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16화
10. 국가수사본부 수사국(2)
종로경찰서 강력계.
나는 내 앞에 선 최영현과 악수를 나눴다.
“팀 잘 부탁합니다.”
“…….”
최영현이 내 손을 붙잡고 우물쭈물한다. 나는 발령 전 정지훈 차장님께 강력 3반을 최영현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험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그가 맡는 쪽이 옳다.
최영현은 내 덕에 팀장까지 달았다는 소식을 듣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모양인데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그게 저…….”
“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그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어깨를 두들겨 주자, 그제야 씩 웃는 최영현.
“고마웠습니다, 현 팀장님.”
“그나저나 팀 새로 꾸리려면 애들 새로 받아서 가르치셔야겠네요?”
“후, 그게 좀 걱정이네요. 언제 가르쳐서 사람 만들지.”
강력 3반의 새로운 팀장 최영현. 문제는 남은 팀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관우와 연주를 데려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관우는 아주 쓸 만한 인재다. 내가 국가수사본부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 녀석은 같이 가자고 하기도 전에 제발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연주는 티 내지 않았지만 내가 함께 가자고 하니 마지 못하는 척 허락했다. 물론 관우보다 먼저 짐을 쌌다는 건 비밀이다.
사실 최영현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는 이정호 반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게다가 그까지 없으면 강력 3반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남겨두고 가는 것이다.
짐을 다 싼 연주와 관우를 데리고 정지훈 차장과 이정호 반장, 서장에게도 인사를 올린 후 국가수사본부 수사국이 있는 서대문으로 향했다.
수사국은 경찰청 별관에 있다. 관우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 가면 높은 분들 엄청 많겠죠? 하, 긴장된다.”
임명식이 있을 예정이라 다들 정복 차림이다. 연주가 돌아보며 말했다.
“다리 떨지 마, 바지 다린 거 다 구겨져 바보야.”
“내, 내가 언제 떨었다고!”
“지금도 발발 떠는데 뭐.”
“아니거든! 오줌 마려워서 그런 거거든!”
“긴장하니까 오줌이 마렵지.”
“아니라고!”
애들처럼 또 싸우기 시작하는 두 사람. 처음엔 둘이 왜 이러나 싶었는데 이젠 웃음이 나온다. 그만큼 익숙해진 모양이다.
연주는 운전을 하는 날 보며 물었다.
“근데 팀장님.”
“어.”
“거기 가면 우리 단독 팀이죠?”
“어.”
“팀이 몇 개인데요?”
“두 개라고 들었어.”
“신설 부서면 그쪽 팀도 다른 곳에서 오겠네요?”
“그렇겠지. 신경 안 써도 돼. 완전히 독립된 부서이니까.”
“그럼 우리 바로 위 상부는 누구예요?”
“국가수사본부장.”
“헐…….”
경찰서 팀장 위에 계장, 차장 밑에서 일하던 연주는 국가수사본부장이란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는 모양이다. 하긴 총경도 두려운데 치안정감 명령 따를 생각 하니 앞이 깜깜하겠지.
반면에 난 어릴 때부터 강혁 아저씨와 함께해서 그런지 웬만한 계급장 가지곤 눈도 깜짝하지 않게 되었다.
잠시 후, 경찰청에 도착해 별관으로 들어오자 간단한 임명식이 있다고 한다. 관객은 없고 본부장실에서 간단히 진행되는 임명식. 원래 강혁 아저씨의 자리에 누가 올라온 걸까? 나도 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없다.
빈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는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벌떡 일어났다.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대충 점퍼를 걸친 일선 형사 같은 차림의 50대 후반의 남성. 나는 대표로 경례를 올렸다.
“충성!”
관우와 연주도 함께 절도 있는 동작으로 경례를 하자, 남자는 씩 웃으며 소파를 눈짓한다.
“앉아.”
깡패인지 형사인지 모를 외모. 정말 험상궂게 생겼다. 물론 시원한 웃음이 깡패의 인상과는 좀 달랐지만.
그런데…… 이 아저씨 왜 이렇게 낯이 익지? 내 흔들리는 눈동자를 본 본부장님은 말없이 웃음을 짓는다.
“자, 세 사람이군. 대충 무슨 일 할지는 들었고?”
연주와 관우는 감히 수사본부장 앞에서 말할 자신이 없는지 나만 바라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들었습니다.”
“좋아, 아직 할당 사건 없으니까 일단 오늘은 사무실 배정받고, 짐 정리하고 PC 세팅부터 해. 본격적인 업무는 아마 며칠 뒤부터 시작될 거야. 지방 출근도 잦으니 미리 사무실에 간단한 여행용 짐을 챙겨두는 것을 추천하지.”
“예, 알겠습니다.”
“거기 두 사람은 가 보고, 현도경 경감은 남아.”
연주와 관우가 발딱 일어서서 경례를 한 뒤 얼른 나간다. 숨이 막혀 빨리 나가고 싶은 모양이다.
두 사람이 나가자 날 보며 빙긋 웃는 본부장님.
“도경아.”
“예.”
아무리 그래도 초면인데 ‘도경아’라고 부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지만 일단 윗사람이니 할 수 없다.
“지훈이 놈이 너 아주 꼴통으로 컸다고 하던데.”
그의 말이 떨어지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 사람…… 날 알고 있다.
“…….”
“혹시 장 팀장…… 기억 안 나?”
장 팀장? 그게 누구였지? 순간 기억을 더듬었다. 이 사람은 정지훈 차장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중학교 2학년 때 그 사건. 저수지에 버린 시신을 찾아낸 그 사건의 관계자라는 것인데.
나는 그때 잡았던 아들과 며느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과 마주 앉아 있던 깍두기 머리의 형사 아저씨가 떠오른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저 중학교 때 그 장 팀장님이요?”
본부장님이 활짝 웃는다.
“그래, 인마. 엄청 컸네?”
헐, 그때 팀장님이 지금 국가수사본부장이라고? 나는 힐끔 그의 책상에 있는 명패의 이름을 보았다. 장영훈. 그의 이름은 장영훈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덕분에 경찰이 됐습니다.”
“덕분은 무슨. 내가 뭘 했다고. 종로경찰서 쪽에 네 소문이 자자하던데? 청장님과는 계속 연락하며 살았다고?”
“예, 잘 보살펴 주십니다.”
“허허, 미안하다. 나도 신경 썼어야 되는데.”
솔직히 미안할 건 없지. 난 그냥 고아였을 뿐인데. 강혁 아저씨가 특이한 거지, 다른 형사님들이 내게 신경 써줘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한 사건 도움 좀 얻었다고 평생 책임져야 한다면 부담되어 누가 도움을 청하겠는가?
가만, 이거 돌아가는 걸 보니…….
지금 내가 소속된 수사국의 상전이 내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란 거 아냐? 생각보다 편해지겠는데? 이것도 강혁 아저씨의 안배일까?
장영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
“강혁 형님이 너 특별히 신경 쓰라고 하더라.”
“…….”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강혁 아저씨는 내게 키다리 아저씨 같은 분이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낙하산 인사 같아서 마음에 좀 걸리긴 한다. 그만큼 열심히 해야지.
“뭐 궁금한 건 없고?”
“팀이 두 개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네가 이끄는 팀 하나, 오진규 경감이 이끄는 팀 하나.”
“오진규 경감이요?”
“너 안면 있다고 하던데?”
“예?”
오진규…… 오진규가 누구였지? 장영훈이 눈짓하며 말했다.
“대전에서 지현우 체포할 때 거기 지휘하던 경감 기억 안 나?”
아! 그 사람. 자기 공도 아닌 일인데 열심히 잘 서포트해 주던 사람이라 기억이 좋다. 다행이다. 재수 없이 구는 사람이 아니라.
“아…… 기억납니다.”
“그 친구가 네 칭찬 많이 하더라. 좋은 형사 같다고.”
“그분도 그래 보였습니다.”
“허허, 그래. 둘이 열심히 해서 시너지 내보라고. 어차피 단독 팀이라 마주칠 일도 없겠지만 실적 경쟁은 하게 될 테니까.”
음, 오진규 경감과 실적 경쟁을 해야 하는 거구나. 거기까진 생각 못 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날 본 장영훈이 물었다.
“고시원 산다며?”
참 강혁 아저씨도. 동네 수다쟁이 아줌마도 아니고 내가 어떻게 사는지 다 이야기하고 다니는 모양이다.
“예…….”
“새끼, 조선시대도 아니고 청렴한 선비 같은 삶이냐?”
“…….”
내가 씹선비라 그런 게 아니라 대한민국 집값 때문입니다. 미친 집값이 점점 더 오른다고요. 내가 돈을 모은 만큼 집값이 오르고 있으니 이번 생에 집을 살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웬만하면 대출받아서 전세라도 들어가라. 경감이면 대출 잘 나와. 집이 안정되어 있어야 수사도 잘 되지.”
“예…….”
“그래, 사무실은 3층 305호다. 앞으로 보고는 내게만 하면 된다. 다른 선과는 접촉하지 말고 오직 나한테만 보고하면 되는 거다. 쉽지?”
“예, 본부장님.”
“그래, 나중에 한잔하자. 가서 쉬어.”
“감사합니다.”
본부장실에서 나온 내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강혁 아저씨 덕분이지만 경찰 내부에 이렇게 많은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몰랐다.
또한 그때 그 사건을 함께한 사람들이 이렇게 잘되어 있다는 것도 기분 좋다. 모두 강혁 아저씨의 영향일까?
안내받은 사무실 앞에 서자, 문 안쪽에서 관우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와! 여기 뭐야? 경찰서 사무실이 아니라 검사실 같지 않아? 우리만 쓰는 단독 사무실 맞는 거지? 진짜 이거 꿈 아니지?”
연주도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답한다.
“내가 해 잘 드는 자리 쓸 거야, 비켜.”
“아, 왜. 누가 정했는데?”
“너 어차피 모니터에 해 들어오는 거 싫어하잖아.”
“어…… 뭐 그건 그렇지.”
“비켜.”
“그럼 난 저쪽.”
“거긴 팀장님 자리고.”
“그럼 난 어디 써?”
“거기 문 앞 자리.”
“제길.”
또 싸우고 있는 모양이다. 관우 녀석은 연주에게 한 번도 못 이기면서 왜 저리 매번 덤비는지 모르겠다. 어디 얼마나 좋은 사무실인지 한번 볼까?
문을 열자, 따뜻한 나무 톤의 벽이 보인다. 벽지가 붙은 것이 아니라 진짜 나무를 덧댄 인테리어다. 천장은 하얀색이고, 바닥도 보통의 시멘트가 아니라 사선 무늬의 바닥재가 따로 깔려 있다.
종로경찰서에서 쓰던 싸구려 책상들과 달리 카페에서나 쓸 법한 나뭇결이 살아 있는 책상들도 보인다. 의자도 꽤 비싼 것 같아 보이고, 하다못해 쓰레기통도 스테인리스로 만든 감각적인 인테리어 소품 같다.
“사무실 좋네.”
PC 선을 연결하느라 책상 밑에 들어가 있던 관우가 고개를 번쩍 든다.
“팀장님! 여기 완전 좋아요!”
연주가 종이를 둘둘 말아 관우의 머리를 내려친다.
“임명식 끝났잖아. 팀장님이 아니라, 과장님 바보야.”
“아, 맞다.”
계급은 변동이 없지만 나는 이제 과장이다. 국가수사본부 수사국 중대범죄 수사2과장. 1과장은 오진규 경감이다. 아무래도 나보다 경력도 훨씬 긴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2과장인 것에는 전혀 불만이 없다.
강혁 아저씨 말론 이 자리에 앉아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경정 달 거라고 했으니 진급도 걱정 없다.
해가 잘 드는 회의실 앞 자리가 내 자리인가 보다. 눈치 빠른 연주가 제일 좋은 자리를 비워두었다. 자리에 앉아 개인 짐을 대충 서랍에 넣은 나는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자, 오늘은 첫날이니 대충 세팅만 하고 한잔할까?”
관우가 손을 번쩍 든다.
“찬성이요!”
연주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어디로 가요? 예약 제가 할까요?”
이제 두 사람은 내 식구다. 강혁 아저씨가 날 챙겼던 것처럼 나도 두 사람을 챙길 작정이다. 식구라면 식구 대우를 해줘야 한다.
“아니, 내 단골집으로 가자.”
“어딘데요?”
“우리 집 뒤에 포차.”
“에이.”
“맛있어. 제주산 고등어구이도 팔고 없는 안주 없는 곳이지. 주인아저씨도 웃기고.”
“그래요? 요즘도 포장마차가 있구나. 단속 안 나와요?”
“몰라, 근데 365일 장사하더라.”
“음, 오랜만에 운치 있긴 하겠네요. 빨리 정리하고 가시죠.”
“그래, 조기 퇴근하자고.”
이제 내게도 식구가 생겼다.
따뜻한 밥을 같이 먹고 내 식구처럼 챙겨줄 가족 같은 이들이.
어쩌면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은 경찰로 승승장구하는 것보다 가족이 생긴 것이 아닐까?