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15화
10. 국가수사본부 수사국(1)
고시원 뒤 언덕 포장마차.
이름도 간판도 없는 포장마차. 도로 위에 대충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장사하는 이곳에 대한민국 경찰청장이 동네 백수 아저씨 같은 차림으로 낄낄대며 소주를 마시고 있다.
“킬킬, 야, 너 정지훈 새끼한테 욕 안 먹었냐?”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먹었죠, 사람 걸레로 만들었다고. 아주 배부르게 욕먹었습니다.”
“으하하! 지훈이 새끼 열 좀 받았겠네.”
“따로 뭐 말씀드린 거 있어요?”
강혁 아저씨가 소주를 마시려 잔을 들다가 다시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니? 어떤 대가리 좋은 새끼가 먼저 들어오는 공격에 반격만 하는 바람에 징계 못 먹인다고 하던데? 크하하, 그…… 이름이 뭐라고 했지? 지현우? 그놈도 참 대단하더라. 그렇게 처맞고 계속 덤비던데?”
아저씨가 취조실 CCTV를 본 모양이다.
지현우는 확실히 분노 조절에 문제가 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상대가 안 된다고 느낄 때 저항을 포기하게 마련인데 그놈은 끝까지 덤벼들었다.
맞고 나가떨어져도, 벽에다 던져 버려도 벌떡 일어나서 또 덤볐다. 뭐, 덕분에 난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버릴 만큼 많이 때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나서 관우와 연주의 멍한 눈빛을 보니 내 행동이 살짝 부끄러워졌다.
얼굴이 붉어진 날 보며 낄낄대던 강혁 아저씨가 말했다.
“지훈이 놈이 경무관 진급이 얼마 안 남아서 좀 예민하지만, 뭐 어쩌겠어? CCTV상으로 봐도 법정에서 문제 삼을 만할 건 없어. 그 자식 그거 중간에 의자도 들었잖아?”
지현우는 흥분해 의자를 집어 던졌다. 물론 내가 발로 차서 되돌려주는 바람에 지 얼굴에 처박혔지만.
“뭐…….”
“마음 쓰지 마라.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킬킬. 형사라는 놈이 불같은 면도 있어야 되는 거다, 암.”
멍청한 얼굴로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는 나. 만약 강혁 아저씨나 정지훈 차장님이 안 계셨으면 징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감찰반 조사는 받아야 했을 거다. 지현우가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강혁 아저씨는 다시 소주를 가득 따르며 말했다.
“최영현이 흉기가 든 가방도 찾았고, 소지하고 있던 밀가루 봉투에서 권진아 씨 부모 지문도 나왔고. 게임 끝이네. 자백은 어때?”
“끝났어요, 그쪽도.”
지현우는 흥분해 덤벼들며 슬쩍 흘린 내 질문에 자기도 모르게 범행을 인정하는 말을 남겼다. 약이 바짝 오르게 한 뒤 던진 질문에 자기도 모르게 답을 해버린 것이다.
강혁 아저씨가 웃으며 잔을 들었다.
“송치는 언제 해?”
“내일모레요.”
“보고서 문제없고?”
“담당 검사님께 먼저 보내서 확인받았어요. 이대로 송치하자고 하시던데.”
“흐흐, 네 덕에 종로경찰서장은 매번 카메라 샤워하네.”
강혁 아저씨는 소주를 털어 넣은 후 잔을 물끄러미 보다 인상을 구기며 날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너 이 새끼. 먹이고 재워서 키운 건 난데. 왜 종로경찰서장 놈에게 은혜를 갚아?”
“뭘 먹이고 재웠어요? 그건 수녀님들이 다 했지.”
“인마, 말이 그렇다는 거고.”
“하하.”
옳은 말이다. 경찰로 이렇게 잘 생활할 수 있는 건 모두 아저씨의 조언 덕분이다. 아저씨는 날 삐딱하게 바라보며 자꾸만 시비를 걸었지만 저게 다 장난인 것을 아는 나는 웃음만 나온다.
그때,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아저씨! 이리 좀 와봐!”
언제나 무뚝뚝한 아저씨. 오늘도 같은 표정으로 묵묵하게 일하던 아저씨는 반말을 하는 남자들의 부름에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다가갔다.
정장 차림에 험상궂게 생긴 남자 셋이 건들거리며 말했다.
“지난번에 말했던 돈은?”
“…….”
“아저씨, 내 말 안 들려? 여기 당신 땅도 아닌데 왜 마음대로 장사를 해?”
건달이 아저씨 얼굴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가만히 계시기만 한다.
깡패인가? 나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여기 내가 있…… 아니, 대한민국 경찰청장이 있는데 깡패가 설친다고?
포장마차 아저씨가 깡패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여기가 당신들 땅입니까?”
깡패들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어, 내 땅인데?”
“여기 일반 도로인데 무슨 땅 주인이 있습니까?”
“어, 땅 주인은 아마 국가 소유일 거야. 근데 이 동네 우리가 관리하거든. 그럼 우리 땅이지.”
“…….”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음에 올 때는 여기 가만 안 둬. 장사 계속하고 싶으면 돈 내. 알았어?”
“…….”
보다 못한 내가 일어나려 하자, 강혁 아저씨가 말린다.
“그냥 술이나 마셔, 인마.”
“그래도 아저씨가.”
“그러니까 인마. 경감 나부랭이가 뭘 나서려고. 나서도 내가 나서야지.”
아저씨가 나선다고? 아무리 경찰청장이라지만 아저씨는 나이가 많다. 깡패가 셋이나 되는데 어떻게 하시려는 거지? 솔직히 내가 직접 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아저씨는 윙크를 하며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깡패들이 애꿎은 테이블을 발로 툭툭 차고, 주방으로 쓰는 트럭 뒤로 돌아가 수조 안에 손을 넣고 휘휘 젓기도 한다.
슬슬 내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고 있던 바로 그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다. 언덕길 위를 줄줄이 올라오고 있는 경찰차들. 저게 다 몇 대야? 하나…… 둘…… 셋…… 헐, 열 대가 넘는다.
일렬로 도로에 늘어선 차량에서 한 차에 네 명씩 탑승하고 있던 순경들이 우르르 내린다. 4~50명 이상의 순경들이 내리자, 협박을 하던 깡패들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
순경들은 깡패들을 보았지만 못 본 척하며 강혁 아저씨를 힐끔 본 뒤 테이블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말했다.
“주인아저씨! 여기 낙지 한 마리 주세요.”
“여기는 계란말이요.”
“저희는 김치찌개 주세요!”
주인아저씨는 갑자기 몰려온 손님에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인다. 깡패들이 점차 물러나며 눈치를 보는 것이 보인다.
순경들은 제복 차림이라 술은 시키지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일부러 깡패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꽤 높다.
“야, 여기 전망 죽이지 않냐? 솔직히 내가 경찰만 아니었으면 불법 영업하는 포차라도 이렇게 운치 있는 곳은 절대 안 없애지.”
“구청에서 단속 나오면 어쩌지?”
“뭘 어째? 대한민국 경찰들 최고 단골집인데 한 번 봐달라고 우리가 가서 빌든가 하자.”
“깡패들은 괜찮나? 이런 곳은 깡패들이 돈 뜯으러 온다던데.”
“푸하하! 뭐라고? 너 여기 드나드는 손님 중에 80%가 경찰인데 여기서 삥 뜯는 미친 깡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순경들이 힐끔 굳어 있는 깡패들을 본다.
“혹시 모르는 멍청한 건달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
깡패들이 움찔 놀라며 뒷걸음질을 친다. 눈치 빠른 한 놈이 얼른 주방에 들어온 아저씨에게 말했다.
“그…… 아까 그거 없던 일로 합시다.”
도마에 야채를 놓고 다듬던 아저씨가 힐끔 바라보니, 깡패 놈이 움찔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냥 농담한 겁니다. 하하…… 우린 그만 갑니다? 가, 가자.”
깡패들이 줄행랑을 친다. 불법 주차를 했는지 차를 빼면서도 경찰들 눈치를 본다.
경찰차들도 다 불법 주차 되어 있는 마당에 무슨 단속을 한다고. 깡패들의 차가 사라지자, 순경들이 일제히 강혁 아저씨를 바라본다. 당장 경례를 할 것 같은 얼굴들.
강혁 아저씨는 하지 말라는 듯 말없이 손사래를 친다.
갑자기 밀려든 손님들 주문을 처리하느라 정신없는 포장마차 아저씨.
강혁 아저씨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건달 놈들 저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저 몇 놈 패준다고 달라지는 거 없다. 겁줘도 마찬가지야. 저놈들 뒤에 더 많은 놈들이 있으니까. 분명히 오늘 물러나게 해도 다음에 다른 놈이 또 오겠지. 지가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놈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아저씨 말이 옳다. 아저씨가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세상에 폭력으로 되는 건 없다. 버릇 고쳐주겠다고 주먹 안 쓰고 잔소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는 게 내 지론이야. 그저 힘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 꼭 힘을 쓰지 않고 드러내기만 하는 방법이 더 먹힐 때도 있지. 덕분에 일선에서 수고하는 순경 애들 회식도 한번 시키고.”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강혁 아저씨가 내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그렇다고 지현우 두들겨 팬 거 에둘러 까는 건 아니니까 마음 쓰진 말고. 그런 새끼는 맞아도 싸.”
“하하…….”
내 옆에 아저씨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나부터 열까지 배울 것이 참 많은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니 꼰대 소리를 안 듣는 거구나.
강혁 아저씨가 잠시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도경아.”
“예, 아저씨.”
“이번에 국가수사본부 수사국에 신설 부서가 생긴다.”
“신설이요?”
“어, 와라.”
“…….”
국가수사본부. 검찰이 대검에 못 들어가 안달하는 것처럼 경찰들도 그렇다. 국가수사본부 소속이 되는 건 경찰들의 꿈이다. 자신의 미래에 꽃길이 펼쳐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수사본부는 경찰들의 컨트롤 타워다. 일선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를 지휘하고 지시하는 곳이다.
나는 아직 일선에 있고 싶다.
“죄송해요.”
강혁 아저씨가 씩 웃었다.
“이야기를 반만 들었네.”
“예?”
“신설 부서라고 했잖아. 책상머리에 앉아서 키보드 두들기는 부서가 아니다.”
“그럼……?”
“광역수사대 알지?”
“예.”
“가고 싶냐?”
광역수사대는 강력계 형사들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곳이다.
“예.”
차라리 거길 보내준다고 하면 넙죽 갈 텐데. 강혁 아저씨가 히죽 웃으며 소주를 마신다.
“광역수사대가 커버하는 범위 알지?”
“광역시 전체를 커버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 너희 종로경찰서보다 더 큰 서울시 전체를 커버하지.”
“그게 왜요?”
강혁 아저씨가 잔을 놓으며 말했다.
“신설되는 부서는 대한민국 전체를 커버하는 일선 수사국이다.”
“…….”
내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니까 관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수사국이란 말이야? 그런 게 진짜 있을 수 있어? 강혁 아저씨가 안주를 먹으며 말했다.
“물론 이전과 다르다. 신고받고 출동하는 일은 없어. 수사본부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크다고 판단한 사건을 맡게 될 거다.”
“사건 범위는 어떻게 됩니까?”
“방화, 살인, 상해, 폭행, 협박, 강간, 강도, 실종, 공갈을 포함한 강력범죄(強力犯罪).”
하는 일은 지금과 달라질 것 없다. 다르다고 할 건 사건의 경중일 거다. 국가수사본부가 움직일 만큼 강력한 사건을 맡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전국을 대상으로.
여기까지 듣고 나니 구미가 확 당긴다. 일선 수사를 하는 이가 꿈꾸는 관할 없는 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강혁 아저씨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시범 운영이다. 이게 잘 돌아갈지 다들 미심쩍어하는 분위기지. 이럴 때 네가 와서 한자리 꿰차주면 나는 든든해질 거다.”
“…….”
“해볼래?”
문득 은혜를 갚으라고 했던 아저씨의 말이 생각난다. 이게 은혜를 갚는 건지 입는 건지 분간은 안 가지만 이제 나도 뭔가 돌려줄 수 있는 때인가 보다.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바로 발령 내주마.”
그때 아저씨 옆으로 제주 고등어구이가 쓱 내밀어진다. 강혁 아저씨가 포차 아저씨를 올려 보며 말했다.
“어? 나 안 시켰는데?”
포차 아저씨는 무뚝뚝한 얼굴로 주변에 바글거리는 순경들을 쓱 본 후 무심하게 말했다.
“서비스.”
그대로 돌아가는 아저씨. 아마 이 사달을 낸 것이 아저씨 영향임을 눈치챈 모양이다.
강혁 아저씨가 무뚝뚝하게 돌아가는 아저씨 뒷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푸하하! 이보쇼! 그러지 말고 나랑 한잔합시다, 예? 으하하, 거 사람 참 진국이네.”
내가 보기엔 아저씨가 더 진국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