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95화 (95/328)

제 95 화. 목소리(Voice) (10)

병원 경비실.

개인병원이라 전문 경비인력이 아닌, 보통의 경비 아저씨들이 있는 공간. CCTV도 실시간 감시 시스템이 아닌, 방 한구석에 있는 컴퓨터가 녹화만 하고 있다. 다행히 병원 건물 내부에 있는 곳이라 담배 냄새에 찌든 경비실은 아니다.

연주가 물었다.

“그런데 팀장님. CCTV는 왜요?”

음, 뭐라고 해야 되는 거지? 죽은 김현우의 기억을 읽었다고 할 순 없는데.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그러자 관우가 끼어든다.

“뭘 물어? 김유미씨가 황지영씨와 친구 관계라고 했어. 목과장님 보고서에 따르면 김현우의 시신에서 다량의 클로로포름이 검출되었고. 클로로포름을 가장 자연스럽게 주사할 수 있는 곳은 병원일 테니 의심을 하시는 거지.”

음, 그렇게 논리적으로 접근한 건 아니다 관우야. 하지만 변호해줘서 고맙구나. 연주는 날 힐끔 본 뒤 물었다.

“언제 영상 보면 될까요?”

기간을 정해 달라는 뜻이다. CCTV 분석 시에는 보통 사건이 난 시간을 기점으로 앞 뒤로 10시간가량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나는 달력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 날.”

연주와 관우가 동시에 달력을 보며 물었다.

“10일요?”

“음.”

“10일로 지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사건 날이니까.”

“아, 그건 그렇네요. 그럼 사건일 오전부터 보면 되겠죠?”

“아니, 전날 밤부터 봐. 병원 문 닫을 시간부터.”

연주는 다시 질문을 하려 했으나 멀쩡한 병원영업 시간에 여기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혹은 주사를 주입하는 일을 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경비원에게 말한다.

“아저씨, 9일 밤 10시 영상부터 확인해 주세요.”

PC 옆에 있던 아저씨가 고개를 저었다.

“나 저거 다룰 줄 모르는데.”

하, 아무리 개인병원이라도 그렇지. 경비원이 CCTV 다룰 줄 모르면 어쩌냐? 관우가 씩 웃으며 PC 앞에 앉는다.

“아이고, 그러실 수도 있죠. 제가 하겠습니다.”

경비원은 넉살 좋은 관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능력이 모자라도 자기 본분을 잊지 않는 아저씨다. 혹여 외부에 공개되면 안 되는 자료를 가져가는 것을 감시 중인 것이다. 관우는 경비원의 따가운 눈길을 받으며 목표시간의 영상을 찾아내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영상 가운데 줄이 생기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시간. 아무것도 없는 복도라 움직이는 것이 없어 아래부분에 표기되고 있는 시간이 아니라면 빠른 속도로 재생하고 있는 줄도 모르겠다. 다들 우두커니 복도 CCTV를 바라보고 있는 그때. 관우가 갑자기 스페이스 바를 타격하며 화면재생을 멈춘다. 왜 그러는 거지? 아무 움직임도 없었는데.

관우는 고개를 갸웃한 뒤 다시 화면을 뒤로 돌린다. 다시 봤던 부분을 재생하는 관우. 화면이 살짝 깜빡 하는 것 말고는 아무 이상한 점이 없다. 하지만 관우는 이번에도 화면을 멈춘다.

“음.”

말없이 화면을 내리고, 다른 각도에서 찍힌 CCTV를 확인하는 관우. 무려 다섯 개의 화면을 확인하는 동안 말 한마디 없던 관우가 날 돌아본다.

“확실히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지 말을 해야 알지, 이 놈아. 관우가 멈춰 두었던 다섯 개의 화면을 작게 분할해 한 화면에 띄운다.

“자, 여기 시간을 보세요.”

다섯 개의 화면에 같은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동일한 부분에서 멈춰 둔 것이다. 첫 화면을 클릭 후 재생을 누르자, 몇 초 지나지 않아 연주 목소리가 들린다.

“어?”

나도 눈치챘다. 나는 화면 쪽으로 몸을 내민 후 두 번째 영상도 재생했다.

“이것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마찬가지다. 관우가 고개를 꺾으며 말했다.

“복도 쪽 CCTV 다섯 군데 모두 새벽 1시 40분부터 2시 10분까지 자료가 삭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1시 39분 화면에서 갑자기 시간을 뛰어 넘어 2시 11분자료가 재생되었다는 뜻이다. 아까 화면이 깜빡인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관우 이 자식. 진짜 대단한 눈썰미다. 난 전혀 몰랐는데 한번에 알아채다니. 나는 우리 대화를 듣고 놀란 얼굴이 되어 있는 경비원을 보았다.

“밤에도 경비실에 근무인력 있죠?”

“아··· 당직이 있긴 한데. 새벽 1시 넘으면 보통 당직실에서 자는 게 보통인데.”

“이곳에 들어올 권한은 어디까지 열려 있습니까?”

“·····················”

경비원이 답을 하지 못한다. 하, 생각해 보니 경비실 들어올 때 카드키를 찍는 곳이나, 비밀번호를 누르는 보안 장치가 전혀 없었다. 문을 잠그지 않았다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일이 꼬인다.

“9일에서 10일 넘어가는 날. 당직 근무자가 누구였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경비원은 자신들의 병원 경비에 구멍이 났음을 눈치채고 얼른 움직인다. 늦었지만 수사에 최대한 협조를 해서 구멍을 막아야 자신들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원장에게 알려지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나는 당직근무표를 확인하고 있는 경비원을 바라보며 관우에게 말했다.

“CCTV 지워진 시간 앞 뒤로 30분. 여기 있는 모든 CCTV 영상 다 확인해 봐.”

“예, 팀장님.”

관우는 몇 만 시간 분량의 CCTV도 끈질기게 분석하는 녀석이다. 30분이라는 시간을 정해준다면 분명히 뭔가 발견해낼 녀석이다. 시간이 좀 걸릴 일이라 당황한 손길로 서랍장을 마구 뒤지며 근무표를 찾는 경비원 옆으로 왔다. 그는 내가 다가오니 압박감을 느꼈는지 손이 더욱 빨라진다. 겨우 근무표를 찾아 마구 넘긴 경비원이 내게 사건당일에 기록된 표를 내밀며 말했다.

“여, 여기. 김씨가 당직이었네요.”

“출근했습니까?”

“오늘 주차장 근무인데.”

병원에 올 때 봤다. 주차장에 들어설 때 주차장 사무실인 컨테이너 박스에 누군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연주와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김씨는 담배를 태우고 있다 우리가 내려오자 급히 불을 끈 후 물었다.

“차 빼 드려요?”

연주가 신분증을 내밀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김씨가 흠칫 놀란다. 나는 사람들을 지키려 경찰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내가 경찰임을 알고 꺼려하는 아이러니함의 반복. 이제 이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나는 김씨를 살펴보며 물었다.

“9일 밤부터 10일 아침까지 당직 근무 서셨죠?”

잠깐 기억이 안 나는지 눈동자를 뒤룩거리는 김씨.

“아··· 그랬죠. 맞아요.”

좀 험상궂게 생기긴 했지만 사람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나쁜 짓을 할 깜냥이 못된다.

“그날 밤에 이상한 일 없었습니까?”

김씨는 나와 연주 눈치를 보며 되물었다.

“이상한 일이라면···”

연주가 끼어 들어 물었다.

“평소와 다른 일이요. 아주 작은 일이라도 괜찮아요.”

김씨는 잠시 생각해 본 뒤 말했다.

“그게··· 12시 좀 넘어서 순찰 한 바퀴 돌고, 당직실에 와서 그냥 잤는데···”

하, 경비업무가 너무 소홀한 곳이다. 하긴 성형외과일 뿐인데 문 잘 잠겨 있나 확인하는 것 외에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김씨는 긴장을 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담배를 꺼냈다가 멈칫한다. 이런 인터뷰 시에는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

“괜찮습니다. 담배 태우세요.”

김씨는 손에 담배를 들고 날 바라본다.

“그게 아니라.”

김씨가 담배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당직실로 가기 전에 주차장 내려와서 담배를 한 대 폈습니다.”

“예, 그런데요?”

“그때가··· 아마 12시 40분쯤 됐을 겁니다. 근데 간호사가 주차장 앞을 지나가더라고요.”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간호사들도 당직을 섭니까?”

“서죠. 입원 환자가 있을 때만.”

성형외과에 입원 환자가 있나?

“입원 환자가 자주 있습니까?”

“아뇨, 아주 가끔 큰 수술한 사람들이 밤에 진통제 놔 달라고 오는 경우가 있긴 한데. 성형외과는 진통제 처방 안 주니 다른 병원으로 보냅니다. 내가 여기서 일 한지 꽤 됐는데 입원까지 하는 환자는 두 명쯤 봤습니다. 상태가 안 좋아서 밤새 수액 맞느라 그런 거죠.”

“그날도 환자가 있었습니까?”

“전 그냥 경비원인데 그런 말 안 해주죠.”

“간호사를 마주치고 어떤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그게···”

김씨가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담배를 물고 있는데 편의점에서 뭘 사왔는지 봉투를 들고 들어오는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맨날 보던 간호사라 물었죠. ‘오늘 당직 섭니까?’ 했더니 웃으면서 ‘아뇨, 정리해 둘 게 있어서 남았는데 배가 좀 고파서 편의점 다녀왔어요.’라고 했습니다.”

연주가 급히 물었다.

“그 간호사가 누구입니까?”

김씨가 약간 물러나며 눈치를 본다.

“그게··· 유미씨라고.”

연주가 날 돌아본다. 난 일단 김씨에게 협조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한 뒤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관우에게서 문자가 온다.

-후문 CCTV 사각에서 김현우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관우가 문자에 영상을 첨부했다. 새벽에 주변을 기웃거리며 병원 후문 쪽으로 다가오는 김현우의 모습이 담겨있다. 병원 내에 있는 CCTV는 모두 지웠지만 주차장 쪽에 설치된 CCTV를 지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연주가 화면을 확인 후 말했다.

“김유미씨 긴급 체포할 까요?”

“························.”

이상하다. 김현우의 기억 속에 있는 목소리는 분명 미소년의 목소리였다. 김유미라는 간호사가 중성적인 목소리를 가진 사람일 수 있으나 뭔가 찜찜하다.

“일단 참고인 소환으로 하자.”

연주가 반대한다.

“팀장님. 김현우가 사건 날에 병원에 들어왔고, 경비원의 증언으로 같은 시간 김유미씨가 병원에 있었다는 것도 증명됐습니다. 김현우의 몸에서 다량의 클로로포름이 나온 것도 그렇고. 모든 정황 증거가 김유미씨를 범인으로 몰고 있어요. 참고인 소환은 그쪽이 거부하면 그만입니다.”

연주 말이 백 번 옳다. 하지만 기억 속 음성이 자꾸만 귓가를 남는다. 그래, 혹시 여성 중에 중성적 목소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 용의자로 조사하는 편이 좋겠다.

“알았다. 대신 긴급체포 말고 주요 용의자로 가자.”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연주는 여기 저기 전화를 한 뒤 김유미를 데리러 가다 말고 돌아본다.

“그런데 팀장님.”

“음?”

연주가 날 이상한 눈으로 본다.

“김현우가 사건 당일 여기 온 건 어떻게 아셨어요?”

“··················.”

하, 연주는 지나치게 날카롭다. 관우처럼 둥글둥글 넘어가 주면 좋을 텐데. 내가 할말을 찾느라 뇌를 풀 가동하고 있을 때, 그걸 지켜보던 연주가 다가와 주먹으로 내 가슴을 툭 친다.

“또 감이예요? 단양 때처럼?”

“···············..”

“맞죠?”

“어, 뭐 비슷해.”

이런 답 말고 할말이 없다. 연주는 씩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 감이라면 믿을 만하죠. 좋아요,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음, 가끔 믿음을 베이스로 한 오해는 지나친 신뢰를 낳는 모양이다. 나 같았으면 꼬치꼬치 캐물었을 것 같은데. 김유미를 데리러 가는 연주의 뒷모습이 빠르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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