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 화. 노인과 바다 (16)
귀가 멍해지는 기분과 함께 바다와 오종식의 낚싯배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아까 먹은 밥이 목구멍으로 튀어 나갈 듯한 울렁임. 나는 오종식과 대면하고 있다는 것도 잊고 그대로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아래에 있던 쓰레기통을 낚아챘다.
“우웨에에에에엑!!!”
귓속에 장착한 이어잭에서 관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님! 괜찮아요? 갑자기 왜 그래요?
“우웨웨웨에에에에에엑!”
쓰레기통에 내 토사물들이 반이나 찬 후가 되어서 겨우 구역질이 멈춘다. 나는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천천히 충혈된 눈으로 오종식을 노려보았다. 그는 갑자기 오바이트를 하는 날 이상한 눈으로 보며 물었다.
“갑자기 뱃멀미라도 하나? 사람 면전에 두고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이 개새끼. 70이 넘은 영감이 성욕 때문에 스물 밖에 안된 여자를 살해해? 그동안 아무리 어지러워도 토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 그의 토악질 나는 감정을 엿본 나는 도저히 맨정신으로 그 충격을 이겨낼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쓰레기통을 향해 토사물을 내보냈다. 마치 내 안에 남겨진 악마의 잔여물을 토해내는 기분이었다.
“우웨웨웨웨웩!!”
다시 이어잭에서 관우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님!
나는 쓰레기통을 놓고 발로 밀어 옆으로 치운 후 소매로 입을 닦았다. 거울 쪽을 힐끔 보곤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자, 다시 관우 목소리가 들린다.
-힘드시면 교대할까요?
나는 슬쩍 고개를 저었다. 다시 관우 목소리가 들린다.
-후, 서울에서 연락 왔습니다. 이정호 계장님이 흉기와 시신의 상흔이 일치한다는 점과 선실에서 피해자 유류품이 나왔다는 점을 들어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바로 구속 가능합니다.
그래, 구속은 가능하겠지. 하지만 넷을 살해한 놈을 둘만 살해한 범인으로 잡아넣을 순 없어. 나는 오종식을 노려보았다.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그의 구역질 나는 모습에 나는 당장에 욕을 퍼붓고 싶었다.
“이 개새끼야.”
오종식은 내 욕설에 움찔하더니 이내 벌떡 일어나 난동을 부린다.
“뭐? 방금 뭐라고 했어, 이 새파랗게 어린 놈의 새끼가!”
오종식은 열이 받았는지 발로 테이블을 차고, 의자를 집어 던진다.
“당장 서장 나오라 그래! 이 개같은 대한민국! 내 아들보다 어린 놈이 공무원이라고 감히 욕을 해? 오냐, 어디 한번 해보자, 이 새끼들아! 당장 서장 나오라 그래!”
오종식의 난동이 도를 넘어서자, 취조실 문이 벌컥 열리며 관우를 비롯한 해양경찰서 형사들이 뛰어 들어온다.
“가만 있어요!”
“진정해요!”
“놔, 놓으라고! 저 새끼가 먼저 욕을 했다니까!”
아무리 난동을 부려 봐야 70이 넘은 노인이 힘으로 형사들을 이길 수 없다. 형사들의 우악스러운 힘이 눌린 오종식은 입으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경찰이란 놈들이 노인 잡네! 이 새끼들이 날 죽이려고 작정을 했지! 숨 못 쉬어, 숨!”
관우가 오종식을 벽으로 누르며 날 바라본다.
“형님, 일단 나가 계세요. 빨리!”
“·····················”
나는 말없이 오종식을 노려보았다. 내 눈빛을 받은 오종식이 더욱 크게 고함을 질러 댄다.
“저 새끼! 저 새끼 눈깔 좀 보라고! 저 새끼 저거 집에서 어떻게 교육을 받았길래! 네 부모란 연놈들 낯짝 좀 보자, 이 새끼야!”
관우는 내가 고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얼굴을 굳힌다. 그리고 오종식을 벽으로 밀어붙이는 척하며 옷깃으로 그의 입을 눌렀다. 그리곤 날 돌아보며 눈치를 본다.
“저··· 형님, 이 사람 너무 흥분했는데 일단 나가 계세요.”
나는 가만히 오종식을 노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종식.”
“뭐? 오종식? 이 어린 놈의 새끼가! 놔! 놔 봐!”
“너 내가 반드시 밝혀낸다. 이 씹어 먹을 새끼야.”
“놔! 내가 오늘 저 어린 놈의 새끼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을 테니까!”
관우가 몸부림 치는 오종식 팔을 꽉 붙들며 말했다.
“아이고, 저 형사님 특수부대 출신입니다. 조폭 깡패들도 한 방에 쓰러트리는 형사님을 할아버지가 무슨 수로요. 그냥 참으세요.”
나는 만류하는 형사들을 뒤로 하고 취조실을 빠져나왔다. 취조실 바로 앞 벽에 붙은 벤치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아직도 속이 울렁거려 머리를 부여잡고 허리를 숙였다. 범인들의 기억을 읽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어두운 속내를 엿본 것은 처음이다. 지금 나를 울렁이게 하는 것은 어지러움이 아니라 그의 의식을 엿본 후유증일 것이다.
내가 빠져나오자 취조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문 안에서 관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종식씨, 귀하를 현 시각부로 신현숙, 정유미씨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체포적부심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조용해졌던 오종식이 다시 발악하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그게 뭔 소리야! 그 년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물에 빠졌다니까 그러네! 아까 다 말했잖아!”
까까머리 형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억울한 부분은 재판장에 가서 말하세요. 자, 수감실로 데려가.”
“놔! 놔, 이 새끼들아!”
취조실 문이 열리고 양쪽에서 형사들에게 팔을 붙들린 오종식이 나온다. 그는 맞은편에 앉은 날 보며 으르렁거린다.
“너 이 새끼. 내가 재판장에서 네놈이 명예훼손한 거 다 까발릴 거야. 알았어?”
나는 팔짱을 끼고 그를 노려보았다.
“해, 새끼야.”
오종식이 팔을 붙잡힌 채 발버둥을 친다.
“저, 저! 저 새끼 말하는 거 다들 들었지! 어? 다 분명히 들었지? 너희들이 증인이야, 알았어?”
그의 팔을 붙잡은 형사들이 인상을 쓰며 힘을 쓴다.
“자자, 갑시다.”
오종식이 끌려 가면서도 끝까지 날 돌아보며 소리를 지른다.
“내가 그냥 넘어가나 봐!”
오종식은 끌려 가면서도 사력을 다해 뒤를 돌아보며 날 노려본다. 관우는 내 앞에 서서 허리춤에 손을 얹고 한숨을 쉰다. 녀석은 내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아까 토하시던데. 체하셨어요? 약 사다 드릴까요, 형님?”
“아니, 괜찮아.”
“많이 토하시는 거 같던데.”
음, 좀 그렇기는 했지. 미안하다, 더러운 꼴 보여서. 나는 몸을 세워 등을 벽에 기댔다.
“후.”
관우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 이제 어쩌죠? 일단 구속을 하긴 했는데 이대로 가면 두 명을 살해한 범인으로 송치해야 되는데.”
“이정호 계장님은 뭐래?”
“뭐··· 일단 수고했다고 하긴 하는데··· 증거 계속 찾아보라고 하시죠.”
음, 자살로 끝날 사건이 살인사건인 것을 밝혀냈고 범인도 검거했으니 일단 칭찬은 해주지만 목과장님 조카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계장도 찝찝할 것이다.
“배는? KCSI에서 따로 연락 없었어?”
관우는 고개를 저었다.
“신현숙, 정유미씨 증거 말고는 없어요. 모발 몇 개 채취했는데 신현숙씨 모발과 오종식 본인 모발이었고요.”
“후···”
“혹시 살인범이 둘일 수도 있지 않아요?”
“·····················”
“확률은 낮지만 같은 지역에서 두 명의 살인범이 동시에 활동한 적이 있긴 한데.”
정남규, 유영철을 말하는 거구나. 그런데 아니야, 관우야. 내가 봤어. 저 새끼가 범인이야.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하··· 답답하다.”
소주 생각이 난다. 강혁 아저씨라도 있었으면 고시원 뒤 포장마차에서 한잔 하자고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여긴 영덕이다. 관우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전 토하고 나면 배 고프던데. 형님은 괜찮아요?”
음, 그러고 보니 속이 좀 허하다. 밥 생각은 없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넌 밥 먹고, 난 술이나 한잔 먹자.”
**
잠시 후, 항구.
바닷가에서 술 마시기 제일 좋은 곳이 항구다. 횟집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나와 관우는 횟집 거리를 걸어 다니며 괜찮은 곳을 찾았다. 사실 어디가 맛있는지는 모른다. 그저 답답한 마음이 들어 찾아온 만큼 바다 전망이 탁 트인 횟집을 찾고 있는 것이다.
관우가 횟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대게 먹을까요? 좀 비싸긴 하지만.”
대게는 보통 세트로 판다. 대게 찜, 대게 라면에 횟감을 포함해 작은 건 8만원, 비싼 건 15만원 하는 것도 있다. 나는 눈으로 가게 밖의 메뉴를 바라보며 걸었다. 물론 메뉴 보다는 전망을 우선적으로 보았다. 괜찮은 대게 식당 하나가 눈에 띄는 것을 보고 창가 자리에 앉으면 어떤 풍경이 보일지 확인하기 위해 바다 쪽을 바라본 나. 그때 내 시야에 얼마 전에 봤던 광경이 들어왔다. 큰 배. 대게 잡이 어선이다.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배 위를 분주히 오가는 선원들을 보았다. 그때 선실에서 나와 선원들에게 뭔가 지시를 하는 턱수염이 가득한 남자가 보인다.
‘지원이 아빠구나.’
펜션에서 만났던 여고생의 아버지이자 대게 잡이 어선의 선장이 보인다. 오늘만큼은 선원들이 부럽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바다라도 나가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소주 한잔 하면 속이 좀 시원해질 것 같은데.
“관우야.”
“예?”
“배 안 탈래?”
“배요, 형님?”
나는 눈짓으로 턱수염 선장의 배를 가리켰다.
“부탁해 보게.”
“갑자기 왜요?”
“그냥 답답해서.”
“외지사람 함부로 태워 주겠어요?”
“선장이랑 안면이 좀 있어서.”
나는 뚜벅뚜벅 걸어 배 앞에 섰다. 일을 하던 선원들이 날 보곤 움직임을 멈추고 자기네 선장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오종식이 체포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모양이다. 선장은 갑자기 선원들이 일 하다 말고 자신을 보는 것을 확인하곤 배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선장은 잠시 머뭇거리다 선원들에게 소리친다.
“출항 안 할 거야? 빨리 움직여!”
선원들이 다시 움직이자, 선장은 배에서 내려 내게 다가온다. 전과 달리 좀 미안한 얼굴로 다가온 선장이 말했다.
“종식 아재가··· 범인이라고···”
“·····················”
선장은 날 비웃었던 게 미안한지 머리를 긁다가 이내 뱃사람다운 시원한 웃음을 짓는다.
“하하! 이거 뭐. 내가 큰 실수를 했군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시원한 사과. 괜히 빙빙 둘러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지원이 아버님.”
선장은 한방에 사과를 받아주는 내가 마음에 드는지 씩 웃는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나는 그의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소주 한잔 하러 나왔는데. TV에서 배 위에서 마시는 소주가 일품이라고 했던 게 기억 나서요.”
선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 제대로 알고 오셨군! 좋습니다! 내가 원래 조업 나갈 때 외지인 안 태우는데 형사님은 특별히 모셔가죠. 어떻습니까? 내가 대게 한 마리 잡아서 라면 끓여 드리죠. 잡다 보면 오징어 같은 놈들도 같이 딸려오는데 그거 넣고 끓인 라면이 안주로는 천하제일 이거든요. 갑시다! 오늘 나랑 한잔 하는 겁니다.”
선장이 옆에 멀뚱히 서 있던 관우의 어깨를 붙잡고 웃는다.
“하하, 이쪽 분도 일행이죠? 같이 갑시다, 가요!”
“어? 어어, 잠깐만요.”
“에이! 내가 미안해서 그래, 미안해서. 오늘 제대로 대접할 테니 타요, 타!”
녀석 내심 좋으면서 당황한 척은. 이런 경험해보는 건 나도 처음이긴 하지만 아마 또 다시 경험해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 할 수 있을 때 해보자. 관우를 먼저 배에 태운 선장이 내게 손을 내민다.
“갑시다, 형사님.”
나는 선장의 손을 잡아당기며 배 위에 섰다. 배 뒤로 보이는 바다 풍경을 보는 순간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뚫어지는 듯하던 내 마음은 이 바다에서 죽어간 네 분을 생각하는 순간 다시 우울해지고 말았다. 내가 지금 답답하다고 바다 나와 뱃놀이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나는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멍하니 바다를 보며 빌었다.
‘남승현씨, 한지윤씨, 신현숙씨, 정유미씨. 나 좀 도와줘요. 당신들 억울한 거 풀어주고 싶어요. 그러니 날 좀 도와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