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73화 (73/328)

제 73 화. 먼저 인간이 되어라 (8)

마약수사대 형사들이 출동하자, 김상식은 곧 경찰서로 끌려왔다. 물론 그냥 온 건 아니다. 화상만 입었다는 놈이 휠체어를 타고, 변호사를 주렁주렁 대동하고 왔다. 취조실에 강력계 형사들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되는 상황이기에 모니터실에 숨어 취조 중인 김상식을 보는 나와 최영현.

취조실 내에 앉아 있는 김상식은 아직 부모님의 죽음이란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멍하게 앉아 있다. 하지만 나와 최영현은 실소를 지었다. 부모님이 죽든 말든 여자친구와 낄낄대며 통화하던 것을 들었기에 지금 저 모습이 위선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식은 뭘 먹고 살이 쪘는지 몸무게가 120kg은 가뿐히 넘어 보여 매우 비호감이다.

힘없이 휠체어에 앉은 김상식을 빤히 보던 마약수사대 형사가 물었다.

“김상식씨, 필리핀에서 마약투약하신 점 인정하십니까?”

“··················..”

김상식은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게 있다. 대신 변호사가 나선다.

“의뢰인께서 최근에 큰일을 겪으셨습니다. 정신적인 안정이 우선이니 이후 진술은 변호인이 대리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변호인이 저렇게 나오면 할 수 없다. 형사가 약물검사 결과지를 내밀며 말했다.

“소변검사와 모발검사 결과 메스암페타민(필로폰) 및 암페타민 양성 판정이 나왔습니다.”

변호사가 검사지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의뢰인께서 일체를 인정한다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형사가 황당한 얼굴로 김상식을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침을 흘릴 것 같은 얼굴. 형사가 김상식을 눈짓하며 말했다.

“이 상태인데 변호사님 앞에서는 제대로 진술했나 보군요?”

김상식이 미리 약에 손댔다는 사실을 변호사들에게 알렸기에 작전을 짜고 들어온 모양인지 변호사는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여기 처방전입니다.”

변호사가 내미는 처방전. 변호사가 약 이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SSRI이라고 써 있는 약이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입니다. 즉, 저희 의뢰인께서는 최근 부모님께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계십니다. 아시겠지만 우울증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시간이 더 깁니다. 아쉽게도 현재는 상태가 좋지 못하군요.”

형사가 다시 김상식을 바라본다. 여전히 멍하게 초점 잃은 눈빛을 하고 있는 김상식. 형사는 할 수 없다는 듯 검사 결과지를 다시 가져가며 말했다.

“일단 투약혐의는 인정하시는 거고.”

변호사가 바로 말을 자르고 들어온다.

“해외에서 투약한 혐의는 조건부 집행유예가 가능합니다, 또한 현재 의뢰인의 건강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은 점을 들어 재판 전까지는 병원에서 생활하게 해주시길 요청합니다.”

형사가 김상식을 삐딱한 눈으로 보며 물었다.

“어디가 안 좋다고 했죠?”

“정신적 문제입니다.”

“그 병원이란 곳이 정신병원입니까?”

“종합병원입니다.”

“왜, 정신병원에 안 가시고?”

“다른 외상도 있습니다, 2도 화상을 치료 중이라 현재 종합병원에 있습니다만, 대형 병원이라 정신과 진료도 가능합니다.”

완벽한 방패. 능력 있는 변호사들은 형사의 태클을 모두 피해간다. 변호사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네, 접니다. 지금 진술 중입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변호사가 전화기를 내미는 모습이 보인다. 형사는 전화를 빤히 보다 실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는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형사가 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얼굴을 찡그리고 핸드폰을 귀에서 살짝 뗀 후 말했다.

“누구 시길래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십니까?”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던 형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헛기침을 한 형사가 변호사와 김상식을 힐끔 본 후 말했다.

“예, 검사님. 예, 예. 그게, 현행 브로커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름에다, 본인 소변과 모발 검사결과도 전부 양성이라. 아, 예. 음, 일단 알겠습니다.”

거울 뒤에서 상황을 보던 최영현이 혀를 찬다.

“하여간 힘 있는 새끼들은 검사들도 구워 삶아요. 저 새끼, 저거 뻔해. 검사한테 압력 넣어서 집행유예로 빠져나가려는 거지.”

이대로는 안 된다. 집행유예로 나가든 불기소처분이 되든 마약투약 혐의 따위는 상관없다. 우리가 김상식을 잡아온 이유는 저걸로 빵에 넣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빌미로 그를 취조하겠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영현이 모니터실 안에 있는 마약수사대 형사들을 슬쩍 보며 약을 올린다.

“어떻게 할 거야? 너네 저 새끼 내주면 다른 재벌 놈들 손자 새끼들도 다 같은 방법으로 빠져나간다?”

마약수사대 형사들도 진퇴양난이다. 다들 머리를 벅벅 긁었지만 검사까지 나선 마당에 자신들이 뭘 어쩌긴 힘이 모자란다. 최영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팔짱을 끼고 다시 거울 속을 본다.

“지미, 헛수고한 건가? 후.”

최영현도 방법이 없는 걸까? 물론 이 상황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부조리한 상황이다. 마약 투여 혐의를 스스로 인정한 명백한 범죄자를 구속수사도 못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하지만 이 조직 안에 들어와 보면 말이 다르다. 우리는 어차피 경찰이란 조직에 묶여 있는 자들이고, 검찰과 경찰은 긴밀한 수사공조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들이 우리 위다.

최영현이 손톱을 깨물며 말했다.

“외부 압력이 들어올 건 알고 있었지만 검사라니. 대기업 손자도 아니고 일개 한약재상 아들인데.”

대기업 손자? 잠깐만.

나는 가방을 뒤져 명함 하나를 꺼냈다. 김상식의 이모, AB전자의 전무이사인 이정연의 명함이다. 어쩌면 이 여자로 압력을 압력으로 맞설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잠깐 고민이 된다. 쓰레기가 하는 짓을 그대로 답습하는 느낌도 들고. 명함을 들고 고민하는 내 모습을 슬쩍 본 최영현이 내가 든 것을 확인하곤 말했다.

“아까 병원에서 그 아줌마?”

“··················..”

“AB전자 회장 딸이라고 했죠?”

최영현은 이정연과 내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에 단순히 명함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상한 놈 쳐다보듯 잠시 내게 시선을 던졌던 최영현은 다시 취조실 안 위기에 빠진 형사를 바라본다.

어떻게 해야 되지? 이정연에게 전화해 볼까? 그래서 검사보다 더 높은 인간으로 하여금 구금해 철저히 수사하도록 지시를 내리게 할까? 그럼 난 저기 나사 빠진 악마새끼와 뭐가 다른 거지?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경찰이나 되는 놈이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걸까?

또 만약 도움을 청한다 치자. 이정연에게 김상식을 용의자로 볼 수 있는 심증에 대해 말해야 된다. 하지만 나는 지금 쥐고 있는 패가 단 하나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이정연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보다, 그녀에게 압력을 행사하게 할 증거가 없다는 편이 옳다. 어떤 말로 그녀를 설득한단 말인가? 김상식의 마약투여 혐의를 인정하게 한 것도 그녀로선 조카를 고발한 무거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더 협조를 구하려면 무엇이라도 가져가야 한다. 그래야 설득할 수 있다. 나는 마약수사대 형사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습니까?”

마약수사대 형사들이 고개를 숙인다. 그러다 한 명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시간 끈다고 뭐 뾰족한 수가 나옵니까?”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형사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최영현이 나서며 물었다.

“미쳤습니까? 강력계 형사가 들어가면 변호사가 가만 있을 것 같아요?”

“저 변호사. 제 얼굴 모릅니다. 같은 마약수사대 형사라고 하시죠.”

“그러니까 왜? 가서 질문도 못할 건데.”

“그럼 잠깐 변호사 데리고 나가 주세요. 전 그동안 순경 옷 입고 경비서는 걸로 하죠.”

“························”

최영현은 잠깐 상황을 이해 못했다. 당연하다. 변호사가 자리를 비운 동안 범죄자를 지킬 순경이 함께 하는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제대로 질문도 못할 것이다. 노련한 변호사라면 취조실 CCTV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왜 그러는지 설명을 하라고요.”

나는 최영현을 밀어내며 마약수사대 형사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가능하겠습니까?”

마약수사대 형사들이 나와 최영현을 번갈아 보다가 마지못해 말했다.

“길게는 못 끕니다. 길어야 5분일 겁니다.”

“괜찮습니다, 충분합니다.”

형사들은 도대체 왜 이 짓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들이다. 형사 중 한 명이 최영현에게 말했다.

“이걸로 신세 갚은 셈 치자?”

최영현이 놀라 형사의 멱살을 잡는다.

“뭐? 인마, 이건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왜 내 몫을 까?”

“같은 팀이잖아, 새끼야.”

“··················..”

형사는 최영현을 밀치며 모니터실을 벗어난다. 최영현이 황당한 얼굴로 날 돌아본다. 처음에는 황당한 얼굴에서 점점 화가 난 얼굴로 바뀌는 최영현. 그가 내게 다가와 으르렁거린다.

“아무 것도 아닌 걸로 기회 날린 거면 그땐 알아서 하슈.”

최영현이 구석으로 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머리를 쓸어 올린다.

“내, 참. 별···”

다시 형사가 들어오고, 순경 옷 한 벌을 내민다.

“입으세요.”

다 남자들만 있기에 그 자리에서 순경 옷으로 갈아 입은 나는 모자를 꾹 눌러쓴 후 형사 뒤에 섰다. 준비됐냐는 눈빛을 보낸 형사가 날 데리고 취조실로 들어가 말했다.

“변호사님. 잠깐 저희와 따로 이야기 좀 하시죠. 최검사님 전언도 있고.”

변호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최검사님께서 무슨.”

“고검장님이 따로 지시하신 것도 있어서.”

고검장이란 말을 듣더니 놀라는 변호사. 휠체어에 늘어져 있는 김상식을 힐끔 본 변호사가 형사를 보며 말했다.

“대신 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형사님들이 출입하지 않으신다는 약속을 해 주셔야 합니다.”

“아, 물론입니다. 여기 현순경이 지키고 있을 겁니다.”

변호사는 정복을 입은 날 힐끔 본 뒤 말했다.

“나중에 CCTV 요구할 겁니다. 만약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 취조가 이루어진다면.”

“아아, 걱정 마세요. 법적 효력 없다는 거 모르는 것도 아니고. 서로 선수끼리 그런 꼼수 안 씁니다.”

변호사는 미심쩍은 얼굴로 형사를 바라보다 일어났다. 일어나면서도 김상식에게 뭔가 귓속말을 한다. 정신도 없다면서 또 저건 알아듣는 모양이네. 변호사가 내 앞을 스쳐 지나다 날 힐끔 본다.

“현순경님? 잘 좀 부탁합니다.”

“예.”

잘 해줄 테니 걱정 말아요, 변호사님. 아주 잘근잘근 씹어서 소화 잘되게 썬 후에 삼켜 줄 테니.

형사들이 변호사를 이끌고 나가자, 나는 테이블을 빙글 돌아 김상식의 맞은편에 앉았다. 잠깐 날 힐끔거렸지만 금세 초점 없는 눈빛을 하는 김상식.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큰 사고를 겪으셨다고.”

“·····················.”

“부모님이 모두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들었는데, 유감입니다.”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위로하는 말일 뿐이다. 나중에 변호사가 CCTV를 보아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진 못할 것이다. 김상식의 눈빛이 흔들린다. 저 실력이면 차라리 연기자를 하지. 배우가 되었다면 천만 영화 몇 개는 가질 만한 명연기다.

김상식이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오열하기 시작한다.

“흑, 흑흑···”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김상식. 진짜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대단한 연기력이다. 김상식이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흑, 자,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서 일어났는데 불길이 온 집을··· 흑, 흑흑. 부모님을 구하고 내가···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흑흑.”

순간적으로 내 머리를 스치는 김상식의 목소리. 여자친구와 통화를 할 때 목소리다.

하, 씨발 나 좆 됐다. 어떤 새끼가 신고해서. 뭐긴 뭐야, 약이지. 너? 왜, 내가 너까지 달고 들어갈까 봐? 킥킥 그럴까? 지랄하네, 내가 뭣 하러 그런 짓을 하냐?

당분간 나 연락 안될 거다. 어, 근데 서울 클럽에 내 눈들 다 있는 거 알지? 바람 피우다 걸리면 싹 벗겨서 시장 바닥 끌고 다닐 거니 조심해. 뭐? 지랄, 나 감옥 가는데 내가 거기서 뭔 바람을 피운다고.

그래, 뭐 살아 봐야 몇 개월 안 살고 나와. 어, 여행이나 다녀오던가.

여자친구와 아무렇지 않게 통화하던 김상식의 목소리와 내 앞에서 오열하며 위선을 떨고 있는 모습이 겹쳐지며 마음 속에 분노가 고개를 든다. 인간 같지 않은 새끼. 그 입에 부모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거 올리지 마.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지금 네 모습을 보며 얼마나 분통을 터뜨리고 계실지 두렵지도 않은 거냐?

김상식을 노려보고 있는 내 마음 속에 악의(惡意)가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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