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00화 (100/328)

제 100 화. 목소리(Voice) (15)

직원이 우리 반응을 보곤 이상한 눈으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다 장난감 아닙니까?”

맞다. 당신 눈에는 저게 장난감으로 보이겠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물품들이니까. 뒤늦게 도착해 우리 뒤에서 나타난 연주가 최영현을 밀치고 앞으로 나온다. 창고 안으로 들어간 연주가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중얼거린다.

“만화책, DVD에··· 이건 요술봉 아닌가요?”

가면에 가발, 각종 코스튬과 장난감 도끼, 분장 도구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작은 애니메이션 전문 가게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많은 물건들이 가득하다. 최영현이 큰 몸을 억지로 밀어 넣고 물건들을 밖으로 던지기 시작하자, 직원이 놀라 소리쳤다.

“어어! 조심하세요! 그거 부서지면 저희가 변상해야 됩니다.”

최영현은 들은 체도 않고 물건들을 뒤로 던지다 우뚝 멈춘다. 무언가를 꺼내 천천히 몸을 돌린 최영현의 장갑 낀 손에 일본도가 있다. 최영현은 우리에게 검을 보여준 뒤 뽑았다. 스르릉 소리가 나는 검. 어찌나 관리가 잘 되어 있는지 날에서 빛이 번쩍거린다.

“진검이다.”

직원이 놀라며 물었다.

“지, 지, 진검이요? 장난감 아니었습니까?”

됐다, 흉기를 발견했다. 반은 끝난 셈이다. 나는 놀란 직원에게 물었다.

“황지영씨가 이걸 넣고 빼는 걸 본 적 있습니까?”

“아··· 뭐, 봤습니다. CCTV로 본 거지만. 근데 전 정말 장난감인 줄 알았습니다. 가끔 여기서 시커먼 옷을 입고 얼굴에 가면까지 쓰고 나오기도 해요. 당연히 코스프레 대회 같은 곳 나가는 학생인 줄 알았죠. 요즘 집에서 이런 거 반대하는 애들이 여기다 이런 물품 보관하는 일이 많습니다. 여기서 갈아 입고 바로 사진 찍으러 가는 거죠. 이 학생도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지, 진검이라니···”

직원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 수많은 장난감 중 진검 하나가 섞여 있는 것뿐이니까. 연주가 끼어들어 물었다.

“시커먼 옷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직원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게 그러니까··· 가죽 옷 같은 건데 위 아래 일체형의 옷이고 눈을 가리는 나비 가면을 쓰고 나오곤 했어요.”

나는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머리를 정수리 쪽에서 높게 묶고 있었습니까?”

직원이 어찌 알았냐는 얼굴로 마구 고개를 끄덕인다.

“예! 맞아요! 그렇게 하고 나왔습니다!”

팀원들 중 관우가 가장 먼저 눈썹을 꿈틀거린다.

“괴도 포니 테일?”

최영현과 연주도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에 대략적인 애니메이션 줄거리를 보고 왔는지 관우의 말이 나오자 마자 눈치챈다. 최영현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건 누구 죽이는 만화 아니지?”

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훔치는 만화였어요. 악인의 것을 훔쳐 약자에게 주는 뭐 그런 내용이었죠.”

나는 창고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 황지영씨 입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는 바로 자신입니다. 강자의 것을 훔쳐 자신에게 준 겁니다. 창고의 비용도, 그 일본도의 구입 비용도 모두 훔친 겁니다.”

내가 말하기 전에 이미 팀원들은 사건의 전후사정이 어찌 돌아가는지 눈치챘다. 나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최 경위님은 저와 같이 바로 검을 들고 KCSI로 갑니다. 연주와 관우는 CCTV 회수해서 황지영씨 출입한 영상 따와.”

최영현이 검을 들고 따라붙는다. 이제 사건 해결까지 하나의 고비만 남았다. 바로 황지영의 자백이다.

멍한 얼굴로 남은 연주와 관우. 관우가 멀어지는 둘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린다.

“우리 팀장님··· 진짜 대단하지 않냐? 저걸 어떻게 다 아는 거지?”

연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팔짱을 낀다.

“미스터리한 사람이야. 솔직히 난 처음부터 황지영씨는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너도 그렇지?”

“어··· 개미 한 마리 못 죽이게 생긴 사람이 살인이라니.”

“진짜 어떻게 범인을 특정하는 거지?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야.”

관우는 연주를 휙 돌아보며 말했다.

“맞아, 영덕에서 진짜 신 내린 사람 같았다니까? 겉으로 보기엔 나와 비슷하게 사건이 지지부진해 답답해 하는 것 같은데 갑자기 어느 순간 사람이 돌변해. 어디서 뭘 눈치채는 건 지도 모르게 진도가 쑥 나간다니까?”

연주가 동의하며 말했다.

“단양에서도 마찬가지야. 너 알지? 장진수 아랫집 살던 집 주인 말이야. 여중생 딸 둔 아줌마.”

“어, 알지.”

“그 아줌마는 나도 만났거든. 근데 난 아무것도 못 알아냈어. 하지만 팀장님은 달랐어. 여중생 핸드폰에 우연히 찍힌 장진수를 찾아낸 거지. 하지만 말이야, 그 사람이 범인이란 걸 어떻게 알고 추적을 하느냐 이 말이야.”

“내 말이! 진짜 전설의 형사 무당 신 같은 거 내린 사람 아냐?”

“하··· 유치하게 그게 뭐냐?”

“아니면? 어떻게 설명을 해, 이 상황을?”

연주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딱히 관우의 말을 부정할 근거가 부족한지 그저 고개를 젓는다.

“하여간, 진짜 이상한 팀장님이야.”

관우도 고개를 끄덕이다 손바닥을 비비며 아직도 멀뚱히 서 있는 직원을 바라본다.

“얼른 CCTV 줘요. 우리 바빠요.”

**

KCSI.

검에서 채취한 시료의 분석 보고서를 본 목과장이 손뼉을 친다.

“나왔어!”

결과를 기다리던 최영현이 벌떡 일어난다.

“김현우 DNA 나왔습니까?”

목과장이 빠르게 걸어오며 서류를 내민다.

“어, 혈흔이다. 황지영 지문도 일치.”

최영현이 기뻐하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단지 경찰이 믿을 수 있는 확증과 기소 가능한 증거가 필요했을 뿐이다. 덤덤한 얼굴의 날 멍하게 바라보던 최영현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이, 이번 것도 감입니까?”

딱히 할말이 없다. 그저 목과장님 손에 들린 서류를 받아 잘 챙긴 나는 증거물 봉투에 담긴 검을 챙겼다. 목과장이 날 보더니 물었다.

“그거 중요 증거물인데 어디 가져가?”

“보여줄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 범인?”

“예.”

“혈흔과 지문까지 나왔는데 뭣 하러?”

“자백까지 끝내야죠.”

“허, 아직 자백 전이야?”

“예.”

“그거 보여준다고 자백할까?”

“할 겁니다.”

확실하다. 이걸 보는 순간 그녀 안에 있던 테츠야가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나는 목과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직도 멍한 얼굴로 내 동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최영현이 침을 꿀꺽 삼킨다.

“대박···”

목과장이 그런 최영현을 보며 물었다.

“뭐가?”

최영현이 목과장을 보며 날 가리킨다.

“가끔 저 사람이 인간으로 안 보입니다.”

“음?”

최영현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으, 소름 끼쳐.”

목과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차 한 대로 온 거 아냐?”

“예? 맞는데.”

“도경이 혼자 가겠다, 인마.”

최영현은 목과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간다.

“같이 갑시다, 팀장님!”

목과장이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히죽 웃는다.

“잘 하고 있네, 우리 도경이. 최영현 저 깐깐한 새끼까지 인정하는 걸 보니.”

종로경찰서 주차장.

검을 가지고 경찰서로 돌아오자, 주차장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던 정지훈 차장이 만면에 웃음을 걸고 손을 든다.

“여.”

정지훈 차장이 체포영장을 받아준 것이 아니었다면 사건 해결에 난항을 겪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수사 인력을 두 개로 쪼개 한 팀은 황지영을 감시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허리를 숙였다.

“다녀왔습니다.”

정지훈이 내 등을 두드려 주며 말했다.

“역시 이번에도 네놈 말이 맞았구나.”

“···············..”

이 사람은 나에 대해 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말일 거다. 우리의 비밀을 모르는 최영현이 얼른 끼어들며 말했다.

“캬, 차장님. 우리 팀장님 진짜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무당처럼 범인 딱 지정해서 파기 시작하는데 불도저가 따로 없다니까요?”

“킬킬, 불도저는 네놈 별명이고 이 놈아. 멀쩡한 도경이 이상한 별명 지어주지 마라.”

정지훈이 다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자백까지 문제없지?”

“예.”

“깔끔하게 가자. 기자들이 나불거리지 못하게.”

“예, 차장님.”

정지훈 차장의 응원을 받은 후 취조실로 돌아온 나. 연주와 관우가 유치장에 있던 황지영을 취조실로 데리고 와 기다리고 있다. 모니터실에서 황지영을 관찰하며 CCTV를 분석하던 관우가 휙 돌며 물었다.

“나왔어요?”

나 대신 최영현이 결과 서류를 툭 던지며 말했다.

“당연하지, 팀장님이 찍은 범인인데.”

“오오!”

불과 얼마 전까지 황지영은 범인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니 이젠 철썩 같이 믿는 모양이다. 관우와 연주가 서류를 확인하는 동안 봉투에 담긴 검을 잡은 난 거울 너머의 황지영을 노려보다 말했다.

“지금부터 최종 취조를 시작한다. 다들 녹화, 녹음 잘 부탁한다. 황지영이 제 정신으로 돌아오면 제대로 된 법정 진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거다. 취조 전체가 증거자료가 될 테니 잘 보관해.”

관우가 걱정 말라는 듯 경례를 한다.

“걱정 마세요, 팀장님!”

나는 팀원들과 하나씩 눈을 맞춘 후 황지영이 있는 취조실로 왔다. 일부러 검을 뒤에 숨긴 나는 날 보며 겁을 먹은 황지영을 잠시 바라보다 자리에 앉았다. 황지영은 몸을 뒤로 물리며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돼요···?”

내 속에 문득 연민이 치솟아 오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 황지영. 아직 강력계 생활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몇 개의 사건이 있었다. 내가 겪은 사건 중 범인의 기억을 읽지 못한 유일한 사건. 나는 끝내 황지영에게 악의를 가지지 못했다. 억지로 악의를 끌어 올리려는 시도도 해봤지만 진심으로 악의를 가지지 않으면 기억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황당하게도 죽은 시신의 기억을 읽고 해결하게 된 이 사건은 내게 있어 신선한 경험이다. 나는 황지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답했다.

“아마 아주 한참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황지영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어, 얼마나··· 계, 계속 여기에 있는 건가요? 아니면···”

“아마 감옥으로 가진 않을 겁니다.”

황지영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가, 가, 감옥이요?”

“병원이 되겠죠.”

“병원?”

“네, 당신을 변론해 줄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경찰도 협조할 겁니다.”

“··················.”

황지영은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눈을 뒤룩뒤룩 굴린다. 당연히 자신의 기억에도 없는 인격이 튀어나왔을 때 저지른 범죄에 대해 모르고 있겠지. 나는 천천히 뒤에 숨겼던 검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황지영은 갑자기 내가 무기를 꺼내자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딱히 소리를 지르진 않는다. 놀라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다.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얼굴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이것이 진짜 황지영의 모습이다. 이제 나는 또 다른 황지영과 마주해야 한다.

“황지영씨.”

황지영이 등을 벽에 붙일 때까지 물러나 어깨를 움츠린다.

“네···?”

“이 검. 어디서 보신 적 없습니까?”

“··················..”

나는 검에서 손을 떼고 그녀 쪽으로 밀었다.

“자세히 보세요.”

나와 검을 번갈아 보다 마지못해 한걸음 앞으로 나와 떨리는 눈으로 검을 바라보는 황지영. 검은 검집을 바라보는 황지영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는 서서히 차갑게 가라앉는 것이 보인다. 삼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내면에서 뭔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 확연히 분간된다.

검을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숙이는 황지영. 나는 가만히 그녀를 관찰하고 있다.

‘나와, 그 속에서 나와야 사건이 해결된다.’

황지영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나는 안다. 그녀의 눈길은 테이블 위의 검에 가 있다. 살짝 몸을 떤 황지영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더없이 차가운 눈빛.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황지영. 그녀의 입에서 차가운 미소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朝に目が覚めると、何故か泣いている(아침에 눈을 뜨니 왜 그런지 울고 있다)

そういうことが時々ある(그런 일이 가끔 있다)

見ていた 初め 夢は(꾸고 있었을 꿈은)

いつも 思い出す ない(언제나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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