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64화 (64/328)

제 64 화. 노인과 바다 (18)

쓰레기통에 카메라를 던져 버리고 다시 우리 쪽으로 오던 선장이 내 고함소리에 멈칫한다. 나 때문에 졸지에 뒤집어진 냄비에서 튄 라면 국물에 바지를 적신 관우가 인상을 썼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헐레벌떡 뛰어 쓰레기통 속을 뒤졌다. 제발 방금 내가 본 게 헛것이 아니기를.

쓰레기들 속에 물에 흠뻑 젖은 카메라가 보인다. 얼른 낚아채고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물 속에 있던 카메라가 작동할 리가 없다. 선장이 그런 날 보며 말했다.

“바다에서 나온 쓰레기는 귀금속 아니면 다 쓸모 없어요. 다 짠물 먹고 맛이 간 놈들이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바지를 닦고 있는 관우에게 고함쳤다.

“관우야!!”

관우는 고개를 쑥 빼고 날 바라본다.

“빨리! 이리 와봐!”

관우는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내 쪽으로 뛰어와 카메라를 보았다.

“이게 뭡니까, 형님?”

“카메라 다룰 줄 알아?”

“예.”

“그··· 사진 찍은 거 어디에 저장돼?”

관우가 카메라 아래 버튼을 누르고 SD카드를 꺼낸다. 카드에서도 역시 물이 뚝뚝 흐른다. 나는 젖은 SD 카드를 눈짓하며 말했다.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 가능해?”

관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SD카드를 본다.

“이걸 디지털 포렌식 돌리라고요?”

“어, 가능해?”

“이게 뭔데요?”

나는 의문스러운 얼굴의 관우 뒤로 검은 바다를 보았다. 출항할 때 억울하게 죽은 이들에게 도와 달라 빌었던 생각이 떠오른다. 어쩌면 남승현씨가 날 도와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관우를 보며 물었다.

“가능해?”

“돌려 봐야 알죠.”

“얼마나 걸려?”

“SD 카드는··· 한 다섯 시간쯤? 근데 훼손이 너무 심하면 복원이 어려울 수도 있어요.”

“네가 직접 할 수 있는 거지?”

“전문이죠.”

“좋아, 서로 돌아가서 바로 부탁해.”

“근데 형님. 이게 도대체 뭡니까?”

나는 영문을 모르는 선장과 관우를 등지고 바다를 보며 말했다.

“남승현씨가 남긴 증거.”

내 말을 들은 관우의 눈이 왕방울만 해진다.

“뭐, 뭐, 뭐라고요, 형님??”

**

아침 8시. 새벽에 들어와 해양경찰의 협조를 얻어 장비를 세팅한 뒤 디지털 포렌식 복원 프로그램을 돌린 후 잠시 눈을 붙였다. 세 시간쯤 자고 다시 컴퓨터 앞에 돌아와 보니 까까머리 형사가 팔짱을 끼고 모니터를 보는 것이 보인다. 아침에 당직경찰에게 우리가 와 있다는 것을 들었는지 그가 날 보자 마자 질문을 던진다.

“이게 남승현씨 카메라라고요? 그가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었습니까?”

“··················”

뭐라고 해야 되는 거지? 그때 관우가 손뼉을 치며 나선다.

“우리 형님이 완전 매의 눈이죠. 이거 보세요.”

관우가 다른 모니터에 남승현과 한지윤이 함께 바지락 칼국수 집으로 들어가는 CCTV 이미지를 띄운다.

“여기, 남승현씨 우편에 작은 가방 보이죠? 이게 카메라 가방입니다.”

까까머리 형사는 목을 쭉 빼고 사진을 보다 물었다.

“그건 알겠는데 CCTV 속 카메라가 이 카메라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관우와 형사가 함께 날 바라본다. 뭐 얼버무려 보자.

“희망을 걸어 보는 겁니다.”

하지만 나는 확신이 있다. 나는 남승현의 카메라를 매우 가까이서 보았다. 카메라의 브랜드이며, 악세서리까지. 그가 들고 있던 카메라가 맞다. 까까머리 형사가 사다 준 빵과 우유를 마시며 기다리기를 한참. 마침내 모니터 속 복원율이 100%에 다가오자, 관우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마우스를 붙잡는다.

“제발, 제발··· 남승현씨 카메라이기를.”

그래프가 100%에 도달하자, 희미하게 다 깨진 이미지 파일이 떠오른다. 점차 계단현상이 사라지고, 깨끗한 이미지에 가까워지자 관우가 양손을 번쩍 들고 외친다.

“한지윤씨 사진입니다, 형님! 맞아요! 이게 맞아요! 으하하!”

기다리다 지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있던 까까머리 형사가 놀라서 달려온다.

“뭐 나왔습니까? 남승현씨 카메라 맞아요?”

관우가 신이 나서 춤을 춘다.

“맞아요! 한지윤씨 사진이 있습니다!”

모니터 속에 한지윤이 백사장을 거니는 사진이 보인다. 기억 속에서 읽었던 것처럼 남승현은 사진을 꽤 잘 찍는 모양이다. 백사장을 걷는 한지윤이 마치 화보 속 모델 같아 보인다. 나는 허리를 숙여 사진을 보며 말했다.

“다음 사진.”

“예, 형님.”

또 다시 희미한 이미지가 떠오르고 서서히 선명해지는 사진. 백사장에서 꽤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10장 이상의 백사장 사진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바지락 칼국수집에서 찍은 사진, 시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스쳐 지나가고 마침내 펜션의 멋진 풍경 속, 테라스에 앉은 한지윤의 사진이 보인다.

남승현이 카메라를 거꾸로 잡고 찍었는지 그의 모습도 담겨 있다. 참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들의 모습에 숙연한 마음이 든 관우는 어느 순간부터 말없이 마우스만 누르고 있다. 여러 사진들이 스쳐 지나가던 그때 까까머리 형사가 눈을 빛냈다.

“여기!”

망망대해의 사진. 인물은 없고 바다만 보이는 사진이다. 까까머리 형사가 모니터를 붙잡고 말했다.

“이건 배 위에서 찍은 겁니다. 뭍에서는 이런 사진 못 찍어요. 빨리 다음 사진으로!”

관우가 다음 사진을 클릭하자, 선수에 앉아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한지윤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가만히 미간을 좁혔다. 나는 저 장면을 알고 있다. 주꾸미 낚시를 체험해 보기 전 남승현이 한지윤을 찍어준 사진이다. 또 다시 둘이 배에서 찍은 사진들이 나온다. 그리고 마침내, 남승현이 조타실 쪽을 찍으며 사진 안에 걸린 오종식의 모습이 보인다.

낚시대에 채비를 하고 있는 오종식의 모습을 본 까까머리 형사의 얼굴이 차가워진다.

“개새끼가, 모른다고 딱 잡아 떼더니. 넌 죽었다, 새끼야.”

관우가 턱을 괴고 입을 삐죽거린다.

“근데, 오종식은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살인의 증거라고 할 순 없으니 또 우기겠죠. 하, 법정에서도 골 아프겠네요.”

어차피 상관없다. 정황증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흉기와 선실에서 나온 증거까지 명백하니까. 그때, 다음 사진을 클릭한 관우가 몸을 고쳐 앉는다.

“어···?”

희미했던 사진이 서서히 선명하게 변해간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던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욕을 내뱉는다.

“이 개 같은···”

사진 속, 바다의 수면 바로 위의 시점에서 찍은 사진이 보인다.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떠 있는 배의 옆 면에 타이어를 붙잡고 있는 한지윤의 뒷모습. 그리고 배 위에서 삿갓대를 높게 들고 내리치기 직전의 오종식의 얼굴이 정확히 남아 있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저 정황을 정확히 알고 있다. 남승현이 먼저 오종식에게 맞아 배에서 멀어지고 익사 직전에 한지윤과 범인의 사진을 남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충격적인 사진에 말을 잃은 셋. 나는 가만히 사진을 바라보다 이를 갈았다.

“증거··· 확보했습니다.”

관우가 화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오종식 이 개새끼!”

화가 난다. 아니 분노가 치밀어 당장 그 자식을 처 죽이고 싶다. 하지만 나는 경찰이다. 내 일은 범죄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일이지, 직접 심판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고 말했다.

“됐다, 이제 송치하자.”

관우가 즉시 검찰에 연락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자 홀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까까머리 형사가 날 바라본다.

“도, 도대체 어떻게 안 겁니까?”

“예?”

까까머리 형사가 모니터를 본 후 다시 날 돌아본다.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다.

“우리 해양경찰은 자살로 판정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이 살인이란 걸 밝혀낸 것도 모자라 범인을 특정해 배를 수색하고, 저 망망대해에서 바닷속에 가라앉은 증거품을 찾아왔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

부담스러운 눈빛이다. 경이로운 뭔가를 보았을 때 짓는 표정. 형사는 감동했다는 얼굴로 내 손을 꽉 잡는다.

“서울 종로경찰서 강력 3반 현도경 경위라고 하셨죠?”

“아,··· 예.”

까까머리 형사가 손을 놓고 천천히 내게 경례를 한다.

“존경합니다, 경위님.”

“·····················..”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 분인데. 뭐··· 모르겠다. 어차피 다시 볼 사람도 아닌데. 경례나 받아주자.

다음날, 해양경찰서 입구.

영덕시만이 아니라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자는 다 몰려왔는지 경찰서 입구는 기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저기 나온다!”

“오종식이다!”

형사들에게 붙잡혀 수갑을 차고 나오는 오종식. 기자들이 몰려가 질문을 퍼붓는다.

“오종식씨! 네 명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셨는데 혐의를 부인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 입장이십니까?”

나는 천천히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그는 뭐라고 말할까? 나는 이미 검찰 송치 전에 그에게 최근에 발견된 남승현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명백한 증거를 들이밀었을 때 그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마치 썩은 오징어를 씹은 듯한 그의 표정. 통쾌한 마음과 절대악이 주는 구역질 나는 느낌도 함께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진술실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형사들에게 이끌려 차로 가는 오종식. 기자들의 질문에도 입을 다문 그에게 갑자기 날계란이 날아 들었다. 오종식의 머리에 맞고 주르륵 흐르는 날계란. 형사들이 본능적으로 오종식을 몸으로 가리고 소리친다.

“보호해! 빨리 차에 태워!”

오종식에게 점퍼를 씌운 형사들이 빠르게 차로 접근하자, 동네 사람들이 품에서 계란을 꺼내 던지며 소리친다.

“야이 개새끼야! 할 짓이 없어 일흔이나 먹고 사람을 죽여? 네가 사람이야?”

“그동안 이웃이라고 챙겨준 것도 많았는데. 네놈 덕분에 축제 취소되고 우리 다 굶어 죽게 생겼어!”

“징역 먹고 평생 나오지 마! 넌 우리 동네 수치야!”

사람들이 던지는 날계란. 한 개가 아니다. 십여 개의 계란이 자신의 머리로 날아오자, 오종식이 시뻘건 눈으로 소리를 지른다.

“그게 왜 내 잘못이야, 이것들아!”

이웃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한다.

“저, 저! 아직도 잘못을 모르고! 저런 나쁜 새끼!”

“저건 인간이 아니야! 사람이 아니라고!”

오종식이 수갑 찬 손을 마구 휘두르며 발악한다.

“그 젊은 것들 잘못이지! 왜 하필 내 배를 탄다고 지랄들이야? 안 탔으면! 안 탔으면 이런 일도 없어! 다 자업자득이지!”

오종식의 황당한 발언이 기자들의 카메라를 타고 전국에 생방송 되고 있다. 그의 말에 할말을 잃었던 이웃주민들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다 우락부락한 선원 한 명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런 건 죽여야 돼.”

손에 들었던 계란을 던져 버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남자. 아마 돌 같은 것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급히 앞의 형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빨리 차로!”

형사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최대한 몸을 숙이고 차 문 속으로 오종식을 던져 넣는다.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차 문에 돌멩이들이 부딪히는 것이 보인다. 분노한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차 쪽으로 돌을 던지는 것이 보인다. 음, 차가 무슨 잘못이라고. 저거 다 세금으로 산 건데.

해양경찰서 순경들이 와르르 뛰어나와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오종식이 탄 차는 검찰청으로 출발했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수두룩하고 스스로 범죄를 인정하는 발언이 전파를 타고 생중계 되었으니 이제 그는 자신의 범행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기자들이 차를 쫓아가며 생중계할 작정인지 각자의 차에 올라타는 것이 보인다. 이제 내 일은 끝났다. 멀어지고 있는 오종식의 송치차량. 늙은 악마가 탄 차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쉰 뒤 다시 서 방향을 보았다.

“어···?”

해양경찰서 입구. 날 보며 활짝 웃고 있는 중년 남성이 보인다.

“강혁 아저씨?”

언제 내려오신 거지? 강혁 아저씨가 날 보며 엄지를 치켜 세운다.

“새끼, 또 대박 터뜨렸네.”

“여기까지 무슨 일이세요?”

강혁 아저씨가 내 목을 조이며 웃는다.

“인마, 내 새끼 수고했다고 소주 한잔 사주러 왔지, 이유가 뭐 있어?”

“아아! 아파요, 아프다고요!”

“가만 있어, 예쁜 내 새끼. 아저씨가 오늘 대게 풀 코스 쏜다.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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