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02화 (102/328)

제 102 화. 목소리(Voice) (17)

거나하게 이어지는 술 자리.

벌써 빈 소주 병이 다섯 병이나 깔려 있다. 물론 내가 마신 건 두 병 남짓이고, 나머진 강혁 아저씨가 드셨다. 술 좋아하는 양반이라 그런지 주량이 완전 말술이다. 아직도 약간 취기가 돌아 보이기만 하고 혀가 꼬이지 않는 걸 보니.

식어서 단단하게 굳은 고등어 구이 살점을 발라 입에 넣은 아저씨가 말했다.

“황지영은 언제 검찰로 송치하냐?”

다시 황지영 이야기가 나오자 내 표정이 굳어진다. 하지만 아저씨 말처럼 나는 앞으로 이러한 일들을 수없이 겪을 것이다. 벌써 넘어져 울 순 없다.

“관우가 황지영씨 자택에서 창고까지 CCTV를 전부 다 따고 있습니다. 흉기에서 김현우 DNA도 나왔고 본인 자백도 받아서 더 할 게 없습니다. 아마 내일쯤 바로 송치할 것 같아요.”

“음, 그래. 재판장이나 검사도 취조 영상보면 납득할 거다. 최예림인가 하는 선생도 증언해준다고 했지?”

“예.”

“그래, 잘 마무리했네. 치료감호 정도로 처리될 거야. 문제는 기자들인데···”

한국은 신파를 좋아하는 나라이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 기자들이 벌떼처럼 들러붙을 것이다. 뉴스 클릭 수에 목숨을 거는 그들은 황지영 사건을 희대의 신파극으로 만들 확률이 높다. 최악의 경우 정신병을 핑계로 한 살인사건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강혁 아저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쪽은 내가 어찌 해보마.”

아저씨가 아무리 경찰 고위간부라도 언론 통제가 가능할까? 기자들이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써 대는 기사를 무슨 수로 막을까? 강혁 아저씨는 못 미덥다는 눈빛을 보내는 날 보곤 열 받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나 무시하는 거냐?”

“··················.”

“어? 이놈 표정 봐라? 지금 딱 무시하는 눈빛인데!”

“아니거든요.”

“아니긴! 무시하는 눈빛 맞는데! 이 자식이 지금 대한민국 경찰청장을 무시하는 거야, 뭐야?”

“무시하긴 뭘 무시해요, 잠깐,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뭐, 인마.”

“경찰청장?”

“··················.”

강혁 아저씨가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소주를 가득 따라 한잔 마신 아저씨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몰라, 씨발. 나보고 청장 하라고 하네.”

대박. 아저씨가 서장도 아니고 청장이 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아주 어릴 때 아저씨를 처음 만난 당시 그의 계급은 경감이었다고 한다. 아저씨를 다시 만났던 중학교 때는 치안감. 아저씨는 치안정감을 거쳐 결국은 치안총감이 되어 대한민국 경찰을 총괄하는 경찰청장이 되었다.

“대박···”

내 눈이 왕방울만 해지자, 아저씨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일 아니다.”

“왜 안 좋아요? 대한민국 경찰의 정점에 서셨는데.”

“미친, 인마. 내 나이가 몇인데. 이 나이에 청장 하면 정년만 빨라지지.”

“어차피 정년 퇴임하고 연금 받고 사는 게 목적이면서.”

“뭐, 인마? 아니거든? 나 죽을 때까지 나쁜 놈들 잡고 살려고 경찰일 하는 거거든! 꼴랑 2년 임기 채우고 나가는 청장 안 되려고 내가 몇 번이나 걷어 찼는데, 이번에 안 하면 진짜 퇴임 시킬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거든!”

“하하, 진짜 아저씨는 특이해요.”

“뭐가 특이해, 인마. 너도 이 자리 와봐. 좀 있으면 은퇴한다고 생각하면 떨어지는 낙엽도 다 피하면서 살게 된다, 이 놈아.”

하긴, 나도 뉴스에서 경찰의 무능함을 지적 받을 때 옷을 벗는 청장들을 많이 봤다. 적어도 아저씨만은 임기를 다 채우고 명예롭게 은퇴하셨으면 한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나라도 열심히 해야 아저씨에게 조금이나 은혜를 갚을 수 있겠지.

“하여간 축하 드려요, 아저씨.”

아저씨는 입을 삐죽이다 잔을 내민다.

“너도 축하한다.”

음? 뭘?

“뭘 축하해요?”

“일단 한잔 따라 봐.”

나는 잔을 내밀고 있는 아저씨를 바라보다 소주병을 들었다. 또르르 채워지는 잔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저씨가 내 병을 가져가 내 잔을 채워준 후 말했다.

“축하한다, 현도경 경감.”

내 눈이 커졌다.

“예?”

강혁 아저씨가 소주를 들이키며 킬킬거린다.

“새끼, 짧은 시간이었는데 포인트 넘치게 모았더라.”

아저씨는 이제 청장이 된다. 그런 사람이 거짓말을 할리는 없다. 내가 정말 경감이라고? 강력계 발령 받은 지 이제 겨우 일년쯤 지났는데 이렇게 빨리?

나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킬킬 웃다 내 표정을 보고 물었다.

“뭐, 인마.”

“아저씨.”

“어?”

“아저씨가 힘썼죠?”

“··················.”

“포인트 찬 거는 아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빨리 승진을 시킨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내가 아는 대한민국 경찰체계가 바뀌었다면 몰라.”

강혁 아저씨는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린다.

“뭐 인마. 경대 수석에 강력계 가자 마자 장진수 연쇄살인사건 해결하고, 어? 오종근에, 김상식에. 이번에 황지영 사건까지. 살인사건만 네 건이야. 그것도 전부 깔끔하게 해결했는데 그럴 수 있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경감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내 의심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딴청을 피우던 강혁 아저씨가 별안간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래, 인마! 힘 좀 썼다! 너 솔직히 종로서 강력계 팀장들 다 경감인 거 알아 몰라? 솔직히 내 새끼가 거기 가서 계급 때문에 다른 팀장들 눈치 보는 거 난 싫다. 그리고 막말로 어? 네가 뭐가 모자라? 지금 경감인 놈들에 비해 뭐가 모자라? 충분히 달만 하지. 좀 빨리 다는 것 뿐이다! 그게 뭐!”

역시, 이번에도 아저씨가 힘을 썼구나. 솔직히 내 공로는 진급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하지만 소위 짬이 모자란다. 아저씨가 힘을 쓰지 않았다면 이번에 진급하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계속 가자미 눈을 뜨고 있자 아저씨가 제 발 저린 표정으로 변명을 한다.

“야, 솔직히 너 밑에 팀원 중에 최영현 있지? 그 놈이랑 계급이 같잖아. 가뜩이나 너보다 나이 많은 팀원인데 계급까지 같으면 맞먹으려 들 거 아니냐?”

“최영현 경위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뭘 아냐, 그놈 싸가지 밥 말아먹어서 전에도 상사한테 욕지거리 했던 놈인데.”

“저한테는 안 그래요.”

“··················”

“솔직히 처음엔 좀 싸가지 없었는데 지금은 전혀 안 그래요. 다른 팀원들처럼 명령도 잘 따르고.”

강혁 아저씨는 궁지에 몰린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리다 벌떡 일어났다.

“에이씨! 몰라, 인마! 진급하라면 해! 아저씨! 여기 얼마요?”

강혁 아저씨가 지갑을 열어 계산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꾸 날 힐끔거린다. 아마도 내가 진급을 거부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이다. 근데 내가 왜? 진급 시켜주면 월급도 오르고 좋지 뭘. 나는 턱을 괴고 빙긋 웃으며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내 짓궂은 얼굴을 보며 헛기침을 한다.

“험! 나만 일찍 정년퇴임 안 해, 너도 빨리 진급해서 빨리 퇴임해라. 그래야 내가 좀 덜 억울하지.”

“킥킥.”

“뭘 웃어, 인마.”

“한잔 더 하시죠. 이번엔 제가 살 테니.”

“··················.”

아저씨는 잠시 고민하다 씩 웃는다.

“2차는 순댓국 어때?”

“콜.”

“좋아, 가자. 현도경 경감님.”

“예! 가시죠, 청장님!”

**

다음날 종로경찰서 1층 로비.

인사이동 및 승급 공고문이 붙자, 그 앞에 서서 싱글싱글 웃고 있는 관우가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이야, 우리 팀장님 대단하네. 벌써 경감이라니.”

연주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한 승진이야. 우리 팀장님이 다른 팀장님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모자라지 않으니까.”

“하, 그건 나도 인정이지. 근데 와씨 엄청 젊은 나이에 경감이네.”

관우와 연주가 대화를 하다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최영현이 뒤에서 팔짱을 끼고 공고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영현은 가만히 공고를 읽고 있다. 관우가 슬쩍 최영현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선배는 최근에 경위 복직 되셨으니 곧 좋은 소식 있을 겁니다. 너무 실망 마세요.”

최영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물었다.

“뭔 소리야? 우리 팀장님 승진하는 건 당연한 거지.”

예상과 다른 반응에 놀란 관우가 슬그머니 물었다.

“괜찮으신 거예요?”

최영현이 발로 관우의 엉덩이를 뻥 차며 말했다.

“야, 인마. 솔직히 우리 단양 사건 때 뭐 했냐? 전부 우리 팀장님이 다 했지. 그나마 우리 이름 싹 올려서 보고서 써줘서 나도 경위 복귀하고 너희 두 놈도 경사 단 거 아냐?”

“으! 뭐··· 그렇기는 하죠.”

“사람이 고마운 줄 알고 살아야지.”

최영현이 몸을 휙 돌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맞은 엉덩이를 만지던 관우가 씩 웃는다.

“최 선배 많이 변하셨네.”

연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 덕분이지, 뭐. 능력으로 싹 눌러 버린 사람이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지. 자, 황지영 송치 끝내고 우리도 좀 쉬자고.”

“콜!”

잠시 후 다시 1층 로비.

수갑을 찬 황지영을 호위하며 내려온 나는 텅 비어 있는 1층 로비를 보았다. 기자들이 몰릴 만도 한데 아무도 없다. 이게 청장 파워라는 건가? 아저씨가 제대로 해 주신 모양이다. 나는 황지영을 데리러 온 검찰 수사관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말했다.

“검사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검찰 수사관이 마주 고개를 숙인 후 말했다.

“충분히 정상참작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행이다. 황지영의 악몽이 이것으로 끝나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 본다. 나는 뒤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황지영을 바라보았다.

“황지영씨.”

황지영이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든다. 현재 그녀는 착하고 마음 약하고, 겁이 많은 보통의 황지영이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검사도 황지영씨 사정 다 알고 있습니다. 강압적으로 취조하지 않을 겁니다. 미리 부탁드려 취조 도중에 최예림 선생이 동석해 주시기로 했고, 법정에서도 선생님이 함께 해 주실 겁니다.”

“·····················.”

검찰 수사관이 황지영의 옆에 서서 말했다.

“차에 타시죠.”

황지영이 크게 호흡을 한번 한 뒤 몸을 움직인다. 차에 타기 직전 멈칫한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나를 비롯한 팀원들을 한 명씩 바라보던 황지영이 다시 내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형사님.”

“예, 황지영씨.”

“고맙습니다.”

“···············..”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 나는 당신을 잡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속마음은 그렇게 외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경찰이다. 또한 내 주변에 팀원들이 있다. 나는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범죄자에게, 살인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배웅이다. 하지만 내 뒤에 선 팀원들도 모두 고개를 숙인다.

황지영은 일일이 고개를 숙여 화답한 뒤 차에 올랐다. 떠나는 검찰 차량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나. 나는 오늘 가장 잡고 싶지 않은 범인을 잡아 검찰에 넘겼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범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나를 경감으로 진급 시켰다.

씁쓸하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야 한다.

나는 이제 고작 한번 넘어졌으니까.

나는 아직 이만 구천 구백 구십 구 번을 더 넘어져야 하니까.

나는 시야에서 사라지는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리며 말했다.

“황지영 사건 종료, 전원 업무 복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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