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 화. 먼저 인간이 되어라 (1)
종로경찰서 강력 3반.
관우와 오랜 영덕 출장을 마치고 서로 복귀하자, 김연주 경사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다녀오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관우가 어깨를 쭉 펴고 빙긋 웃음 짓는다.
“어, 수고 좀 했지. 이 오라버니 어깨 좀 주물러 봐라.”
김연주가 웃으며 대꾸한다.
“죽고 싶지?”
“아, 왜? 나 진짜 수고했다고.”
“개뿔, 경위님이 수고하셨겠지.”
“어··· 뭐 그건 그렇지.”
반겨주는 사람이 김연주 혼자다. 최영현 경위는 또 범인 검거작전 중일까? 우리가 출장간 사이에도 꽤 많이 잡았겠지? 떠나기 전에 하루에도 두 명 이상의 범인을 검거하던 사람이었으니 지금도 날아다닐 것이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최영현의 빈자리를 눈짓했다.
“최경위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김연주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현장 나가셨는데 그게 좀.”
응? 무슨 일이 있나? 김연주의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뭔가 골치 아픈 일이 있다는 걸 눈치챈 내가 어떤 사건이냐 물으려는 찰나, 이정호 계장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사무실도 옮겼는데 저 양반이 여긴 무슨 일이지? 그는 날 보고는 얼른 다가와 말했다.
“현도경.”
“예, 계장님.”
“잠깐 나 좀 보자.”
오랜만에 봤는데 인사도 없이 날 끌고 가는 이정호 계장.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관우를 뒤로 하고 그를 따라 사무실로 가자, 간만에 보는 별로 반갑지 않은 얼굴이 똥 씹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최영현 경위?”
덩치 큰 최영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인다.
“오랜만입니다.”
“아, 예.”
이정호 계장이 내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앉아.”
내가 최영현의 옆자리에 앉자 이정호가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막 돌아왔는데 미안하게 됐다. 사안이 좀 골치 아파서.”
무슨 일인데 이러지? 최영현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저 혼자도 괜찮다니까 자꾸 이러시네.”
이정호 계장이 눈썹을 일그러뜨린다.
“괜찮기는 새끼야. 수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새끼가.”
“아니, 그건··· 친족들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까? 솔직히 압력만 없어도 이런 건···”
친족? 압력? 나는 둘을 번갈아 보다 끼어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사건 때문입니까?”
이정호 계장이 최영현을 째려 보다 손바닥을 비빈다.
“자, 영현이는 이 시간부로 도경이와 한 팀이다. 알았냐? 둘이 같이 수사하는 거다, 잡소리 하지 말고 내 말 따라. 알았어?”
최영현은 한숨을 쉬며 날 힐끔 본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분명히 내가 떠날 때만 해도 최영현에 대한 칭찬만 들렸는데. 최영현은 잠시 날 바라보다 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나랑 할랍니까?”
“뭘요?”
“사건이요.”
경찰이 사건 배당 받으면 그냥 하는 거지. 거절할 수도 있었냐? 그걸 말이라고.
“무슨 사건입니까?”
이정호 계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려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해 두며 말했다.
“영현이, 브리핑 해.”
최영현은 할 수 없다는 듯 노트북에 USB를 넣고 자료들을 띄운다. 빔 프로젝터를 통해 벽에 쏘아지고 있는 화면. 나는 처참한 화재의 현장에 노출된 주택사진을 보곤 인상을 찡그렸다.
“방화 사건입니까?”
최영현은 답을 하지 않고 브리핑을 시작한다. 그의 말 속에 내 질문의 답이 있겠지.
“3일 전, 종로구 평창동 부촌의 고급 주택에서 화재사건이 터졌습니다.”
종로구 평창동. 서울의 대표적 부촌 중 하나이다. 프로젝터 화면 속의 마우스가 폴더를 클릭하는 모습이 보인다. 음성메모 파일 중 하나를 재생하는 최영현.
-네, 119 관재 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부, 불이 났습니다!
-네, 신고자님. 지금 집 안에 계십니까?
-아니요, 전 밖에 있습니다!
-본인 자택에 불이 났습니까?
-네! 빨리 와 주세요!
-네, 정확한 주소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종로구 평창동 296-1433 입니다!
-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전화 끊지 마시고 대기해 주세요.
잠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다시 관재 센터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신고자 분 신원 확인 부탁드립니다.
-김상식입니다, 말씀드린 집에 거주하고 있고요.
-실례지만 해당 주소의 실거주자 명의가 김중권씨로 등록되어 있는데 관계가 어찌 되십니까?
-제 아버지입니다.
-주민등록상 해당 거주지에 김중권씨와 아내 이혜원씨. 아들이신 김상식씨 세 분이 거주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 그런데 집에 이모 아들도 와 있었던 걸로 아는데···
-이모님 아들이요? 몇 살이죠?
-올해 열 둘입니다, 아들이고요.
-혹시 부모님들과 연락되십니까?
-아뇨 안 됩니다! 빨리 좀 와 주세요!
-네, 지금 인근 소방서 인력이 이미 출동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고요, 다시 연락 드릴 테니 전화는 꼭 소지 부탁드립니다.
-알았어요.
음성메모가 끊어진다. 특별할 것 없는 신고 전화다. 최영현이 다시 마우스를 조작해 세 명의 사진을 띄운다. 둘은 노년의 부부 같아 보이는 사람들. 나머지 한 명은 어린 남아다. 최영현이 노년의 남성 사진을 확대하며 말했다.
“이름 김중권, 나이 68세. 신라한약 주식회사의 사장으로, 경동시장 인근 한약재 상 중에 제일 큰손입니다.”
최영현이 노년의 여성 사진을 확대한다.
“이름 이혜원, 나이 66세. 2년 전까지 종로 보석상을 운영하다 현재는 은퇴하고 전업주부로 살고 있었으며 김중권의 아내입니다.”
최영현이 마지막 아이 사진을 확대하며 말했다.
“이름 신재현, 나이 12세. 서울 운제초등학교 6학년 졸업반입니다.”
흘러가는 상황을 보니 화재 속에서 세 사람이 사망한 모양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사진을 뚫어지게 보다 말했다.
“시신 사진 있습니까?”
최영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다른 사진을 띄우자, 이정호 계장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린다.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이 온전한 모습일 리 없기 때문이다. 시커멓게 그을린 세 구의 크고 작은 시신. 나는 시신 사진을 뚫어지게 보다 물었다.
“특이점 확대한 사진 있습니까?”
최영현이 마우스를 조작하자, 일정 부분을 확대한 사진이 모니터를 채운다. 나는 사진을 보자 마자 이상함을 느꼈다.
“저거··· 혈흔입니까?”
최영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빔 프로젝터 속의 혈흔을 가리킨다.
“맞습니다, 화재에 의해 소실된 사체에서 혈흔이 나오는 경우는 무척 드뭅니다. 119로부터 화재현장에서 사체가 나왔다는 신고 접수 즉시 출동해 현장감식 결과, 시신의 모습이 일반적 화재로 사망한 사체와 다르고 판단, 즉시 KCSI에 의뢰했습니다.”
“결과는 나왔고요?”
“아직 안 나왔습니다.”
음, 기다리고 있구나. 그런데 뭐가 문제지? 이정호 계장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정남규 사건 생각 안 나냐?”
정남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살인범이다. 그가 저질렀던 살인 중 수유리에서 벌였던 사건. 가족 중 딸 셋을 무참히 살해하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후 집에 불을 질러 일가족을 사망 시킨 사건이다.
“네, 기억 납니다.”
“그때 제일 처음 용의자로 몰렸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당연히 안다. 정남규, 유영철 같은 대형 살인범에 대한 사건 자료는 경찰대 시절에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달달 외울 만큼 머리 속에 욱여 넣었으니까.
“가족들은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탈출을 했기에 가장 먼저 아버지를 용의선상에 올렸던 것으로 압니다.”
이정호 계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그 사건에도 아버지가 최초신고자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당연히 함께 있어야 할 사람 중 혼자 빠져나온 사람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당연한 말이다. 이번에도 신고자부터 조사를 했을 것이다.
“예, 최초신고자인 김상식씨 신병확보 됐습니까?”
이정호 계장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요?”
이정호 계장이 최영현을 본다. 그 역시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친지들이 수사를 막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부모와 조카를 잃고 시름에 빠진 사람한테 무슨 짓이냐고.”
이게 무슨 말인가? 언제부터 경찰이 가족들 동의를 얻고 수사를 했단 말인가? 가만, 강력계 초보형사도 아니고 잔뼈가 굵은 최영현이 친지가 막는다고 수사를 못하고 있을 리가 없다. 뭔가 있구나.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물었다.
“권력가 집안입니까?”
이정호 계장이 한숨을 쉰다.
“김상식의 삼촌, 그러니까 사망자 김중권의 형이 현역 국회의원이고, 아내 쪽 집안이 AB전자 사람들이야.”
AB전자면 국내 굴지의 기업이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기업이라 확장세가 엄청난 기업으로 알고 있다.
“AB전자 사람이라면?”
“아내 이혜연씨가 AB전자 회장의 막내딸이다.”
엄청난 집안이구나. 김중권이 한약재 상인이라고 해서 그저 돈 꽤나 있는 집안인 줄 알았는데 국회의원에 국내 10대 기업 회장의 막내딸이라니.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수사를 방해하는 건 엄연히 위법이다. 최영현이 골치 아프다는 듯 말했다.
“부검 중이라 상을 치르지 못하고 있으니, 그 전에 진술을 듣고 싶어 접근했지만 친지들이 동원한 경호원들 때문에 근처도 못 갑니다. 억지로 진입했다가 집안 소속 변호사들만 만났죠.”
돈 있는 집 자식은 좋겠다. 경찰 수사까지 막을 수 있구나.
“그럼 지금 수사를 시작도 못하고 있는 겁니까?”
“··················.”
최영현은 자기가 생각해도 한심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인다. 나라도 저런 마음이겠다. 망할 대한민국에 욕이란 욕은 다 퍼붓고 있겠지. 하지만 이건 최영현의 잘못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한계일 뿐이다.
그때 이정호 계장의 책상 위 전화가 울린다. 이정호 계장이 소파를 돌아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린다.
“예, 과장님. 아, 나왔어요? 알겠습니다. 바로 애들 보내죠.”
전화를 끊은 이정호 계장이 최영현과 날 보며 말했다.
“KCSI에서 연락이다. 부검 끝났으니 가서 확인하고 와.”
최영현이 브리핑 자료를 끄고 짐을 챙기는 것이 보인다. 이정호 계장이 날 바라보며 미안한 듯 말했다.
“큰 사건 하나 끝내고 복귀하자 마자 바로 사건 물려서 미안하다. 며칠 쉬게 해줬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계장님.”
이정호 계장이 블라인드를 슬쩍 내려 밖을 바라본 후 말했다.
“영현이는 이미 알고 있는데 도경이 넌 모르니 혹시나 해서 말해주는데. 우리 서장 말이다. AB전자 딱까리다. 아주 손바닥 지문이 없어지게 설설 비비는 사람이니 서장 눈에 안 걸리게 조심해.”
와, 씨바. 서장까지 구워 삶았어? 확 아저씨한테 말해 버려? 다 뒤집어 엎어줄까? 서장 따위 아저씨 말 한 마디면 날아가 우주 끄트머리에 처박힐 텐데. 후, 참자, 참아.
“알겠습니다, 각별히 조심하겠습니다.”
“은밀히 움직여. 앞으로 수사보고는 내가 직접 듣겠다. 다른 쪽에 보고라인 열지 말고.”
“예, 계장님.”
이정호 계장이 마른 세수를 하며 말했다.
“분명히 다른 부서 똥파리들이 꼬일 거야. AB전자 쪽에 포섭된 인간들 천지이니까. 절대 보고라인은 나 하나로 가야 된다, 아니면 우리 이 수사 못해. 꼭 기억해.”
최영환과 내가 동시에 답한다.
“예, 계장님.”
“알겠습니다.”
최영현과 함께 하는 첫 사건. 아무래도 일반적인 사건에 비해 아주 골치 아픈 사건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