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63화 (63/328)

제 63 화. 노인과 바다 (17)

출항준비를 마친 6.38t급 연안 대게 잡이 목선. 시속 13노트의 속도로 밤바다를 나아가는 배는 그리 거친 물살이 아닌 데도 앞뒤 좌우로 흔들리면서 요동친다. 배가 속력을 내니 이물(뱃머리) 쪽 상갑판으로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선장이 조타실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손짓한다.

“선실로 들어가요! 갑판에 서 있다 물벼락 맞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배가 출발하자 마자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며 갑판에 버티고 서서 멀미를 하는 관우를 보살피느라 그럴 수가 없다. 바다에 코를 박을 듯 허리를 숙이고 토하는 녀석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 바이킹을 타듯 마구 흔들리는 배 위를 평지처럼 걸어온 선원이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하하, 서울 형사님들이 배는 처음인가 보내.”

나는 관우의 등을 두드려주며 물었다.

“멀미 약 없을까요?”

선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배 타기 전에 먹어야 효과 있는 거고. 일단 멀미 시작하고 나면 약 없어요. 너무 걱정 말아요, 다 토하고 나면 좀 나아지니까.”

다시 한번 배가 흔들리며 갑판 위로 물이 쏟아진다. 선원은 모자를 부여잡고 뒤를 눈짓한다.

“선실로 못 가겠으면 조타실 뒤쪽 선미 갑판으로 가요. 여긴 위험하니까.”

“예, 그러죠.”

나는 비틀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관우를 부축하고 조타실 옆의 좁은 길을 지나 선미 쪽 갑판으로 갔다. 처음부터 여기 있을 걸 그랬다. 물도 안 튀고 상하 움직임도 선수 부분보다 나은 것 같다. 선원이 선실 문을 열고 신발장 앞에 이불을 깔아준다.

“자, 여기 눕혀요. 신발 벗기지 말고. 멀미 나면 또 뛰어나가서 구토할 수 있게 해줘야 되니까.”

선실 입구에 관우를 눕히고, 나는 좁은 선실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관우 덕에 선실 문을 열어 놔서 그런지 겨울바람이 문으로 사정없이 몰아쳐온다. 칼바람과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면서 머리가 멍 해질 지경이다. 초겨울에도 이런데 본격적인 게 철이 시작되는 한 겨울에는 작업을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바다로 나선 지 50여분쯤. 항구에서 20㎞ 거리에 도착하자, 선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GPS에 부표 뜬다! 접근할 테니 전부 나와!"

누워 있던 관우가 아까 보다 한결 나아진 얼굴로 몸을 일으킨다.

“후, 죽을 뻔했네. 돌아가신 할머니랑 하이 파이브 하고 왔어요.”

“쿡쿡, 멀미가 심하네.”

“형님은 괜찮아요? 배 많이 타 보셨습니까?”

“아니, 처음이야.”

“후, 억울하네요. 왜 나만 멀미를 하는지.”

“좀 괜찮아?”

“예, 이제 좀 나아요. 이제 조업 시작하는 거 같은데 구경 나갈까요?”

“괜찮겠어?”

“뭐, 요 앞에 잠깐 서서 구경한다고 설마 또 토하겠어요?”

“그래, 나가자.”

나는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민 후 갑판으로 나왔다. 선원들이 모두 갑판 오른쪽에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저기! 저기 있다!”

“걸어, 똑바로 걸라고, 인마!”

조타실에 있던 선장이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가 구경 나온 우릴 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수심 200미터 아래에 길이 1000미터짜리 그물을 엮어 바다 깊숙이 던져둔 거요. 그물의 밑부분에 무거운 추를 달아 바닷속에 달고, 스티로폼 부표를 띄워 표시를 해 찾아오죠.”

나는 여전히 흔들리는 배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 조타실 창문을 붙잡고 물었다.

“배가 원래 이렇게 흔들립니까?”

“에이, 오늘은 완전 장판인데 뭘. 심한 날은 말도 못해요. 오늘은 운이 좋은 날입니다.”

헐, 이렇게 흔들리는데 운이 좋은 날이라고? 도대체 심한 날은 얼마나 엄청난 파도가 오는 걸까? 새삼 이런 환경에서 조업하는 어민들이 대단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아까 우릴 챙겨 줬던 선원이 하얀 부표를 갈고리로 건져 유압 양망기에 건다. 10분 가까이 기계가 돌며 밧줄을 끌어 올리자, 드디어 밧줄 끝에 달린 그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온다!”

“준비해!”

선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모습. 활기찬 얼굴들이다. 곧 그물 사이사이 대게 들이 꿈틀거리며 끝없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관우가 탄성을 지른다.

“와, 저렇게 잡는 거구나. 선원 아저씨들 움직임 좀 봐요, 엄청 빠르네요.”

나도 막 그 생각을 하던 참이다. 촘촘한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대게는 그들의 손에 들린 요상한 도구 한번에 툭툭 떨어진다. 창문 안의 선장이 관우를 보며 말했다.

“멀미 괜찮소?”

관우가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 훨씬 나아요.”

“작업 중엔 시동 꺼야 되는데. 그럼 롤링이 좀 심해질 거요. 참을 수 있겠소?”

“롤링이요?”

“흔들리는 거. 시동 끄면 배가 파도를 더 타니까.”

“아··· 꼭 해야 되시는 거면.”

관우는 침을 꿀꺽 삼킨다. 뱃멀미에 어지간히 데인 모양이다. 선장이 시동을 끄자 그의 말처럼 배가 더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위아래 진동이 아니라 배가 양 옆으로 기우뚱거린다. 관우는 금세 속이 불편해진 얼굴이 되었지만 하도 구토를 한 후라 그런지 구역질은 하지 않는다.

선원들이 바닥으로 툭툭 던지는 게들 속, 아주 작은 게 한 마리가 내 쪽으로 기어오는 것이 보인다. 가만히 보니 대게 같은데 아직 새끼인가 보다. 이놈은 먹을 것도 없겠다. 시동을 끄고 조타실에서 나온 선장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작은 게를 보더니 손으로 움켜 잡고 바다로 던진다.

“너 말고, 집에 가서 부모님 모시고 와라.”

헐, 살려줄게, 바다로 나가서 무럭무럭 커라 같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니. 약간 소름이 돋는다. 바삐 일하는 선원들의 뒤로 가서 쪼그리고 앉은 선장이 게들을 보며 중얼거린다.

“자, 어느 놈으로 손님 대접을 할까···”

꿈틀거리는 대게 중 다리 한 두개가 없는 녀석을 든 선장이 엄청난 크기의 녀석을 들어 보이며 웃는다.

“요 놈으로 합시다.”

아, 라면 끓여준다고 했었지. 다리가 떨어져 상품 가치가 없는 녀석들은 먹는 모양이다. 선장은 선원들이 뒤로 던지는 여러 해산물 중 소라 몇 개와 오징어 한 마리, 새우 네 마리를 챙겨 선미로 간다. 나무 도마를 꺼내 물을 부은 선장이 식칼로 손질을 시작하는 것이 보인다.

“이놈들 넣고 끓인 라면 국물에 소주 한잔이면 어떤 멀미도 다 날아가지. 거기 멀미하는 형사양반. 조금만 기다리쇼. 내 특제 멀미 약으로 조제해 줄 테니.”

휴대용 버너에 불을 붙이고, 물이 끓자 라면 스프부터 넣는 선장. 그러자 라면의 강한 향이 코 끝을 스친다. 분명히 라면 성분에는 신경계 교란 바이러스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라면 어찌 향만으로 사람을 이렇게 군침 흘리게 할 수 있겠는가?

보글보글 끓는 용암 같은 라면 국물에 새우와 대게를 넣고 면을 삶는다. 오징어는 잘게 썰어준 후 맨 마지막에 데치듯 넣은 선장이 손짓한다.

“자, 와서 드십시다.”

선원들이 일을 하는데 뒤에 모여 라면을 먹고 있는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자꾸 선원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러자 선장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니, 들어요. 저놈들은 이게 직업인데 뭘. 자자, 소주 한잔 합시다.”

일회용 플라스틱 소주잔이 넘치도록 잔을 채운 선장이 잔을 들며 말했다.

“요전에는 미안했습니다, 내 정성으로 대접할 테니 그때 일은 잊어 주쇼.”

시원한 사람이다. 나는 웃으며 소주를 털어 넣고 라면 국물을 한번 맛봤다.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불에 데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맛이다. 관우 녀석은 멀미 중에도 냄새를 이겨내지 못하고 국물 맛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 졌다.

“우와!”

선장이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죽이지?”

“엄청 맛있네요!”

“흐흐, 다리 몇 개 떨어져 나갔지만 이놈이 이거 박달게거든. 살이 아주 꽉 찬 놈이란 말이지. 이런 놈은 킬로에 10만원도 넘어. 이런 거 식당 가서 먹으려면 20만원은 줘야 됩니다.”

와, 그런 호화스러운 재료로 라면이라니. 뱃사람들만의 특권인가? 나와 관우는 정신없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관우 녀석은 멀미 때문에 속이 허 한지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어 댄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잔이 비면 알아서 채워주는 선장 덕에 물 흐르듯이 술과 라면을 먹고 마시는 우리.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나서야 밤바다가 다시 보인다. 여전히 롤링이 심했지만 이젠 조금 적응되는 모양이다. 검은 바다를 바라보며 살을 에이는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내 귀로 선원들의 말이 들려온다.

“어이, 거기 좀 더 조여!”

“이건 또 뭐냐, 쓰레기네. 에이, 니미럴.”

“바다에 버리지 말고, 쓰레기통에 모아. 여기 우리 터전이야.”

“잔소리는. 하루 이틀 조업 나온 것도 아니고.”

그들의 말에 선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스티로폼 쓰레기가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여전히 바다에 폐기물을 버리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나는 선장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며 물었다.

“쓰레기가 많이 올라옵니까?”

선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많죠, 게가 반이고 쓰레기가 반이니까.”

선장이 잔을 들이켜고 몸을 일으켜 세운 후 바다를 보며 말했다.

“겉보기에는 평평해 보이지만 바다 속 바닥은 육지처럼 산과 계곡이 있소. 지형을 잘 파악해 어떤 지형에 그물을 내리느냐가 대게 잡이의 관건인데 저놈의 쓰레기들이 바닥을 쓸고 다니니 GPS가 없으면 어장 파악이 힘든 지경이지.”

그렇구나, 쓰레기 때문에 어민들이 힘들 것 같다. 저 쓰레기를 바다에 다시 던져 버리지도 못하고 다 모아서 따로 분리수거를 하는 모양인지 조업 중인 선원들 뒤로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씌워진 파란색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보인다. 조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통의 반이나 쓰레기로 차 있다.

물끄러미 조업 중인 선원들을 보고 있자, 또 쓰레기가 올라왔는지 선원들이 욕을 한다.

“아씨, 또야? 저건 뭐야? 시커먼 거.”

“일단 끌어 올려.”

“야야, 저거 그냥 쓰레기 아니다. 기계 망가져. 잠깐 멈춰봐. 빨려 들어가면 고장 날 것 같다.”

조업이 멈추자 선장이 인상을 쓰고 갑판 쪽으로 가는 모습이 보인다.

“뭐야?”

“저기 저거. 쇳덩이 같은 게 올라와서.”

“하, 미치겠네. 갈고리 줘봐.”

선장이 갈고리를 붙잡고 배 바깥으로 몸을 내밀어 낑낑거리며 그물에 걸린 무언가를 빼 배 위로 던진다. 묵직한 소리가 나며 바닥으로 떨어진 시커먼 물체. 선장이 갈고리를 던지며 말했다.

“기계 다시 돌려!”

“예!”

나는 소주잔을 들고 선장을 물끄러미 보았다. 바로 그때, 선장이 자신이 던진 시커먼 물체를 들고 혀를 차는 게 보인다.

“이게 뭐야, 카메라잖아? 이제 하다하다 카메라까지 바다에 던져? 이 개념 없는 새끼들.”

선장이 파란색 쓰레기통으로 카메라를 던진다. 내게 그 장면은 마치 정지화면처럼 보여졌다. 공중을 날고 있는 검은색 DSLR 카메라. 나는 저 카메라를 본 적이 있다. 오종식의 기억 속에서 남승현이 들고 있던 바로 그 카메라다.

나는 라면 냄비를 뒤집어 엎는 줄도 모르고 벌떡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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