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71화 (71/328)

제 71 화. 먼저 인간이 되어라 (6)

종로경찰서, 서장실.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치는 서장이 가식적인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의원님이 직접 예까지 오시게 만들어 송구스럽습니다. 날이 춥습니다, 차 한잔 하시죠.”

아양을 떨고 있는 서장의 맞은편, 중후하게 늙은 60대 남자가 고급 정장 차림으로 앉아 있다. 국회의원 보직에 앉은 이가 관공서를 찾아오면 강짜를 놓기 일쑤인데 그는 오히려 점잖게 앉아 있다.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앉아 있거나, 서장을 깔아 보는 언사 따위는 하지 않는 정치인이다.

“차 맛이 좋군요.”

“아! 예, 중국 심양에서 공수한 차입니다. 중요한 분이 오실 때만 내드리는 차지요.”

김재철이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는 것을 지켜보던 서장이 문 가에 서 있는 계장에게 조바심을 낸다.

“담당 형사들 아직인가?”

“지금 오고 있답니다.”

서장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없이 차를 들고 있는 김재철의 눈치를 본다.

“죄, 죄송합니다. 우리 일이란 게 워낙 외근이 잦아서.”

“괜찮습니다, 국가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살아야죠.”

“아이고, 이거 감사합니다.”

그때,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리며 직원의 목소리가 울린다.

“담당형사인 현도경 경위가 왔습니다.”

서장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방 내부의 전경이 보인다. 관우의 전화를 받고 서로 복귀한 나는 김재철 의원이 내 자리에 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그는 서장의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왔지만 여전히 돌아보고 있는 자세를 고수하며 차만 마시는 김재철 의원. 나는 서장에게 경례부터 올렸다.

“충성, 경위, 현도경. 부름 받고 왔습니다.”

서장이 눈치를 주며 말했다.

“씁, 의원님 오셨는데. 저쪽에 먼저 인사하게.”

내가 왜? 국회의원이 내 윗사람인가? 아무튼 서장이 시키는 것이니 이것도 명령이겠지. 나는 소파를 빙 돌아 김재철 의원의 옆에 서서 머리를 숙였다.

“현도경 경위입니다.”

김재철은 옆 눈으로 날 힐끔 본 뒤 찻잔을 내려 놓는다.

“그래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이야기? 국회의원이 뭔 나 같은 말단 형사 이야기를 들었겠는가? 그냥 하는 소리이겠지. 서장이 내 팔을 잡아당기며 소파에 앉힌다.

“자, 앉게.”

나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김재철 의원의 맞은편에 앉았다. 국회의원을 실제로 보면 어떨까? 생긴 건 호랑이 상에 가깝게 생겼는데 느낌은 너구리나 늙은 여우 같다. 김재철 의원은 날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내 서장님께는 따로 이야기 안 했습니다.”

응? 뭘 따로 이야기 안 해? 앞뒤 설명을 좀 하고 말을 하던가. 아무튼 서장한테 압력을 행사한 건 아니란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지. 나는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의원님.”

김재철 의원의 뒤에 있던 두 명의 비서가 움찔한다. 당장 내 입을 찢어 버리겠다는 듯 으르렁거리는 비서들. 웃긴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가만히 두면 ‘이놈! 무엄하다, 이 분이 뉘신지 아느냐!’라고 할 것 같다. 김재철 의원은 날 빤히 보다 말했다.

“경대 수석졸업, 임관 후 순환보직 근무가 끝나고 강력계로 보직발령 받은 게 몇 개월 안 되었던데.”

뭐야, 진짜 내 뒷조사를 한 거야? 아까 내 이야기 많이 들었다더니 그게 진짜였어? 하지만 왜? 당신 같이 바쁜 사람이 왜 내 정보를 본 거지?

“예, 의원님.”

김재철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이해합니다. 딱 그 시기 때는 한창 정의감에 불타 있을 때죠. 모든 사건을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뭐든 의심스럽게 보이겠죠. 당연합니다, 누구나 그러니까.”

“·····················..”

뭐냐, 이 분위기는. 내가 사춘기 꼬마로 보이는 거냐? 동네 복덕방 할아버지들이 장기 두다 학생들에게 훈계하는 듯한 말. 정치인이라고 하더니 뿌리부터 꼰대 근성으로 똘똘 뭉친 인간인가 보다. 김재철 의원이 소파 팔걸이에 편안히 손을 걸치고 말했다.

“상식이를 용의자로 보신다고?”

서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끼어든다.

“아니, 의원님. 그게 아닙니다. 아마 우리 쪽에서 뭔가 착오가.”

김재철 의원은 서장을 보지도 않는다. 그저 나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노려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덤덤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 서장은 김재철 의원의 그런 눈빛이 내 입에서 직접 대답을 듣고 싶다는 뜻임을 알고 내게 눈치를 준다.

나는 가만히 김재철 의원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화재현장에서 사망자 발생 시, 유일한 생존자를 용의선상에 올리는 것은 수사의 기본입니다.”

서장의 눈이 커진다. 이 새끼가 지금 누구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거냐 하는 얼굴이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니 끼어들기도 그럴 것이다. 김재철 의원은 내가 내놓을 답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차를 한 모금 더 마신다.

“음, 옳습니다.”

응? 옳다고? 그의 반응에 오히려 내 쪽이 의아해 진다. 옳다고 할 거면 여기까지 뭣 하러 온 거지? 김재철 의원이 찻잔을 놓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경위.”

“예, 의원님.”

“수사를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진행하는 것이 아닙니까?”

“··················.”

“말씀하신 대로 제 조카가 용의자가 되는 건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사건의 용의자 중 한 명이 아니라 단독 용의자로 모는 건 좀 과하지 않습니까?”

용의자 중 한 명이 아니라 단독 용의자. 그럼 생존자가 한 명인데 당연한 거 아닌가? 다시 서장이 끼어든다.

“옳습니다, 백 번 옳은 말씀입니다. 살해된 피해자 김중··· 아, 죄송합니다.”

김재철 의원의 형제가 살해 피해자란 사실을 떠올린 서장이 고개를 숙인다. 김재철 의원이 됐다는 신호를 보내자 서장이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을 잇는다.

“김중권씨는 경동시장의 큰손이었습니다. 개인 자산 1000억이 넘는 재산가였기 때문에 재산을 노린 제3자의 개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쪽도 계산하고 있습니다.”

나는 서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계산? 처음 듣는 소리인데. 수사 팀이 우리 말고 또 있나? 하는 눈빛을 보내자 서장이 눈을 마구 깜빡인다. 이 아저씨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김재철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건 제 조카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서장이 맞장구를 친다.

“당연합니다, 의원님.”

김재철 의원이 나 들으라는 듯 손짓발짓을 하며 설명한다.

“평소 중권이 녀석이 사업을 하며 중소상인들과 척을 졌을 수도 있습니다. 사업 일이란 게 하다 보면 원한을 사는 경우도 있죠. 큰돈을 쫓으려면 어쩔 수 없는 희생 아니겠습니까? 그 와중에 발생한 피해자가 중권이에게 복수를 하려고 불을 질렀다고 가정한다면 어떻습니까? 처제와 사돈 댁 어린아이, 그리고 상식이까지. 모두가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서장이 허리를 떼고 소파 끝에 엉덩이를 겨우 붙이고 말한다.

“옳습니다, 의원님 말씀이 맞습니다.”

김재철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날 바라본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용의자를 상식이 하나로만 보고 수사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서장이 손사래를 친다.

“아이고, 그럴 리가요. 저희 경찰이 그리 편파적인 수사를 할 리가 있습니까? 혀, 현경위. 설명 좀 해보게.”

서장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찌른다. 뭐? 뭐 어쩌라고? 내가 멀뚱히 서장을 바라보자 그가 당황하며 얼른 입을 연다.

“수사팀은 원래 두 명입니다. 사건의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 보니 일반사건에는 보통 경장, 경사 팀이 배정됩니다만, 이 사건에는 특별히 경위 두 명이 투입되었습니다. 여기 현 경위 말고도, 최 경위가 있죠.”

김재철이 주변을 한번 쓱 보고 말했다.

“그 사람은 왜 안 왔습니까?”

“방금 의원님이 말씀하신 부분을 수사하러 갔습니다.”

응? 이 영감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최영현은 김상식의 마약 투약 혐의를 입증하러 브로커 잡으러 갔는데? 김재철은 서장을 뚫어지게 보다 말했다.

“음, 그렇다는 말이죠?”

“예, 물론입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일어나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가는 것이 반가운 표정이 역력한 서장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흘러나온다. 저렇게 살아야 서장이 될 수 있는 건가? 김재철이 일어나 옷을 단정히 하며 말했다.

“예, 공무가 바빠서.”

김재철은 서서 날 내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현 경위.”

나는 앉아서 그를 올려 보며 답했다.

“예, 의원님.”

그러자 서장이 얼른 내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운다.

“이 사람이. 의원님 말씀 들을 때는 일어날 것이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히려 내가 의원을 내려 보는 형국이 된다. 내 쪽이 키가 더 크기 때문이다. 김재철 의원이 날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가뜩이나 부모와 어린 조카까지 잃은 녀석입니다. 설마 자식이 부모를 죽였겠습니까?”

“·····················..”

“수사 방향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왔습니다. 하지만 오길 잘했군요. 편파적인 수사방향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그럼 믿겠습니다.”

“·····················..”

김재철 의원이 몸을 돌리다 다시 멈칫한다. 그리고 천천히 날 다시 바라본다. 하지만 이번의 눈빛은 조금 전의 그의 눈빛과 다르다. 늙은 여우 같은 눈빛에서 사냥감을 노리는 호랑이와 같은 눈빛으로 바뀐 김재철 의원이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김재철 의원은 무심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날 위아래로 훑다가 말했다.

“아비를 죽이는 자식이라니. 우리 집안에 그런 패륜아는 없습니다.”

김재철 의원이 슬쩍 고개를 숙인 후 방을 벗어난다. 미친, ‘우리 집안에 그런 패륜아는 없습니다’가 아니라, 그런 놈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뜻이겠지. 그 잘난 국회의원직에 흠이 날 테니까. 서장은 문 앞까지 의원을 배웅한 뒤 문을 닫고 한참 닫힌 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서장이 온몸에 긴장이 풀린 듯 비틀거린다.

“괜찮으십니까?”

서장이 이마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는 걸 본 난 빠르게 그에게 다가가 부축을 했다.

“아아, 괜찮아.”

서장을 부축해 소파에 앉히자, 다 식은 차를 꿀꺽꿀꺽 마시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각을 잡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제 서장이 눈치 없이 군 내게 불호령을 내릴 차례이기 때문이다. 뭐 상관없다. 야단 맞든 말든 난 내 일을 할 것이다. 그러려고 경찰이 된 것이니까.

하지만 서장은 내 윗사람이다. 상사에게 야단을 맞는 건 조금 긴장되는 일이긴 하다. 게다가 야단 맞는 태도가 좋지 않으면 잔소리는 더욱 길어질 거다. 이럴 때는 그냥 잘못했습니다, 제대로 하겠습니다 라는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 최선이다.

서장은 차를 다 마신 후 한숨을 푹 내쉬고 날 바라본다. 이제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허리를 더욱 꼿꼿하게 펴고 서장의 불호령을 기다렸다. 하지만 날아온 건 불호령이 아니라 은근한 어조의 말이었다.

“최 경사가 잘 움직이고 있나? 이태원 쪽이라고 했지?”

응? 최영현의 행보에 대해 알고 있구나?

“··················.”

“마약수사대 쪽에서 보고 들었다. 김상식을 마약투약 혐의로 먼저 잡아들일 생각이라고 하던데.”

뭐야, 다 알고 있었어?

“알고 계셨습니까?”

“내가 서장이다, 인마. 모르겠냐?”

“브로커 잡으러 갔습니다. 김상식에게 직접 마약을 판매한 브로커인데 아마 중간 판매상일 겁니다.”

서장이 손수건으로 얼굴에 난 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다, 뭐든 일단 데려와. 밖에 있으면 수사가 안돼.”

응?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서장은 김재철 의원 눈치를 보는 거 아니었어? 보통 이런 장면에선 당장 수사 중단해! 혹은 수사 팀을 교체한다! 하면서 방해하던데. 내 의아한 눈빛을 본 서장이 주먹으로 소파 팔걸이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정연 전무이사님께 따로 전화 받았다.”

헐, 이거였구나. 서장이 AB전자 따까리라고 했었지. AB전자 측은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길 바라고 있기에 서장에게 따로 귀띔을 한 모양이다. 하여간 이 늙은 여우들은 뒤에서 무슨 짓을 이렇게 꾸미고 있는 걸까? 에이, 몰라. 난 내 할 일만 한다. 정치 놀음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

서장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반드시 범인 잡아서 내 앞에 데려와.”

당신 말이 아니더라도 그럴 겁니다, 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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