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화. 먼저 인간이 되어라 (7)
“현 경위?”
사무실에 돌아와 사건자료를 정리 중에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생전 처음보는 사람이 내 책상 파티션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는 종이컵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커피?”
얼결에 그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 든 나. 남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나 정보2과 팀장, 김현호.”
나는 커피를 놓고 일어나 경례를 했다.
“충성.”
“어, 그래. 지금 시간 좀 되나?”
“아, 뭐··· 괜찮습니다.”
“잠깐 나 좀 보지.”
나는 그를 따라 복도 끝 창문 쪽으로 갔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김현호가 노란 봉투를 내민다.
“자.”
“··················..”
아무 것도 써 있지 않은 노란 봉투. 꽤나 가볍다.
“이게 뭡니까?”
“정보.”
정보? 갑자기 처음 보는 정보2과 팀장이 와서 정보를 준다고? 나는 미심쩍은 얼굴로 봉투를 열었다. 그러자 달랑 서류 한 장이 나온다. 누군가의 신상정보다.
“최지환 59세, 경동시장 약재상··· 이게 누구입니까?”
김현호가 팔짱을 끼고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말했다.
“사실 우리 쪽에서 비밀 리에 정보를 좀 모아둔 게 있거든. 이번 평창동 방화사건 담당자, 현 경위 맞지?”
“예.”
“거기, 최지환이란 인간 조사해봐.”
“··················.”
“우리 정보에 따르면 그 인간이 4년 전에 중국 측 흑삼 수출권을 김중권에게 빼앗겼어. 그 일로 앙심을 품었을 가능성이 있거든.”
“··················..”
“정보과가 뭐 하는 곳인지 알지? 그런 정보들 미리 파악해서 모아두는 부서야. 알지? 내가 현 경위가 하도 날아다닌다는 소문 듣고 날개 달아주러 온 거야.”
사람 좋은 웃음을 입에 거는 김현호. 씨발, 장난치냐? 어느 정보과가 할 일이 없어 약재상 뒤나 캐고 다녀? 최지환이란 양반이 한약재상으로 위장한 마약사범이면 모를까. 김현호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복도를 벗어난다.
“난 정보 줬다? 나중에 잊지 마.”
나는 멀어져 가는 김현호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복도 끝에서 누군가 다가온다. 그는 날 발견하곤 그대로 직진해 내 앞에 선다.
“현 경위?”
“··················”
“맞아?”
“예, 맞습니다.”
“내사 1과 장호철이다.”
“내사과요?”
“그래, 평창동 방화사건 담당자 맞지?”
“맞습니다만.”
장호철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품 안에서 또 봉투를 꺼낸다.
“자, 이거.”
“··················..”
“사실 선배 형사가 좀 전해 달래서 왔다. 그거 이번 사건 정보야.”
“설마 김중권씨와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의 정보입니까?”
“아니, 아내 쪽이야. AB 전자 주가조작 관련으로 원한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 선배 말로는 이 자식이 범인일 확률이 백 퍼센트라고 하더군.”
“··················.”
뭐냐, 이 새끼들은. 전부 수사 혼란 주려는 시도인가? 나는 하루만에 무려 일곱 명의 경찰들에게 자료를 받았다. 뭐가 진짜인지,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을 하기 위해 조사에 착수한다면 몇 달을 허비하게 될지 모르는 애매한 정보가 대부분이다.
혼자 모니터 앞에 앉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때 김연주가 의자를 끌고 내 옆으로 미끄러져 온다.
“왜 그래요?”
“하, 아닙니다.”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티 납니까?”
“경위님 말고, 다른 쪽이요.”
“예?”
김연주 얼굴을 보니 그녀가 눈짓하는 것이 보인다. 내가 슬쩍 고개를 들자, 사무실 여기 저기에서 각자 일을 하고 있는 형사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김재철 의원의 눈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되면 움직이기 어렵다. 할 수 없이 최영현 쪽이 움직여 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걸까? 하지만 마약 브로커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쉬웠다면 마약수사대가 개고생을 하지 않겠지. 경찰대 시절 마약수사대에 대해 많이 들었다. 30일 잠복 후 오랜만에 집에 가면 형사들이 요즘 집에 너무 자주 가는 것 아니냐 생소해 할 만큼 힘든 부서라고.
나는 내 눈치를 보는 형사들을 쭉 훑어보았다. 저것들이 다 김재철 의원의 개다. 나는 날 힐끔거리는 형사들을 주시하며 하나하나 머리 속에 넣었다. 김연주가 내 등을 쿡 찌른다.
“선배들도 있어요. 그렇게 빤히 보면 버릇없다고 불려갑니다?”
나는 적당히 그들을 노려봐 준 후 다시 고개를 숙였다. 빠질 것 같은 눈을 마구 비벼 보았지만 전혀 시원해질 기미가 없다.
“미치겠군요.”
김연주가 볼펜을 입에 물며 말했다.
“대강 들었어요, 국회의원 집안에, AB전자 집안 일까지 물려 있다고.”
“·····················”
“골치 아프겠네요. 으, 내가 맡았다면 생각만 해도 짜증나.”
“김 경사님.”
“에이, 관우한테는 그냥 이름 부르면서.”
“···············.”
“저 관우랑 동갑이예요. 그냥 이름 부르세요.”
나는 누가 말을 놓으라고 한다고 막 놓는 타입이 아니다. 하지만 김연주는 오래 함께할 사이니 친근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설마 오빠라고 부르진 않겠지? 그건 낯 간지러운데. 다행히 김연주가 부르는 내 호칭은 변하지 않는다.
“얼마나 좋아요, 경위님. 앞으로도 그렇게 부르세요.”
“어, 연주야.”
“네?”
김연주가 눈을 반짝인다. 처음 만났을 때는 시크함의 끝을 달리던 여자였는데. 단양 사건을 함께 한 후에 그녀의 태도가 바뀌어 있다. 형사로서 인정해 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 마약 브로커 있지?”
“네.”
“보통 잡는데 얼마나 걸려?”
“음, 마약수사대 경력이 없어서. 아, 최 경위님이 가끔 말해준 적은 있어요.”
“최영현 경위가? 뭐라고 했어?”
“브로커만 잡는 건 쉽다고 했어요. 마약수사대는 보통 브로커 하나를 점 찍으면 그 뒤에 누가 있는지 캐내고 한번에 검거하려고 해서 일을 망친다고 했죠.”
“브로커만 잡는 건 쉽다고?”
“네, 말단 브로커는 더 쉽죠.”
“그게 외국인이면?”
“글쎄요, 그것 까진 잘. 왜요?”
“후, 그냥.”
빨리 잡아와라, 최영현. 그래야 일이 진행된다. 내가 다시 한숨을 쉬자 김연주는 내 질문과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맞춰 본 후 물었다.
“혹시 마약 브로커 잡으러 간 거 최 선배예요?”
음, 역시 형사인가? 질문 하나로 현 상황을 바로 짐작하는 구나. 그래, 김연주가 남도 아니고 한 팀인데.
“어.”
김연주가 빙긋 웃는다.
“그럼 금방 잡아요.”
“어?”
“최 선배가 갔다면서요.”
“그게 뭐?”
김연주가 윙크하며 말했다.
“마약수사대에서 상사와 사이가 안 좋아서 그렇지 능력 하나는 에이스였거든요, 최 선배.”
그냥 돼지 같던데. 아, 요즘 날아다닌다고 했으니 범인 잘 잡는 돼지인가? 바로 그때, 핸드폰에 문자 알림이 울린다. 김연주는 내 핸드폰을 쓱 본 후 웃는다.
“거 봐요.”
응? 왜 남의 핸드폰을 훔쳐보고 그래? 다행히 미리보기를 설정해 두지 않아 발신자 정보만 떠 있다. 핸드폰 잠금을 해제하고 내용을 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연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 속에 최영현의 문자가 와 있었기 때문이다.
[최영현 경위 : 잡았소, 6층 마약과 취조실로]
김연주가 싱긋 웃는다.
“전직 마약수사대 에이스가 최 선배였다니까 그러시네, 하하.”
이렇게 빨리 잡았다고? 반나절 겨우 지났는데? 이렇게 되면 이 돼지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범인 잘 잡는 돼지로.
**
마약수사대 취조실의 모니터실 문을 열자, 아까 병원에서 본 마약수사대 형사들이 눈인사를 해온다. 계급이야 어떻든 일단 선배들이니 나는 고개를 숙였다. 최영현이 팔짱을 끼고 유리 너머에 있는 필리핀 남자를 눈짓한다.
“이름 윌포드 팔마(Wilford Palma), 29세. 6개월 전에 대한민국으로 정식 입국. 입국과정에 문제는 없었던 것 같수.”
나는 최영현 옆에 서서 팔마를 바라보았다. 약간 검은 피부를 가진 필리핀 남자는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고 있다.
“어디서 잡았습니까?”
“이태원이지, 어디이긴. 상식이 새끼가 말해준 곳에 있던데 뭘.”
상식이가 네 친구야? 난 팔짱을 끼며 팔마를 노려보았다. 최영현은 마약수사대 형사들에게 가 주먹을 부딪히며 말했다.
“저 새끼 족치면 국내 굴지 기업 손자들 다 건드리게 될 수도 있어. 괜찮겠어?”
마약수사대 형사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해. 강력계 인간은 살인사건이나 빨리 해결하고 꺼져 주셔.”
“킥킥, 그래. 근데 하나는 기억해. 너네 신세진 거다?”
“알았다고. 나중에 꼭 갚는다.”
“오케이. 이자 쳐서 갚아라? 현 경위님. 어떻게, 같이 가실랍니까?”
최영현이 노트북을 챙기며 묻는다.
“아뇨, 마약수사 쪽은 문외한이라. 김상식에게 마약 공급했는지 확인만 해주세요.”
“그거야, 내 전문이지. 기다리쇼.”
나는 거울 뒤에 서서 최영현의 취조 모습을 보았다. 상대가 긴장한 상태이긴 했지만 범죄자를 쥐락펴락 진술을 따내는 최영현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가끔 윽박을 지르기도 하고, 살살 달래며 회유하기도 하는 최영현. 그는 역시 싸가지는 없지만 능력은 있는 돼지였다.
최영현의 조사가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마약수사대 형사들의 얼굴은 심각해 진다. 필리핀 브로커는 자신이 약을 사는 조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마약이 자신에게 전달되면 그걸 팔기만 했다는 진술. 하지만 그의 입에서 자신이 약을 팔았다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자, 사건이 생각보다 커질 거란 것을 예상한 마약수사대 형사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형님, 이거 우리 선에서 진행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현직 국방부 장관 손자 이름까지 나왔어요.”
“제길, 이거 서장한테 보고해야 될 것 같은데.”
“후, 어느 선까지 칠 겁니까? 대가리까지 치면 우리나라 뒤집어 집니다.”
음, 이 사람들. 필리핀 브로커는 그냥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 이름들의 정체가 누구인지 이미 다 꿰고 있구나. 대단한 이름들이 많이 나온 모양이다. 형사들이 설왕설래하는 동안 진술을 마친 최영현이 싱글싱글 웃으며 모니터실로 돌아온다.
“야, 대박! 스케일 장난 아닌데?”
마약수사대 형사들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똥 밟았네. 이거 다 증명하려면 우리 몇 개월은 뺑이 치게 생겼다.”
최영현이 노트북을 그의 품에 안겨주며 웃는다.
“몇 개월 뺑이 치고 진급하는 거지. 아니야?”
“후, 그래. 맞다, 맞아.”
마약수사대 형사들도 심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잡아냈다는 생각에 설레는 얼굴들이다. 저게 진짜 형사들의 얼굴이지. 최영현은 건들건들 걸어와 내 앞에서 서서 날 빤히 본다.
“뭐합니까?”
“예?”
최영현이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김상식 이름 나왔습니다, 잡으러 가시죠?”
“예, 바로 가실 겁니까?”
“·····················..”
“예?”
최영현이 채비를 하는 날 보며 피식 웃는다.
“우리가 가면 안 되지. 얘네가 가야 말이 맞지. 마약관련 혐의인데.”
“··················”
최영현이 눈짓하는 마약수사대 형사들. 이 새끼가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또 사람 바보 만드네. 싸가지는 없는데 능력은 있는 돼지 새끼. 아, 짜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