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70화 (70/328)

제 70 화. 먼저 인간이 되어라 (5)

내가 그녀를 침대 쪽으로 잡아 끌자, 간호사는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려 한다. 나는 그녀의 입을 막은 후 커튼을 살짝 젖히며 응급실을 뒤지고 있는 두 명의 남자를 가리켰다. 간호사는 입이 막힌 채로 내가 가리키는 사람을 보더니 눈짓으로 알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진정하라는 손짓을 보낸 후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자,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짓는 간호사. 나는 천천히 틀어막았던 입에서 손을 떼며 사과를 한다.

“갑자기 죄송합니다.”

“후, 놀랐어요. 형사님.”

“좀 급한 상황이라, 재차 사과 드립니다.”

“네, 무슨 일이죠?”

나는 커튼을 잘 여며 닫은 후 물었다.

“3일 전에 관공서 구급차로 이송된 화상 환자 기억 나십니까?”

하루에도 몇 백의 환자가 들고 나가는 응급실이다. 기억을 더듬어야 하는 작업은 필수다. 간호사는 눈을 깜빡이며 기억을 떠올리려 애를 쓴다. 나는 그녀를 돕기 위해 말했다.

“키 178 정도에, 20대 중반의 남성 환자였습니다. 팔 외측에 2도 화상 환자요.”

“아! 그 환자. 기억나요.”

그녀의 반응.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아까 안현중 선생처럼 바로 답했다면 오히려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러 환자들이 스쳐 가는 응급실 간호사 다운 반응을 보였다. 분명히 그들에게 포섭되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당장 변호사와 경호원이 찾으러 다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환자, 어디를 다쳤습니까?”

“어··· 팔 외측 화상이 제일 심했어요. 응급실 담당 쌤이 치료 중이었는데, 갑자기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치료를 중단하라고 해서 우린 전부 멈췄고, 곧 원장 선생님이 내려오셨어요.”

“원장님이요?”

“네, VIP 환자 중에 가끔 그런 분이 계세요. 아니나 다를까 바로 VIP 병동으로 이송됐어요.”

제길, 포섭을 안 한 것이 아니라, 아는 게 없으니 포섭할 필요가 없었던 건가?

“화상 말고 다른 건 못 보셨습니까?”

“뭐··· 특별히 다친 곳은 생각이 잘···”

하, 여긴 틀린 건가? 괜히 헛다리를 짚은 모양이다. 나는 다시 커튼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CCTV에서 봤던 두 명의 간호사 중 한 명, 그리고 의사 한 명이 그들에게 뭔가 지시를 듣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 입을 닫으라 지시하는 것이겠지. 병원 원장까지 그들과 한통속이니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간호사가 중얼중얼 그때의 상황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이 내렸고, 응급실 담당 쌤이··· 아! 머리! 머리를 보라고 했어요.”

응? 머리? 내가 고개를 돌리자 간호사가 얼른 말했다.

“머리에서 피가 나고 있었어요.”

“머리에서?”

“네, 그래서 제가 머리 쪽을 살폈는데 외상이 없었어요. 머리는 민감한 부분이라 일단 CT부터 찍어 보자고 하는 와중에 사람들이 몰려와 치료가 중단됐고요.”

머리를 다쳤다고? 하지만 차트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차트에서 환자 상태가 누락되는 일도 있습니까?”

“에이, 설마요. 그런 일은 없죠.”

당신이 아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야, 좀 전에 내 눈으로 봤으니까. 간호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그런데 제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긴 한데.”

“어떤 부분입니까?”

간호사가 자기 머리를 만진 후 손가락을 비빈다.

“원래, 그 정도 출혈이 있으면 피가 계속 흘러야 돼요. 그런데 이상하게 머리카락에 있는 혈액이 굳어 있었어요. 자연적으로 멈출 양의 혈액이 아니었거든요.”

나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혈액의 양이 얼마나 되어 보였습니까?”

“어··· 굳어 있긴 했지만 그 정도 양이면 처음 출혈이 시작되었을 경우 머리가 다 젖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게 외상이 없었어요.”

머리가 다 젖을 만큼의 출혈이 있었지만 외상이 없었다.

‘자기 피가 아니다.’

간호사가 말을 덧붙인다.

“그런데 원래 사고현장에서 실려온 환자들은 그런 사람 많아요. 함께 있던 사람 살리려고 부상 입은 사람 업고 뛰다 남의 피가 묻거나 하니까 이상할 건 아니긴 한데.”

“피가 묻은 건 머리 밖에 없었습니까?”

“아뇨, 여기 오른쪽 다리에도.”

“다리? 정확히 어디입니까?”

“오른쪽 종아리 부근이요. 바지가 다 젖어 있었어요.”

젖어 있었다? 머리는 피가 말라붙었는데 바지는 젖어 있었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응급실에 왔을 때도 출혈이 있었어요. 하지만 출혈이 멈추고 있는 상태라 위급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어요. 아마 찰과상 정도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찰과상. 물론 그를 이송하는 과정이나 탈출 과정에서 생긴 부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피가 아닌 것을 묻히고 왔다는 말을 듣고 나자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다시 커튼을 열어본 뒤 말했다.

“절 만났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귀찮아질 겁니다.”

간호사는 꽤 눈치 빠른 사람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네, 형사님.”

알 수 없는 머리에 말라붙은 혈흔. 그리고 오른쪽 종아리의 부상. 외상이 없는 머리는 차트에서 누락될 수 있지만 종아리 부상이 누락될 이유는 없다. 실려 왔을 때도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면 가볍다고 해도 외상으로 기록해야 맞다. 누군가 고의로 누락한 것이 틀림없다.

**

종로소방서 현장대응단, 구조대 2팀.

병원에서 나와 바로 종로소방서를 찾은 나는 평창동 화재 사건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을 찾았다. 대부분이 비번이라 팀장만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그가 쉬고 있는 휴게실에 온 나는 아내가 싸준 듯한 도시락을 먹고 있는 덩치 좋은 소방대원을 보며 물었다.

“실례합니다, 구조대 2팀장님을 찾고 있습니다만.”

먹기 좋게 칼집을 낸 비엔나 소시지를 케첩에 푹 찍어 입에 넣던 턱수염난 소방대원이 입을 우물대며 말했다.

“접니다.”

“아, 종로경찰서 강력3반 현도경 경위입니다.”

경찰이란 말을 듣자 입을 닦으며 일어나는 팀장. 나는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며 맞은편에 앉았다.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계속 식사하세요.”

팀장은 입을 우물거리며 빨리 음식물을 씹어 삼킨 후 소매로 입을 닦는다.

“아닙니다, 바쁜 거야 매 한가지인데. 협조하고 살아야 인지상정이죠. 세금으로 먹고 사는 같은 처지끼리. 무슨 일이십니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3일 전 평창동 주택 화재사건에 출동하셨죠?”

“아, 그 사건. 예, 저희 팀이 나갔습니다.”

“단독 출동이었습니까?”

“아이고, 그럴 리가요. 불이 얼마나 컸는데. 저희가 제일 처음 도착한 팀이고, 인근 소방서 다섯 팀이 더 왔습니다. 난리도 아니었죠.”

“발화원인 보고서 나왔죠?”

“그거··· 아까 경찰서로 보내 드렸는데.”

경찰서로 보냈다? 방화(放火)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외근 중이라 아직 확인을 못했습니다. 혹시 방화 사건입니까?”

“예, 잠깐만 기다리세요.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팀장이 식사 중에 사무실로 간다. 조금 미안하다. 국민들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사람인데 아내가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 하나 마음 편히 먹지 못하게 했구나. 미안한 마음에 관자놀이만 긁고 있을 때 팀장이 금방 돌아와 보고서를 내민다.

보고서를 받아 든 날 보며 다시 도시락 앞에 앉은 팀장이 말했다.

“발화지점은 지하 1층이었습니다. 2층 주택이었고, 화재당시 2층은 내부수리 중이었습니다.”

“2층이 공사 중이었다는 건 어떻게 아십니까?”

“인테리어 공사를 하러 온 인부들이 얼이 빠져 있길래 물어봤습니다. 공사 시작한지 일주일 째라고 하더군요.”

“가족들이 평소 모두 1층에서 생활하고 있었겠군요.”

“그렇겠죠. 1층은 전소됐습니다.”

나는 발화원인 항목에 쓰여진 ‘kerosene’이란 글자를 가리켰다.

“이게 뭘 뜻하는 겁니까?”

팀장이 보고서를 슬쩍 보고 말했다.

“등유(燈油)입니다.”

팀장이 의자를 끌어 내 옆으로 오며 말했다.

“발화 시작점인 지하1층에서 다량의 등유성분이 발견되었습니다. 보통 세 가정에서 일어나는 화재 사건의 원인은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합선이나 전기장치오류, 마지막으로 난방장치에서 섬유로 불이 옮겨 붙는 경우입니다. 처음에는 겨울이고 하니 2층을 사용할 수 없는 가족들이 1층이나 지하에 임시로 살면서 추우니 휴대용 난방기구를 사용하다 불이 났을 거라 추정했습니다. 실제로 지하에서 휴대용 난방기구가 나왔죠.”

불은 난방기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뜻일까? 팀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하지만 난방기구는 전기제품이었습니다.”

“전기제품이요?”

“예, 등유가 안 들어가는 제품이라고요. 하긴 뭐 요즘 누가 등유 넣는 난로를 쓰겠습니까? 현장감식을 해봤는데 등유가 들어갈 제품이 전혀 없었습니다. 즉, 누군가 지하에 등유를 흩어 놓고 일부러 불을 질렀을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만약 김상식이 정말 자기 부모와 조카를 죽였다면. 존속살인도 모자라 증거인멸을 위해 시신을 훼손하기까지 했다는 뜻이다. 사실이라면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놈이다.

하지만 도대체 왜?

김상식에게는 중요한 한 가지가 없다. 친가에서 경찰 수사를 대놓고 막을 수 있는 명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발화원인 리포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김상식은 Y대 한의대에 다니는 인재이다.

한약재 상인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한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보인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으며, 제대 직후 LA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것은 4개월 전. 예전의 사건을 떠올려 그의 금전상황도 파악했지만 빚은 없다. 하긴, 그렇게 부잣집에 사는데 빚이 있을 리가 없다. 돈 때문이 아니다. 그럼 관계에 문제가 있었을까?

김상식의 아버지 김중권.

그는 국내 굴지의 한약재 상인이다. 자기도 상인이면서 상인 가문의 아내를 무시하는 집안 식구들의 언사를 당연하다는 듯 생각한 사람이지만 평소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다. 가문에 대한 무시 외에 특별히 아내와 싸우는 일이 없던 보통의 부자. 아들인 김상식을 데리고 자주 교회에 나타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 다니는 아들이 금 같은 일요일에 아버지와 함께 교회에 가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도대체 김상식은 왜 부모를 죽였을까? 아버지가 아니면 혹시 어머니와 문제가 있었던 걸까?

아니, 어떤 이유가 되었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이유에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죽였느냐 하는 질문보다 과연 어떤 이유가 되었든 그것이 가능한 행위이냐 라는 원론적 질문에 머리가 복잡해 진다. 하지만 나는 최영현이 감청했던 내용을 들었다. 부모의 죽음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비정한 아들. 물론 그것이 아들이 범인이라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히 그를 의심할 실마리가 된다.

오래 고심에 빠져 있던 내 눈에 먹던 도시락을 앞에 두고 날 멀뚱히 보고 있는 팀장이 보인다. 아, 내가 너무 오래 이 사람을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얼른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아, 가시게요?”

“예, 식사시간을 방해해 죄송합니다, 그럼.”

“살펴 가세요, 형사님.”

덩치답지 않게 친절한 소방서 팀장님. 저런 사람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안전하다. 잠시 사건을 잊고 소방대원들이 뛰어다니는 소방서 복도를 걷던 나는 품에서 울리는 전화 덕에 잠시간의 감사함에서 깨어났다. 액정에 관우의 이름이 떠 있다.

“어, 관우야.”

-저기, 형님···

“어, 말해.”

-저기··· 누가 찾아오셨는데.

“누가?

관우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한다.

-그게··· 김재철 국회의원이라고.

“뭐?”

-여기 상황이 좀··· 일단 빨리 복귀 하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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