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12화
9. 광기(狂氣)(10)
종로경찰서 강력 3팀, 취조실.
대전에서 여기까지 끌려오는 내내 나는 억울하다, 그냥 근처 친구 집에 온 건데 갑자기 형사들이 쫓아와서 도망친 것뿐이라는 진술로 일관하는 지현우.
그러다 연주에게 또 한 대 얻어맞았지만, 그래도 입을 쉬지 않던 지현우는 결국 최영현에게 한 대 처맞은 후 반쯤 기절해서 끌려왔다.
취조실에 묶여 고개를 모로 꺾고 있는 지현우. 코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지현우를 모니터링실에서 관찰하고 있던 관우가 휘파람을 불었다.
“우와,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팼길래 저렇게 왔습니까?”
연주의 얼굴이 붉어진다. 물론 최영현도 같이 때렸지만 그는 지금 얼굴 상처를 치료하러 갔기에 이 방에 남은 가해자가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나도 사람이라 연주를 이해한다. 물론 상사의 입장에서는 야단쳐야 되는 상황이지만 오늘은 나도 그러기 싫다.
“연주.”
“네…… 팀장님.”
“취조 준비해.”
연주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제가 해요?”
“강력계 전통 몰라?”
“…….”
관우가 목 뒤로 깍지를 끼며 웃는다.
“잡은 놈이 취조한다!”
관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잡았으니 네가 해.”
연주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제가 폭행을…….”
체포 과정에서 지나친 폭행이 있었다. 징계를 받게 될 수도 있는 상황. 이런 때 자신이 취조를 맡는 게 옳은 것인지 묻는 모양이다.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관우.”
“예, 팀장님.”
“김지혜 씨 댁 옥상에 CCTV 있었어?”
관우는 대번에 내가 뭘 묻는지 알고 씩 웃는다.
“현장에 있던 CCTV 중 빌라가 들어오는 각도의 카메라는 모두 여섯 대. 하지만 모두 옥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팀장님.”
나는 눈치를 보고 있는 연주에게 말했다.
“들었지? 너는 식칼과 스패너를 휘두르는 범인에게 맨손으로 맞섰다. 총 안 썼잖아?”
“예…… 그건 그런데.”
“체포 도중에 발생한 일이다. 아무것도 묻지 않을 테니, 하나만 약속하고 들어가.”
“어떤 약속을…….”
나는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취조하다 때리지 마라.”
“…….”
연주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오른다. 관우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취조실 안에서 패면 팀장님도 실드 못 쳐준다?”
연주가 관우를 매섭게 노려보자 자라목이 되는 녀석. 나는 연주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저 새끼, 지금 범행 부정 중이야. 자백받아.”
“예, 팀장님.”
연주는 고마운 눈빛을 보내며 얼른 노트북을 챙긴다. 취조실로 들어가는 연주를 지켜본 나는 관우에게 물었다.
“지현우 소지품에서 뭐가 나왔지?”
“스패너, 칼, 청 테이프가 나왔습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바지는?”
“안 나왔습니다, 어디에 버린 모양입니다.”
“흉기는 KCSI로 보냈고?”
“예, 그런데 다 새것 같습니다. 마트에서 산 칼과 중앙동 공구시장에서 산 스패너 같은데. 그걸로 범행 입증 못 합니다. 청 테이프 역시 아직 포장을 뜯지도 않은 새것이고요.”
“다른 건?”
“그게 전부입니다.”
하, 미치겠다. 아무것도 안 나왔다는 건데.
“KCSI 연락해서 연구원들 이쪽으로 보내라 그래.”
“지현우 신체에서 DNA 채취하려고 그러세요?”
“어, 그렇게 해야지.”
살인을 저지르고 아직 씻을 타이밍을 못 잡은 지현우. 그의 몸에 권진아 부모의 DNA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증거는 없을 수 없다. 어딘가 있는데 우리가 찾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방법을 써서 증거를 찾고 저놈 입을 열어야 한다.
KCSI에 전화를 하는 관우를 지켜보다 녀석이 전화를 끊자마자 물었다.
“권진아 씨 상태는?”
“여전히 혼수상태인데, 30분 전에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다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만약 권진아 씨가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경우, 지현우가 범인임을 밝혀낼 물증까지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순간 생각하기 싫은 경우의 수가 떠오른 나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냐, 잡을 수 있어.’
취조실 안에 있는 연주와 지현우.
연주는 지현우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보고서를 준비 후 지현우를 본다. 여전히 입과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정신을 못 차리는 지현우.
연주는 그를 노려보다 벌떡 일어난다. 또 지현우를 패는 건 아니겠지? 순간 움찔했지만 연주가 티슈 박스를 가져와 지현우에게 던지는 걸 보곤 안심하는 나.
마이크를 타고 연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피 닦아.
지현우는 티슈를 물끄러미 보다 휴지 몇 장을 꺼내 입과 코를 닦은 후, 피 섞인 침을 여러 번 뱉으며 욕을 한다.
-하, 씨X 별…….
연주의 눈빛이 또 매서워졌지만, 다행히 잘 참아낸다. 연주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은 후 말했다.
-이름 지현우, 나이 24세. 맞나?
-씨X, 망할 대한민국은 개인정보도 없나, 내 이름, 나이도 다 아네? 묻지도 않고 두들겨 패기부터 한 경찰이 말이야.
하, 지현우. 너 그러다 연주한테 제대로 한 대 처맞는다? 연주가 작정하고 치면 너 한 방에 골로 가, 인마. 연주가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네 신상정보가 맞는지 물었다.
-알면서 뭘 물어요? 아니, 씨X! 내가 지금 왜 개처럼 처맞고 여기 끌려와야 되는지 설명을 하라고요!
연주가 지현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시간에 거기 왜 갔지?
지현우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아까 말했잖아! 친구 집에 가는 길이었다고!
-가방 속에 스패너, 칼, 청 테이프는 친구 집에 가는 길에 가져갈 물건이 아닌데.
-친구 화장실 배관이 고장 났다고 하길래 고쳐주러 갔수다! 그게 왜? 뭐가 잘못인데?
-화장실 배관을 잘 고치나 보지?
-내 전공이지. 자취하는 후배들 집에 화장실 고장 나면 내가 고쳐주고 그랬습니다.
-권진아 씨 집 화장실은 잘 고쳤고?
-그건…… 아, 씨X! 권진아 그년 이야기는 왜 꺼내고 그래요? 생각도 하기 싫은데!
안 넘어오는구나. 연주가 능구렁이같이 지현우를 잘 구워삶고 있다. 연주는 자신이 놓은 덫에 걸리지 않은 지현우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권진아 알지?
-전 여친입니다, 왜요?
-전 여친이면 헤어졌다는 건데. 헤어진 후에 만난 적은?
-같은 학교 다니니까 몇 번 봤죠.
-마지막으로 본 건?
-화장실 앞이요.
-권진아 씨를 폭행했을 때 말인가?
-…….
-맞아?
지현우가 휴지를 하나 뽑아 피 섞인 가래침을 뱉은 후 휴지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구긴다.
-하, 그래요. 존나 열 받아서 몇 대 패긴 했습니다. 근데 그거 그 집 부모님과 이야기 잘 끝난 사건인데 이제 와서 다시 고소한다고 합니까? 저 그래서 여기 끌려온 거예요?
끝까지 오리발.
지현우는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오며 혹시 자신이 체포당하면 할 변명들을 연습했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버스를 타기 전이나, 버스를 탄 후 고속도로 휴게소 부근에 증거물들을 유기했을 것이다.
지현우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 집 와서 지랄 떨고 간 뒤에 따로 소식 없었고, 우리 꼰대도 별말 없었는데 갑자기 고소를 한다고?
자신은 권진아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모른다는 표정과 말투. 연주는 그런 지현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권진아 씨 댁 주소 알고 있지?
-모르는데요? 사귄 것도 몇 개월 안 되는데 지방에 있는 본가 주소를 어떻게 압니까? 진아 자취 집은 알죠.
-권진아 씨는 기숙사 생활을 했다.
-아, 그렇지 참. 내가 좀 깜빡깜빡해서.
연주를 놀리듯 이죽거리는 지현우. 연주는 주먹을 꽉 쥐고 간신히 화를 참아내고 있다. 나는 혹시 연주가 흥분해 일을 망칠까 조용히 마이크를 켜고 연주에게만 들리게 말을 전했다.
“연주야, 지현우 소지품에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새끼, 어디에 전부 다 버린 모양이다.”
관우를 힐끔 보니 녀석은 지시하기도 전에 지현우 동선을 다시 살피며 증거를 유기했을 수 있는 곳들을 찾아내고 있다. 연주는 내 목소리에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KCSI에 요청해 지현우 신체에서 DNA 채취를 시도할 거야. 아직 권진아 씨는 혼수상태고.”
연주가 알아들었다는 듯 왼쪽 귀를 만지는 것이 보인다.
“최악의 경우, 지현우 신체에서 DNA가 안 나오면 이 새끼 자백밖에 없다, 권진아 씨가 깨어나지 않는 한. 저 새끼 구류 시간은 걱정하지 마. 현장에서 스패너와 칼로 경찰을 공격했다고 보고해 뒀으니 구류 시간은 없어.”
지현우는 도대체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증거는 나오지 않고,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권진아는 혼수상태이다. 이대로 시간을 끌며 권진아가 깨어나길 기다려야 하는 걸까?
나는 연주에게 말을 전하고 난 뒤 소모전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생각에 잠겼다.
지현우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그가 권진아에게 바랐던 것은 사과였다. 자신이 잘못을 하고도 사과를 받으려 했다. 그는 고작 사과를 받기 위해 그녀의 부모를 처참하게 죽이고, 친구까지 죽이러 내려왔다.
‘전형적인 분노형 살인자. 또한 분노 조절에 문제가 있다.’
상대를 무너뜨리려면 약한 부분을 두들기는 것이 정석이다.
기억 속에서 지현우가 좋아했던 것은 아버지의 목숨을 담보로 권진아의 굴욕적인 사과를 받아냈을 때다.
그는 그때 실실 웃기까지 했다. 상대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쾌락을 느끼는 부류의 살인범이다.
그럼 반대로 그가 싫어했던 상황은 뭐였지?
권진아가 사과하지 않았을 때, 바지에 피가 튀었을 때, 화장실에서 피 때문에 미끄러졌을 때. 자신이 박치기를 맞고 쓰러진 동안 권진아가 베란다 창문을 뚫고 탈출했을 때이다.
생각에 잠겼던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당황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당황스럽다.
놈은 그것을 싫어한다.
명백히 싫은 상황이다.
나는 즉시 마이크를 잡았다.
“연주야.”
지현우와 실랑이를 하던 연주가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꺾는다. 듣고 있다는 신호다. 나는 연주와 지현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상황, 통제하지 못할 상황을 만들어.”
연주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지 슬쩍 거울을 본다.
“컵에 물을 쏟아도 좋아. 예기치 못한 상황을 연속으로 만들어.”
연주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얼굴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관우가 물었다.
“그게 무슨 효과가 있습니까, 팀장님?”
마이크가 켜져 있어 연주에게도 들렸을 관우의 목소리. 아마 그건 연주가 하고 싶은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연주를 가만히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예기치 못한 일을 발생시켜 지현우로 하여금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준다. 그건 그가 명백히 싫어하는 상황이고, 그것이 지현우를 분노하게 하는 방법이다.”
관우는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테이블을 짚으며 거울 속 지현우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분노 조절에 장애가 있는 분노형 살인범. 그에게서 자백을 듣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 저 새끼를 화나게 한다.”
마지막 말이 떨어지자 연주가 귀를 만진다. 역시 영민한 연주는 내 말뜻을 바로 알아챈 것이다. 관우도 내 설명이 이해되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와, 저 새끼 뒤졌네. 연주가 또 사람 열 받게 하는 건 우리나라 제일이지. 올림픽이 있었으면 금메달 따왔을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