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 화. 목소리(Voice) (5)
황지영의 집 앞.
차 앞에 모인 나와 최영현, 김연주가 머리를 맞댄다. 최영현이 안쪽 상황을 듣고 팔짱을 낀다.
“오빠라는 사람 방에 일본도가 있었다고?”
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 세 개를 편다.
“네, 세 자루요.”
“도검소지 허가 받은 거래?”
“조심스러워서 못 물었어요.”
“음, 허가 받았다면 기록이 있겠지. 우리 쪽에서 알아보자.”
“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최영현이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물고 내 쪽을 본다.
“황지영의 오빠가 애니메이션 팬이었다고요?”
“예, 방 안에 브로마이드가 가득했습니다. 인형들도 많았고.”
“음. 거 뭐라고 했더라? 관우가 말한 애니메이션.”
“악귀의 검입니다.”
“예, 그 브로마이드도 있었습니까?”
있었다. 그것도 침대에서 누우면 정면으로 시선이 닿는 머리 위 천장에 붙어 있었다.
“예, 있습니다.”
최영현이 머리를 벅벅 긁는다.
“한달 전에 군입대를 했는데 이틀 전에 나와서 살인을 저질렀다고요? 그게 말이 되나?”
말이 안 되지. 그러니까 골이 아픈 거지, 이 양반아. 나는 일단 목과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도경입니다.”
-과장님이 뭐냐, 인마. 형님이라고 하라니까.
하, 나이도 꽤 많아 보이는데 자꾸 형님이라고 하라니 부담스럽다.
“예, 형님.”
-그래, 무슨 일?
“이번 사건 말입니다, 낙산대공원 시체.”
-어, 애니메이션 킬러?
응? 그게 뭔 유치한 이름이야?
“그게 뭡니까?”
-허허, 밑에 애들이 그렇게 부르더군.
이름 붙일 게 없어서 사건에 이름을 붙이냐, 기자도 아니고 KCSI 요원들이란 사람들이 참. 그들이 사건을 어떻게 부르든 관심 없다.
“목을 자른 흉기 추정됩니까?”
-음, 일단 도검류야. 날은 곡선 형태인데, 국내 유통되는 도검들과 대조 중이다.
목과장의 말에 침을 삼킨 나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일본도 아닙니까?
-일본도? 음··· 날의 형태로 봐선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지.
“··················”
-왜? 뭐 알아낸 거 있어?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일단 일본도 쪽을 타겟으로 확인 부탁드립니다.”
-어, 연구실에 전달하지.
“감사합니다, 형님.”
-네 부탁이라면 며칠 밤을 새도 된다. 우리 조카녀석 잘 보내게 해준 놈인데 이 정도가 무에 대수라고. 수고해라.
“예, 형님.”
전화를 끊고 다시 빌라를 올려본다.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3층. 햇빛을 보는 것도 두려워하는 피해자. 그리고 그런 동생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오빠. 황지영의 오빠에겐 충분한 살해동기가 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군 훈련소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걸까?
관우와 문자를 주고받던 연주가 다가와 말했다.
“황지영의 오빠, 황창수씨는 22세로 종로 재림섬유 공장에서 일하다, 34일 전 육군으로 입대했습니다.”
담배를 태우던 최영현이 물었다.
“어디 보충대?”
“논산 육군 훈련소입니다.”
“음, 논산까지 내려가야 돼? 하, 미치겠군.”
최영현이 한숨을 쉰다. 나는 관우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연주에게 관우 소식을 물었다.
“기모노 입수경로 확인은?”
연주가 핸드폰 문자를 확인하며 말했다.
“Happy Japan Joy라는 사이트에서 판매 중이랍니다. 기타 사이트도 있는데 한국과 연결된 사이트 중 가장 큰 사이트라고 합니다.”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황창수나, 황지영 명의로 가입된 바가 있는지 확인하라 그래.”
“예, 팀장님.”
“최 경위님.”
최영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든다.
“예, 예. 논산 가야 되죠?”
잘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부탁드립니다. 군 당국에 협조 공문 보내는 건 제가 맡죠.”
“예, 예. 아이고. 지금 내려가면 밤이겠네, 지미.”
툴툴거리면서도 제 할 일은 하는 최영현이 차에 올라탄다. 논산에 다녀오려면 고생 꽤 하겠다. 잠깐 같이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팀장이다. 이 사건의 컨트롤 타워는 관우이지만 지휘 자체는 내가 해야 되니 나는 이곳에 있는 것이 옳다.
최영현의 차가 연기를 뿜으며 출발하자, 연주가 손 부채질을 하며 인상을 쓴다.
“아, 진짜! 카 센터 좀 가라니까. 저거 범칙금 물 텐데. 무슨 경찰이 법을 안 지켜?”
음, 그건 그렇다. 서울 올라오면 꼭 가라고 지시할 셈이다. 연기가 좀 심하네. 나는 손바닥을 부딪히며 말했다.
“자, 일단 황창수를 유력한 용의자로 본다. KCSI가 일본도를 흉기로 판정하면 바로 황지영씨 집 압수수색영장 발부해서 일본도 압수하고, DNA 시료 채취하자.”
“예, 팀장님. 하··· 그런데 참. 자신은 피해자, 오빠는 살인자라니. 기구한 인생이네요.”
“아직 살인자로 규정할 순 없으니 조사해 보자고.”
“네.”
떨떠름한 얼굴의 연주. 그녀도 내심 황창수가 범인이 아니기를 비는 기색이다. 가뜩이나 지옥에 사는 황지영이 여기서 또 한번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인간적 바람이다. 정말 처리하기 싫은 류의 사건이다. 이건 범인을 안 잡을 수도 없고, 잡아도 떨떠름할 것 같다.
**
다음날, 최영현의 연락이 왔다. 밤에 도착하는 바람에 훈련소 면담이 불가능해 아침 일찍 면담을 하고 연락한 모양이다.
-황창수 만나봤습니다.
“어땠습니까?”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큰 안경을 쓰고 호리호리한 몸매였고요. 담당 교관한테 황창수가 나간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미친놈 보듯 하더군요, 지미.
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이 나간 적이 있냐 묻는 것 자체가 미친놈 같아 보일 것이다. 교관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이겠지.
“군은 폐쇄적인 집단입니다. 일시적 탈영의 경우 부대 내에서 쉬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압니다, 그런데 부대 CCTV는 군사기밀이라 영장을 내밀어도 안 보여줍니다.
“음···”
-일단 부대 주변 민가 쪽 CCTV와 관공서 CCTV 뒤져 보겠습니다. 탈영병이 있었다면 헌병대나 부대 자체 조사부대가 나섰을 겁니다. 아무리 조용히 처리했다고 해도 흔적은 남았을 겁니다.
이래서 최영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방금 군에서 CCTV를 주지 않는다고 했을 때 경찰 상부를 통해 추가 영장을 발부해 군을 압박하는 수를 떠올렸다. 그 방법은 매우 복잡하고 내무부와 국방부 사이에 마찰이 생길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최영현의 경험은 그러한 충돌을 방지하고, 더 부드럽게 수사할 수 있게 해준다.
“부탁드립니다.”
-예, 예.
전화를 끊고 관자놀이를 꾹 누르고 있을 때 다시 전화가 울린다. 이번엔 목과장님이다.
-어, 도경아.
“예, 형님.”
-흉기 말이다, 일본도가 맞다.
“··················..”
-칼날 길이 70cm, 전체길이 104cm, 무게 약 1,100g이다. 확인해 보니 규격에 맞는 건 YK84라는 카타나였어.
정말 일본도가 흉기였구나.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 말은 황창수나 황지영, 혹은 그들의 지인 중에 범인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 또 알아낸 것이 하나 있는데.
“뭡니까?”
-시신의 목 말이다. 한번에 베어낸 게 아니다. 여러 번에 걸쳐 끊어낸 거야.
사람의 척추와 연결된 목뼈는 쉽게 베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목을 한번에 베는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다. 보통은 목에 반쯤 파고들다 목뼈에 걸리기 마련이다. 장비나 관우가 말을 타고 베지 않는 이상 현실에서 그런 일은 나오기 힘들다.
“그렇습니까?”
-음, 적어도 50번 이상 천천히 썰었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50번이나?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음,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 하지만 명확한 건 용의자의 근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거야. 자상의 주변이 짓눌려 있어. 그건 힘으로 눌러가며 잘랐다는 뜻인데 50번이나 썰었다는 건 힘이 없다는 뜻이지.
황창수는 호리호리한 일반인이다. 그런 사람이 사람 목을 한번에 자르는 건 힘들다. 황지영도 가능하다. 결국 둘 다 용의자란 건데 황창수는 군에 있으니 황지영이 유력하다.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전화를 끊은 나는 긴 한숨을 쉬었다. 정말 그녀가 범인일까? 맡은 일을 하다 내 전화를 훔쳐 들은 관우와 연주가 슬쩍 다가온다. 내 눈치를 보던 관우가 물었다.
“황지영··· 체포할까요?”
연주가 관우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영장부터 발부해야 잡지.”
관우가 입맛을 다신다.
“일단 수색영장 받아서 흉기부터 압수해야 되지 않습니까? 숨길 수도 있는데.”
관우의 말이 옳다. 나는 내키지 않지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영장 발부요청 할 테니까 둘이 가서 흉기부터 압수해. 먼저 일본도가 YK84 카타나가 맞는지 확인부터 하고.”
황지영과 마주친 적이 없어 그저 용의자라고 생각한 관우가 벌떡 일어난다. 그와 달리 여전히 내키지 않는 표정을 한 연주는 마지못해 일어나 관우 녀석과 함께 나간다. 일의 순서를 생각해 보자. 일단 흉기는 일본도. 황지영의 집에 일본도가 진열되어 있다. 일단 압수를 하고, 그것을 구매한 경로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또한 일본도를 KCSI로 보내 시체의 DNA나 혈흔을 확인하면 된다. 만약 나온다면 그것이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PC를 켜 영장발부 요청을 보낸 후 턱을 괸 나는 생각에 빠졌다.
‘황지영이나 황창수가 아무리 일반인이라고 해도, 살인을 한 흉기를 집에 그냥 놔뒀다고?’
범죄경력이 없다 해도 이건 일반인도 알 수 있다. 살인을 한 흉기는 법정에서 중요한 증거로 채택된다. 살인을 했다면 맨 먼저 흉기부터 버려야 한다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인데 그걸 버젓이 집에 진열해 놨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인가? 하, 모르겠다. 이럴 때 기억이라도 읽어야 하는데.
턱을 괸 나는 오랜만에 혼자 있는 사무실에서 내 능력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지금껏 읽었던 기억들을 떠올려 보면 나는 상대에게 명백한 ‘악의’를 가질 때 기억을 본다. 그 기억의 대상은 제한이 없는 것 같다. 살인자를 직접 볼 때 보이기도 하고, 살인자를 본 짐승의 기억을 읽기도 했다. 또한 영덕의 사건을 떠올려 봤을 때 나는 살인자가 썼던 물건을 보고도 기억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살인자에 대한 강렬한 악의가 선행되었을 때이다.
이번에 나는 누구의 기억을 읽어야 할까? 대상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인상이 구겨진다. 남성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파르르 떨던 연약한 성범죄 피해자 여성. 나는 그녀에게 과연 악의를 가질 수 있을까?
모든 죄는 법으로 심판해야 한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심판은 위법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황지영을 욕할 수 있을까? 그녀에게 악의를 갖고 기억을 읽어낼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처음으로 기억을 읽지 못하고 사건을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만약 흉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김현우의 DNA가 나온다면 사건은 의외로 간단히 해결될 지도 모른다. 굳이 억지로 없는 악의를 짜내 기억을 읽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잡는다고 내 마음이 편할까? 어리고 작은 아이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피해자를 스스로 징벌했다. 물론 살인은 죄이지만 나는 과연 그녀를 미워할 수 있을까? 경찰의 마음가짐과 인간이 가진 마음이 내면에서 끊임없는 충돌을 일으킨다.
곧 영장이 발부되고, 연주에게 영장 사본을 PDF 파일로 보냈다. 지금쯤 황지영의 집에 도착했을 시간이다. 태우지도 않는 담배 생각이 난다. 하, 이래서 경찰들이 줄 담배를 피우는 구나. 답답한 마음에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때, 핸드폰이 울린다. 관우 전화번호가 떠 있다.
“어, 관우야.”
-저기, 팀장님.
“그래, 압수는?”
-그게 좀 골 때리게 됐는데···
음? 영장 보여주고 검만 가져오면 되는데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무슨 일이야?”
전화기 너머, 곤란한 말투의 관우 목소리가 들려온다.
-황지영씨 댁에 있는 일본도요··· 이거 가검(假劍)인데요?
내 눈이 커졌다. 그게 장식용 가짜 검이라고? 그럼 그게 흉기가 아니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