.
“거기 그 쪽 두 명은 집 뒤쪽, 이쪽 두 명은 집 왼편, 거기 두 분은 오른 편. 나머지는 정문을 막습니다.”
“예!”
나는 관우에게 눈짓을 보냈다. 몸이 날랜 관우가 고개를 끄덕인 후 담벼락 위로 슬쩍 안을 확인 후 몸을 날리자, 가벼운 관우의 몸이 담벼락 위를 훌쩍 날아올라 집 안으로 떨어진다. 그때, 오종식의 집 문이 열리며 70대 노인이 머리를 내민다.
갑자기 나타난 범인. 예기치 못한 상황 덕에 모두가 돌처럼 몸을 굳혔다. 오종식은 밖의 상황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요?”
나는 오종식의 태도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지? 만약 오종식이 진범이라면 저런 태도를 보일 수 없다. 당연히 우릴 보는 즉시 도주하거나, 혹은 모든 걸 포기한 얼굴로 손을 들었어야 맞다. 그런데 지금 그의 얼굴은 이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유일하게 집 마당에 진입해 있던 관우가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오종식씨 맞습니까?”
오종식이 문을 열고 나오며 주변을 본다.
“그렇소만.”
관우가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며 말했다.
“당신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긴급 체포합니다.”
오종식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뭐요, 살인사건?”
관우가 그의 손목에 수갑을 걸며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서에 가서 하시죠.”
오종식은 수갑을 차지 않으려 몸부림을 친다.
“뭔 소린지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고 데려 가! 선량한 시민한테 수갑을 채우고 이게 뭣 하는 짓이야!”
관우도 오종식의 태도가 이상한지 억지로 수갑을 채우지 않고 나를 바라본다. 오종식의 반응을 본 이웃주민들의 반응이 슬슬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이 보인다.
“왜 죄 없는 종식 아재를 데려가는 거래?”
“모르지, 짭새 새끼들이 또 헛다리 짚어서 죄 없는 사람한테 뒤집어 씌우는 거 아니야?”
“데려가더라도 제대로 설명을 해주고 가, 이 놈들아!”
“그래! 종식 아재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을 해줘야지!”
말? 당연히 해줄 거다. 그런데 당신들 다 듣는 이곳에서 말고 취조실에서 말해 줄 거다. 나는 관우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문 열어.”
관우가 얼른 다가와 대문을 열어준다. 나는 한 손목에만 수갑을 걸고 날 빤히 바라보고 있는 오종식에게 다가가 핸드폰의 사진을 내밀었다.
“오종식씨 배 맞습니까?”
오종식은 사진을 바라본 뒤 잠깐 눈을 꿈틀거린다.
“맞는데.”
나는 다음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오종식씨 배의 선실에서 살해된 피해자들의 물건이 나왔습니다.”
“·····················”
오종식은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지만 곧 이웃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아이고! 경찰이란 놈들이 남의 배를 허락도 없이 뒤졌네! 대한민국이 이래도 되나!”
이웃사람들은 유대감이 있는지 저마다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듯 소리를 높인다.
“그래! 경찰이면 다야?”
“아니! 배도 사유재산인데 왜 주인 허락도 없이 뒤져?”
“수색을 하려면 응당 선주한테 허락을 받고 하는 거지, 에라이 도둑 놈들아!”
나는 몸을 돌려 이웃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주머니에서 영장을 꺼내 펼쳐 든 나는 약간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종식씨 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입니다. 절차에 한치도 어긋남 없이 진행했음을 고지합니다.”
수색영장을 보여주고 나서야 사람들이 입을 닫는다. 드라마에서 영장이 있으면 수색할 수 있음을 배운 모양이다. 나는 조용해진 이웃사람들을 하나하나 노려본 후 다시 오종식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손 주시죠.”
오종식은 날 노려보다 손을 내밀며 말했다.
“후회하게 될 거야.”
나는 오종식의 나머지 한 손목에 수갑을 걸고 그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발뺌을 해도 나는 안다. 네놈이 범인이란 것을.
“후회를 누가 하게 될지 곧 확인되겠죠. 서로 모시겠습니다.”
상대가 70대 노인에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산 토박이라 그런지 순경들은 꽤 정중하게 오종식을 순찰차에 태우고 경찰서로 이송했다. 이웃주민들은 이웃이 끌려가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로 의견을 나눴지만 수색영장까지 보여주고 나니 오히려 미심쩍은 얼굴이 된다.
“진짜 뭐 있는 거 아니야?”
“그래, 수색영장까지 있잖아. 드라마 봤지? 영장 있어도 뭐 뒤져서 아무것도 안 나오면 체포 못해. 경찰들이 여기 와서 아재 잡아간 걸 보면 뭐가 나오긴 나온 모양이야.”
“으, 소름 끼쳐. 진짜 종식 아재가 살인자라고?”
“에이, 독불장군 영감이긴 했지만 누구 죽일 위인은 아니야. 이건 오해라고.”
“맞아, 아재가 여자는 좀 밝혀도 그런 짓 할 사람은 아니지.”
“그래도 경찰이 체포했는데? 영장 봤지?”
“에이! 난 안 믿어. 영장 그것도 멀리서 봐서 자세히 읽어 보지도 못 했는데. 아무 서류나 보여주고 영장이라고 우겼는지 어찌 알아?”
실소가 나온다. 그런 경찰이 진짜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그거 걸리면 당장 해고당한다고. 이웃주민들 사이에서 빠져나온 나와 관우가 차에 올라 해양경찰서로 향했다. 영덕경찰서에 지원을 요청하긴 했지만 일단 사건 관할이 해양경찰이었기 때문에 그쪽에서 취조할 예정이다.
경찰서에 내리자, 벌써 냄새를 맡은 기자들 몇이 서 앞에 진을 치고 있다. 괜찮다, 어차피 저들은 우리 얼굴을 모르니까. 나는 시동을 끈 뒤 관우에게 말했다.
“나 취조할 동안 넌 계속 KCSI와 커뮤니케이션 해. 추가 증거 나온 거 없는지 확인하고. 이어잭 달고 들어갈 테니까 취조 중이라도 뭐 나온 거 있으면 바로 알려줘.”
“예, 형님. 그런데 혼자 괜찮겠어요?”
괜찮지. 장진수도 혼자 했는데 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차에서 내려 경찰서로 들어갔다. 기자들이 우릴 보고 뭔가 질문을 하려 했지만 우리가 그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로 쓱 들어가버리자 기회를 잡지 못했다.
맨 처음 우리에게 시신을 보여준 까까머리 형사가 마중 나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인 그가 말했다.
“오종식은 3번 취조실에 있습니다. 가시죠.”
까까머리 형사를 따라 취조실 앞에 선 나는 관우와 까까머리 형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오종식의 배에서 나온 증거는 2차 사건의 3, 4번 피해자의 증거 뿐입니다. 1차 사건도 그의 범행임을 확인해야 하니, 밖에서 지원 부탁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관우 쪽에서 받으세요.”
내가 관우를 눈짓하자, 까까머리 형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그의 입장에선 첫 살인을 자살로 잠정결론 내린 해양경찰을 대표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 중일 것이다. 뭐 상관없다. 이유가 뭐든 성의껏 잘 움직여준다면 그걸로 됐다.
“관우는 오종식 배에서 나온 삿갓대를 회수해서 목과장님께 흉기가 맞는지 확인요청해. 서울에도 비슷한 거 있으니까 맞춰 보면 바로 답 나올 거다.”
“예, 형님.”
두 사람이 모니터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나는 일부러 취조실 문을 큰 소리가 나게 열었다.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다. 위압감은 압박이 되고, 그 압박은 상대의 실수를 유도할 것이다. 큰 소리가 나자 내 쪽으로 고개를 획 돌리는 오종식. 수갑 찬 손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있다.
테이블엔 까까머리 형사가 미리 세팅해 둔 노트북이 놓여 있다. 의자를 질질 끌고 자리에 앉은 뒤 노트북을 보자, 진술서에 이미 기본진술이 기재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이것도 다 까까머리 형사가 미리 작업해둔 모양이다.
오종식은 내가 모니터를 바라보는 모습을 뚫어지게 보더니 수갑 찬 손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친다.
“이보쇼!”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흥분한 노인이 노발대발하며 말을 쏘아붙인다.
“이게 대체 뭣 하는 짓이야?”
“··················.”
“마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사람 창피 주고, 나 이제 이 동네에서 어떻게 얼굴 들고 살라고!”
나는 그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오종식은 내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더욱 흥분한다.
“어린 놈의 새끼가 어른 노려보고. 경찰이면 다야? 경찰은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르치나? 참나, 여기 대한민국이야! 동방예의지국에 어디서 예의는 밥 말아 처먹은 새파랗게 어린 경찰이 돌아다녀! 나 이거 절대 가만 안 있어. 기자들 다 불러서 동네방네 떠들 거야.”
오종식이 수갑 찬 손으로 테이블을 더욱 세게 치며 말했다.
“너희 공무원 놈들! 박봉에도 견디는 거 나중에 받을 연금 때문인 거 다 알아. 근데 기사 나가서 잘리면, 어? 그럼 그 연금이 네 돈일 거 같아? 어림도 없어! 내가 절대 그렇게 안 놔둬!”
나는 핸드폰을 꺼내 오종식에게 아까 보여준 사진을 보여주었다.
“오종식씨.”
“이게 뭐! 이게 도대체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는 증거품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피해자 신현숙씨의 밴드입니다.”
곱창 밴드 사진을 보여준 내가 말을 전하자 오종식이 버럭 화를 낸다.
“이봐! 좀 전에 나 데리고 올 때 옆집 딸 애도 이런 밴드 하고 있었어! 이런 게 어디 한 두개야? 이게 그 여자 물건인지 어떻게 알아?”
오종식은 아마 미리 여기 앉아서 내뺄 궁리를 하고 있던 모양이다. 질문을 하자 마자 반론을 제기하는 꼴을 보니. 나는 다음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맞습니다, 신현숙씨 물건이 아닐 수도 있죠.”
그럴 리는 없다. 내가 똑똑히 봤으니까.
“하지만 이건 어쩌실 겁니까?”
사진 속에 떠오른 정유미의 신용카드. 아까 집 앞에서는 보여주지 않은 사진이다. 오종식은 이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
“여기 정유미라는 이름 보이죠? 살해된 피해자 둘 중 한 분의 성함입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
오종식이 약간 당황한 얼굴이 된다. 한참 눈알을 굴리던 노인이 말했다.
“나는 몰라! 두 사람 본 적도 없다고!”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 오종식. 그를 바라보는 내 눈이 깊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죄를 짓고 반성하지 않는 순간 그는 이미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악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