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 화. 먼저 인간이 되어라 (2)
KCSI 법의조사과 부검실.
자동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 모습을 보자 마자 고글을 벗고 다가오는 목과장의 얼굴이 보인다. 얼굴빛이 말이 아니다. 목과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내 손을 붙잡았다.
“도경아···”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 가족을 잃을 기회도 없는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그와 눈을 맞추고 나직하게 말했다.
“조카 분 상은 잘 치르셨습니까?”
“덕분에.”
목과장이 잡은 손을 끌어 날 품에 안는다.
“고맙다, 도경아. 지윤이 억울함을 풀어줘서.”
뒤늦게 들어온 최영현이 부검이 끝났냐 물으려 하다 상황을 짐작하고 물러나 있는다. 영 싸가지 없는 인간은 아니구나. 목과장은 한참 날 부둥켜안고 눈물 짓다가 소매로 눈가를 훔친 후 웃는다.
“이거 내가 추태를 보였네. 사건 때문에 왔지?”
조카를 잃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일을 하시는 구나. 좀 더 쉬시지 않고. 나는 시신 쪽으로 인도하는 목과장의 손을 꽉 잡고 물었다.
“좀더 쉬지 그러셨습니까?”
목과장이 슬픈 얼굴로 웃는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비애라고 할까? 직계 가족이 아니면 경조휴가가 없거든”
“그런 게 정해져 있어요?”
“몰라?”
목과장은 내가 천애고아라는 것을 모른다. 목과장은 그저 내가 사회경험이 일천해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지 설명해 준다.
“배우자, 본인 및 배우자의 부모가 사망한 경우는 5일, 본인 및 배우자의 조부모 외조부모가 사망한 경우, 자녀와 그 자녀의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 경조사 휴가일수는 각각 3일이다. 그것도 원래 2일이었는데 늘어난 것이지. 그리고 본인 및 배우자의 형제 자매가 사망한 경우는 1일이야. 지윤이는 내 동생의 딸이니 본래는 휴가가 없어. 개인휴가를 써 다녀왔다.”
그런 것도 정해져 있구나. 가족을 잃은 슬픔의 척도가 휴가일수로 계산되는 시스템일까? 과연 그런 천편일률적 잣대로 사람이 느끼는 슬픔을 규정할 수 있는 걸까? 난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아마 모르겠지. 목과장은 기다리는 최영현을 슬쩍 본다. 최영현도 그가 최근에 조카를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송구한 얼굴로 목례를 한다.
“어, 영현이 왔구나.”
“예, 과장님.”
“화재 소실 시신 건으로 왔지?”
“예··· 죄송합니다.”
“아니다, 이 쪽이야.”
“설마, 과장님이 직접 부검하셨습니까?”
“어.”
최영현이 놀란 표정이 된다.
“아니··· 상 치르고 바로···”
목과장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됐다. 이게 내 일인데 뭐. 설명해 줄 테니 이리와.”
목과장의 인도를 따라 전소되어 시커먼 그을음으로 뒤덮인 시신 세 구 앞에 선 우리. 시신에서 나는 탄내와 썩는 냄새 때문에 절로 인상이 구겨진다. 목과장이 차트를 보며 설명했다.
“뭐, 신상정보는 이미 알고 왔을 거고. 사망원인이 화재인지 아닌 지가 제일 궁금하겠지?”
“예, 과장님.”
목과장이 검은 시신을 쓱 본 후 우리 둘을 직시하고는 고개를 젓는다.
“살인이야, 명백한.”
최영현과 눈을 마주친 나. 처음부터 이 부분을 의심해 KCSI로 시신을 보낸 최영현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공격을 받아 탈출이 불가한 상황에서 불에 탄 겁니까?”
목과장이 차트를 보며 말했다.
“전신에 자창(刺創)이 43군데나 있어. 이 정도면 절대 살아 있을 수 없다. 이미 사망 후에 화재가 난 거야. 이쪽을 봐.”
목과장이 모니터에 분석결과들을 떠올리며 팔짱을 낀다.
“기도와 폐 등의 호흡기에서 그을음이나 일산화탄소를 흡입한 흔적이 없어.”
나는 모니터에 떠오른 수치들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음, 화재 현장에서 숨을 쉬었다면 폐에 일산화탄소가 남아 있었을 겁니다.”
목과장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이미 사망 후에 불을 지른 거다. 명백한 살인 후 증거인멸 사례야.”
목과장이 최영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현장에 생존자가 있다고 했지?”
최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장남 김상식입니다.”
“그 친구도 집에 있었어? 현장감식 결과 보니 집이 전소된 것 같던데.”
“예, 집에 있다가 화재가 직후에 대피했다고 합니다.”
“혼자? 가족들 그대로 두고?”
“경황이 없었다고 합니다, 저도 직접 만나본 건 아니고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 어디 있지?”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몇 도 화상이었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목과장이 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인다.
“뭐··· 생존자가 화상이 없었다면 몰라, 그 쪽도 다쳤다면 뭐··· 할말 없군.”
법의학적 관점에서 사건의 용의자로 김상식이 몰릴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형사는 법의학적 관점만 보아서는 안 된다. 모든 증거가 완벽히 맞아 떨어질 때야 말로 가장 의심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시신에서 뭔가 더 발견되면 바로 연락 주세요. 최경위님, 일단 병원으로 가시죠.”
최영현이 한숨을 쉬며 보고서로 부채질을 한다.
“안 가봤겠습니까? 근처도 못 갑니다. 1인 VIP실에 딱 들어 앉아서 경호원들 넷이 문을 지키고 있어요.”
“경호원들 정도는 밀고 들어갈 수 있지 않습니까?”
최영현이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호원들 뚫으면 다음은 변호사들이 나옵니다.”
음, 경호원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변호사들이구나. 그쪽은 힘으로 해결하면 큰일나는 집단이니까. 그래도 마냥 이렇게 있을 순 없다.
“일단 가보죠.”
최영현도 할 수 없다는 듯 일어난다.
잠시 후, 종로 소재의 대형 종합병원 VIP 병동.
최영현이 앞서 걸으며 눈짓한다.
“저기, 저 병실입니다.”
최영현의 말처럼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지키는 병실이 보인다. 그런데 상황이 좀 이상하다. 병실 앞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
“비켜 보라고요. 상식이 얼굴이라도 좀 보러 왔는데 당신들이 왜 이래? 나도 걔 친척이라고.”
“아아, 지금은 안 된다니까 그러시네.”
“이봐요! 상식이 내 조카요! 아무리 당신들이 친가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외가 사람들 이렇게 무시해도 됩니까? 상식이 어릴 때부터 업어 키운 건 나라고요.”
“글쎄, 지금 상태가 안 좋으니 나중에 오시라니까.”
몸싸움을 벌이는 사람들. 그런데 그들의 옷차림이 심상치 않다. 모두 고가의 양복과 구두를 차려 입은 사람들이다. 중간에 섞여 있는 여성들도 모두 명품백을 들고 있다. 대화를 들어 보니 문을 지키며 김상식을 지키는 사람들은 친가 쪽. 그러니까 죽은 아버지 집안 사람들이고, 진입하려는 사람들은 외가 사람들인 것 같다. 사돈끼리 왜 싸우고 있는 걸까?
나는 싸움을 하고 있는 두 집단을 눈짓하며 물었다.
“아까도 저런 상황이었습니까?”
최영현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아뇨, 아까는 경호원들만 있었습니다. 하여튼 재벌 놈들 대가리 속엔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네. 사람이, 그것도 가족이 죽었는데 지들끼리 처 싸우고 자빠져 있으니··· 퉤!”
최영현은 병원 복도에 있는 벤치에 가방을 던지며 툴툴거린다.
“저런 새끼들은 약을 해도 안 잡힌다니까. 내 저런 놈들 많이 봤지. 재벌 아비 밑에서 태어난 개차반들.”
나는 최영현을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마약 쪽도 수사하셨습니까?”
최영현이 마른 세수를 하며 말했다.
“나 원래 마포경찰서 마약수사대 출신입니다.”
아, 원래 마포경찰서 소속이라고 했었지. 상급자 명령 불복종으로 일계급 강등되어 경사 생활을 하다 얼마 전에 다시 경위로 진급했다고. 뭐,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우린 김상식을 마약투약 혐의로 수사 중인 것이 아니니까.
다시 병실 입구로 고개를 돌리자, 명품 옷을 입은 노년의 여성이 자신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을 말린다.
“여보, 일단 물러나고 나중에 다시 와요.”
남편은 아내가 말리고 나서야 물러난다. 아내가 친가 쪽 사람을 보며 물었다.
“상식이 괜찮은 거 맞죠?”
친가 쪽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벼운 화상은 아닙니다만,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정신은 들었어요?”
“아까 깼다가 다시 잠들었습니다.”
아내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지금 애 상태가 안 좋다고 하니까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우리 이렇게 물러나지 않아요.”
“··················.”
“여보 가요.”
남편은 분이 안 풀린다는 표정으로 굳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경호원들을 노려본 후 옷을 턴다.
“너희들 얼굴 다 기억해 두마.”
경호원들은 들은 척도 안 했지만 남편은 여러 번 으름장을 놓고 나서야 아내와 함께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친가 쪽 사람이 아직 이쪽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을 쫓아 로비로 내려가 수납 장소 근처에서 그들을 붙잡았다.
“실례합니다.”
남편이 몸을 돌리며 짜증난 얼굴로 물었다.
“뭐요?”
“경찰입니다.”
“··················”
신분증을 보여주자 인상을 구기는 남편. 아내가 얼른 나서며 묻는다.
“네, 형사님.”
“실례지만 김상식씨와 어떤 관계이십니까?”
아내가 명품 백을 열어 명함을 꺼낸다.
“상식이 이모예요.”
김상식의 이모. 그러니까 김상식의 모친인 이혜연이 AB전자 회장의 막내 딸이라고 했으니 그녀의 언니인 것 같다. 그녀가 준 명함을 보니 AB전자 상무이사 이정연이라는 명함이 보인다. 아마 가족경영을 하는 AB전자의 대주주인 것 같다. 나는 명함을 챙겨 넣으며 물었다.
“아까 보니 싸우시는 것 같던데.”
이정연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녀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잠시 말을 해도 되는지 고민하며 남편을 보는 이정연. 남편은 이 모든 상황이 황당한지 한숨을 푹푹 쉰다. 이정연은 마침내 고민을 마치고 말했다.
“매부와 동생이 죽었어요. 제대로 조사를 해야 되는데 친가 쪽에서 저렇게 막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예요. 경찰이니 아시겠지만 첫째 언니 아들까지 그 집에 놀러갔다가 화재로 함께 죽었고요. 지금 큰 언니는 충격 때문에 혼절한 상태예요.”
최영현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외가도 가족 아닙니까? 왜 김상식씨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겁니까?”
남편이 기가 찬다는 듯 끼어든다.
“애가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고 나중에 오라는 말만 합니다, 우리 어제도 왔어요. 내 조카 얼굴을 내가 보겠다는데 자기들이 왜 막는 겁니까? 형사 양반. 이거 법으로 어떻게 안 됩니까?”
법으로 강제할 수 없는 일이다. 가족 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김상식의 외가는 국내 굴지의 기업인 AB전자의 경영자 집안이다. 그런데 친가 쪽에서 외가를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잠시 최영현에게 남편을 맡아 달라 눈짓했다. 최영현은 눈치가 꽤 빠른 모양인지 바로 알아듣고 남편을 붙잡는다.
“자, 혹시 담배 태우십니까?”
“예? 뭐··· 태웁니다만.”
“답답할 땐 담배가 최고인 거 아시겠네요. 저랑 담배 한 대 태우면서 이야기 좀 하시죠. 제가 억울한 거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남편은 이정연을 힐끔 본다. 나는 이때다 싶어 나섰다.
“아내 분은 제가 보호하고 있겠습니다. 저도 여쭤볼 말이 있어서.”
이정연이 괜찮다는 듯 눈짓하자, 남편은 머뭇거리다 최영현과 함께 병원 밖으로 나간다. 흡연자에게 흡연 욕구는 참기 어려운 유혹이다. 두 사람이 나가자 나는 이정연을 데리고 근처 벤치로 가 앉았다.
우아한 자태로 벤치에 앉는 이정연. 나는 잠시 그녀가 말을 꺼내길 기다리다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평소 친가와 사이가 나쁜 편입니까?”
이정연은 내 질문에 멈칫하더니 서서히 눈빛에 분노가 서린다.
분명히 뭔가 있다.
이 두 집안 사이의 균열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린 여길 노려야 한다.
그래야 수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