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60화 (60/328)

제 60 화. 노인과 바다 (14)

이어잭에서 관우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님.

나는 오종식이 눈치채지 못하게 모니터 거울 쪽을 힐끔거렸다. 그러자 관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서울 KCSI 본부에서 목과장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사체에 남은 상흔의 폭과 삿갓대의 폭이 일치한답니다.

일단 흉기는 찾았다.

-바로 KCSI 경북지부로 삿갓대를 보내랍니다. 거기 피해자 DNA가 남아 있으면 게임 종료입니다.

그럴 리는 없다, 관우야. 아까 선원들 말 들어보니 삿갓대는 물 속에 띄워 놓은 부표를 건질 때 쓰는 물건이라고 했다. 즉,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닷물에 담그는 물건이란 뜻이다. 그런 곳에서 DNA가 채취되긴 어려울 것이다. 이건 그저 흉기가 무엇인지 알아냈다는 성과 정도로 넘어가야 한다.

나는 알았다는 신호로 귀를 만진 후 다시 오종식을 바라보았다.

“신현숙, 정유미씨. 당신은 두 사람의 이름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모르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아내 분이 시장에서 꼬막과 주꾸미를 파시죠?”

“·····················.”

“영해 만세시장. 맞습니까?”

“그, 그게 뭐!”

나는 미리 관우를 시켜 확보한 CCTV 사진을 꺼냈다. 그 사진 속에 만세시장으로 들어가는 오종식의 모습이 찍혀 있다. 나는 사진 아래 날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날, 아내 분께 가셨죠?”

오종식은 사진을 보고 움찔했으나 곧 당당하게 말했다.

“갔지! 내 마누라한테 내가 가는 게 왜?”

“왜 가셨습니까?”

“마누라 보고 싶어서 갔다, 왜!”

나는 몸을 내밀고 오종식을 노려보았다.

“그게 아닐 텐데요.”

오종식이 얼굴을 와락 구기며 소리친다.

“뭐가 아니란 거야! 네 놈이 뭘 안다고!”

나는 흥분하는 오종식을 노려보며 입가를 비틀었다.

“그냥.”

오종식은 눈살을 찌푸린다.

“············뭐?”

나는 몸을 등받이에 기대며 편안히 앉은 후 말했다.

“왜 왔어? 그냥.”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던 오종식은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부릅뜬다.

“························..”

“그냥 가셨잖아요. 안 그래요?”

“························..”

설마 하는 얼굴이 된 오종식. 그래, 믿기 어렵겠지. 그날 네 주변에 있던 사람은 아내와 피해자 둘 뿐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나는 오종식을 빤히 보며 말했다.

“당신은 영해만세 시장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갔다가 신현숙, 정유미를 보게 됩니다. 아내에게 꼬막과 주꾸미를 구매하는 두 사람에게 어선을 태워주겠다고 했죠. 그리고 배에 탄 두 사람을 죽였습니다.”

오종식은 시시각각 표정이 변한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의자를 뒤로 넘어뜨리며 벌떡 일어나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소설 쓰고 자빠졌네! 이 개 같은 새끼가 사람 데리고 와서 장난질을 하나! 내가 우습게 보여, 어? 무전기 가져와, 나도 아는 변호사 있어! 무선 질 못하게 하는 법 없지, 엉? 당장 가져와!”

난동을 부리는 오종식. 하지만 나는 그의 난동을 말리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원래 사람은 난동을 부리면 누군가 달려와 말리고 거기서 더 난동을 부리겠다는 계산 하에 움직인다. 하지만 정작 난동은 부렸는데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 이내 몸부림을 멈추고 날 바라본다. 나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다시 핸드폰을 조작해 녹음 영상을 틀었다.

-네, 119 관제센터 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지직, 지지직.

-여보세요? 신고자 분?

-딸깍, 딸깍, 드르륵.

-신고자 분, 지금 말씀을 하시기 어려운 상황인가요? 여보세요?

-·········..아따, 너 여기서 무선 질 하고 있었냐?

-네? 신고자 분? 뭐라고 말씀하셨죠?

-어··· 그, 그게···

녹음 내용을 들은 오종식의 표정이 변한다.

“이, 이게 뭐! 이게 내 목소리라는 증거 있어?”

비슷하게 들리긴 하지만 배 모터 소리가 너무 커서 음질이 좋지 않다. 무슨 말을 한 것인지 겨우 식별할 정도라 이게 오종식의 목소리라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게 당신 목소리라고 단정 지은 적 없습니다, 앉으시죠?”

“··················”

오종식은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다시 제 손으로 자리를 정리하기 멋쩍은 얼굴이다. 내가 일어나 그의 의자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은 후 그를 앉혔다. 앉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내가 속삭였다.

“그런데 전화를 무선이라고 표현하시네요.”

오종식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뱃사람들이 원래 그래.”

나는 씩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신고 음성 속의 남자도 그렇게 말하는 군요.”

“그게 뭐! 뱃놈들은 다 그렇게 말한다고!”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때 이어잭에서 까까머리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용카드에서 정유미씨 지문이 나왔습니다, 밴드에서 신현숙씨의 머리카락이 나왔고, 본인 확인됐습니다.

나는 오종식을 노려보다 씩 웃었다. 그는 갑자기 웃음을 짓는 날 보곤 이맛살을 구긴다.

“웃어?’

나는 오종식에게 몸을 내밀며 말했다.

“당신 배에서 발견된 밴드에서 신현숙씨 DNA가 검출됐습니다. 이제 당신이 두 사람을 만난 적 없다는 진술은 거짓말이 되었군요.”

“·····················”

오종식이 눈을 굴린다. 그러더니 이번에도 역시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버럭 지른다.

“난 안 죽였어!”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죽였냐고 묻지 않았습니다만.”

“························”

오종식은 너스레를 떠는 날 노려보며 으르렁거린다.

“날 놀리는 건가?”

“그럴 리가요. 여긴 동방예의지국인데.”

나는 볼펜을 손 안에서 굴리며 물었다.

“자, 이제 거짓말은 그만 두고, 두 사람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 이미 두 사람을 만난 적 없다는 건 거짓말인 걸로 들통 났으니 더 우기진 마시고.”

“·····················.”

오종식의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역시 현장과 경찰대 공부는 다르다. 보통 이런 식으로 몰리면 자신이 한 짓 중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형량에 크게 한 몫을 할 부분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나는 그러려고 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돌아 갔다는 식으로 자기 변명을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완전히 범죄를 부정하고 있다.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범인이다.

하지만 반드시 자백을 받아 인정하게 해야 한다. 노인범죄, 특히 노인 성범죄의 경우 초기 조사에서 범행을 인정하지 않으면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들이밀어 송치하고 교도소에 보내도 인정하지 않는 이가 많다. 본인이 범인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차고 넘쳐도 재판과정에서는 물론 수감 중에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항소한다.

노인범죄자들은 자기만의 고집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너희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행동한 거야.’

‘난 끝까지 당당할 거야, 내가 왜 반성을 해야 해?’

‘너희들이 이렇게 만든 거야.’

노인범죄자들의 범죄대상은 보통 지인이나 가까운 대상이기에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종식은 전혀 모르는 타인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태도와 범죄수법 등을 보았을 때 일반적인 케이스로 봐서는 안 될 살인자다.

일단 두 사람을 배에 태운 것부터 인정하게 해야 된다.

“오종식씨. 두 사람이 배에 탔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설마 지나가는 모르는 여성의 밴드와 신용카드를 빼앗아 선실에 던져두진 않으셨을 거 아닙니까? 그럼 강도살인이 됩니다.”

“························”

“잊으셨습니까? 영해만세시장.”

나는 CCTV 화면 속에 찍힌 오종식의 모습 다음으로 비슷한 시간에 시장 입구로 들어가는 두 여성의 사진을 내밀었다.

“시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고 배를 태워 주겠다고 하셨죠.”

오종식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생각했는지 코 끝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아니라 그 여자들이 태워 달라고 졸랐지.”

네가 먼저 꼬셨잖아, 이 개 같은 영감 탱이야. 나는 욕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우긴 하셨군요.”

“그게 뭐! 외지에서 여행 온 사람이 배 한번 타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길래 좋은 마음으로 태워준 거야!”

“그런데 바다에 나갔던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당신이 죽였나요?”

“아니라고, 이 새끼야!”

“그럼 누가 죽였을까요?”

오종식은 미리 이렇게 몰리게 되고,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어떤 변명을 할지 계산해 둔 모양인지 속사포 같이 말을 쏟아냈다.

“그 두 년들이 처음에는 실실 처 웃으며 한참 놀았어. 그런데 내가 주꾸미 조업을 하는 동안 지들끼리 싸움이 붙은 거야.”

“무슨 싸움이었습니까?”

“몰라, 나는 들어 보지도 못한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싸웠어. 왜 젊은 놈들만 쓰는 이상한 말 있잖아? 그런 거 쓰면서 싸웠어.”

“그래서요?”

“그러더니 갑자기 멱살을 붙잡고 배 위에서 몸싸움을 했지.”

그렇게 친해 두 사람만의 추억여행을 온 두 여성이 멱살잡이를 했다고? 그것도 결혼을 앞둔 정유미를 축하해주는 자리에서? 미친 소리다. 나는 짐짓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계속 하세요.”

오종식이 입에 침이 마르는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그러다 두 여자가 물에 빠졌어. 난 조업을 하느라고 어장 쪽에 건너가 있었거든. 물에 빠진 거 보고 건지려고 막 배로 뛰어 갔는데 파도가 한번 치더니 둘 다 사라져버렸어. 그래서 한참 찾다가 그냥 들어온 거야. 난 아무 죄도 없다고. 지들이 싸우다 발을 헛디뎌 죽은 걸 왜 나한테 뒤집어 씌워?”

이 영감이 끝까지 거짓말이구나. 그래, 뭣 때문에 물에 빠졌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삿갓대로 쳐서 올라오지 못하고 익사하게 만들었잖아, 이 새끼야.

나는 솟구치는 악의를 억지로 눌렀다. 아직은 윽박지를 때가 아니다. 1차 사건에 대한 진술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배에 사람 태운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까?”

오종식은 당시 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야 할 때에 다른 이야기를 꺼내자 멈칫한다.

“처음.. 이냐고?”

“네, 배에 사람 태운 게 처음이십니까?”

“············.아니.”

“그 전엔 언제 태우셨습니까?”

“기억 안나.”

“오래 전이었습니까?”

“몰라, 나이 먹으니까 기억력이 나빠져서.”

불과 며칠 전인데 기억이 안 나? 내가 며칠 전에 점심 뭐 먹었는지 물어봤냐? 사람 죽인 기억 물었는데 그게 기억이 안 난다고? 얼마나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길래 이 따위 태도냐, 엉?

나는 남승현, 한지윤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 두 사람. 모르십니까?”

오종식은 사진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말했다.

“몰라, 처음 봐.”

“제대로 보고 말씀하시죠.”

“모른다고.”

내가 다른 형사였다면 의심은 가지만 더 추궁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의 기억을 보았다. 그는 배를 태워준다는 말로 사람을 꼬셔 배 위에서 죽이는 인간이다. 분명히 1, 2차 사건 모두의 범인은 너다.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악마. 새빨간 혓바닥에서 나오는 말마다 거짓인 짐승을 노려보는 내 눈에 불길이 일어났다.

당장 눈 앞의 이 노인을 처 죽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그리고 그때, 또 다시 노인의 얼굴이 점차 흑백으로 물들어가며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오종식의 말이 늘어진 테이프처럼 천천히 들려오고 서서히 시간이 멈추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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