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 화. 먼저 인간이 되어라 (4)
차로 돌아온 최영현이 조수석에 앉아 이어폰을 내민다. 줄이 연결된 손바닥만한 기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난 이어폰 한쪽을 받으며 물었다.
“보통 감청하면 전용장비 있는 차량에서 듣지 않습니까?”
최영현이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킬킬, 우리 도련님. 드라마 많이 보셨구나. 그건 국정원 놈들이나 쓰는 방법이고. 지원 없는 우린 세운상가 뒷골목에서 산 이런 싸구려 장비 쓸 수 밖에. 어차피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도 안 되는데 좋은 장비로 감도 좋게 들을 필요는 없죠. 이게 밥 딜런 음악이었으면 나도 좋은 이어폰으로 듣겠지.”
최영현은 감청 기계 볼륨을 높이며 히죽 웃는다.
“자, 무슨 소리 하는지 들어봅시다.”
나는 비아냥대면서도 자기 할 일을 하는 최영현을 바라보다 이어폰 속에서 들려온 소리에 집중한다. 이미 혈액검사를 마친 형사들이 나갔는지 병실은 조용하다. 물 따르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미닫이 문이 부드럽게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에게는 제대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김상식씨.
이건 아까 변호사 놈의 목소리다. 물컵을 테이블 위에 팽개치는 소리가 들리며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했다고.
-어디서 하셨습니까?
-필리핀.
-한국에서는 안 하신 겁니까?
-··················..
-김상식씨. 저희가 도우려면 정보를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됐으니까 나가. 그깟 징역. 살다 나오면 되지, 몇 개월이나 산다고.
-··················..
최영현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 새끼, 했네, 했어. 한국 들어와서도 한 거야. 그렇지?”
누구랑 대화하는 거냐, 넌? 혼잣말을 씨부렁거리는 최영현을 힐끔거린 나는 다시 소리에 집중했다. 변호사가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전화 진동소리가 들려온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일어난 김상식이 슬리퍼 끄는 소리를 내며 전화를 받는다. 아마 창가 쪽으로 붙어 전화하는 모양이다.
-어, 윤정아.
최영현이 얼른 말했다.
“박윤정, 김상식의 여자친구.”
싸구려 감청장비는 핸드폰을 감청하는 것이 아닌, 병실을 감청하는 것이라 여자친구가 뭐라고 말하는지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김상식의 대꾸를 듣고 대화내용을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하, 씨발 나 좆 됐다. 어떤 새끼가 신고해서. 뭐긴 뭐야, 약이지. 너? 왜, 내가 너까지 달고 들어갈까 봐? 킥킥 그럴까? 지랄하네, 내가 뭣 하러 그런 짓을 하냐?
하, 여자친구도 함께 약을 한 모양이다.
-당분간 나 연락 안될 거다. 어, 근데 서울 클럽에 내 눈들 다 있는 거 알지? 바람 피우다 걸리면 싹 벗겨서 시장 바닥 끌고 다닐 거니 조심해. 뭐? 지랄, 나 감옥 가는데 내가 거기서 뭔 바람을 피운다고.
김상식은 여자친구와 농담을 하는지 실실 웃는다.
-그래, 뭐 살아 봐야 몇 개월 안 살고 나와. 어, 여행이나 다녀오던가. 약? 아씨, 지금 내가 빵에 가게 생겼는데 굳이 나한테 그걸 물어야 되냐?
김상식이 머리를 벅벅 긁는 소리가 들린다. 생각보다 가성비 좋은 감청 장비인 모양이다.
-팔마 새끼한테 말해. 있잖아, 윌포드 팔마. 어, 그 새끼? 아마 이태원 소방서 골목 뒤 얼쩡거리면 찾을 수 있을 거야. 한국말 할 줄 알아. 거기 외국인 상대 창녀촌 있는 곳이니까 네가 직접 가지 말고. 어, 그래.
최영현의 눈이 빛난다. 얼른 수첩을 꺼내 이름을 메모한 그는 마약수사대 동료형사에게 한국에 있는 필리핀 마약 브로커의 이름과 위치를 문자로 보낸다. 병실에 있는 김상식은 한참 시시한 수다를 나누다 말했다.
-하여간 살고 나오면 보자. 뭐? 장례식은 지랄. 오지 마. 괜히 삼촌이 너 보면 지랄해. 왜? 몰라서 묻냐? 너 팔뚝에 문신 그거 씨발, 우리 꼰대가 보면 장례식이고 나발이고 밥상 뒤엎을 거다. 존나 꼰대라 말도 안 통해. 국회의원인지 지랄인지 뭐 대단한 거라고. 돈 있는 게 낫지. 맨날 개미 새끼들 눈치나 보고, 표나 구걸하는 삶이 뭐가 좋다고, 미친. 빵에 가면 편지 보낼 테니까 면회나 한번 오던가. 그래, 끊는다.”
전화기를 던져 놓은 김상식이 침대에 털썩 눕는 소리가 들린다. 이불을 만지작거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김상식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 씨발 빵에 있는 이불에서 냄새 존나 난다고 하던데. 좋은 이불 있을 때 잠이나 더 자자.
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김상식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끔 미닫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지만 잠이 든 김상식을 건드리지 않고 그냥 나가는 모양이다. 한참을 더 기다린 최영현이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차에서 내린다.
“일단 마약으로 구속하려면 증거 찾아야 되니까 여기는 그쪽이 맡으쇼.”
“어디 가십니까?”
최영현이 차에서 내린 후 허리를 숙여 운전석에 앉은 날 바라본다.
“팔마인지 뭔지 하는 새끼 잡아야 저 망할 새끼가 한국에서도 약 했다는 걸 증명하지. 해외에서 투약한 거랑 한국에서 투약한 거는 죄질이 다르다고. 무거운 형량 가지고 압박해야 입을 열죠. 난 그쪽 파서 어떡하든 구속시킬 테니까 병원 쪽은 경위님이 맡으시라고.”
최영현이 차문을 강하게 닫고 뛴다. 아마 저 길로 이태원에 가겠지. 아까 김상식이 말한 필리핀 브로커를 잡아 약을 팔았던 고객 리스트를 얻을 것이다. 재벌가문과 연결되어 있으니 좀 시끄러워질 것 같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잠시 김상식의 전화를 생각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아무 일도 없는 사람 같은 말투로 여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가능한 일일까? 인간으로 태어나 부모의 죽음 앞에서 초연해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노쇠하여 오랜 투병을 하던 부모님이 차라리 편히 가시길 바라는 자식은 있을 수 있어도 한순간의 사고로 갑자기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잃은 자식이 저럴 순 없다. 김상식에게 분명히 뭔가 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당장 김상식에게 접근하긴 어렵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는 거다. 나는 VIP병동 간호 사무실로 가 신분증을 내밀었다.
“VIP A실 담당 의사 선생님 좀 만나고 싶습니다.”
자기 일을 하던 간호사가 인터폰을 든다.
“네, VIP병동입니다. 형사님이 찾아오셨는데요. 네, 안현중 선생님 찾으십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인터폰을 끊은 간호사가 말했다.
“지금 내려오신답니다.”
“고맙습니다.”
간호사 스테이션 바로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기다리기를 5분여. 복도 끝에서 안경을 쓴 의사가 걸어온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안현중 선생이라는 생각에 벤치에서 일어났다. 안현중 선생이 날 힐끔 본 뒤 말했다.
“형사님?”
고개를 꾸벅 숙인 난 신분증을 보여준 후 말했다.
“VIP A실 김상식 환자 차트 좀 봅시다.”
안현중 선생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간호사 스테이션에 눈짓한다. 간호사가 차트를 찾는 것을 본 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영장 없이 환자의 개인정보인 환자 차트를 요구했다. 그런데 일말의 고민도 없이 차트를 보여주려 한다?
간호사가 안현중 선생에게 차트를 넘겨주자, 확인도 하지 않고 내게 내미는 의사.
“여기.”
김상식의 기본정보가 있는 첫 장을 슬쩍 확인하고 뒷장을 보니 알 수 없는 의학용어들이 난무한다. 안현중 선생이 말했다.
“일반인이 보시기에 어려울 겁니다. 쉽게 설명해 드리죠.”
안현중이 내가 보고 있는 차트 중 일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flame burn Level 2. 이건 화재에 의한 2도 화상을 말합니다, brachial triceps은 팔 바깥쪽, 그러니까 우리가 삼두라고 부르는 곳에 화상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여기 antipyrotic로 치료하라고 써 있는 건 화상치료제의 일종입니다.”
마치 미리 외운 대본을 읽는 듯한 안현중의 말. 매우 협조적이었지만 당연히 질문해야 할 말이 생략되고 있는 점이 이상하다. 나는 슬쩍 안현중을 바라보았다. 금테 안경을 쓴 의사는 아주 태연한 얼굴로 나와 차트를 번갈아 보고 있다. 나는 다음 장을 넘겼지만 기본 검사 소견서 말고 다른 것은 없다.
“이게 답니까?”
“예, 오른쪽 팔 외측에 2도 화상만 있는 환자입니다.”
“다른 곳은 안 다쳤고요?”
“네.”
“담당의사는 안현중 선생님 한 분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안현중은 내가 돌려준 차트를 간호사에게 돌려준 후 다시 휘적휘적 왔던 곳을 걸어간다. 나는 그가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 끝까지 갔던 그는 왼쪽으로 돌아 사라진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하지만 나는 그가 사라지고도 복도를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복도 오른쪽의 병실 창문으로 그가 비추어 보였기 때문이다.
왼쪽으로 돌아 사라진 척한 의사가 벽 뒤에 기대 있다. 내 쪽을 훔쳐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벽에 등을 기대고 있다.
‘긴장하고 있었던 거다.’
어떡하든 복도 끝까지 태연하게 걸어갔지만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긴장이 풀린 것이다. 저 의사는 뭔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의사가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뭘까?
‘사건과 관계된 다른 부상이 있다? 혹은 병원에 실려올 때 특이점이 있었거나.’
나는 창문으로 비친 안현중의 모습을 뚫어지게 보다, 간호사에게 물었다.
“김상식 환자, 여기 올 때 뭐 타고 왔습니까? 제 발로 오진 않았을 텐데.”
간호사는 이미 담당의가 차트까지 오픈한 마당이라 그런지 모니터를 확인 후 말했다.
“119와 함께 출동한 구급차로 오셨네요. 병원 소유가 아니라, 관공서 소유 차량입니다.”
관공서 소유의 차량. 바로 VIP 병동으로 오진 않을 것이다. 소방대원들에게 화상을 입은 환자를 일반 병동으로 배정할 권한은 없으니까. 분명 응급실을 통해 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간호사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후 응급실로 뛰어갔다. 혹시 내가 내려오는 사이에 또 다시 병원 내 입막음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
나는 우선 병원 경비실에 들러 CCTV부터 확인했다. 김상식이 119 구급대원들의 카트에 실려 응급실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맨 처음 달려 나온 의사와 간호사 둘의 얼굴을 머리 속에 밀어 넣은 나는 바로 응급실로 달려갔다.
종합병원이라 그런지 응급실 규모가 꽤 크고, 지나 다니는 인력들도 많다. 이 많은 관계자 중에 CCTV에서 봤던 병원인력을 은밀히 찾아야 한다. 바로 그때, 응급실 문이 열리며 정장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난 저들을 보았다. 김상식의 병실 앞을 지키는 경호원 한 명과 변호사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간호사 스테이션에도 그들의 눈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병원까지 어떻게 이송했냐는 질문을 하자 마자 머리 좋은 변호사들이 내가 응급실을 조사할 것이라 예상하고 바로 움직인 것이다.
빨리. 빨리 찾아야 된다. 저들보다 빨리 찾지 못하면 또 다시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응급실 침상의 커튼 뒤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던 내가 조급한 마음에 침대를 벗어나려는 그 순간, 누군가 커튼을 열며 나와 마주친다.
“환자 분, 어떻게 오셨어요?”
환자 분? 아, 나 환자 아닌데. 여기 있으니 환자가 온 거라고 생각했구나. 나는 얼른 부인하려 간호사를 보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내 앞에 나타난 그녀가 CCTV 속 김상식의 담당 간호사임을 알아보았다. 시간이 없다. 나는 다짜고짜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